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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출 - 낯선 공간이 나에게 말을 걸다
오영욱.하성란 외 지음 / 이상미디어 / 2012년 5월
그 곳이 어디라도 좋다. 오래전 나와 내 친구들의 기억이 가득한 그때 그 펍, 공간을 사랑하게 만든 곳, 그 안에서도 나만의 추억이 깃든 카페, 낡지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설악산 속 설악산 관광 호텔, 혹은 그런 장소가 아니라 제주도 어느 바다, 낚시를 잘하게 하는 포인트, 다산 초당 등의 명소. 다양한 명사들이 모여 자신의 소중한 곳을 펼쳐내는 이야기는 특정한 틀도 없었고, 다만 마음에 담아두었던 하나의 공간을 이야기한다는 공통점만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기사 바르셀로나로 떠나다의 작가 오영욱님과 에이 등의 작품을 쓴 소설가 하성란님의 "특별한 공간" 이 궁금했고, 내가 살고 있는 고장 대전 산타크로스라는 레스토랑?펍?에 대해 쓴 이야기가 궁금해 읽기 시작했다. 글을 쓴 작가도 글 나중에 살짝 소개될 따름이다. 우선 가장 중시되는 것은 바로 글이었다. 글과 그 장소.
그렇게 읽히는 글들은 참 담백했고, 여행의 운치를 느낄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꼭 화려한 곳이란 법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나만의 보석같은 곳, 사연이 있기 마련이었다.
사실 가장 먼저 찾아본 곳은 내가 살고 있는 곳, 대전의 산타크로스였다.
단편집처럼 각각 독립된 글이었기에 원하는 글들을 순서에 상관없이 찾아보고, 또 짤막한 휴식을 갖고 쉬어갈 수도 있는 책이었다.

가볼만한 맛집? 등의 이야기가 추가된 편안한 글이려니 했다가 첫 초반부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의 동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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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위로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기에 무어라 말을 이어가기 힘들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작가는, 그 곳, 자신과 친구들의 청춘의 기억이 가득한 산타크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어쩌면 갑자기 자신을 떠나버린 친구들을 잡지 못했다는 후회로, 그들과의 추억을 기릴 곳에 대해 글을 남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 나도 산타크로스 제목만 듣고서도, 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게 어디더라? 싶었다.
알고 보니 충대 앞인 궁동의 레스토랑이었다. 한번 들어가본 것도 같고, 아닌 것고 같고..긴가민가했다.
작가의 학번도 나와 많은 차이가 나지 않았고, 그가 주로 활동했다는 충대 궁동 또한 나도 방학이면 내려와 친구들과 놀던 곳이라 반갑기만 하였다. 학교는 서울에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만나는 고교 동창 셋이 모두 충대에 다녀서, 방학이면 친구들을 만나러 충대의 곳곳에 출몰하고는 하였다. 충대 전산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기도 하고, 구내 식당에서 떡볶이를 사먹고 있기도 했다. 학교 앞 카페나 식당 등에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자주 등장하였다. 그러다보니 오랜만에 본 고등학교 동창생은 내가 충대생인 것으로 착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 곳이었기에 작가가 특별히 애정을 갖고 인디음악에 푹 빠진 특별한 공간이 된 그 곳 산타크로스라는 카페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 난 그때 나만의 장소가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 또 살고 있는 이 곳이기에 언젠가 작가가 추천해준 그 치즈 버거를 먹으러 한번 가봐야겠다. 그리고 작가의 그 이야기들이 다시 생각나겠구나 싶었다.
여행 기자로 명성을 날리다, 남편과 함께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제주도로 내려가 글을 쓰고 있는 여행작가분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제목은 서귀포 대평박수 큰 홈통,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더니, 작가분이 오후마다 남편과 함께 바다낚시를 하러 가는 낚시 명소 포인트란다. 현지말로 표현한 것이라 내게는 생소하기만 하였다. 제주도의 푸른 삶을 사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얼마전 읽은 제주 보헤미안도 이 작가님과 같은, 제주도를 사랑한 제주 이민자들의 이야기였는데, 이분은 따로 제주 여행의 달인이라는 책을 펼쳐낼 정도로 제주에 대한 만족스러운 감정을 높여가고 있는 분이었다. 시골의 삶이라 심심할 법도 한데, 표현을 따르자면 이보다 행복해보이는 고즈넉한 삶이 또 없었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햇볕에 눈이 저절로 떠지고, 향기로운 커피를 한잔 내려 마시고, 소소한 정이 배어나는 제주 일보는 샅샅이 읽어도 30분이면 족하단다. 그렇게 신문을 읽고 멸치 주먹밥 혹은 텃밭에서 난 채소 등으로 샐러드, 빵 등으로 남편과 편안한 아침을 먹고 나면 아침 일, 오전 일과가 집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그러고 나서 오후에 바다낚시를 하러 남편과 나서는 곳이 바로 대평박수 큰 홈통이란다. 낚시광인 남편을 따라 자신도 그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단다. 이야기만 들어도 참으로 행복해보였다.
원래는 세워질 수 없었다는 설악산 속에 생뚱맞게 들어선 낡은 호텔인 설악산 관광호텔만의 여유와 발코니의 운치에 대해서는 오기사 바르셀로나로 떠나다의 작가 오영욱님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꼭 비싸지 않더라도 만족스러운 그런 공간이 있다. 편히 쉴 수 있고, 맛있는 요리를 먹거나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주인의 배려에 눈물이 나게 행복한 그런 곳들이 있다.
김종욱 찾기 등으로 유명한 영화 감독이자 뮤지컬 제작자인 장유정님만의 공간 대학로 장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노트북 작업을 하려는 단골을 위해, 10명은 족히 들어갈 비밀의 공간을 몰래 내어주기도 하고, 정말 오랜만에 필이 꽂혀 취중진담 이후로 진심으로 와닿았다는 그 노래 (나 또한 전람회의 취중진담처럼 좋아하는 노래가 없었다.)를 만들기 위한 작가와 작곡가 등의 순수한 창작품이 이뤄질 수 있도록 마음을 써주고 배려해준 장의 공간.
한때 나도 대학로 소극장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연극을 섭렵하던 때가 있었기에 대학로 이 곳 저곳을 찾아다니길 좋아했는데 그때 장이란 곳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글을 읽다보니 30대 중반 정도의 내 나이 또래의 작가들의 이야기가 참으로 많았다.
그래서인지 가보지 않은 그런 공간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이 되고, 가보고 싶은 그런 곳들이 되었다.
읽고 있으면 그 자체로도 참으로 푸근하다.
굳이 이 글이 여행기가 아니라도 좋고, 그저 무어라 따로 정의하지 않아도, 그냥 읽고 있으면 좋은 그런 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