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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
법정 지음, 김인중 그림 / 열림원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법정 스님의 문장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다.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가슴 한가운데를 조용히 울린다.
소리 없는 말씀인데도 마음이 잔잔해지고, 글자 사이사이로 바람이 스쳐가는 듯한 고요함이 감돈다.
이번에 펼쳐든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그런 법정 스님의 말씀과, 김인중 화백의 깊이 있는 그림이 어우러져 한 권의 묵상집처럼 다가온 책이다.
"무엇보다도 침묵을 사랑하라. 침묵 속에 머무는 사람만이 발견한다"
뒤표지에 적힌 문장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요란한 정보와 가벼운 말들 속에서 하루를 버티는 이 시기에, 법정 스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쉼이자 성찰의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마음에 꽃을 심는 일에 나도 동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삶을 향한 간결한 문장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친절이라는 글은 내게 오래 남았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친절이다.(136쪽)
이 문장을 읽고 나서야, 나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며 살았는지보다 얼마나 따뜻한 말을 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따뜻한 배려 하나가 얼마나 깊은 울림이 되는지를, 우리는 잊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프랑스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의 사제이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스테인드글라스 예술가 김인중 화백의 작품이 함께 담겨 있다. 그의 그림은 침묵으로 완성된 기도이며, 빛을 품은 명상이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잔해처럼 겹겹이 쌓인 색채들은 말보다 깊은 감정을 전하고, 그 안에 녹아든 빛의 언어는 우리 마음속 가장 조용한 곳에 닿는다. 붓질 하나하나가 상처이자 치유였고, 결핍이자 충만이었다.
읽어나가다가 나는 몇몇 장면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 덩어리, 눈을 내리누르는 짙은 먹색의 흔들림… 그 속에서 나는 분노와 슬픔, 절제와 평안을 동시에 마주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빛처럼, 그림은 내면 깊숙이 침투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이 책은 텍스트로만 읽히지 않는다. 문장은 마음을 두드리고, 그림은 침묵의 여백으로 이끈다. 김인중 화백의 예술은 법정 스님의 말씀과 함께 호흡하며,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각적 묵상이다.
법정 스님의 글은 도덕이나 교훈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조용히 묻는 시선이다.
그의 문장은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 스스로 내면을 비추고, 삶의 속도를 늦추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도록 안내한다.
그러니 그의 글을 읽는다는 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돌아보는 일이다. 물처럼 흐르고, 나무처럼 머물며, 침묵 속에서 말보다 큰 울림을 지닌 삶. 법정 스님의 글은 그 삶의 태도를 매일 새롭게 일깨워준다.
또한 이 책에는, 마무리에 관한 성찰도 담겨 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단호한 결단이 아니라 내려놓음이라는 것을, 법정 스님은 조용히 일깨워준다.
이 책은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마음에 남는다. 침묵처럼, 다 말하고도 아무 말이 없는 그 고요한 여운으로.
말보다 앞선 마음의 움직임, 문장 너머의 침묵이 더 깊이 다가오는 순간들.
『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다시 꺼내 들 수 있는 책이다. 누군가의 조언보다, 화려한 말보다, 더 큰 힘이 되어주는 한 줄의 문장과 한 장의 그림이 마음을 조용히 감싸안는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말보다 중요한 멈춤과 들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책이다.
법정 스님 책을 찾는다면 김인중 화백과 함께 한 이 책을 선택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