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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재미없다고 하신다면 더 이상 추천해드릴 책이 없습니다." 원서 띠지에 있는 카피로 어느 서점 직원이 한 말이다. 250p
오쿠다 히데오의 기발함과 츠츠이 야스타카의 블랙유머의 결합이라는 말보다도 나는 그 자신있는 서점 직원의 강추 멘트가 더욱 끌렸다. 마루밑 남자, 어쩐지 제목만 듣고는 으스스한 느낌이 들면서도 그러면서 그로테스크한 기묘한 느낌이 드는 그런 것.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만,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지는 샐러리맨의 비애들.
사실 다섯편의 이야기 모두 재미있었지만, 특히나 마루밑 남자라는 가장들이 읽으면 섬뜩할 그 내용의 이야기에서는 예전에 봤던 기묘한 이야기라는 일본 영화가 오버랩되었다.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가 무척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자원봉사 강림이라는 제목의 단편, 귀신이 나와야만 무서운 게 아니라,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이상한 일들을 당연시하는 그 사회가 더 납득하기 힘들고 무섭게 느껴진다. 자원봉사 강림이 마치 주부들의 기묘한 이야기에 해당된다면 마루밑 남자는 가장들의 기묘한 이야기 판이랄까?
너무나 바빠 아내와 아이가 잠든 시각에 퇴근하고, 깨기 전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가장인 나. 아이 양육을 위해 출퇴근이 먼 교외 주택가로 이사를 왔는데 아내가 집에 다른 사람이 사는 것 같다는 무서운 말을 꺼낸다. 아내의 피해 망상이리라, 피곤해 잘못 본 헛것이리라 치부했는데, 아내는 그런 내 반응에 발끈하고..
어느날부턴가 정말 아내의 분위기마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속되는 의심, 어느 날 그 자신도 마루 밑 남자의 존재를 깨닫게 되고, 마치 우렁각시마냥 무심히 넘기려는 아내의 태도에 화가 난다. 시니컬한 어느 만화에서 곰 세마리가 한 집에 있어..라는 구상이 알고 보니 곰 네마리가 한집에 있어 하는 식으로 장롱에 숨겨진 아저씨 곰을 발견해내듯.. 마루밑 남자의 영향력은 갑자기 커져 가고, 가장인 그가 가족을 위해 일하는 거야. 남자는 절박했지만...
아내의 반응은..
당신은 우리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아. 한사람의 회사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됐다. 가정에는 월급만 갖다주면 된다. 그 이외에는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당신같은 사람은 이제 우리한테 남편도 아니고 아빠도 아냐! 51p 라고 반격한다.
묵묵하게 일하는 가장과 가장의 빈자리가 너무나 그리운 아내, 현대 가정의 허상이 빚어내는 결과물로 일본에는 실제로 많은 황혼 이혼이 자리한다고 하였다. 사실 그게 비단 일본만의 문제일까? 우리나라 샐러리맨들도 그만큼 바쁘고 힘들다. 그리고 가정에 소홀해지는 만큼 아내의 불만은 쌓여간다. 마루밑 남자 뿐 아니라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가정의 붕괴, 기계의 부속같이 변해버린 회사원들의 비애 등의 주제는 연이어 터져나왔다. 그리고 슬프게도 모두 재미있었으나 가슴 한 구석은 싸~해졌다.
아, 재미있다. 하는 감탄사와 같이 나오는 건 깊은 한숨.
'샐러리맨의 비애를, 가장의 고충을 책으로 배웠습니다' 싶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한편으로,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정입니다. "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결국 이런 메시지가 아닐까?
-252.253p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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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밑 남자외에도 튀김 사원, 파견 사장, 슈샤인 갱 등의 이야기
모두 재미 있었다. 특히나 파견 사장의 경우에는 이제 주도권이 사장에게도 없게 되는..결국은 독재 체제로 흘러버릴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미래의 실상을 반영해주는 이야기기도 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 하지만, 이렇게 간과하다보면 정말 이 기묘한 이야기들이 현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의 울림들.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하고 있다는 s 대기업의 친구의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닌 것 같다. 실제 우리나라 남자들 대부분이 다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월화수목 금금금.
그렇게 바쁜 와중에 잠깐이라도 짬을 내보라 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당신만을 바라보고 사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피곤한 일요일, 피곤한 평일 저녁에라도 웃음을 지어보이고, 함께 하려는 시도를 해보는게 좋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힘들다, 피곤하다 지쳐 쓰러지는 우리 가장들이여. 힘을 내라~ 일보다 중요한 것이 가정임을 깨닫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