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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ㅣ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유명한 오가와 요코의 작품을 나는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로 처음 만났었다. 그 이후 만난 두번째 작품은 단편모음집인 바다였다. 오가와 요코라는 작가의 이름만으로 선택하게 된 두번째 작품. 바다에는 일곱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오가와 씨는 훈훈함도 넣으면서 섬뜩함이며 잔인함 같은, 어딘지 모르게 죽음을 연상시키는 '악센트'가 되는 색깔을, 양을 조절해가며 작품에 반드시 섞어 넣는다. 오가와 씨는 '죽음은 삶에 포함되어 있다. 지금 웃고 있는 나의바로 옆에도 죽음이 있다'고 하셨는데, 바로 난색 일변도가 아니기에 오가와 씨의 작품은 팬을 매료시키는 것이다. 170p 작가인터뷰 중에서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도 그랬지만, 오가와님의 작품은 단순히 재미가 있다라고만 귀결짓기는 어렵다. 재미를 떠나서 뭔가 나를 매료시키는 신비한 부분이 있다고 해야할까? 작가 인터뷰에 나온 대로 그것이 죽음의 코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 같은, 현실과 많이는 아니고 살짝 동떨어진 것 같으면서 그러면서 잔잔히 맞물려 흘러가는 듯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처음 등장하는 <바다>만 해도 그렇다.
기술 선생님인 남자 주인공이 결혼 승낙을 얻기 위해 보건 체육 교사인 이즈미씨의 고향집에 같이 방문하게 되는데, 손님 맞이에 어쩐지 어색한 가족들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기분을 다루고 있다. 그 중 약혼녀보다 더욱 중점적으로 다뤄지는게 꼬마 남동생의 등장이다. 10년 나이 차이가 있어 꼬마 남동생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나, 키도 주인공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고 체격도 상당히 있는, 그러나 목소리는 아주 잔잔하고, 명린금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이 세상과 4차원의 경계쯤에 있는 듯한 모호한 청년이다. 덩치에 안 어울리게 자기 전 동물 녹화 비디오를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잠이 드는, 어린아이같은 면을 지닌 청년. 그가 연주한다는 이름부터가 멋진 명린금은 자기 스스로 개발한 악기이자 바다 바람이 곁들여지지 않고서는 제대로 연주할 수 없는 물고기의 부레를 이용한 아주 독특한 악기였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가와 요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만족할만한 분위기였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향기로운 바람 부는 빈 여행 6일은, 제목 부터가 재미났다. 사실 빈이라는 것이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처음에는 empty의 빈인 줄 알았다. (그냥 세상에 있지 않은 환상적인 여행을 기대했었나보다. ) 나의 뜬금없는 착각이었으나 읽다보니 갓 스무살의 첫여행의 설렘을 안은 여성의 이야기와 60대 중반의 똥똥하면서 빈과 전혀 동화될것같지 않았던 나홀로 여행객과의 불안정한 조화가 여행이 아닌 요양원 방문으로 이어지게 하는 우스꽝스러운 유머를 다루고 있었다. 여행을 망치고 만 처녀에게는 다소 안쓰러운 감정도 들었으나 전혀 새로운 곳에서 노부인의 첫사랑을 찾아 방문하게 되는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는 잔잔한 웃음을 주는 코드가 아닐 수 없었다.
너무나 에로틱해 깜짝 놀랐다는 리뷰를 먼저 읽게 되었던 관능 소설, 버터플라이 일본어 타이프 사무소.
의대 대학원생들이 주로 의뢰하는 곳이기에 타이프하게 되는 자료들이 의학전문 용어를 쓰게 되는 논문들이 많았다.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어서 그들의 자판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잘 모르지만, 한자를 실제 많이 넣어서인지 타자기에 한자 활자를 꽂아 타이핑을 하기도 하나보았다. 그러다 하필이면 고장나서 교환해야하는 활자들이 다소 민망한 활자들이 많았다. 타이프 사무소의 활자관리인의 활자에 대한 애정을 담은 총평들, 그 말 하나하나를 들어보면 기묘하게 활자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들임을 알 수 있었다. 관능 소설 의뢰를 받고, 처음엔 난감했으나 자신이 좋아하는 활자 등을 이용해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는 오가와 요코의 보기 드문 관능 소설이었다.
은색 코바늘, 깡통 사탕, 병아리 트럭, 가이드 등의 소설이 이어졌는데, 정말 오가와의 소설 속에서는 젊은이와 황혼 무렵의 노인, 내지는 어린 아이와 노인 등의 한 세대를 건너뛴 시간 격차가 있는 세대간의 이야기가 주로 이어졌다. (작가 인터뷰에도 소개된 것처럼) 그래서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제외한 이야기들이 많이 소개되는 듯 했다. 대중적인 문학들이 대부분 사랑을 빼놓고는 진행되기 힘든 것에 비해 오가와는 남다른 글을 쓰고 싶었나보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글은 가이드였다.
내 이름은 망고라는 우리나라 소설에서도 가이드인 엄마 대신 가이드를 맡게 된 소녀의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가이드라는 글에서도 엄마 대신 어린 아들이 한 할아버지의 잠깐의 가이드를 맡게 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평범한 글 같아도, 불완전한 셔츠만을 (남들은 절대 안 살 것 같은, 그래서 손님도 하나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명맥은 잇고 있는) 판매하는 셔츠 상점, 전직 시인이 운영중이라는 제목 상점 등의 등장으로 평범함 속의 기묘함을 버무려놓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먼 옛날 있었던 잊지 못할 일, 애달픈 추억, 아무도 모르는 중대한 비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체험 등등 뭐든 다 된다만 손님들이 가져오는 기억에 제목을 붙이는 것, 그게 내 일이란다. 143p
아, 그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체험이라는 표현이 오가와의 글 색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장편의 깊이있는 재미도 사랑하지만 단편이 주는 짤막한 숨결과 여운도 사랑하는 나이기에 바다 또한 즐거운 기분으로 읽어내렸다고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