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책사냥꾼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을 알고 있어서, 이 책의 제목이 처음부터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단지, 그 책 사냥꾼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왜 책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졌다. 그리고, 책에 붙은 놀라운 찬사.
우리가 꿈꾸는 불가능하고 환상적인 목록들로 가득한, 좌뇌와 우뇌를 함께 출렁이게 할 흥미진진한 판타지이다. 하루키의 위트, 보르헤스의 자유로운 상상력, 에코의 광대한 지식을 모두 갖춘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가 꿈꾸는 책의 은하를 항해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하루키와 보르헤스와 에코의 만남이라니.. 게다가 문학상 수상작임에도 대중성까지 겸비한 흥미진진한 판타지라고 해서 쉽게 읽히는 그런 판타지 소설을 기대하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 대가의 만남이라는 부분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처음에는 정말 문학성과 대중성을 오가는 양, 혼란스러운 구도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번에 읽었으면 좋으련만, 어쩌다보니 며칠에 걸려 나누어 읽게 되어서 더욱 그 얽히고 설킨 실타래가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작가가 제시해주는 놀라운 책들, 세계의 책에 이르게 되는 비밀의 단서가 되는 각종 책들의 소개와 나열, 사실 그 안에 진실도 있고, 허구도 있을 것이기에 찰리가 하는 이야기, 그리고 반디가 하는 이야기 작가의 이야기 모든 것 중에 어느 것이 진실이고 허구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진실은 그랬다. 책 속에는 허구의 책도 있고, 실제 존재하는 그가 참고한 책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모든 책들이 다 처음 접하는 책들이라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책탐이라 말할 수 있었던 나의 책 욕심은 작가의 그것에 비하면 엄청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새삼 깨달았다. 책을 읽어보았노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책을 읽고, 새로운 구성으로 책을 파헤치고, 책의 일생을 짚어볼 그런 대작을 꿈꿔 볼 수 있어야 하는것이었다.
당신이 이 우주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찾는다면 그 이야기는 <세계의 책 > 속에 있다. 36p
아, 세계의 책이란 무엇인가.
자기 소개를 할듯 말듯, 보여줄듯 말듯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서두가 다소 혼란스럽기는 하나, 책을 읽어내리면서..또 스토리에 몰입하면서는 빠르게 이해되기 시작한다.
책사냥꾼 반디, 그리고 그의 직업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반디는 이 책의 주인공이자, 책사냥꾼의 중앙핵심이랄 수 있는 미도당으로부터 베니의 모험이라는 어느 책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의 의뢰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가 책을 추적하면서, 책사냥꾼계에서 악명이 높은 검은별과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되고, 윤선생이라는 미도당의 중심인물의 음험한 속내에 대한 그의 불길한 직감이 서서히 맞아떨어짐을 암시하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여기는 꼭 책들의 무덤 같군요. 사라진 책들의 무덤
-저는 그보다는 책들의 요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태어날 책들을 위한 자리. 114p
지금처럼 책을 자유로이 읽고, 교류할 수 없는 어느 미래의 한국.
그 속에서 책은 불태워지고, e 북으로 통일되려는 강압적인 정책이 추진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싶지만, 과거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의 역사상으로도 믿기 힘든 정책이나 법안이 통과된 예는 흔히 있어 왔다.
우리나라도 커피가 사치 식품으로 여겨져서인지 유통이 금지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종이 값을 아끼겠다는 정책으로 페이퍼북을 마다하는 사회가 오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책은 더욱 희귀해지고, 특히나 헌 책 중에서도 소장가치가 높은 책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폭되어 간다.
이 책 이전에도 이미 책사냥꾼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책 속에서는 책사냥꾼이 마치 스파이, 첩보 요원처럼 실제 존재하는 직업으로 설명이 된다. 그리고 반디라는 인물은 책사냥꾼 중에서도 꽤나 능력이 있는 전설적인 인물이었고..
반디를 통해 보는, 그리고 그의 대학 친구들 소리, 제롬, 고박사 등의 어울림이 예사롭지 않게 흘러감을 보여주면서 인간과 책의 관계, 그리고 책이 시사하는 가치 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자리를 마련해준다. 지금은 그저 읽고 읽히는 존재에 지나지 않으나 먼 훗날 정말 책이 하나의 자원이 되고, 어쩌면 파괴되어야 할 가치가 될지 모르는 그런 세상을 생각하게 하면서 말이다.
책에 대한 깊은 애정과 통찰. 작가의 그 모든 것들이 이 책을 만들어내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책이 책을 만나고, 사람이 책을 통해 만나고, 책이 사람을 통해 만나고, 책이 사람을, 사람이 책을 만나고 있었다. 그런 만남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345p
내가 예상했던, 그런 결말은 아니었지만, 책을 즐기고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새삼 느끼게 해주는 그런 소설이었다. 누군가의 제약이나 간섭없이 읽고 싶은 종이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지금의 자유. 당연한 그것이 없어질 그 순간을 예상조차 하기 힘들었는데, 책 속에서 마치 스파이처럼 활약하는 반디를 보며 지금의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