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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 일러스트로 만나는 감성 여행에세이
봉현 지음 / 푸른지식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가 나를 사로잡은 책, 책 속의 그림이 나를 뒤흔든 책, 제목만으로는 선택하지 않았겠지만 그림이 모든 것을 덮어주는 책, 그런 책을 읽었다.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는 한동안 기억에 남을 그림들로 가득한 책이다.

예전에는 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는데, 요즘들어 그림 없이 여행했던 시간이 아쉬워진다. 사진을 찍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 여행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여행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이곳에 머물러있는 것이 더 좋은 그런 시기, 여행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여행 이야기를 보는 것을 즐기는 정도로 족하다.
저자는 처음에 현실이 너무 싫어서 떠났고, 오랜 기간 떠돌다보니 돌아올 곳이 있어서 좋았으며, 지금은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살고 있다고 한다. 어느 시기에도 그림을 그리며 여행을 했기에 그 기록이 독자의 마음도 사로잡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이 책 속으로 빠져든다. 글과 그림이 생각을 던져준다. 특히 그림에 매료되어 두근거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읽어가다보니, 내가 여행을 대하던 때와 많이 비슷함을 느꼈다. 어떤 때에는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사람들에 이끌리기도 하고, 내 마음이 변하지 않는 한 별다른 감흥이 없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며 지금 현재의 나는 생각에 잠겨본다. 이 책이 생각을 이끌어내는 매개가 되었다.

바티칸의 '천지창조'도,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스페인 광장도, 고대 건축물인 콜로세움도 모두 보았지만 왠지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차라리 이름 없는 골목 어딘가의 사람들 모습이 더욱 흥미롭다.
68쪽, 70쪽 글

게으르게 여행하다 보면 못 보게 되는 유명한 장소들이 있다. '아껴뒀다가 이 핑계로 한 번 더 놀러 오지 뭐'하는 막연하고도 즐거운 생각을 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바쁘게 이곳저곳 다 보고 가면 다음 번에는 김새서 제대로 다니겠냐고, 다음에 갈 곳 한 곳쯤은 남겨놔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웃음이 났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반가운 마음에.
여행 이야기를 하자면, 무엇보다 짐이 우선이다. 여행을 떠날 때에는 배낭 하나에 무엇을 넣어야할지 고민이 되고, 자칫하면 금세 배낭이 가득 차게 되어 다시 몇 번을 정리해야 한다. 막상 여행을 떠나보면 그다지 필요없는 것도 함께 들고다니게 되어 짐은 그야말로 짐이 된다. 그래서 이 책 속에 저자가 남긴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 중에서 발췌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짐은 인간을 말해준다. 짐은 물질적인 형상으로 나타난 인간의 분신과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많은 초콜릿 판을 지니지 않고는 길을 떠나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런 것보다는 프루스트 전집이 필수라고 생각하고, 제 3의 인물은 저녁에 해가 저물어 잠자리를 구할 때 적어도 이미지 관리는 해야 하므로 정장 양복은 꼭 넣어서 떠나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 중에서
여행을 하다보면 사람들의 배낭은 큰 것 하나와 작은 것 하나 정도가 전부다. 아무리 무겁게 들어도 그 이상의 물건을 지니고 다닐 수는 없다. 가끔은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들의 인생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며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그림을 자세히 보다보면 어떤 장면인지, 어느 곳인지, 특색이 잘 드러나는 것이었다. 말이 많지 않아서 좋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좋았으며,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좋은 책이었다. 그림이 돋보여 글을 채워주는 여행기라는 생각이 든다. 글과 그림에 빠져 여행 이야기를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