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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난감하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 난 제목과 작가만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 더 정보를 알고자 했다가 스포일러를 만나 김이 새버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제목 <풀밭 위의 식사>, 참 따뜻하다.
풀밭...그리고 식사, 그런 이야기들이 펼쳐질거란 기대,
물론 그 기대와 반대되는 반전이 이 책의 첫 번째 매력이었다.
이 책을 보며 '사랑'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의문이 들게 되었다.
누경에게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깨어진 프리즘으로 보게 되는 환영같은 것?
기현과의 이야기도, 서강주와의 이야기도, 사실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누경의 열여섯, 열 여섯 살 때의 아픈 기억, 그것이 어쩌면 누경을 이해하고 격려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상처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 상처를 이해하며 격려해주기 보다는
지속적인 저기압에 화가 나기도 한다.
왜 아직도 유별나게 과거에 얽매여서 사는지 답답해하게 된다.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훌훌 털고 일어나기도 해야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누경의 이야기가 나에게도 그렇게 처음에는 답답해보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에 답답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씩 누경의 이야기를 알아가게 되면서, 누경의 상처와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는 것은, 그 낯선 남자가 아니라 내 목에 겨누어졌던 날카롭게 깨어진 유리병 주둥이예요. 그렇게도 날카로운 유리조각이라니......" (201p)
그러면서도 누경은 유리공예를 배우는 취미 생활을 꾸준히 하고, 결국 푸른 유리병에게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푸른 유리병은 지속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깨어지지 않는 게 사랑이야. 어떤 균열이든 두 팔로 끌어안고 지속하는 그것이, 사랑의 일이야." (227p)
흔히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에 대해 말한다.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할 수 없으면서, 그건 아니라고 그러지 말라고 말하면서 드라마를 본다.
어쩌면 그것은 주인공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본인의 상처로 향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누경!
이해하기도 이해할수도 없는 인물이었지만,
어느새 내 마음은 주인공 누경에서 나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것,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다른 모습을 한다고해서 비난받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내 사랑이고, 내 상처고, 내가 감당해야할 인생이다.
도덕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라고 해도, 그래서 이렇게 소설로는 가능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바람처럼 사라져가는 사랑은 실재했었는지 꿈이었는지
구름처럼 양떼처럼 모였다 흩어지는 환상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어느 정도나 실재로 여기며 살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얼마나 실재일까. 그리고 그는...... (18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