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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동물원 - 국어 선생님의 논리로 읽고 상상으로 풀어 쓴 유쾌한 과학 ㅣ 지식의 놀이터 1
김보일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2년 2월
평점 :

저자이기 전에 한 명의 독서가인 그는 어떤 책을 쓸까보다는 어떤 책을 읽을까를 먼저 고심하는 사람입니다.
몽테뉴와 밀란 쿤데라의 애독자이기도 한 그는 진화심리학의 열렬한 독자이기도 합니다. -띠지중에서
국어선생님이 풀어쓰는 과학 이야기라..
학창 시절 과학은 내가 그다지 좋아하는 과목이 아니었다. 국어나 사회 등 다른 과목에 비해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재미없게 느껴졌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과에 오고, 과학만 주구장창 공부해야하는 학과에 진학하게 될 줄이야.
어찌 됐건 과학에 대해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주실 거란 기대감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기에 묶인 글들은 치열하고 엄정한 사색의 기록이라기보다는, 루소가 벌처럼 이 식물에서 저 식물로 옮겨 다니며 즐거움을 느꼈듯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옮겨다니며 과학적 사유가 주는 즐거움에 푹 빠졌던 놀이의 기록, 매혹의 기록입니다. -작가의말
다독에 입각한 과학적 지식과 정보를 재미나게 풀어낸 이야기들, 혹은 김보일 선생님과 지인들이 페이스북에서 주고받은 이야기 등이 마치 대화창, 덧글 형식으로 이야기의 끝마다 붙어 있는데, 이를 읽어보는 것도 마치 인터넷 꼭지 하나씩 읽어보는 것마냥 재미난 경험이 되었다.
이미 김보일 선생님의 여러 책을 읽어본 이웃님들 중에는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는 재미난 이야기라며 감탄하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나는 이 책으로 김보일 선생님을 처음 만나뵈었음에도 어쩐지 이름이 너무나 낯익었다. 어디서 뵈었더라? 하고 곰곰 생각하다가 떠올린 것이..
전혀 엉뚱한 아이 그림책에서였다. '멍멍 의사 선생님'에 나오는 검보일 가족이 있는데, 이름이 비슷해서, 내 귀에 그렇게 익숙했었나보다.
말벌이 애벌레 먹어치우기 전략은 읽으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유충이나 다른 애벌레 몸 표면에 알을 낳아 붙여놓으면 말벌 유충이 깨어나 숙주의 몸 중 덜 중요한 부분부터 조금씩 먹어치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완전히 다 큰 다음에는 중요 장기들까지도 모조리 먹어치우고..
너무 끔찍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인간이 자연과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굳이 말벌만 잔인하다 탓할 문제가 아니었다.
진드기와 올름의 이야기 또한 처음 듣고서도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그런 이야기였다.
5천만년전에 유럽과 북아메리카가 분리되면서 북아메리카에서는 도롱뇽이 번성했지만 유럽에서는 모두 멸종되고 단 한 종만 살아남게 된다. 유럽에서 살아남은 단 한 종은 1744년에 바론 발바소르에 의해 발견된 올름, 올름은 슬로베니아 산맥의 거대한 동굴을 피신처로 삼아 살고 있다. 석회석 동굴 깊숙한 곳에서 100년 동안 살아가는 분홍빛 양서류. 42p
"작은 유리병에 담긴 채 섭씨 6도로 유지되는 냉장고에 12년동안 방치된 올름이 한마리 있었다. 나중에 꺼내보니 그것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해부를 해보니 소화계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중략.. 밤도 낮도 없는 영원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에게 100년, 즉 36500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올름은 그저 멸종 대신 망각을 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43p (팀 플래너리의 경이로운 생명에서 저자가 발췌한 부분)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 막막한 공간에 올름 대신 내가 몇 초간 들어갔다 나온 듯,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다.
멸종마저 망각한채 100년이나 살아가는 삶이란 도대체 어떤 삶이란 말인가.
그런가 하면 진득하기의 대명사 진드기는 또 어떠한가. 그저 피를 빨고 괴롭히는 해충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먹이가 나타날때까지 10년이고 20년이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사냥감을 기다린다고 한다.
부팅이 더디다고 엔터키를 팍팍 두드려 대고,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팡팡 두들기는 인간들이여, 진드기의 진득함을 보시라, 65p
재미난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우리가 반성해야할 부분까지 살짝 꼬집어주는 그런 이야기들이 한편 한편 흥미롭게 느껴졌다.
나의 다독은 주로 소설,여행서, 실용 서적 등에 치중되어 있었는데 과학, 인문 서적도 충분히 재미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또한 '과학적 사유가 주는 즐거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지인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책을 펼쳐낼 정도로 키워나갈 수 있다는 것 자체도 부러워졌다. 읽고 그치는게 아니라, 작가의 말 마따나 지식을 즐기고 상상하는데까지 이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책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