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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ㅣ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의 영감이 되었고, 에드거 앨런 포, 보들레르, 고골 등 동시대 문인들뿐만 아니라, 장 콕토, 보르헤스 같은 현대문학의 대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문제적 작품.
이 책에 붙은 어마어마한 수식어에 압도되어버린 나는 고전이 쉽지 않게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선뜻 이 책을 들어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표지에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아편의 연기. 매력적으로 보이는 그 연기의 이면에는 아편에 대한 두려움과 선입견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책은 초판과 개정판이 크게 다르다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판의 문학성을 더 높게 평가하기 때문에, 옮긴 이 역시 초판을 번역하여 책을 내었다. 초판은 아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개정판은 좀 지루한 나열에다가 오히려 문학성은 떨어지고, 초판보다 못한 후속작이라는 평을 받는 동시에 아편보다는 아편쟁이, 즉 작가의 삶을 나열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다.
이 책을 읽은 곳은 여행을 간 호텔 내에서였다. 아기와 신랑이 깊게 잠든 밤에 혼자 스탠드를 켜놓고 깊은 쇼파에 등을 기대고 책을 읽으니, 아무리 어려운 책이라도 소설책마냥 술술 읽히는 그 기분이 너무나 달콤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영국과는 다르기는 하지만, 호텔의 분위기도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의 분위기를 낸 호텔이었던 지라, 어쩐지 작가가 이야기하던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 나도 그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듣는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사실 집에서는 서재에 컴퓨터가 있어서 책에만 몰두하기가 힘들때가 많았는데, 컴퓨터도 없고, 아기도 일찍 잠든 고요한 시간에 혼자서 책을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깊은 사치로 느껴졌던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이 책으로 유명해진 토머스 드 퀀시는 사실 자신의 자서전이나 다를바 없는 이 책을 냄으로써, 이후에도 아편쟁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리는 상황에 처해버리고 말았다. 초기에 극심한 치통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하기 시작했던 아편 팅크, 현재 마약으로 분류되어 함부로 살 수 없는 우리나라의 실정과 달리 당시 토머스가 살던 시대에서는 돈만 있으면 거리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는게 아편이었다. 그래서 그 주위의 문인들 조차, 영감을 얻기 위해서라는 둥 많은 핑계를 대어 아편의 힘을 빌리고, 아편에 중독되기도 하고 그랬다.
아편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올리며, 가까이 해서는 절대 안될 금기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내게, 아편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예찬에 가까운 부분도 많았지만,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어려웠는지 (생각보다 그는 짧은 시기에 줄여낸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아편쟁이가 아편을 끊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 그 자신의 연구 결과라면서 일일이 일기에 기록했던 사실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편에 빠져들게 되지 않았냐는 말에..엮은이는 기존에 이미 사람들이 아편에 탐닉되어 있었고, 이 책으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는 어렵다고 평했다. 작가는 이 책을 쓴 이유가 사실은 아편쟁이들이 뭔가 교훈을 얻어 두려움에 떨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을 하고 있다.
아편을 복용하고 한시간이 지나자-오오 맙소사! 얼마나 엄청난 변화인가!
내 마음이 가장 낮은 나락에서 하늘 높이 올라갔다!
내 안에 세계가 계시되었다!
고통이 사라진 것은 이제 내 눈에는 지극히 하찮은 일이었다.
이 소극적인 효과는 내 앞에 펼쳐진 적극적인 효과의 거대함에-그렇게 갑자기 드러난 신성한 쾌락의 심연 속에 삼켜지고 말았다.
철학자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온 행복의 비밀이 당장 발견되었다. 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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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위통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참을 수 없는 치통으로 고생하고, 심신의 허약 속에 지쳐 가던 그에게 아편과의 만남은 신의 계시 만큼이나 극적인일이었나 보다.
그가 아편을 잘 절제하였을때는 3주에 한번, 그것도 토요일밤에 한번 정도만 복용을 하며, 자신의 쾌락을 유지해나갔다. 하지만, 아편에 빠져들자 매일 그것도 굉장히 과량의 아편에 빠져들어 나중에는 현실과 악몽이 섞여 버리는 끔찍한 공포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가 꾸는 꿈을 일일이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두려움이 많았다.
그리고 다시 아편을 줄여 나가면서 정상적인 삶을 되찾았다고 이야기한다.
우연히 시골집에 찾아온 한 낯선 말레이인의 등장으로 인해, 그는 동양인에 대한 두려운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절의 탑에 뛰어들어 몇 세기 동안이나 탑 꼭대기나 비밀 방에 붙박혔다. 나는 우상이었고 승려였다. 나는 숭배의 대상이었고, 제물이었다. ...
나는 석관 속에 갇혀 영원한 피라미드의 심장부에 있는 좁은 방에 미라와 스핑크스들과 함께 1천년동안 묻혀 있었다. 155.1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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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니..내가 낯선 서양이방인들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처럼 그도 역사가 깊은 동야의 신비한 문화에 대해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고 있었나보다. 그것이 아편의 복용으로 인해 악몽으로 전해져 그의 꿈에서 더욱 크게 각인되었으니 말이다. 아편은 아니더라도 어려서 경험했던 몇몇 악몽을 기억하자면, 그 끔찍했던 순간들이 밤마다 지속될지 모를 그 두려움에 한동안 잠을 자기 어려웠던 때가 있었다. 악몽을 꾸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두려움을 알지 못한다.
사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아편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될거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우리나라에서 마약으로 분류돼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의약품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절제 의지가 약한 나로써는 한번 무엇인가에 빠지면 스스로 조절하고 헤어나오기가 어려움을 알기에 중독성이 강한 것은 아예 가까이 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편을 사랑한 그의 고백은 그가 학창 시절에 가출하면서 시작된 일상부터 시작해서, 주변에 도움을 준 사람들, 그리고 아편과 관련된 여러정황등을 소개하며 아편과 그, 그와 아편에 대한 이야기로 멋지게 마무리해내었다.
수술 후 맞게 되는 마약성 진통제를 제외하고는 (게다가 통증 억제 말고는 환각이나 쾌락을 느낄 정도의 마약이 아닐..) 아편 같은 중독성 의약품을 접할일이 없는 나로써는 그가 들려주는 아편에 대한 모든 것이 간접 경험을 통해 만나게 되는 유일한 입구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