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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탄생 ㅣ 문학동네 청소년 11
김진나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허공에 있는 도둑 세계, 수많은 학교 중 최고의 도둑 학교인 비설당, 신과 같이 세상의 욕망을 조율하는 도둑떼, 오랜 수련을 거쳐 마침내 놀라운 도둑이 되는 이야기들. 그녀는 매일 밤을 새워가며 이 이야기들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로보는 그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곳에 갈 것이란 것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도둑세계에 있었다. 지도상의 모든 선이 수렴되는 남극과 비슷한 곳. 49p
평범한 이름을 붙이고 싶었으나 너무 예쁘고 완벽해 믿어지지 않는 불안감을 느낄 정도가 된 큰 딸에게는 보배 보자를 연달아 붙여 보보라고 이름을 붙이고, 그 다음 딸아이는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태어나 안도했으나 그 뿐, 모든 것을 큰 딸의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린 가련한 둘째 로보. 부모와 언니조차 로보의 존재를 거의 투명인간이나 하녀 취급을 하고, 학교에서 그녀의 위상 또한 그에 못지 않다.
부모들에 의해 철저히 속물이 되어버린 언니 보보는 자신밖에 몰라 로보가 아프다 하니 아프면 더 아프라고 동생을 일부러 밟고 지나가는 등 지나치게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현실 세계 속에서는 늘 보보만이 최고의 인기를 끌 뿐이다. 언니가 마음껏 쓰다버린 물건들이 창고처럼 로보의 방에 쌓여가고, 그 틈에서 우연히 도둑 세계 이야기에 빠져든 로보는 자신이 숨쉴 틈을 도둑이 될 거라는 가상의 틈바구니를 통해 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주 우연히 도둑 세계 최고 학교 비설당 입학시험의 문을 여는 운을 누리게 되었다. 지상 세계의 아이라면 너무나 들어가기힘든 그 문을 1등으로 열고 들어간 것이다.
비설당을 보며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떠올리게 되었다. 통과할 수 없는 벽을 뚫고 비설당이라는 신비로운 공간에 입성하는 계기나 자신도 모르게 주목을 받는 특별한 위치(신입생 1등)라던지 현실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가련한 처지라던지 하는 설정들이 해리포터와 많이 닮아있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입장에서 쓰여진 마법사가 아닌 신비한 도둑이야기라는 점이 조금 다를까.
로보만큼은 아니어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는 10대들이 꽤 많을 법 하다. 자신만의 꿈 속 세계를 만들어놓고 그 곳으로 도피하고픈 많은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호그와트 마법학교나 비설당 같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진정한 믿음을 주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너무나 필요한 그런 안식처가 아닐까 싶었다. 청소년을 위해 쓰여진 소설이기에 이 책의 중간 중간에 참으로 몰입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지 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읽게 되었다.
도둑이라는 존재가 미화될만한 존재가 아니기에 의로운 도적 홍길동 이후로 도둑에 대해 호감을 갖고 읽게 된 것은 이 책이 처음인듯 싶다. 무엇보다도 불쌍한 로보가 숨통 트일 곳이 있다는것이 참으로 안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집에서까지 이렇게 무시당하고 학대받고 있다 생각하니 정말 내 가슴까지 갑갑해왔다. 언니야 그렇게 키워진 사람이라 빼논다 쳐도 어찌 부모란 사람들이 똑같은 자식을 이렇게 다르게 차별할 수 있는지..외모와 능력 외에도 무시 당하는 딸을 만들어내게 된데에는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가 큰 일조를 한듯 하여 더 가슴이 시렸다.
물질이 아닌 비물질, 인간의 불행 등 마음의 고민거리까지도 훔칠 수 있는 비설당 도둑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참으로 신비롭고 재미나게 느껴졌지만 좀더 이야기를 풍성하게 살려 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급하게 마무리한 아쉬운 결말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기 때문이었다. 로보를 위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