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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 지음, 이혜정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몇년전 한국에서 인터넷소설로 먼저 유명해졌던 "더미(김지훈 저 , http://melaney.blog.me/50090148905)"를 책으로 읽고 비만에 대한 급격한 거부감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 책 만찬은 또다른 뚱보 연쇄 살인사건에 대한 소설이었다. 나 또한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그 때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급격히 입맛을 잃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지속되어야 다이어트가 될텐데..
이 책은 타라 덩컨으로 유명한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의 심리 스릴러이다. 유명한 타라 덩컨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들어만 봤다. 만찬이라는 표지에서 포크 끝에 뚝뚝 떨어지는 핏자국이 나로 하여금 더미를 떠올리게 하면서 다소 오해를 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고도 비만의 남성들이 연쇄적으로 납치되고, 그들의 시체는 각각 늘어진 피부만 남은채 살은 거의 없는 상태인 희한한 모습으로 발견이 되었다. 표지와 이 대목에서 잠깐 착각을 하기도 하였다. 혹시 만찬이란 인육으로 만드는 요리라는 뜻일까? 더미를 본 영향이긴 했지만 살짝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소아 성애자 사건을 다룬 경찰 필리프 하트 반장과 소아 성애범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아이들을 상담하고 심리 치료하는 정신과 여의사 엘레나가 주된 주인공으로 등장을 하였다. 그리고, 그 소아성애범죄자가 납치가 되면서 그렇게 납치된 고도 비만 남자가 다섯에 이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범인은 블라인드로 등장을 한다. 괴물로부터 어려서 끔찍한 학대를 당하고 온 몸이 갈기갈기 기워진 무시무시한 형태의 사람, 그는 뚱보들을 잡아다 놀라울 정도의 솜씨를 발휘해 최고급 요리를 대접하고 그들을 결국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음식과 살인의 역학관계라니.. 갑자기 내가 입맛을 잃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범인은 수수께끼 같은 암호를 담은 시구를 한구의 시체를 남길 적마다 피로 새겨 남기었다. 세번째 시체를 남길 적에는 필리프 반장을 잠재운 후 그의 옷을 벗겨 반장의 몸에 직접 시를 적어놓기도 하였다. 경찰에 대한 확실한 능멸이자, 죽일수도 있었는데 죽이지 않았다는 조롱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상쩍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혹시, 이 사람이 아닐까? 싶은 사람들이 의외의 장소에서 자꾸만 튀어나왔다. 막판에도 또한번 보기좋게 속아넘어갔다. 내가 미스터리나 스릴러에 약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작품에 대한 몰입도와 흥미는 무척이나 놀라울 정도였다.
끔찍하게 무서운 와중에도 은연 중에 웃게 만드는 유머도 살짝 섞여 있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여기저기서 터지는 로맨스가 있었다는 것.
아르메니아 왕위 계승권을 갖고 있다는 (작가로서는 놀라운 이력의) 작가지만, 소설의 배경이 프랑스 파리이기에 로맨스 감정이 이렇게 충만한 것인가도 싶었다. 사실 그리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감정만은 아니었다.
너무나 완벽했던 아내를 잃고 새로운 사랑에 정착하지 못하는 필리프 반장, 그가 아내가 죽은 이후 처음으로 설레는 감정을 갖게 된 이가 바로 엘레나 정신과 의사였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어릴적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남자에 대한 근원적인 거부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흠모하는 동료이자 상관인 네드의 관심도 애써 외면해왔던 그녀가 사건을 추적하며 알게 된 필리프 반장에게는 은연중에 끌리게 되면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깊은 사랑에 빠져들게 되었다.
사실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바로 범인이었다.
연쇄살인범. 그가 겪은 고통은 차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있었을까.
미치지 않고서야..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데, 정말 미친 사람이었기에 그에게 상상 이상의 죽음보다 심한 학대를 할 수 있었고 그렇게 그는 "개로 길러진 아이(브루스 D. 페리, 마이아 살라비츠 저, http://melaney.blog.me/50115032233)"가 되어버렸다. 심한 학대와 상처를 받고 자라났더라도 사랑으로 그를 치유할 사람들이 있었더라면 그의 트라우마도 극복될 수 있었을텐데.. 끝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자랐기에..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던 귀한 아이들에게 일부 세상은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엄마이기에 처음 사건에 등장했던 엄마가 약한 힘이었을지언정 그녀가 다행히 일찍 발견한 소아성애범죄자의 두 눈을 뽑을듯 덤벼들었다는게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머리를 잠시 식히려 창밖을 바라보다가, 평온한 아파트의 모습을 보니, 이런 일상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범죄란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워낙 부자들만 등장해서, 필리프 반장도 부자다. 평범한 아파트를 보며 공감하긴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일상의 평화를 깨뜨리는 소름끼치는 사건들의 무시무시함은 충분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