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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2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구판절판
이 책 한권을 완성하기 위해 작가가 카이스트 교수직까지 내놓고 집필에 전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일까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웃분 들 중에 책을 좋아하시는 상당수의 님들이 올해 최고의 책, 읽고 또 읽은 책, 너무나 감명깊었다라는 내용들을 언급하심을 보고, 읽기 전부터 정말 대작은 대작이겠구나 생각이 되었다. 그렇게 많은 기대를 갖고 읽기 시작한 밀림무정. 책을 붙잡자마자 나는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새벽 다섯시까지 책을 읽어내렸다.
갑자기 날씨가 무척이나 추워졌지만, 산과 흰머리의 격전이 펼쳐지는 그 개마고원의 겨울 추위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그 추위와 두려움.
눈은 조용히 그들의 머리와 어깨, 온몸 구석구석을 감쌌다. 부드럽게 충분히 스며든 뒤,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걷몰고 죄어치고 볶아치고 또 되몰아쳤다. 스며들며 녹았던 눈들이 단숨에 얼며 서걱서걱 피부를 긁어댔고 죽음의 냉기를 차고 넘치게 구멍이란 구멍으로 불어넣었다. 22p
호랑이라 하면 동물원에서나 보고, 티브이, 이야기책에서나 봐왔던 나였기에 호랑이를 직접 맞닥뜨렸던 그 옛날 조상들의 느낌을 이토록 생생하게 전달받을 줄은 몰랐다. 마치 책 말미에, 이 글은 조선시대 마지막 명포수인 "@@@"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라는 말이 덧붙을 듯한 그런 생생함이었다. 작가의 허구가 이토록 치밀하게 펼쳐질 줄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읽고 또 읽었다며 추천을 해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는 일제 치하, 조선 최고의 명포수였던 웅은 개마고원의 왕대, 흰머리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상을 치른 3일 후 흰머리는 웅의 집에 내려와 둘째 아들 수의 팔을 찢어 물고 큰 아들 산을 노려보며 경고하듯 떠나갔다. 그렇게 산과 흰머리의 악연은 시작되었다. 산은 자신의 타고난 감각으로 오로지 흰머리 사냥을 위해 인생을 걸었다. 아비를 죽이고, 동생의 팔을 뜯어 앞날을 망친 그 호랑이에 대해..
천하만물을 용서해도 단 하나 용서할 수 없는 너와의 악연을 오늘 끝내리라.
내 탄환이 향할 곳은 폐나 심장이나 척추가 아니다.
호랑이는 뇌가 작고 두개골이 단단하여 직접 머리를 겨냥하는 법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단숨에 놈의 이마를 "왕"의 중심을 뚫을 때다. 마침 바람이 불어와서 산의 가슴에서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열망들을 식혔다. 흰머리의 머리가 더욱 희고 거대하게 보였다.
바로 지금이었다. 162p
호랑이와 한 사나이의 일생을 건 대 격돌. 하얀 백호가 개마고원을 호령하고, 그 당당한 위용에 일반 사냥꾼은 감히 나설 생각조차 못했다.
한번의 패배가 있었어도 산은 또다시 흰머리를 파악하고, 흰머리를 추격했다. 호랑이에 대한 모든 것. 특히 씨가 말라버린 조선 호랑이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되는 느낌이었다. 산신령, 산주라 불리기도 하는 그 영험한 존재, 그 중에서도 왕대라 일컬어지는 그래서 아무나 건드릴 수 없는, 건드렸다가는 천벌을 받을 그 존재와 맞닥뜨리는 한 인간의 무서운 집념.
야성이 펄떡펄떡 살아숨쉬는 듯한 글 속에는 험한 욕지기 등으로 헛꾸미지않아도 되는 충분할 멋이 있었다. 호랑이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결국 호랑이의 혼을 지니게 된 사내.
시작하지마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고 말 가련한 인생. 발버둥 칠수록 더 참혹해지지. 나랑 머무르겠다면, 시작하지 않겠다면..., 받아줄게. 84p
무당의 예언대로 산은 호랑이를 보호하려는 주홍과 이뤄지기 힘든, 그러나 너무나 활활 타오르는 운명과 같은 사랑을 피워올리고 말았다. 그러기에 더욱 해수격멸대 대장 히데오의 적수로 낙인찍히게 되었지만, 그는 결국 두 연인의 뒤에 선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고 말뿐이었다.
2권은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게 되었지만, 1권에서의 산과 흰머리의 추격과 대결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장면들이 많았다. 강한 호랑이가 약해졌을때 그 틈을 치고 들어가 공격하는 비열한 짓은 결코 하지 않는 산의 당당함, 현대시대에도 그렇게 고지식한 사람을, 그러면서도 용맹한 사람은 볼 수 없다 할 그런 인물이었다.
과거, 그리고 맹수와 사냥꾼의 이야기였지만, 그 속에는 현대 사회를 꼬집는 이야기들도 엿보이는 듯 했다. 작가가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느껴지는..
산의 동생 수의 망가져버린 인생과 맹수의 약한 틈을 골라서라도 사살해야 한다는 히데오의 모습처럼..
조선시대의 명장과도 같았던 위풍당당한 산과 흰머리의 대결은 이제 이 시대에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일인지.. 아쉽기만 할 따름이었다.
김탁환 작가님의 책은 처음 읽었지만, 정말 읽는 맛이 남다른 책이었다. 그래서 술술 훑어 읽을 수 없고, 그의 정성을 생각하며 한줄 한줄 음미하며 맛을 보며 읽어내려가 읽는데 시간은 좀 오래 걸렸다. 그가 이 글을 준비하며 호랑이를 연구한 그 몇년의 시간이 정말 남달리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로 인해 멸종되어 버린 백두산 호랑이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었기에 말이다. 그리고 그가 생각이 막힐때면 몇번이고 산에 올라가 돌멩이라도 차가며 생각했다던 구상 그대로 생생하게 들어있는 산의 표현들은 정말 소설을 더욱 빛내주는 감칠맛나는 요소로 자리하였던 듯 하다. 역시 무엇이든 정성이 가득해야 그 맛이 살아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