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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평점 :

조정래 선생님의 가장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대하 소설 3부작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아직도 읽어보지 못했다. 사실 권수가 많은 대하 소설들을 대부분 읽어보지 못해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아버지께서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무척 재미있게 보시던 것을 기억은 하나, 그때만 해도 내가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던 때였다고 자조하고 싶다.
그리고 몇년전부터 다시 복간되어 나오기 시작한 조정래 선생님의 책들을 허수아비춤을 시작으로 불놀이, 비탈진 음지 등의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외면하는 벽은 1977~1979년에 쓰인 중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우리 아이가 자라고 있는 지금과 내 어릴 적만 비교해봐도 (기억이 나는 시절부터말이다.) 짧은 동안이지만 엄청난 변화를 거듭했다 생각이 되건만, 부모님 시절과 우리때와는 또 상상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듯 하였다. 부모님이 한참 내 나이 때의, 아니 그보다 더 젊으셨을때 쓰여진 이 소설은 급격한 근대화를 겪으며 산통을 겪은 우리나라의 우울한 절망의 끝을 보는 듯한 이야기로 압축되어 있었다.
'절망의 끝에 찾아온 새로운 절망'이라는 뒷 표지의 이야기가 가슴을 갑갑하게 조여오는 듯 하였다.
벽을 향해 하염없는 눈길을 보내고 있는 그네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런 탈색되어 버린 냉랭한 웃음을 태섭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태섭은 두려워졌다. 생활의 비참한 잔인성은 언제나 상상을 비웃게 마련이었다. 205p 한, 그 그늘의 자리
상상하기조차 힘든 한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요즘 세상에도 끔찍한 일들은 일어나고 있지만, 고아들을 대상으로, 나이도 아홉살밖에 안된 어린 아이를 강간하고 초컬릿, 사탕 등을 쥐어주고 간 미국인 병사의 이야기는 정말 욕지기가 치밀어오르게 만들었다. 그런 끔찍한 일을 겪고 자란 여인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질 못했다. 그녀를 우연히 목격했던 고아원 동기인 태섭이 입양된 후 의사가 되어 돌아온 병원에 그네는 첩인 몸으로 교수라는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채 심한 정신적 불안에 시달리며 아이의 사산을 예감하고 있었다.
가난하고 비참했던 시간을 외면하고픈, 그러나 외면해서는 안될 우리 윗 세대들의 이야기고, 그를 거울삼아 살아가야함에도, 자꾸 외면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건만 조정래님은 그러니까 잊지 말고 돌아보라고, 하면서 일부러 긍정적인 이야기를 섞어 넣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만을 좋아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 흡입력이 있어서 갑갑함을 느끼면서도 모두 다 쉽게 읽어버리고 말았다. 빠르게 읽었으나 여운은 깊게 남는 그 한깊은 이야기들을 말이다.
미국에 가서 이혼하는 조건으로라도 난 하날 꿰차고 말거야. 거기 가서 혼자 청소부를 하거나 식모살이를 한들 얼마나 행복하겠어. 난 거기선 최소한 구경거리는 아니란 말야. 섞여버리는 거야. 묻혀버리는 거야. 그것만으로 난 미치게 행복할 거야. 어렸을때 받은 천대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이렇게 다 커가지고 손가락질당하는 외톨이로 죽을때까지 여기서 살 수는 없어. 307p 미운 오리 새끼
사랑하는 여자가 몸을 팔겠다 하니 눈이 뒤집히지 않는 남자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그네들은 이미 외국인 병사와 양공주인 엄마 사이의 혼혈로 태어나 사회적 멸시를 받고 자란 세대가 아니었는가.
행복하게 살고 싶으나, 아니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으나 세상은 그들에게 손가락질만을 할 뿐이었다.
그저 평범하게 섞이고 싶다는 숙희의 바람, 너무나 아름다움에도 결혼하긴 그렇고 한번 데리고 놀만하다는 시선의 주인공이었던 에리샤, 대부분 엄마에게 버림받았으나 드물게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랐던 창규, 그러기에 다른 친구들과 달리 엄마의 재력으로 공부도 완전히 마치고, 새로운 사업도 시작할 수 있었던 그는 어려운 친구들을 도울 삶을 스스로 모색하기 시작한다. 미운 오리 새끼가 그래도, 그나마 희망을 품고 있었던 이야기라면 이야기랄까.
삼면이 바위인 감옥에 갇혀 햇볕도 보지 못한채 몇년인지 모를 시간을 보낸 죄수가 드디어 간수의 도움으로 탈출이라는 희망을 거머쥐었을때, 작가는 그 희망의 벽인 절망을 느끼게 해주었다. 사상범이었던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썼을 그에게 희망은 없었다.
집안에 죽은이의 몸을 뉘이고 곡을 했던 과거와 달리, 아파트에서 그런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사자들이 아닌 주위 사람들의 상상과 쑥덕거림부터 시작하니 그도 그렇게 들리기도 하였으나 막상 당사자의 치밀어오르는 울음부터 막아내야한다고 생각하니 당사자들에게는 끔찍한 일이 되었을 외면하는 벽은 2010년 고교 모의고사 출제작으로 실리기도 하였다 한다.
이런 힘든 시기를 살아오셨구나.
지금도 어려운 이웃분들이 많지만, 소설 속 시절만큼 절대 다수의 가난은 아닐 거라 생각이 든다.
정말 힘들었을 사회상을 조정래 작가님은 그대로 다 소설 속에 살려내고 계셨다.
35년이 지난 지금, 잔인했던 근대화의 산통을 그대로 담아낸 이 많은 이야기들을 소설이라는 이름을 통해 다시금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겪어보지 않았던 시대의 이야기였지만, 절대 잊지 말라는 교훈을 남겨주는 그런 시대의 아픔을 그대로 다시 책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