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은 아이로 키우는 심부름 습관
다쓰미 나기사 지음, 박정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9월
품절


사실 정작 나는 어려서부터 심부름을 많이 한 편이 아니었다. 부모님들이 따로 시키시는 심부름은 해왔지만, 자발적인 청소를 한다거나 설거지, 특히 손님분들 오셨을때 예쁘게 차 대접하는 것들(해보기는 했지만)에 능숙해본적이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대학들어갈때까지 빨래는 할 생각도 못했고 말이다.



이 책에는 70~80년대에 태어난 요즘의 대부분의 젊은 부모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인들은 집안일을 많이 안하고 자라 처음에 살림을 할때 막막했던 바로 우리 세대 이야기를 말이다. 그러면서 기계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가사가 해결이 되긴 하지만 아이의 지능 개발이나 학습향상을 위해 다른 노하우를 전수받으려고 분주하지 말고, 우리 주위의 작은 일거리 즉 집안일을 하나하나 도와가면서 자존감을 세우고 지능계발도 할 수 있는 일석 이조의 노하우를 배우라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집안일 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체계적인 가르침을 위해 부모도 이 책을 통해 몰랐던 정리정돈법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기를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이 아니면 알려주지 못하는 일, 바로 집안 일을 말이다.




-집안 일 돕기의 세가지 효과-



하나, 자립심이 길러지고 씩씩해진다.



둘, 학습 능력이 향상된다.



셋 가족간의 정이 돈독해진다.








집안일의 장점이 돋보였지만, 심지어 아이를 하나의 일꾼으로 생각하라는 조언에서는 잠시 생각이 막히기도 하였다.

밖에 나가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아이의 지능 계발, 학습 능력 향상 등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보다 집안 일 하나하나부터 차근차근히 하는 법을 가르치고, 자존감을 세울 수 있다면 정말 보람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를 일꾼으로 생각하라니 어떻게 그런단 말인가. 사실 지금 나에게는 만 두돌바기 어린 아기가 있어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좀더 자라면 아이가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에 대해 정말 많은 고마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너무 어려서 아이를 일꾼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 아이도 어른의 일을 따라하는 것을 재미있어 하고 끊임없이 모방을 하려 한다.

다만 아기가 하면 자꾸 흘리거나 더 어지럽히는 것 같아서 못하게 했을뿐 아이는 엄마 따라서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싶어하고, 빨래도 널고 걸레질도 하고 싶어한다.

거의 6~7개월에 쏘서 (보행기와 비슷한 장난감)에 태웠을때 쏘서 장난감을 제균 티슈로 닦는 엄마를 보더니 어느 날 아기가 먼저 옆에 놓인 가제를 들어 장난감 꽃이며 벌 등을 정성스레 닦는 것을 보고 내가 잘못 본게 아닌가 싶었다. 그 이후로 아기는 바닥을 거즈나 물티슈로 닦으며 걸레질 하는 시도를 하며 노는일이 많았다.

자루 걸레를 보면 자기가 밀겠다고 하고, 청소기를 보면 자기가 직접 돌리겠다고 한다.


자신이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아이한테 한번 가르쳐주고 제대로 못하면 왜 이런것도 못하는 거야 라며 화를 내고 답답해한다. 그럴때는 부모니까 포기하지않고 시켜볼수있다고 생각해보자. 남이라면 한번 하게 해보고 못하면 그만 내버려 두겠지만 부모이기에 아이가 익숙해질때까지 반복해서 가르쳐줄수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의 특권이다. 23p



만 두돌인 지금은 빨래를 널때 자기가 직접 옷걸이를 들고 가서 건조대에 걸어놓고서는 기분 좋다며 박수까지 친다. 따로 재미난 놀이도구 없이도 그저 엄마가 하는 일을 같이 한다는 즐거움이 꽤 큰 것 같다. 이렇게 어렸을때는 오히려 심부름 하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지만, 책에도 나왔듯이 아이가 점점 더 크면서는 자신의 놀이에 빠져서 집안일이나 부모의 심부름을 하기를 귀찮아하기도 한다고 한다. 실패하거나 억지로 하면서도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익히면 나중에 독립했을때 자신의 생활을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다. 26p




2008년 10월에 부모와 자녀에게 가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가사학원을 열고,정리법 세미나를 여는 등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색다른 업무를 하고 있는 저자 다쓰미 나기사님의 이 책을 보면 아이 눈높이에 맞는 정리정돈법과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집안일 등이 세세하게 잘 나와 있다. 그저 순서를 정하지 않고 되는 대로 했던 청소나 집안 일등이 이렇게 체계적으로 하면 더 쉽겠구나. 그리고 어려서부터 몸에 배이면 그게 일이라는 생각보다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보람을 먼저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다. 청소만 해도 걸레질하기, 먼지떨기, 진공청소기 돌리기, 빗자루, 쓰레받기 사용하기, 화장실 청소하기,욕실 청소하기로 세분화되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욕조에 물 받기라는 대목을 우연히 보고서는 남편이 일본 책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탕에 온수를 받아 목욕하는 일이 많고 대부분 아이들이 그 심부름을 하기도 한다기에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와 약간 다른 가정 문화가 나오기도 하였지만, 온수 받기를 제외한 다른 일들은 거의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는 집안일들이었기에 거부감이나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꽤나 많은 집안일들이 소개되어 있어서 가정 주부인 나조차도 이런 일들까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인가? 하는 놀라움이 들게 하였다. 연령별 집안일 돕기 편을 보면 놀랍게도 만 1세부터 3세까지의 아이부터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이 나와 있기도 하다. 실제로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거나 마신 컵을 개수대에 갖다 놓는 일들은 아기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키지 않았을뿐이지.



기초부터 차근차근 집안일을 배울 수 있고, 부모를 돕고 자신까지 기분좋게 하는 많은 집안일 노하우가 수록된 책.

아이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책을 펼치면, 부모인 나 또한 책에 나온 체계적인 살림법으로 몰랐던 상식까지 습득하게 되는 비법서같은 책.



머리 좋은 아이로 키우는 심부름 습관.



처음에 제목만 보고서는 우리 아이가 나중에 서재에 꽂힌 이 책 제목에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 읽고 나니 "널 위해 그런거야." 하는 생각이 듬뿍 들게 하는 그런 책이 되었다. 아이가 같이 봐도 무방할 그런 책이니 체계적으로 아이와 함께 집안일을 하나하나 해나갈 수 있도록 이 책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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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 - 새끼 고양이, 길 잃은 고양이, 집 없는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
폴 갈리코 지음, 조동섭 옮김 / 윌북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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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읽다보면 표지부터 마음에 쏙 드는 그런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이 책이 바록 그러했다.

고양이 한 마리가 타이핑하고 있는 책표지를 사람이 다시 타이핑하는 모습의 커다란 띠지가 감싸고 있다. 제목과 그림이 진하게 타이핑되어 손가락으로 만져보면 골이 새겨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생후 6주만에 사고로 엄마를 잃은 저자인 이름모를 어느 고양이. 이 작품은 풍부한 묘생 경험을 바탕으로 고양이의 시점에서 바라본 고양이 필독서인 책이다. 인간을 훈련시켜서 집안을 접수하는 방법, 재산을 늘리는 방법, 최고의 먹이를 얻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읽기에 처음에는 혀를 차며 어쩐지 우스워지는 느낌에 살짝 불편한 기분이 들다가도 결코 고양이를 미워할 수 만은 없는 말 그대로 묘한 느낌의 책이다. 아니 사실은 고양이의 눈을 통해  인간이 철저하게 분석됨을 느끼면서, 항상 인간이 주체가 되던 삶에서 벗어나 한 발자국 떨어져 제대로 인간의 습성과 고양이를 대하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올바른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뭐 집에 두기 싫다고 하긴 했지. 그렇다고 이런 빗속에 밖에 둘 수는 없잖아. 봐!

나뭇잎처럼 떨고 있네! 당신은 측은지심도 없어?"

내가 정말 떨고 있기는 했어.

무서워서가 아니라 크게 웃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그런 거지만.

32p 접수하기

 



 

고양이를 길러본 적은 없지만 강아지를 길러본적은 있고, 고양이의 습성에 대한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어느 정도 상상을 하며 읽을 수 있었다. 아마 직접 고양이를 기르고 있거나 길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박장대소하며 맞장구 칠지 모를 일이다.

우리집 나비가 정말 이런 생각을 할까? 하지는 않겠지만 어덜트 베이비라는 일본 만화를 본 사람이라면 아기가 머릿속으로 어른들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기발한 상상에 놀라웠던 것처럼 이 책도 그런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렇다면 재미있겠다라는..말이다. 꼭 인간처럼 계획적으로 계산된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들의 습성을 분석하고 사랑받는 고양이의 행동 패턴을 제대로 분석하여 역으로 고양이 필독서를 내게 된것처럼..어떻게 하면 고양이에게 휘둘리지 (접수당하지)않고, 고양이와 인간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도움을 주기도 한다. 책은 어떤 식으로 읽든, 어떻게 해석하든 읽는 사람에게 자유 선택권을 주고 있다.

 



 

인간은 고양이가 자기랑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우쭐하며 자랑하고 다닐걸.

'우리 고양이는 항상 우리 침대 발치에서 자.'

실컷 잔 뒤에 깨어나서 인간의 얼굴을 밟고 다니면 인간은 이런 자랑도 덧붙일걸.'

게다가 아침에 우리를 깨우기까지 해.'

50p 재산만들기

 



 

 

인간의 침대와 자신만의 의자 등 고양이가 좋아하는 고양이만의 재산 늘리기. 이 부분을 읽다보면, 아 이런 거였나? 하는 생각에 다들 무릎을 치게 될지 모른다.

 

잘 접수된 집이라면 고양이가 늘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하니까. 104p 문 드나들기

 

그래, 고양이를 키워보진 않았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집에서라면  작고 연약한 생명인 고양이를 배려하지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새근새근 내 옆에 잠든 아가를 바라보며 우리집이 아가 중심이 되어가는 생각을 하며 나는 이 책에 또 공감할 수 있었다.

아기의 공화국이 되어가듯, 아마 애묘인의 가정도 고양이의 공화국이 되어가는 게 아니었을까?

 

이렇게 인간에 대한 우리 고양이의 지배력을 조금씩 늘리다보면

마침내 '지구의 지배자'라는 우리 고양이들에게 걸맞는 명성을 누릴 수 있어.

 116p 엄마되기

 

그래그래, 그 고양이가 정말 어떤 고양이였듯, 이렇듯 뛰어난 기지를 발휘하고, 그의 노하우를 분석해서 책으로 집대성할 정도로 기발한 상상력을 내놓았다. 물론 이 모든것은 작가 폴 갈리코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고양이가 타이핑을 한다면? 고양이가 그들의 노하우를 집대성한다면 이라는 상상 말이다. 인간 남자와 여자의 철저한 분석 그리고 그에 대처하는 고양이의 자세.

미처 몰랐던 고양이의 매력인 소리없이 울기를 백분 활용한 애교 필살기 등 고양이를 잘 몰랐던 나조차 (닉네임이 러브캣임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고양이의 매력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래, 이렇게 넘어갈 수 있겠다. 어쩔수 없지 너무 사랑스러울텐데 말이야 하며 공감하게 만드는 마법같은 책이었다.

 

세계를 지배할 지 모를 야욕을 가진 고양이임에도 인간은 고양이에게 접수당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인가.

물론 현명하지 않은 고양이는 인간에게 쫓겨날 수 있고, 혹은 인간에게 거꾸로 접수(?)당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린 고양이, 집잃은 고양이를 위한 처세술이 책으로 나온 것이다.

또한 고양이에게 지나치게 휘둘리거나 고양이의 매력을 모르는 인간들을 위해서도 이 책은 꼭 읽어보아야 할 매력만점의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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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전혜린 - 그리고 다시 찾아온 광기와 열정의 이름, 개정판
정도상 지음 / 두리미디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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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를 한때 천재라고 불렀다. 남학생들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서울대 법대에 당당하게 합격했을 때부터 붙은 칭호였다. 나는 서울대 법대에 단 한 명 밖에 없는 여학생이었다. 공부라면 자신만만했다. 나는 천재가 되고 싶었지만 천재는 아니었다.

천재는 바보처럼 무모해야만했다. 자신과 세계를 향해 무모하게 돌진하고 모든 불가능의 벽을 억척스럽게 넘고 자유로운 상상과 심연보다 깊은 사색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이 천재였다. 다른 사람이 창조한 글이나 사물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사람이나 남들보다 공부를 잘해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했다고 해서 천재인것은 분명 아니었다.

천재가 위대한 것은 새로운 세계의 창조에 있다고 나는 믿었다. 223P

 

자신이 쓴 소설 속 여주인공과 꼭 닮았던 여인 전혜린. 그녀는 정말 1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하다는 천재라는 평가를 받은 당대의 문인이었다. 서울대 법대의 유일한 여학생이었을뿐 아니라 독일 유학을 다녀온 후 20대에 이미 교수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내놓은 번역작품들은 모두 뛰어난 문체의 작품으로 칭송을 받았고, 그녀가 내놓은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역시 많은 사람의 호평을 받았다. 그런 그녀가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대학에 다닐때 우연히 알게 된 그녀의 이름 석자,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그녀의 이력때문에 나는 그녀의 책을 읽고 한동안 소름이 끼치듯 전율이 오는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곧 그렇게 20대와 함께 그녀는 내 기억속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30대가 되어 다시 만난 전혜린. 그녀는 정도상 작가의 오마주로 다시 태어났다. 책의 표지에서의 모습이 너무나 섬뜩하게..목이 없는.. 아니 목이 안 보이는 여인의 모습으로 섬뜩하게 바닷가에 서 있는 표지였다. 그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 무서운 표지에 망설여졌지만, 너무나 궁금한 그녀의 베일에 쌓인 이야기에 나는 무서움을 참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은 그녀가 쓴 소설이 액자식으로 끼워져있는 구성으로 진행되었다. 주영채. 소설 속 그녀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그녀의 삶과 어느 부분이 다를까 싶을 정도로 닮아있던 그녀. 주희라는 절친한 친구 대신 잔느라는 또다른 친구가 창조되었지만 어쨌거나 소설 속에서 액자식 소설 속에서 그녀와 주영채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나는 잔느의 편지 한 통이 던진 파문이 이토록 대단한 줄은 몰랐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라 알제리의 문제로 시위를 하는 뮌헨대학의 학생들을 보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대다수의 유학생들은 시위에 참가하지는 않고 구경만 하는 정도였다. 자유를 추구하던 내 양심은 격한 고통을 받아야 했다. 117P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았던 그녀. 부유하고 똑똑하게 살아왔지만 그녀의 삶은 아버지의 친일을 바탕으로 유지된 삶이었다. 그리고 서울대 법대 입학에서부터 결혼까지 모두 아버지가 정해놓은 각본대로 정해진 인생을 따라가야했다. 똑똑하고 정신세계가 높은 그녀였을 지라도 그녀에게 주체적인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그 시대의 다른 여성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교육에 있어 조금 더 기대치가 열리고 남성처럼 동등한 교육의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것 외에 그녀는 봉건적인 다른 딸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순응을 해야했던 것이다. 그래서 독일 슈바빙에서 만난 자유로운 영혼들을 보며 그녀는 부러움과 충격을 동시에 받는다.

 

 

"존재에 앓고 있다."

혜린은 이 말을 자주 했다. 이 말의 깊은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가을 병에 걸려 일주일 넘게 어두운 방안에서 끙끙 앓아야 한다는 걸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못했다. 정신적인 허영이나 사치로 치부하고 말았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홍역을 치르듯이 혜린은 일년에 한번씩 정신의 홍역을 무섭게 치렀다. 그래도 이번에 치러낸 홍역은 결과가 마음에 들었다. 무섭도록 허탈한 상태에서 소설을 쓰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이만큼 흘러왔다. 154P

 

그녀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을때는 그녀가 이해되지가 않았다. 너무 똑똑한 천재였기에 외로웠던 걸까? 아버지의강압까지는 알지 못했어도 아이가 있는 그녀가 자살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나였다. 그녀의 삶을 알고 나서.. 조금은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혼을 사랑하고, 영혼을 존중받기를 원했던 그녀였기에 영혼의 교류가 이뤄지지 않는 강제적인 결혼은 힘든 삶의 연속일 수 밖에 없었을 터였다.

 

정도상 작가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내놓으며 자꾸만 주저하는 멈칫거림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지만, 이 책을 읽을 수록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전혜린이라는 이름 석자를 다시 떠올리며 그녀의 슬픈 젊음 속으로 그 시대가 갖고 있는 한계때문에, 채 꽃피우지 못한 그녀의 아쉬운 젊음 속으로 우리를 안내해주는 소중한 기록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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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손하's 소소한 도쿄 - ソナ‘s 細-しい東京
윤손하 지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0년 9월
품절


도쿄 생활 10년차인 원조 한류스타 윤손하의 도쿄 일상 생활 여행기.

도쿄진들만 아는 도쿄의 숨겨진 산책로가 가득한 이 책을 먼저 본 여동생이 "언니, 나 다음 도쿄 여행은 이 책을 참고해서 다녀올까봐" 라고 이야기를 하였다. 바로 얼마전에 도쿄를 다녀오더니, 너무 아쉽다며 곧 또다시 다녀오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댄다. 그리고, 그때는 좀더 자유롭고 개성 있는 여행을 다녀오고 싶댔는데, 이 책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쏙 든다는 것이었다.


"그래, 언니도 그렇게 여행다니고 싶구나." 하는 마음으로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윤손하라는 예쁜 배우에 대한 호감이 있었는데, 책 속의 손하는 더욱 예쁘고 청초해보인다. 그리고, 정말 유루유루한 일본의 삶을 즐기는 듯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스타들이 자유롭게 산책하고 길거리를 활보하기가 어려운데 비해 일본에서는 "소나야 소나." 하고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는 해도 개인생활을 방해하거나 하는 일 없이 그저 바라보고, 정 사진이 찍고 싶으면 와서 정중히 부탁을 한다니 그녀의 삶이 더욱 자유롭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일본 여행을 계획했을때 지유가오카와 다이칸야마 등이 많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거리로 주목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역시나 윤손하님의 글에도 그 내용이 잘 반영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잘 꾸민 와이브로거들의 멋진 인테리어나 리빙 잡지에 실린 멋진 집들에 나오는 각종 소품을 모아놓은 듯한 가게들, 그 안에서 아이쇼핑만 해도 시간이 잘갈 그런 나만의 숍들을 잘 골라 소개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책에는 신주쿠, 시부야 등 사람들이 많고 번잡한 도심 생활보다는 한가로이 산책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을 골라 살 수 있는 생활 거리, 그리고 맛있는 빵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도쿄라는 도시 속에 숨어 있는 곳들을 잘 골라 소개하는 내용이 많다. 그녀가 살고 있는 에비스부터 나카메구로, 지유가오카, 다이칸야마, 산겐자야, 시모키타자와, 후타고타마가와 등등 들어본 곳도 있지만, 들어보지 못한 곳들도 섞여 있었다.


실제 윤손하도 아기자기함을 사랑하듯, 칙칙한 집 내부를 직접 diy를 해서 멋진 "나만의 공간"으로 탈바꿈해놓았다. 밝고 예쁜 그녀의 집은 잡지책에 소개되도 무방할만큼 깔끔하고 단정해보였다. 나도 이렇게 꾸미고 살고 싶었던 때가 있었는데 ..좁은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기 위해 밝은 우드색으로 집안을 꾸미고, 주방에는 좋아하는 알록달록한 냄비와 소품들로 쉐프 부럽지 않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친구들을 불러 한국요리를 대접하고, 일본 탤런트에게 한국 고추장떡 만드는 법을 전수해주고..

손하의 삶은 그곳에서도 한국의 정을 마음껏 발산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삶이었다. 한창 예쁠 아기 시우, 그리고 사랑하는 신랑과 모두 함께 모여 살고 있지는 못해도 (손하의 일본 활동 때문에 남편과는 떨어져 사는 듯) 특별한 한 사람을 위한 장식을 해주는 해피 케이크를 보고서 단 하나뿐인 사랑 남편을 떠올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한국과 일본이란 거리도 그녀의 행복에 장애물이 될 수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손하의 책에는 그녀가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일어난 웃지못할 촌극에서부터 자라난 환경이 달라 빚은 친구들과의 오해에 대한 이야기까지 스타와 인간을 넘나드는 고충과 애환도 담겨 있었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지금은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여배우로 멋지게 이름을 드날리고 있는 원조 한류 스타. 그녀의 삶 이야기와 함께 전해지는 일본의 반짝반짝한 삶은 도쿄란 그저 번잡한 도심을 헤집고 다니며 바글바글한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고, 줄서서 맛집에서 스시를 먹고 관광지나 둘러보다와야하는 곳이라 피곤한 곳 이라는 인식이 있던 내게 "조금만 시선을 돌려봐, 여행이라도 이렇게 쉬었다 가는 건 어때?" 하며 속삭여주는 것 같았다.

삶 속에 작은 여유와 활력을 준다는 주말 도심 여행으로 키치죠지와 니이소기쿠보, 구니다치 등의 이야기도 나왔는데, 일본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한다는 키치조지에 대한 부분은 이노카시라 공원과 지브리 스튜디오 들만 알고 있던 내게 더 많은 정보와 재미를 안겨주는 부분이었다. 시간에 쫓기는 지친 여행자의 시선이 아닌 일상 생활을 하는 도쿄진의 모습으로 바라본 시각들이기에 한층 더 여유롭게 보였는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 키치조지를 나도 꼭 느껴보고 싶었다. 니키티키라는 숍에서 만난 동글동글한 마무리가 마음에 드는 나무 장난감들, 그녀의 왕자님 시우를 위한 것이었는데, 나의 왕자님을 위해서도 꼭 장만해주고픈 장난감들이 많은 곳이었다. 맛있는 스테이크 하우스의 소개도 나오고, 4계절 모두 아름답다는 이노카시라 공원에서의 여유도 여행시 꼭 일정에 넣어보고 싶은 것들이었다.

나도 이렇게.. 라는 생각이 읽을수록 들었던 윤손하의 소소한 도쿄, 예쁜 사진들과 함께 한 즐거운 여행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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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눈
미야베 미유키 지음, 정태원 옮김 / 태동출판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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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의 카파 노블스라는 출판사의 창간 50주년을 기념해서 현재 주목받는 작가부터 거장들까지 개성 강하고 뛰어난 미스터리 작가들이 총출동하여 9명의 작가들의 단편이 실린 모음집, 50 . 이 책은 미야베 미유키의 도박눈을 비롯하여 모두 "50"이라는 단어 하나를 주제로 파생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있었다.

 

50번의 칼질로 시체를 50조각낸, 즉 시체는 50조각인데, 어찌해서 49번이 아니라 50번의 칼질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기괴한 사건 "절단" , 눈이 내리던 평온한 어느 결혼 50주년 기념일에 일어난 동서의 의문의 죽음, "눈과 금혼식" , 호텔 50층에서 기다리라는 연락을 받은 "드래곤" 후계자로의 놀라운 지명, "50층에서 기다려라" IQ50의 청년의 눈물겨운 인생역전기 '영국 셰필드' 등등 50이라는 숫자를 두고 작가들은 각자 다양한 상상을 하여 미스터리 소설로 우리를 안내한다.

 


 

"응, 방금 죽었다. 고로 씨, 그것이 우리 집에 왔다. "

고로베의 얼굴이 방금 새로 바른 문종이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남은 사람들은 또 놀랐다.

"확실합니까? 주인님?"

"확실하다. 지금 여기에서 느꼈다."

겐이치는 손으로 심장 위를 두드려 보인 다음 꿀꺽 침을 삼켰다.

..."원래 나로 결정된 것을, 마사기치 형이 대신했던 거야."

241.242P

 



 

9편의 다양한 개성을 지닌 단편들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바로 미야베 미유키의 "도박 눈"이었다. '50'개의 괴이한 눈알에 얽힌 에도 괴담이라니..도대체 어떤 내용이란 말인가? 게다가 평온한 집에 어느 날 들이닥친 무서운 존재, 주인과 직원들 얼굴까지 새하얗게 만드는 그것이란.. 형이 대신 맞이하고 동생이 맞아들여야 하는 그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그들이 준비해둔 3번 창고로 날아들어왔다. 50개의 눈알이 박힌 이불..

 

미야베 미유키의 상상력은 에도 괴담이 실제로 전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50이라는 숫자에 기인해 아예 처음부터 없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인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놀랍고 새로운 것임에는 분명했다. 미스터리 물이지만, 다른 단편들은 그다지 무섭거나 충격적이지는 않았기에 깊은 밤 새벽이 다 넘도록 아무 두려움 없이 읽고 있었는데, 도박 눈은 무섭기도 하지만 그 섬뜩함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을 주었다. 바로 그때 전등 불이 퍽~ 하고 나가는 바람에 새벽 서너시는 되었을 그 시간에 세상이 깜깜해져서 너무나 무서웠다. "앗, 진짜 놀랬잖아." 하면서 남은 이갸기가 궁금해 스탠드를 켜고 남은 이야기를 마저 다 읽고 잠이 드니, 그 시각이 새벽 다섯시 반이었다.

 

 괴담이라도 이렇게 가슴까지 서늘해지는 것은 참말이지 일본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라면 지독한 편견이려나? 설마 우리나라에도 이런 종류의 괴담이 전해지는건 아니겠지? 어쨌거나 잔인하고 놀랍지만, 분명 가장 관심이 가는 이야기기는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재미있는 단편이었고 말이다.

 

50이라는 주제가 주어졌을때 이렇게 다양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는게 작가들만의 놀라운 솜씨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개중에는, 아니 한참 진행될 것 같은데 갑자기 딱 끝나버리는 작품도 있어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말이다. 단편이라고 해서 매듭을 짓지 않고 그냥 제출해버리는 숙제마냥 내버리면 안되는 건데, 아니면 작가는 분명 완결을 지은 작품인데, 내 안의 이해회로가 이해를 하다말고, 아,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더 결과물이 있을 것입니다 라고 결론을 낸 것일 수도.. 아마도 후자가 정확할 것이다.

 

어쨌거나 아홉편의 단편들은 모두 새로운 내용으로 진행이 되어있고, 미스터리물이라고만 국한되기 보다는 다양한 단편이구나 싶은 작품들이 많았다. 감동적인 소설같은 "여름의 빛"도 있고, 우리나라 여곡성이라는 자손 저주의 내용을 담은 영화를 연상케하는 오래된 우물이라는 단편도 있었고,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되는 하늘이 보낸 고양이라는 작품도 탄탄하게 흘러나왔다. 미래의 꽃이라는 소설은 마치 앞의 모든 소설들을 설명하는 듯한 마무리의 느낌으로 실제로 출판사의 이야기까지 넌지시 비추며 마무리하는 50세 검시관의 놀라운 통찰력에 대한 작품이었다. 미래의 꽃

 

각각의 느낌과 색채가 모두 달라 읽는 이들에게 느껴지는 감동과 교훈도 모두 다 다르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가장 공통적으로 손꼽는 작품은 도박눈이 아닐까 싶다. 한 출판사의 의뢰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재미난 단편들의 모음집을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크호스처럼 성장하고 있는 재미난 소설들로 유명한 출판사들이 많은데, 이렇게 50년, 100년을 이어가 참신한 주제로 작가들과 함께 독자와 함께한 세월, 그리고 앞으로 할 세월을 같이 기념하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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