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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섬길여행 - 도보여행가 유혜준 기자가 배낭에 담아온 섬 여행기
유혜준 지음 / 미래의창 / 2010년 8월
평점 :

여행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이번 여름 방학때 조용한 섬쪽을 여행하고 싶으시다 하셨고, 동생은 섬보다는 깨끗한 숙소가 있는 곳엘 다녀오고 싶어했다. 동해와 남해쪽을 비교해보시다가 동해쪽은 폭염이 심하다 해서, 남해쪽으로 결심을 굳히시고, 아기가 있는 나를 제외한 친정 식구 네분이 여행을 다녀오셨다. 바로 얼마 전에..어쩌다보니 아빠의 여행이 "남도 섬길 여행"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물론 저자처럼 도보여행을 하신 것은 아니셨지만..
사실 남도 섬길여행이라는 이 책을 읽기 전이라 여행 다녀오신 후에 책을 드렸더니 (나도 그전에는 이 책이 있는지도 몰랐기에..) 아, 여행 가기전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하며 아쉬워하셨다. 그리고, 이미 다녀온 곳들을 회상해보며 더욱 재미나게 읽으셨다. 다녀온 후라 아쉽긴 하지만, 이 에세이도 참 재미있다 하시면서..
친정 식구들의 2박 3일의 여행동안, 따라가지 못했던 나는 심심하기도 했지만, 어린 아기와 함께 하루종일 차를 타는 일정이 힘들 것 같아서 어른들끼리 편하게 다녀오시는게 나을 것 같았다. 따라가진 못했지만, 대신에 이렇게 상세한 도보여행 책이 있으니 여행을 다녀온양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는게 아니겠는가?
현실 여건이 안된다면, 나중을 기약하며 이렇게 여행기로 만족하는 것도 괜찮은 자기만족 같다.
진도, 소록도, 거금도, 거문도, 청산도, 노화도, 보길도.. 그녀가 발이 아프도록 걷고 또 걸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 도보 여정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이야기들.

소치 허련 선생이 낙향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운림 산방이 있는 진도. 그 곳에서 직원 이재권씨의 도움으로 차를 얻어타고, 그가 직접 덖은 녹차 맛도 보고.. 그리고 어느 집에서는 맘씨 착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숙식을 모두 해결하고, 괜찮다는 이에게 돈을 쥐어주고 나오기도 하고..처음 들른 절에서 염치 좋게 밥까지 얻어 먹고..
나라면 혼자 여행길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만 할텐데..유혜준님은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는 듯 하였다.
먹어보니 된장에 박은 풋고추와 깍두기 두가지만 놓고도 맛있다고 드셨다는 스님들의 말이 맞다. 정말 맛있었다. 풋고추에 된장 간이 적당히 배어 아삭하면서도 상큼했던 것이다. 된장에 감자와 호박순을 넣어 끓인 국도 한 그릇 퍼주신다. 맛있네.
75p
정말 소박한 밥상이었을텐데, 글쓴이의 맛깔난 묘사에 나까지 침이 살짝 고인다.
관광지로만 정해진 곳들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도보 여행을 하다보니, 숙소와 식당이 없는 일반 마을에도 들르게 되어 그녀의 숙식 해결방법은 여러 이야기를 낳는다.
같이 배를 탄 할머니의 집에 민박하게 되어 겪은 여러 이야기들도 있고, 남편과의 두번째 진도 도보여행이자 결혼기념일 여행에서, 부부를 한시간 이상이나 따라온 깜순이라는 유기견을 그네들이 묵은 펜션의 주인장에게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키워주겠다 하신이야기, 그리고 성탄 이브라 마을 교회 예배에 따라가 상까지 받은 이야기.
가보지 못한 남도의 아름다운 섬과 관광지 이야기는 기본이고, 그 외에 정말 여행을 하며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관광지, 그것도 정해진 숙소와 맛집을 전전하며 오는 나의 평범한 여행과는 다른 새로운 경험들이었기에..읽는 재미가 더욱 쏠쏠했던 것 같다.
요즘은 지도를 구하기가 참으로 쉽다. 여행지 지도가 필요하면 미리 그 자치단체에 신청을 하면 우편으로 보내주기도 하고, 현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어디든 마찬가지다.
면사무소나 시청, 군청에 가도 되고, 경찰서에 가도 된다.
여행을 할때 그 지역의 지도가 있으면 정말 든든하다.
1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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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버지께서도 이번 여행에서 새로운 곳에 가시면 군청부터 들러서 지도를 확보하셨다 하셨다. 가족들도 그렇게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와, 정말 편리하다고 세상 좋아졌다 생각했단다. 작가의 글을 보며 아버지의 여행이 자꾸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아기와 나를 두고 다녀오신 여행이라 괜찮다 생각하고 싶어도 사실 내심 서운했었는데, 찍어오신 사진들을 보았고, 또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마 이렇게 책으로 만나게 되니 기분이 참 묘하면서도 반가웠던 것이다.
걷고 또 걷는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 세상사를 듣는 이야기.
어느 가게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듣다가 주인에게 라면을 끓여달라 했더니 생수한병까지 해서 1500원만 받는 넉넉한 인신부터 시작해서..
걷다보니 경찰이 차를 세워 말을 건네기도 한다. 도보여행이라는 말에 태워줄뻔했다며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 빗줄기가 거세지니 되돌아와 그녀가 원하는 곳까지 태워다 준다고 하였다. 참 정겨운 사람들.
약간 이지러진 모양의 달은 밝게 빛났다. 쏟아지는 달빛이 펜션 마당을 가득 채웠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오고, 더불어 파도소리가 긴 여운을 남기면서 들려왔다.
참으로 평화로운 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름다운 밤이에요, 하는말이 저절로 나온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섬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2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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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풍경과 여행지의 이야기가 더 와닿을 법한데 , 이 책에서 내 눈에 자꾸 들어오는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래서,내 리뷰에도 자꾸만 사람들의 이야기만 담기는 것 같다. 민박집, 식당이 없어서 동네 사람들의 집에서 묵기도 하였는데, 돈도 안 받으시고 마음 가득 사랑만 담아주시는 분들이 있으니 그녀 기억에 남듯, 내 기억에도 각인되나 보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은 길 위에서 헤어지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돌아서는 걸음을 더디게 하는 사람이 있다. 할머니가 그런 분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언제고 꼭 다시 오겠다는 기약은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간밤에 하신 이야기가 기억나서다. 어떤 청년을 재워준 적이 있는데, 군대 가기 전에 꼭 한번 다시 오겠다고 햇는데 제대하고도 남을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 오지 않았단다.
267p
난 이런 여행기가 좋아. 이렇게 쓰여진 책이 좋다니까.. 얼마전 읽었던 굿모닝 말레이시아를 읽고 나서 아버지께서 하셨던 그 드문 칭찬을.. 이 책을 읽으시고 또 하시었다. 여행기는 자고로 이런 책이 좋더라. 아, 정말 아쉽다. 여행 가기전에 읽었더라면 이렇게 찾아다녔으면 좋았을텐데..하시며 말이다.
물론 깔끔한 숙소, 아니 이왕이면 비싸더라도 안락한 숙소를 선호하고, 고된 여정보다는 아름다운 풍경을 선호하는 여동생이라면 손사래를 쳤을 일이었겠지만, 저자를 따라 동네 아낙들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청하는 따뜻한 이 여행기가 아버지 마음에 들어왔듯, 내 마음에도 깊이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