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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의학의 발달로 인류의 평균 수명은 증가하고, 저출산이 이어지는 시대, 그래서 빠르게 초고속으로 고령화가 확산되다 보니, 노인인구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을 일본의 어느 미래. 급기야 아주 무시무시한 정책을 결정하고 만다.
"나는 젊은 사람한테 신세 같은 거 안 지고 있어! 재산이 있다고."
"바로 그거죠! 그 재산을 노인이 계속 갖고 잇는 것도 젊은 애들을 고생시키는 원인인 거예요.
말하자면 이 제도의 근본 사상은 노인이 노인인것 그 자체가 죄라는 겁니다.
기한은 한달간, 이 날까지 서로 죽여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두 사람 이상이 살아남았을 경우에는 그 사람들 전원이 CJCK의 처형 담당관에 의해 처형되게 되어 있습니다."
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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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구역의 70대 이상 거주 노인들이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 지정 대상 외에는 죽여서도 안되고, 구역을 떠나거나 여행을 갈 수도 없다. 딱 한사람의 생존자만 천수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무시무시한 정책이 발표되고, 무기의 값은 천정부지로 솟았고, 타인을 죽이지 못하는 노인은 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죽임을 당해야했다.
서로 죽여야 하는 노인들은 언제 사살될지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때로는 미친 듯이 웃고, 때로는 포효하고, 집기를 파괴하며, 대소변을 지렸다. 62p
배틀 로얄이라는 영화의 줄거리를 대강 알고 있었으나 너무 잔인해 읽어볼 생각을 못했던 내가, 하필 실버 배틀을 읽게 될줄이야. 일본인들의 잔인한 상상력은 정말 그 끝이 어딜까 싶어졌다. 게다가 노인예우에 극상할, 노인 배틀이라니.. 거동하기도 힘든 노인까지 포함해서 서로를 죽고 죽여야 하며, 가족들은 그 사실을 묵인하고 함구해야하는 이상한 현실.
어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협박을 듣고 얼른 자기 어머니를 죽이라며 배틀 대상 노인을 집으로 데려오기도 하고, 어떤 노인은 어린 손자들까지 (인원이 많으니 몇명쯤 죽어도 상관없다며)방패 삼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고 한다. 심지어 신부님은 단 하나 살아야한다면 자신이 살아야 한다며 사람들에게 자신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
"노인을 돌봅시다"에서 싹 바뀌어 이번에는 "노해군. 노해야" 란다. 그래서 배틀을 하게 해서 노인 인구를 줄이려고 하게 된 것이다. 198p
노인들만 살았던 실버 센터에서의 잔인한 배틀, 그리고 주인공 구이치로가 살고 있는 미야와키초의 배틀, 원래는 예외 대상이나 갑자기 인구 수가 8배로 불어나는 바람에 배틀 대상에 포함이 된 시골 지역의 배틀, 그리고 오사카의 배틀까지.. 이어지는 배틀들이 모두 제각각이고, 또 그 안의 사람들의 사연이나 죽고 죽이는 양상 또한 제각각이다. 거의 한국돈으로 1억원 넘게 올라버린 권총의 가격, 그래서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노인들이 총 한자루 없이 식칼, 단도 등의 손에 잡히는 무기서부터 농부들의 경우에는 삽까지 동원해가며 무서운 살생을 감행한다.
오사카의 경우에는 너무나 잔인하게도 하루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실버 배틀 숭자 결정전'이 벌어져 서로 죽고 죽이는 시합은 마치 투우 시합을 하듯, 한 장소에서 행하면서 관람료를 받아 자손들에게 남기겠다는 정말 특이한 발상으로 시작되었다. 스포츠 중계하듯 생생하게, 심지어 재미있다고 웃어가면서 노인들의 죽음을 생중계하던 아나운서는 결국에 관람하던 모두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마무리하는 것으로 중계를 끝맺었다. 그 눈물조차 가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잔인한 이들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주축으로 활동하는 구이치로. 그는 약자들이 연합을 해서 집중 공격대상이 될 정도로 배틀 우승 후보로 지목되는 인물이었다. 그의 지구에는 퇴역 자위대 지휘관 고레카타, 백발마귀로 통하는 괴짜 교수 쓰하다 도모히토 등의 막강한 경쟁자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는 용의주도하게 대상인물들을 재력, 무력, 지력 세부문의 점수를 매겨 위험한 정도를 매겨두어 배틀에 임하는 꼼꼼함을 보이기도 한다.
일본인 작가 츠츠이 야스타카조차도 막상 이 소설을 구상은 하였으되 실제 펼쳐내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나보다. 그래서 그는 실제 자신의 나이가 70이 넘었을무렵부터 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 자신의 연령이 그 나이에 해당되는 그 순간부터 말이다. sf작가이고 나이가 있어 실제로 많은 비난의 대상은 되지 않았다고 하니, 그 역시 구이치로처럼 주도면밀함을 가진 사람이리라.
내가 살고 있던 안락한 집과 동네가 전쟁터가 되고, 안면있고 인사하며 지내온, 아니 심지어 어려서부터 소꿉친구로 자라온 친구를 죽여야 하는 무서운 사태, 게다가 힘 하나 못 쓰는 노인들까지 겨냥해야하는 끔찍한 배틀, 배틀의 승자 또한 나는 행운아군, 하는 심정이 아니라, 도대체 이 이상한 제도는 누가 만들었고 우리를 왜 이렇게까지 내몰았느냐 하는 원통한 마음을 지닐 수 밖에 없었을 그런 상황.
복잡하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이름이라 기억에도 잘 남지 않는데도 말이다) 금새 아, 어느 지역의 누구! 하고 매칭이 잘 될 정도로 소설은 잘 쓰여졌다. 게다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생생한 서술은 그 끔찍한 살생의 악령들이 눈앞에 펼쳐질듯 자세하여 꿈에 나올까 무섭기도 했다. 사실 눈을 감으니 거의 반야, 나찰처럼 변해버린 시노하라 노파의 얼굴, 그리고 고레카타가 잔인하게 죽인 노인의 악령이 떠올라 소름이 끼쳐오기도 했다.
늙는다는 것은 나쁜 것일까? 나이먹는 것이 남에게 폐끼치는 일일까?
인구 조절 구역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늙음의 문제를 액션과 풍자, 발군의 블랙유머로 포장하여 제시하는 장편 엔터테인먼트 작품이다. 386p 역자후기
지금의 내가 있기 위해, 지금의 젊은이들이 있기 위해 이땅의 노인분들이 존재하심을 깨달아야한다. 그분들의 지금의 모습이 곧 내 미래이자, 내 아이들의 미래가 될 것을 생각하고, 내 부모를 대하는 마음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혈육을 떠안은 짐처럼 여겨서는 절대 안될 일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노인 복지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이렇게 끔찍한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은 이 책 한권으로 끝이 나기를 바란다.
노인 복지와 고령화 사회에 대한 독특한 상상, 츠츠이 야스타카의 70대에 발표된 이 소설은 그의 상상력의 한계는 과연 거침이 없는 무한대임을 알게 해주었고, 또한 읽는 이들을 몰입시키는 재주 또한 시들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