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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빌라 연애소동
미우라 시온 지음, 김주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을 즐겨 읽다보니 요즘 들어 다양한 일본 작가들의 소설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고 읽게 되었다. 요즘 유행 같기도 하고. 추리소설 뿐 아니라 가벼운 연애소설, 청춘 소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로 읽어도 재미난 책들이 무척 많았다. 생각도 참 다양하면서, 서양 사람들과 또 달리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지 공감가는 부분도 더 많은 것 같고 (물론 도저히 이해안되는 부분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읽히기도 더욱 편안하게 잘 읽힌다. 그런 와중에 미우라 시온이라는 작가의 책을 새로 접하게 되었다. 난 처음인데, 읽어본 사람들은 많이들 열광하는 작가였다.
작가의 책으로 처음 읽게 된 책이 7인 7색 러브 어페어로, 섹스에 대한 이야기 또한 중요하게 등장한다고 하니 사실 좀 망설여지기도 했다. 어렸을 적에 어른들 책으로 나온 소설 몇권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보시던 책이라 그런지 무슨 수상작 이런 책들이었는데 편안하게 읽히기보다 다소 거칠고 어렵고 불편한 느낌, 거기에 섹스를 마치 빼놓으면 안 되는 것처럼 다뤄놓아, 어른이 되어 읽게 될 책에 대해 거부감과 편견이 나도 모르게 자리잡혔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내가 어른이 되어 다시 읽게 된 책들 중에는 추리 소설류에 가끔 자극적인 살해 장면 등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자극적인 소재가 없어도 편안하고 재미나게 읽히는, 그런 책들이 많았다. 내가 그런 책을 좋아해 주로 골라 읽어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내용에 내가 은연중에 피해 온 내용이 있다고 해서 망설였는데, 웬걸. 이 책 재미나다. 그리고 그 거부감도 쉽게 사라졌다.
"어머나 마유씨, 남자 복이 터졌네. 옛 애인하고 현재 애인한테 동시에 사랑을 받다니."
간밤의 일을 들은 사에키 씨는 악의 없는 탄성을 질렀다.
대체 어떻게 남자 복이 터졌다는 초절정의 긍정적인 생각을 할까 31p simply heaven
삼년전 연락도 없이 떠난 전 남친이 돌아오고, 현재 사귀고 있는 애인이 있고 마유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삼각관계라는 말만 듣고도 지극히 보수적인 나는 색안경을 끼려했는데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옆에서 이러쿵 저러쿵 비난할 상황은 아니었다. 누가 봐도 괴상해보이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마유의 입장, 그리고 나중에 소개되는 전 남친 나미키의 이야기까지 모두 다 들어보면 어느 사랑 하나 소홀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안타깝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마유도 그렇고, 문란한 성생활을 하고 있는 여대생 미쓰코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이상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사정을 듣고 보니, 아, 이런 하고 공감이 되어버렸다.
젊은 아내나 첩을 둘 만한 매력도 재력도 없지만 섹스를 하고픈 노년 남성은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를 악물고 싶지만 틀니라서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68p 심신
고구레 빌라라는 제목과 더불어 최근 출간된 또다른 작가의 신간 고구레 사진관이라는 책도 있어서 고구레가 처음에는 지명 이름인가싶었다. 이 책에서는 모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고구레 빌라의 주인 할아버지 이름이 고구레다. 표지에 떡하니 심상찮게 등장한 개도 존이라는 평범하면서도 웃음이 나는 이름을 가진 개고 말이다. (정말 그림 속 개의 느낌이 존이라는 이름과 너무 잘 어울렸다.)
아내가 있으면서도 노년의 마지막 섹스를 다른 누군가와 해야할 것처럼 느끼는 할아버지가 참 이해되질 않았다. 하지만 고구레 할아버지는 무척 심각했다. 그리고 사건 돌아가는 상황이 제일로 재미있어서 갑자기 쿡 하고 웃음을 터뜨리니, 옆에 있던 아기 왈 "엄마 왜 웃어?" 음, 이유는 말 못한다.
그냥 가볍게 책을 한번 잡았을 뿐인데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자꾸 뒷 이야기가 궁금하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하고 읽다보니 어느새 아쉬운 마지막 장을 덮고 말았다.
고구레 빌라에 살고 있는 주인 할아버지, 그리고 참하고 성실한 마유와 그의 전애인, 현애인, 여기저기 재미난 조연처럼 등장했으나 알고보면 가슴아픈 사연을 갖고 있는 미쓰코, 싸이코 스토커같은 관음증을 선보였으나 은근히 괜찮은 남자 간자키, 그리고 고구레 빌라의 개 존과 존을 씻겨주고픈 지나가던 애견 미용사, 애견 미용사 미네와 같은 이름의 개를 가진 마에다, 마유네 꽃 가게 주인 부부와 꽃가게에 정기적으로 꽃을 사러오는 니지코까지..단편 이야기 7편처럼 느껴졌는데,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매 이야기의 주인공이 넘어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이 된채 재미나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재미나긴 고구레 할아버지 이야기가 제일 재미났는데 기억에 남기는 미쓰코와 마유, 그리고 마유를 둘러싼 나미키의 이야기가 가장 잊히지 않는다.
미우라 시온, 이 사람 참 글을 잘 쓰는 구나. 꽤 유명하다는 일본 작가들의 책을 몇 편 읽어보게 되었는데 신간이 아닌 예전 책까지 골고루 찾아 읽고픈 생각이 드는 작가는 사실 드물었다. 그런데 미우라 시온, 이 사람 책은 당장 서점을 뒤져서 사야할 것 같다. 벌써 읽고 싶은 책도 몇권 적어뒀다.
낡고 무너질 것 같은 고구레 빌라. 그러나 그 안에는 훈기 가득한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7편의 이야기만으로 끝을 보기엔 참 아쉬운 그런 책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