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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홀 1 -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
힐러리 맨틀 지음, 하윤숙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헨리 8세와 그의 왕비들에 대한 이야기.
국사 시간과 여러 매체 등을 통해 전해들었던 이야기지만, 그 중심에 토마스 크롬웰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아마 주변에는 있었겠지만, 기억이 날만한 비중의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오랜동안 왕의 총애를 받은 왕비였으나 아들을 사산하고, 결국 아들을 얻지 못해 왕으로부터 결혼 무효라는 치욕적인 폐위를 당하고, 야욕을 가진 앤에 의해 물러나는 캐서린 왕비의 이야기서부터 언니인 메리가 먼저 왕의 정부였으나 동생인 앤에게 관심이 더 쏠리자, 자신의 몸을 빌미로 왕과의 줄다리기에서 승리하여 결국 캐서린을 물리치고 왕비에 올라앉은 앤의 이야기까지..왕실의 후손을 얻어 권력을 얻으려는 여자들의 암투와 궁정의 그 뒷 이야기는 의외로 당사자들이 아닌 그, 크롬웰에 의해 보여지고 서술이 된다.
그는 비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죽을 정도로 가혹한 매질을 당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나중에 결혼을 한 후에는 자신의 아들 그레고리만큼은 최고의 보살핌으로 보호해주려 노력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어린시절에서 갑자기 그가 추기경의 수하인 변호사가 된 장면으로 건너뛰어 추기경의 밑에서 승승장구하던 때부터, 그가 몰락한 이후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 아니 오히려 더 기회가 되어 왕의 총애를 얻는 1인으로 부상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지며 그 중심에는 앤을 왕비로 앉히고, 왕권을 강화하게 한 그의 노력이 들어 있었다.
추기경은 말했다.
사람들이 옷 속에 무엇을 걸치고 있는지 보려고 늘 노력하게.
옷 속엔 살갗만 있는게 아니거든.
국왕을 완전히 뒤집어보게.
아마 비늘로 덮인 조상의 모습을 보게 될테니. 따뜻하고 단단한 뱀의 속살로 보게 될 걸세.
173p 1권
다정한 아버지같았던 추기경을 진심으로 존경했던 그는 추기경이 몰락한 이후에도 그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소설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토머스 크롬웰의 모습은 잔인한 집행관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따뜻한 온정을 가진 인물로 비춰지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기도 하였다.
난 잉글랜드의 그 어느 누구도 어느 몰락한 불명예스러운 사람을 위해
자네만큼 하지 못했을 거라는 말을 하는 중이야.
401p 1권
몰락한 인물을 수호하면서도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었던 언변과 지혜를 갖췄던 토마스 크롬웰.
항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모습은 평범하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내고, 삶에 대한 통찰의 깊이가 남다른 힐러리 맨틀에 의해 우리 앞에 오롯이 새롭게 주인공으로 탄생되어 헨리 8세의 궁정사를 들려주는 핵심인물로 창조해내었다.
울프홀..
늑대라는 의미와 빨간 표지로, 먼저 사냥하지 않으면 사냥당한다. 라는 말처럼 피비린내나는 암투를 예상케 하는제목이었지만, 그 느낌이 주는 의미가 강렬할 뿐 실제 소설 속의 울프홀은 그의 배경도 주된 이야기의 무대도 아닌 어느 굴곡 많은 가정사를 지닌 궁정 시녀의 집일 뿐이다.
울프 홀은 제인 시모어의 집으로, 이 작품의 사건과는 사실 아무 관련이 없는 데도
작가가 책 제목을 울프 홀로 정한 것은 그 곳에 가기로계획을 세우는 순간이야말로
크롬웰이 순수하게 상승의 정점을 누리는 시점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617p 2권 옮긴이의 말
능란하고 악마적이며 음험하고 심술궂다, 한마디로 매혹적이다라는 뉴욕타임스의 평으로 잔인한 크롬웰의 모습이 부각될 그런 내용을 상상했다가 의외로 인간적인 모습에 조명이 비춰져서 놀랍기도 했다. 실상 나약한 모습,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가진 크롬웰이지만, 신분 상승의 욕구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얼마든지 그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들에게 칼을 들이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고, 전세계 30개국 출간 확정이라는 기염을 토한 작품인 울프 홀. 수상작품 중에서는 가장 빠르게 베스트셀러에도 올라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는 화려한 수식어구에 솔깃했었는데, 실상 그래서인지 많은 역사적 사실에 뒷받침한 무수한 인물들의 언급과 이야기를 꾸려가느라 비슷한 이름의 다른 인물들이 혼동이 가기도 하고, (맨 앞에 친절한 인물 소개가 있어 다시 확인하면서 읽곤 했다.) 앤의 궁정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부분들은 소설의 주축이 되기도 했지만, 많이 느슨하여 늘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하였다. 전혀 새로운 창조의 소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소설이려니 아무래도 재미보다는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그런 것일까?
아직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그가 정점에서 멈춘 지금, 우리는 힐러리가 쓰고 있다는 속편에서 크롬웰의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