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 ‘우리’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전통 음악보다는 서양음악의 음계를 익히며 커갔고, 우리 역사보다는 <삼국지>를 읽으며 세상을 알고 사람의 삶을 배우며 어른이 되어갔다. 나도 <삼국지>를 여러 번 읽었고, 그럴만한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우리 나라 역사를 그렇게 여러 번 읽으며 음미할 만한 책이 없음을 안타깝게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당연한 것으로만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어찌보면 꽤나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것을, 나 자신을 모르며 다른 것을 먼저 배우게 되는 문화 말이다. 그래서 작가가 많이 준비하고 책을 발간했다는 이야기에 반가웠다. 어쩌면 나도 이런 소설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천년을 기다려 온 소설, 백년 후면 역사가 된다’
‘17년간의 사료 검토와 해석을 통해 당시의 고구려 상황은 물론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까지 아우르는 [고구려]는 대한민국 역사소설의 새로운 장을 여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책소개를 읽고 매료되어 이 책 <고구려>를 읽기 시작했다. 역사 소설은 지루하다는 선입견 때문인지 읽다가 영 마음에 안들면 그만두기로 하고 시작했는데, 금세 다 읽게 되었다. 눈을 뗄 수 없는 소설이었다. 적당한 길이, 을불의 성장과정을 담은 흥미로운 이야기, 재색을 겸비한 아리따운 주아영의 자태를 상상하며 읽는 시간도 흥미로웠다. 왠만한 사극보다 흥미로운 전개에 눈을 뗄 수 없었다.
1권에서 3권까지는 미천왕 시대의 이야기라고 한다. 미천왕 때부터 고국원왕, 소수림왕, 고국양왕, 광개토대왕, 장수왕까지 여섯 왕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십 여 권의 방대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으면 어쩌면 스스로 이 책을 찾아 읽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읽어보면 그 다음 권을 찾게 되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는 고구려 역사의 기틀을 마련한 미천왕의 어려서부터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신의 신분을 속이며 힘겹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을불, 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자태에 아무리 숨겨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고, 도움을 준다. 그렇게 성장하게 된 을불,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쉬지 않고 2권을 향하게 된다.
요즘 아이들이 예전에 우리 어렸을 때보다 사는 것이 빠듯하고 힘들어보여서 안타까운 느낌이 들 때가 꽤나 많다. 하지만 그 시절의 우리와 비교해보면 부러운 부분도 반드시 있다. 우리가 <삼국지>를 읽으며 커가던 시절을 이 아이들은 <고구려>를 먼저 읽으며 클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해보니 부럽기까지 하다. 재미있게 역사를 알고 사람을 알아가는 책, <고구려>를 <삼국지>보다 먼저 읽고 클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이 시대의 아이들의 특혜라는 생각이 든다.
2권의 소제목은 ‘다가오는 전쟁’이다. 숙신의 땅에 들어선 을불이 백성의 마음을 얻고, 아달휼을 얻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 기상천외의 지략을 생각해내는 부분에서는 눈이 반짝반짝, 집중해서 책을 읽게 된다. 특히 주인공은 물론 을불이지만, 이 책에서 양소청과 주아영이라는 여인도 인상적이었다. 삼국지에서도 초선이라는 여인이 나와 그 미모를 상상하며 읽는 것이 재미있었고, 자칫 남성들만의 무예만으로 에서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에 감초역할을 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여인의 지혜가 있어 읽는 재미에 속도를 더한다. 창조리와 무휴의 대화는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한다. 그런 심오한 뜻이!!!
숨막히는 두뇌싸움을 읽어나가다보니 어느덧 2권이 끝나버렸다. 아쉬운 느낌이다. 그래도 나에겐 3권이 남아있다. 3권을 향한 손길이 빨라진다.
드디어 3권, 마지막에 가서는 줄어드는 페이지에 아쉬운 느낌마저 생겼다. ‘<고구려> 미천왕편 끝’이라는 마지막 문구를 보고 서운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3권까지 나온 것을 알고 기다리다가 읽기 시작한 건데, 이렇게 조바심이 날 바에야 아예 고구려 전편이 나온 다음 볼 것을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고구려의 다른 왕들이 펼치는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어쩌면 우리 역사를 속도감있게 보고 싶은 마음이 예전부터 있었나보다. 그래서 반가운 책이었는데, 손놓지 않고 쭉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지나친 욕심이 되는건지! 너무 늘어지지 않는 전개, 적당한 빠르기, 지루하지 않은 역사 이야기에 손을 뗄 수 없는 매력이 있던 소설이다.
삶은 전쟁터라고 했던가! <고구려>를 읽다보면 치열한 전쟁 속에 담겨진 사람들의 인생을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우리네 삶을 훑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 안에서 볼 수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을불이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어쩌면 세세한 글이 좋은 사람에게는 약간 아쉬운 소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역사소설에서는 이렇게 나무를 보는 느낌보다는 숲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는 것이 좋다. 어쩌면 ‘속도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생활 속에서 지금 현대에 맞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4권은 언제 나오는지,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