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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퀸 클레오파트라
스테이시 시프 지음, 정경옥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처음에 안젤리나 졸리 주연, 영화화 결정이라는 소개글을 읽고, 소설인줄 알았다. 어떻게 영화화가 될지 사실 궁금하기는 한데, 소설은 아니지만 그녀의 일생과 사건을 딱딱하지만은 않게 그러면서 허구를 가미하기보다는 최대한 역사적 사실 등을 근거로 되살려놓은 전기라고 할 수 있다.돌려말하면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클레오파트라를 재조명하면서 소설처럼 재미나게 읽힐 수 있게 쓰인 책이라는 것이다.
근래 들어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판에 박힌 평가를 뒤집는 책을 여럿 만나게 되었다. 바로 얼마전에 읽은 임페리움, 루스트룸에서는 많은 역사가들이 비난했던 키케로에 대해 애정어린 시선을 담아 써낸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완벽한 허구로만 볼수는 없다면서 승자인 카이사르만 영웅으로 만드는 기존 역사가들보다 조금 더 객관적일 수 있는 시선으로 키케로를 담아내고 있었다. 이번 책에서도 역시 키케로에 대한 많은 역사가들의 평이 인용되기는 한다. 키케로는 명석했고 길이 인용되는 말을 남겼지만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잘난 척했다. 그의 글은 부끄러움도 모르는 자화자찬 일색이었다. '그는 현존하는 최고의 허풍쟁이다.'187p라고 플루타르코스가 말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읽은 로마사에 관련된 소설은 아직 2부까지만 나와서 클레오파트라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클레오파트라와 키케로가 대단한 원수 지간인것도 몰랐는데 (물론 키케로 입장에서) 그 이유가 클레오파트라가 책을 빌려주기로 했다가 잊어버리고 빌려주지 않은 것에서 적대적인 원한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비단 그 한가지 이유는 아니겠지만 이후로 키케로는 공공연히 클레오파트라를 대놓고 싫어했다.
키케로는 자신이 부자라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책에 자부심을 느꼈다. 클레오파트라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그게 전부였다. 자기보다 더 훌륭한 도서관을 가진 똑똑한 여자는 그를 불쾌하게 했다. 187p
세간에 잘못 알려진 클레오파트라는 오로지 아름다움과 성적인 관능미 정도로 영웅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 악녀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그것은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후의 역사가들의 추정과 추측이 난무했다는 데, 게다가 자신의 인기를 위해 독자들이 좋아할 가쉽 정도로 그녀를 깎아내리는데 치중했다는데 오늘날의 잘못된 이미지로 굳어진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녀가 이집트인의 혈통이 아니라 마케도니아계 그리스인인 프톨레마이어스 왕조 출신이라는게 놀라웠다. 그녀뿐 아니라 300년간 파라오를 배출한 집안이 바로 그리스인 혈통이었다는 점도 이 책으로 처음 알았다.
알렉산더스 대왕을 조상으로 하고, 수많은 학자들을 존중해 당대 최고의 도서관을 운영하고, 최고의 브레인 집단을 영위했던 이집트라고 한다. 그 속에서 클레오파트라 (한명의 이름이 아니라 사실 여섯번째 클레오파트라인 클레오파트라 7세가 우리가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 여왕이라 한다)는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그 수준높은 교양과 명석한 두뇌로 아름다운 외모보다도 더 영웅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있는듯 없는듯 한게 최고의 미덕으로 느껴진 로마 여성들과 달리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해박한 지식으로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로마를 사로잡을 정도의 부국이었던 이집트, 그 막강한 부는 위용을 자랑하는 로마인들조차 혹하게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모두 철저하게 비어버린 로마의 국고를 그녀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를 쓴 로마인들도 고대 로마 역사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우리의 시야를 더욱 흐리게 한다. .사람들은 가끔 원본보다 사본을 더 좋아한다. 고전 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옛이야기들을 이리저리 끌어다 이어 붙였다. 다른 범법자들의 악행을 클레오파트라에게 덮어씌우기도 했다. 그들에게 역사는 다시 쓰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고, 더 근사해진다면 몰라도 더 정확해질 필요는 없었다. 19p
그녀가 로마인이었다면 그리고 남성이었다면 아마 오늘날의 평가는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리 혜안이 뛰어나고, 세기의 지도자감이었을 그녀였을지라도 비로마인에 여성이기까지 한 그녀를 미화시키려는 노력은 그들에게는 필요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역사가 적에 의해 쓰였을 뿐만 아니라, 라틴어로 된 시에 등장하는 모습으로 모든 이들의 마음에 각인된 것은 불행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그야말로 자신에게 적대적인 언어로 살아남았다. 21p저자는 끊기고 위조된 그녀의 역사를 바로잡고 싶었던 것 같다.
제대로 된 진실을 접하게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 뿐 아니라 당대의 많은 걸출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같이 흘러나와 새로운 기분으로 읽게 되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두 연인,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그리고 그녀와 적대관계인 옥타비아누스, 앞서 언급한 키케로 등 로마사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많은 이들의 이름이 클레오파트라의 전기에서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다. 어릴적에는 교과서에 실린 역사, 혹은 그 외에도 책에 실린 이야기등은 모두 사실인줄 만 알았다. 어른이 되어 어느 정도 작가의 의도에 의해 많이 윤색되고 탈색까지 될 수 있음을, 심지어 교과서도 왜곡이 가능함을 (일본 교과서의 예를 들어 알게 되었다.) 알고 내가 배운 지식, 혹은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이 잘못된것이 있으면 바로잡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클레오파트라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게 되어 고마운 느낌마저 든다. 더 퀸 클레오파트라,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였던 그녀의 이야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