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신에 대한 귀의의 의미인 사랑의 의미를 잠시 내려놓고, 좁은 의미의 사랑인 남녀간의 사랑만을 사랑이라 이야기해보자면.

사랑을 할 수 있는데 안 하거나 못하고 있는 것과 사랑을 해서는 안될 상황에 놓여 아예 그런 감정조차 밀어내고 살아가는 것의 차이는 무척이나 클 것 같다. 그러기에 사랑을 하거나 결혼을 하지 못한 성직자인 신부님, 수녀님, 스님 (결혼을 하는 스님도 있다고 들었지만 대부분 알고 있기론 아닌 경우가 많기에) 등의 종교인에 대해서는 그 분들이 평생 절대자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인생 그 모든것을 걸고 의탁한 그 자체가 정말 대단한 희생과 봉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는 너무나 크기에.

 

오랜 세월 신앙인으로, 아니 성직자로 살아오다가 속세의 사랑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경우를 보기도 하였지만

이 책에서는 그럴 뻔했던,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어느 젊은 성직자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젊은날의 그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크게 맞춰져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오늘날의 그가 있기까지의 마치 신의 숙명과도 같은 놀라운 우연들이 중첩됨을, 들려주는 또다른 이야기기도 하였다.

 

미안요라고 불리며 어울리던 세 수사가 있었다. 총명했기에 큰 재목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미카엘, 앎은 부족했으나 그저 착한 마음씨와 사랑만으로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던 안젤로, 그리고 이 글의 주인공이자 미카엘과 안젤로의 삐걱거림에 절충의 역할을 하고 있던 요한까지. 그들 세사람은 젊기에 더 잘 어울렸고, 서로에게 어느새 소중한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요한의 할머니는 손자 요한을 자신의 친아들보다 훨씬 더 아끼고 사랑하였고 요한이 성직자가 되는데 가장 큰 기대와 기여를 한 것도 바로 그 할머니의 사랑때문이 컸다. 사실 평생을 신께 봉헌하고 살아가야하는 성직자의 길이 젊은 혈기를 가진 이들이 선택하기에는 다소 힘든 길일 수 있을텐데. 이 책의 세 청년들은 그래도 신께 의탁한 그 삶이 그리 고달파보이지 않았다. 아니, 수사로 있는 그 시간들이 오히려 행복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잘 맞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던 요한을 흔들어놓을 일이 생겼다.

요셉 아빠스님의 조카인 소희라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젊은 수사들의 감정에 대한 논문을 쓰고자 수도원에 며칠 머물게 되면서 요한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아진 것이었다. 처음부터 마음이 쉽게 흔들린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늘 조심하고 신경쓰는 요한이었는데.

그런 요한의 마음을 파고 들어온 것은 바로 그녀 소희였다. 아홉살 많은 약혼자가 있던 그녀였음에도 요한의 가슴을 두드리며 그 마음 안에 비집고 들어와버렸다.

 

요한에게는 아픔을 주고 떠나버린 그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십여년만에 다시 연락을 해왔다. 잊고 있었던 생채기.

그러면서 현재의 요한에서, 젊었던 날의 요한으로 안젤로와 미카엘이 살았던 그 시절의 요한으로 되돌아가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이 요한의 결심으로 이루어질까 싶었던 그 순간. 사실 그들의 그런 사랑이 반드시 행복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것도 미리 예상이 되었다. 가난했던 요한과 달리 풍족한 가정에서 자란 소희는 수사복을 벗어던진 요한과 냉면집을 알콩달콩 꾸려나갈 자신도 없었고, 어쩌면 한순간에 눈이 멀어 젊은 성직자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놨지만 그 삶에 같이 뛰어들 용기와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누가 말리지 않았더라도 그녀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아낼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소희와 요한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로 끝이 날 것 같았지만 삶은 운명은 그보다 훨씬 더 웅대한 것이었다.

자신을 유달리 사랑한 할머니에게 들은 전쟁 속의 아픔, 그 고통의 중심에 서 있던 할아버지를 잃고 할머니와 자신의 아버지를 살아남게 만들었던 빅토리아 메러디스호의 기적. 오늘날의 요한이 있고, 또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있음은 신의 섭리임을 느끼게 해주는 웅대한 삶의 연결고리가 남아있었다. 그저 아무것도 그냥 지나치는, 아니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시간들이 아님을.

 

어떻게 제가 그런 일을 해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단호하게 사람들을 태우라고 명령할 수 있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 기뢰가 깔린 바다에서 어떻게 제가 겁도 없이 배의 키를 잡고 나왔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 끔찍한 조건에서 단 한사람도 죽지 않았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오 하느님, 제게 왜 그런 좋은 일을 하게 하셨습니까? 대체 왜?

...... 그리고 제가 부두에서 젊은 여인에게 했던 마지막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물론 제가 기도할 수 있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군인으로 살아간다해도 기도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부르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부름에 대답하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저는 주저 없이 마치 30분의 기도 끝에 주저없이 사람들을 승선시키라고 명령한 그날처럼 주저없이 이 수도원에 들어왔습니다. 348p

 

세속의 잣대로는 평가할 수 없는 그분들의 사랑이 있음을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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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해피해피 브레드>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을 재미나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 역시 그렇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재미라기보다는 일상의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책이라고 해야할까. 지금 마음의 상처가 깊은 사람이라면 치유의 소설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

 

눈부시게 빛나던 그를 사랑했고, 그에게서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잘 생활하는 그를 보며 (더군다나 결혼하고서도 나를 만나겠다는 아주 황당한 이야기까지 지껄이는 그에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나를 보며) 더이상 회사에 남아있을 수 없어서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카코는 사랑과 일을 동시에 잃고 말았다.

엄마는 집에 내려오라했지만 도쿄에 남아 살고 싶었기에 대충 얼버무리며 우울한 삶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헌책방을 하는 외삼촌에게 연락이 왔다. 외삼촌의 헌책방을 도와달라며, 살기는 헌책방 2층에서 살면 되니까 방세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말이다.

 

외삼촌에 대해 괴짜라고 생각하고, 그다지 친한 감정도 들지 않았던 다카코였는데. 외삼촌은 그런 다카코를 정말 반겨주었고 사랑으로 대해주었다. 게다가 그런 감정은 누나인 엄마에게 부탁받아서가 아닌 진심으로 다카코를 좋아해서임을 알게 되고.

다카코의 냉랭한 감정을 나 역시 어느 정도 감정이입해서 공감하고 있었기에 그런 삼촌의 반응에는 다소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다카코가 무얼 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녀의 존재가, 사랑스러운 조카의 존재 자체가 외삼촌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었음을 그녀는 나중에 나중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저자인 야기사와 사토시는 이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이라는 단편으로 제3회 치요다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고, 이 작품은 2010년 휴가 아사코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이 책에는 이 단편 외에 1년후의 이야기를 그린 모모코 외숙모의 귀환이라는 두번째 단편까지 담겨 있어 독자들에게 모모코 외숙모가 왜 가출을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었다. 아마도 단편 하나만 읽었다면 궁금증이 가득했을텐데.. 친절하게 덧붙여진 1년후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 고마운 그런 책이 되었다.

 

사랑할때의 감정은 달콤하기 그지 없는데 불현듯 다가오는 실연, 이별의 감정은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그런 느낌이다. 게다가 감정의 소모가 꽤나 큰 사람에게는 더더욱 감당하기 힘든 슬픔일지 모른다. 다카코도 그런 사람이었다. 깊이 빠져들고 그러기에 더욱 상처도 깊었던.

그녀를 치유하고 일으켜세울만한 것이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연의 상처를 딛고 삶의 의지를 갖게 하는데..

꼭 대단한 그 무엇, 혹은 그를 대신할 인스턴트 사랑이 필요한것이 아니라 어쩌면 일상의 재발견, 따뜻한 사랑 속에 충만한 편안한 공간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해결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카코에게 그런 공간, 그런 휴식의 기쁨을 알게 해준 사람이 바로 그녀의 괴짜 외삼촌이었다. 자신도 사랑의 상처를 겪고 있으면서도 불시에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떠나버린 모모코 외숙모를 5년이나 기다리며 잊지 못하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기 조카의 이야기를 듣고 비분강개하며 같이 쳐들어가자 이야기하는 삼촌의 호기로움에 나조차도 웃음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사소함으로, 쪽팔리다 생각할 수 있는 그런 행동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였다. 뻔뻔스러운 당사자는 사과할 줄도 몰랐으나 적어도 다카코의 마음은 비로소 제대로 풀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것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이.

다카코의 존재 자체가 삼촌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듯이.

삼촌의 존재과 의미가 다카코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큰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이에 스스로의 가치를 너무 깎아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아주 큰.

적어도 나의 부모님과 내 아이, 그리고 나의 배우자에게만은 내가 최고로 소중한 그런 존재일텐데.

가끔 우리는 그 중요함을 잊고 산다.

 

곰팡이 냄새 폴폴 나는 그 헌책방에서 다카코가 하루하루 치유되어가는 과정은 그렇게 따스하게 내게도 온기를 심어주었다.

이 책 참 따스하다.

올겨울 유난히 시리고 아프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건, 정말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닐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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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서재달인

^ㅡ^ 알라딘에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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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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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욤 뮈소의 책에는 절절한 사랑이 주된 소재로 등장을 한다. 사실 그의 책에서 사랑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란 어려울 정도다. 생사를 넘나들기도 하는 등의 현실에서 많이 벗어난 기적적이거나 혹은 동화와도 같은 그런 사랑 이야기가 그려진다. 처음에 기욤 뮈소를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헐리웃 영화를 책으로 그대로 만난 느낌이었다라 평했었는데.. 이후의 책들도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비슷한 소재와 예상 가능한 줄거리인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모두 재미나게 읽었는데..

 

그렇게 읽은 기욤 뮈소가 <당신 거기있어줄래요?>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 그 후에> <당신없는 나는> <종이여자> <천사의 부름> 등이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내일>은 거의 2년만에 만난 기욤 뮈소의 책이었다. 그런데? 분명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예전 책들과 느낌이 조금 더 달랐다. 어딘가 스릴러 같은 분위기도 있으면서 치명적인 반전에 헉! 하고 숨을 들이키게 만들었다.

조금만 읽고 자야지했던 것이, 아 너무 재미있어서 덮을 수가 없어. 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기욤 뮈소는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라 거부감든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난 그가 마련해둔 장치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그것이었기에 너무나 좋았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더라도, 드라마나 책을 읽다보면 제발 잘되기를, 고통을 승화시키고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간절히 바랠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기욤 뮈소는 그런 나의 소박한 바램을 들어주는 작가여서 좋다.

 

이번 편은 타임 슬립이라고 해야할까.

사랑이야기뿐 아니라 타임슬립 등의 시공을 넘나드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더더욱 딱 맞는 그런 스토리였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여러 영화와 책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옮긴이만 해도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영화로는 <이프 온리>를 떠올렸고, 나 또한 두 작품과 더불어 영화 <시월애>, <동감> 등의 영화와  기욤 뮈소의 또다른 책인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그리고 읽어보지 못했지만 꼭 읽어보고자하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 <촌마게 푸딩> 또 예전에 읽었던 <열세번째 시간>과 얼마전에 읽은 <하품은 맛있다>까지.

완벽한 타임슬립, 타임머신 여행이라기보다 시공을 초월한 인연의 이야기가 여전히 스토리로는 무척 매력적임을 알게 해주는 많은 책과영화들이 있었기에 이 책의 설정을 보고, 여러 책과 영화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각이 났다.

 

아내를 너무나 사랑한 남편이 있었다.

하버드대 철학과 교수인 매튜 샤피로는 교내 최고의 스타 교수이자 외모까지 준수하고 겉보기론 모든게 완벽한 사람이었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딱 1년전에 교통사고로 잃은 아픔을 갖고 있었다. 간신히 아내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날 무렵, 우연히 사게 된 노트북 하나때문에 아주 이상한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뉴욕에서 거의 최고로 잘 나가는 유명한 레스토랑의 수석 와인 감정사인 엠마,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고 역시나 매력적인 외모를 소유한 사람이었지만 사랑만큼은 원하는대로 이루질 못하고, 유부남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비참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너만을 사랑한다며 아내와 이혼하겠다 말하는 남자였지만 다시 또 그녀를 내팽개쳐서 유약한 그녀를 자살 시도를 하게 할만큼 나쁜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이제 간신히 그를 잊어보겠노라 애쓰는 그녀에게 이상한 메일이 한통 도착했다.

 

매튜는 자신이 산 노트북에서 전주인인 엠마의 수많은 사진과 꼼꼼한 인적 사항, 메일 등을 발견하며, 그냥 삭제하기에는 웬지 찜찜한 생각에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 이 사진을 보내줄까요? 하고 예의상 질문을 한 것이었다.

엠마에게 온 답변은 노트북을 판적이 없으니 자신의 일일리 없다는 답변. 그런데 아내가 죽은 후 절대로 그 어떤 여자에게서도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매튜가 엠마에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하고, 엠마 역시 매튜를 알아보다 그에 대한 호감이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강한 끌림에 의해 갑자기 약속을 잡고, 나름 서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식당에 갔는데..

 

분명 제 시간에 도착한 엠마와 매튜였는데 그들은 만나지 못.했.다.

서로에게 급히 실망을 하다가, 서로를 파고들며 알아보다보니..

2011년의 매튜가 2010년의 엠마와 연락을 한 것임을 그들은 뒤늦게 깨닫고, 서로가 경악하고 말았던 것이다.

 

일년 후에 살고 있는 매튜는 일년 전의 엠마를 통해, 어쩌면 아내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 엠마에게 부탁을 하지만.

엠마가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닌 매튜 같은 남자와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 사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하면서 엠마는 자꾸만 매튜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매튜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엠마의 유일한 희망을 담보로 협박을 하기에 이르르고.

 

마지못해 엠마가 매튜의 죽은 아내 케이트를 미행하다가 우연히 이상한 점을 포착하게 되었는데..

 

시월애의 설정이 참으로 많이 오버랩되는 내용이었는데, 내일은 좀더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보면 되겠다.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읽으면서 잠이 확 다 달아나버릴 정도로 말이다.

자꾸 이야기하다보면 모든걸 다 누설해버릴까봐 이쯤에서 이야기는 접기로 하고.

기욤 뮈소의 재미난 책들이 얼른 새로 또 나와주길 간절히 바래본다.

정말 작가의 책을 전부 다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글솜씨의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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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전민식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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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에서던가 인터넷에서던가, 그런 말을 들은적 (혹은 읽은적)이 있었다. 아마도 어떤 책에서였을 듯 한데..

요즘 사람들이 구직을 하거나 할때, 그 사람들의 대인관계서부터 사소한 사생활까지, 그의 입사지원서에 적혀있는 이메일이나 페이스북 주소만 알고 있어도 금새 몇번의 클릭만 해도, 평소 그의 생활 습관이라거나 성격, 혹은 이성친구 여부까지, 어느 정도의 신상이 다 노출된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블로그에 아이들 사진 올리고, 실명 등을 공개하던 엄마들이 언젠가부터 아이들 얼굴 노출을 꺼리고, 실명이 아닌 다른 예명을 사용하고, 자신의 닉네임에서도 아이의 이름을 지우기 시작한 것도 그와 비슷한, 우리 아이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에 마구 노출되면서 혹시나 일어날지 모를 범죄에 대한 우려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정보도 참 무궁무진하지만, 그에 반해 우리가 모르고 있는 사이에 우리의 정보 또한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은밀히, 아니면 아주 대놓고 치밀하게 흘러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개인 정보에 대한 큰 두려움 없이 한때 정말 어지간한 인터넷 사이트에 다 가입을 해둔 적이 있었다. 뭐 그게 큰 일일까 싶었는데, 요즘 개인 정보가 마구 노출되고, 해킹되는 것을 보면 두려움이 크게 앞선다. 카페 운영진으로 활동하는 곳에서도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스팸 게시글 등을 지우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스팸 정지 처리한 아이디들이 보면, 대부분은 진짜 스패머가 아닌 아이디를 도용당한 경우가 많았다. 진짜 자기 아이디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지만, 운영진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스패머들의 덧글과 게시글을 삭제하고 아이디를 정지하거나 강제 탈퇴시킬 수 밖에 없다.

 

이야기가 살짝 새어 나갔지만 다시 13월로 돌아와서.

13월이란. 실제 없는 시간이다. 어릴 적에 읽었던 5월 35일이라는 책은 (읽을땐 아무 생각없이 빠져들어 읽었었는데,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실제 존재하지 않는 날이었다. 동화 속의 5월 35일에 방문한 곳은 아이들이 꿈꾸는 맛있는 음식으로 이루어진 동산 같은 그런 신기한 공간을 방문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책 속의 가상의 13월, 가상의 현실이라고 규정짓고 싶은 엉뚱한 세상은, 동화속 처럼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극단적일 수 있지만, 어디선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으리란 법이 없는, 그래서, 갑자기 서늘한 한기가 올라오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세상이 더이상 동화처럼 아름다울 수 만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들에게는 무척이나 잔인한 세상이 아닐수 없었다.

인간들의 재미를 위해, 어려서부터 모든 생활이 다 세상에 생중계된 트루먼쇼의 이야기처럼.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재황이라는 청년은 관찰자 수인에 의해, 밥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조리 보고서로 작성되어 어느 국가 기밀 연구소로 보내지고 있었다. 물론 본인은 전혀 모르게 말이다. 청년은 보육원 출신이었지만 준수한 외모와 명석한 두뇌로, 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본인 스스로도 선하게 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재황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은 광모라는 보육원 동기.

pc방을 운영하며, 여성들의 성매매알선 사업을 하던 광모는 재황에겐 더이상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과거 속 존재였지만 광모는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재황을 서서히 무너뜨려간다.

 

어느 정도인지 몰랐지만 재황의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상류층 자녀였던 승희, 재황은 그녀를 마음 속부터 깊이 연모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보육원 출신 고아였기에 언감생심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라 생각하고 스스로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녀가 먼저 다가오는 기적이 일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가난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재황이 자신의 모든 비루한 과거를 딛고 스스로의 가치를 올려 승희와 걸맞는 존재(?)까진 안되겠지만 승희에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덜 꿀리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유명한 작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재황은 판단하였다. 그리고, 그가 즐겨 읽었던 여러 소설에서 짜깁기해서 며칠만에 쓴 작품이 덜컥 대학내 문학상에 수상되면서, 승희는 재황에 대한 호감도가 더욱 높아졌고, 재황도 비로소 신분상승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의 작품이 표절임이 밝혀지면서 그는 나락으로 다시 떨어진다.

그리고 광모는 성매매를 할 여대생을 알선해달라며 무작정 재황을 닥달하다가 나중에는 사채 업자 협박까지 해가면서 그를 궁지에 내몰았다.

 

그러던 광모가 갑자기 변했다. 재황은 그런 광모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둘은 용역을 하며, 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선하던 재황의 변화에 당황하는건 수인도 마찬가지였다. 관찰자의 입장이지만, 가까이 다가가거나 도움을 전혀 줄 수 없는 수인은 그저 재황의 무너지는 모습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관찰자 수인과 대상인 재황의 시선에서 교차되는 이야기들

읽고 있으면 이들의 이야기가 어디까지로 치달을지 몰라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래도 빨려들어가 읽었었는데..

그들, 특히나 재황에게 너무나 잔인했던 운명은 결말을 읽고 나니 그래서 더 허무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뭔가 그래서, 더 강렬한 느낌의 무언가가 있었어야했던게 아닐까. 그냥 바라만 봤어야했는가.

아쉬움이 남는 결말이었지만, 그럼에도 이기적인 인간들의 발상 중에는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프로젝트가 있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늘 염두에 두어야겠단 생각은 심어주는 소설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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