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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6학년때였던가? 유난히 겁이 많이 나던 때라, 밤에 식구들이 먼저 잠자리에 들면 혼자 앉아있는게 너무 무서워, 나보다 좀 늦게 좀 자달라 부탁하기도 했지만, 피곤한 식구들이 먼저 주무시고, 혼자 일어나 책상앞에 앉아있으면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 들곤 했다. 유난히 그때는 밤마다 겁이 많이 났다. 그래서 책상 앞에 앉아서도 라디오를 틀어놓고, (녹화방송이라는걸 몰랐을 때라 무조건 다 생방송인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 깨어 있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구나) 누군가 나와 함께 같이 일어나 있으니 겁을 내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며 위안을 삼은 적이 있었다.
공포 영화나 괴담 등을 궁금해하고, 재미있어하면서도 겁이 무척 많아서 혼자 있을때 꼭 다시 회상해보고, 무서워 죽을 지경이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또다시 그 공포와 스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걸 보면 인간의 공포에 대한 호기심이란 참 희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다 리쿠의 환상적인 공포 스토리, 제목과 표지만 봐도 어딘가 으스스해지는..이 소설, 읽기 전에 망설여야 했던 것이..'혼자 있을땐 너무 무서울 수 있으니 읽지말라'는 충고를 접하고 나서였나보다. 으스스한 이야기를 즐기면서도 몇년전부터 또다시 겁이 많아져서, 무서운 이야기, 영화 등을 모두 피하고 살았던 지라,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이름만 듣고 덜컥 선택했던 이 책이 역시 공포물임을 알고, 아, 내가 잠시 미쳤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읽지 않았으면 더 두려웠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에 대한 공포.
눈으로 확인하고,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려야만 비로소 안심이 되는 법이기에 오히려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해 두려움을 키우는 것이 공포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어느 님의 리뷰를 보고, 안녕, 프란체스카의 느낌이라고 하는 이야기에 조금 용기를 얻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서울 수 있는, 아니 사실은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들이 어느 유령의 집, 한 집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음이..
읽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더니 공포에 휩싸이기보다 훨씬 더 쉽게 읽어내려갔다.
끔찍한 이야기를 되도록 상상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말이다. 책을 다 덮고 나서는, 앞으로 한동안은 고기 먹기도 힘들 것 같고, 사과 파이는 더더군다나 눈길 주기도 힘들 것 같았다.
응,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네가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는 건.
그러니까 내가 여기로 이끌려 온 거고, 내 눈에는 네가 보이는 거잖아.
그 슬픈 눈.
애처롭고 허무함이 가득한 눈.
그래, 역시 그건 내가 거울 속에서 본 눈이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내 손으로 죽인 노인들의 눈이었나? 116p
여러 이야기들이 마치 단편처럼 흘러간다.
그 집.
표지에 실린듯한 그 아주 묘한 분위기의 언덕위의 집은 유령의 집으로 소문이 나 있다.
사과파이를 굽다 서로를 칼로 찔러죽인 자매.
늙은 주인이 데려온 여자가 동네 아이들을 잡아다가 토막 내서 주인에게 먹인 사건.
사실 책을 읽기 전에도 미리 그 무서운 이야기들을 간략적으로 전해들었고, 다시 또 맨 처음 단편인 유령의집 편집광적인 손님과 집주인인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서도 간간히 그 유령의 집에 얽힌, 그리고 앞으로 전해들을 무서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무시무시하고 살떨리는 이야기지만, 그렇게 조금씩 감각이 무뎌져 가는 것 같았다.
환상적인 스릴이라는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작가는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나긋나긋한 어조로 응대하는 여주인이라던지, 또 앞으로 전해질 수많은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의 독백, 혹은 일방적인 대화 이야기를 통해 무서운 사건을 마치 누군가 옆에서 이야기로 전해주는 느낌으로 새로이 써내려 가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었다 라는 서술이 아닌, 대화 속에 뭍어나는 그 정황의 묘사.
유령이 혹은 살아있는 사람이, 그 사건과 알게 모르게 조금씩 관련된 사람들이 풀어내놓는 이야기.
온다 리쿠식의 새로운 공포 소설에 대한 묘사. 그리고 그 방식이 낯설게도 느껴지지만, 정말 공포가 이런 어조로 씌여질수 있음에 새삼 또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는 무서운게 여러가지 있지만, 그 중에 제일 무서운건 살아있는 인간이야.
우리 아버지도 늘 그러셨어.
살아있는 인간은 나쁜짓을 해도 죽은 인간들은 그렇지 않다고.
죽은 인간이 오히려 더 착하다고 하셨어.
165.166p
죽은 자들에 대한 공포, 그들을 두려워하고, 혹은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얽히고 설킨채 흘러나오는 가운데, 끊임없이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
정말 무서운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사실, 어제 오늘 내 간담을 서늘케 했던 건, 그리고 이 책 속에 허구라 믿겨지는 그런 이야기보다 더 끔찍하게 느껴졌던 건, 허구라 믿고 싶었던 뉴스 기사였다.
3살바기 아들이 자기 친자식이 아니라고 때려죽인 아버지, 그 어린 아들이 때릴데가 어디있다고 죽을때까지 때릴 수 있었을까?
오늘 아침까지 이어지는 기사에 나도 모르게 클릭을하고, 소름이 끼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이야기. 소설 속 유령 이야기나 살인범 이야기가 허구일수도,아니 어디선가 끔찍히 잘못 일어나는 일일수도 있지만,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있어서는 안될 이 이야기들은 더욱 끔찍하게 와 닿는다.
부모 될 자격 없는 사람들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아니면 평생 그 죄값을 치루고 남은 생을 마감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내 어린 자식을 바라보며 소름끼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