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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의 온도 - 조진국 산문집
조진국 지음 / 해냄 / 2012년 6월
평점 :

이렇게 술술 읽힐줄 미처 몰랐다.
요즘에는 여행 관련된 에세이가 아니면 잘 읽지를 않고, 주로 소설을 읽고 있어서 그런가 오랜만에 읽은 에세이가 참으로 편하게 와닿았다.
페이지수가 많지 않기도 하지만,(두꺼운 소설들에 비해) 워낙 빨리 후루룩 읽혀서 놀랍기도 하였다.
조진국님에 대해선 <고마워요 소울메이트>의 작가분이시라는 것과 <안녕 프란체스카>, <소울메이트> 등의 드라마 작가겸 선곡까지 겸하셨다는 글까지 기억을 했다. 드라마 <안녕 프란체스카>는 보았지만 다른 드라마와 책은 읽어보지 못했다 생각했는데, 저자분이 쓰신 소설 한편을 이미 내가 읽어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키스키스 뱅뱅>, 그래, 그 소설을 읽었었지. 네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그 소설을 참 나는 메마른 느낌으로 읽어서 죄송한 느낌이었는데, 이 산문집은 그보다 훨씬 편안히, 그리고 부드럽게 와 닿았다.
아이가 잠든 깊은 밤, 홀로 시간을 내어 읽어서 그런지 막힘도 없었고 쉼도 없이 내리 읽을 수 있어 고맙기도 했다. 그래도 중간에 흥미가 떨어졌으면 잠깐 덮을 만도 했는데, 책장이 어느새 다 끝났는가를 아쉬워할 정도로 몰두해서 읽었다.
사람많은 도시를 선호하면서도 혼자 있는 걸 즐기고, 무작정 밝은 것보단 은근한 슬픔에 끌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외로운 틈을 메우기 위해서 오늘도 더 많은 노래를 찾아 듣고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작가소개중에서-
저자분의 친구, 후배들, 그리고 사랑을 했던 그녀들, 또 가족, 한 꼭지 한 꼭지의 이야기가 각각 다른 일화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끊어읽기가 가능한 책임에도 어쩐지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떤 이유로건 외로운 많은 사람들에게, 그 가슴 속에 외로움의 온도에 작은 온기라도 보태길 바라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는 말이 처음부터 내 마음에 가벼운 코팅을 입혀주었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런 따뜻한 온기를 전해받자, 그런 생각으로 글을 읽었다.
한편 한편의 이야기에 모두 가사가 좋은, 어울리는 노래들이 한곡씩 들어 있었다. 노래와 글을 참 좋아하는 작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거의 못 듣고 살지만, (익숙한 노래라곤 아이 눈높이에 맞는 뽀로로, 코코몽 정도와 유아동요들뿐이지만) 10대 후반과 20대 중반까지는 노래를, 그것도 발라드 가요를 참 좋아했었다. 집중도 안되는데 라디오를 틀어놓고 공부한다고 하지를 않나, 나중에는 하다못해 편지를 쓰더라도 꼭 노래를 틀어놔야 직성이 풀리곤 하였다. 그냥 그렇게 듣는 노래가 참 좋았고, 좀더 나이가 들고 나선 차 안에서 듣는 노래도 좋았는데, 또 우리 신랑은 나와 달리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집에서건 차에서건 크게크게 틀어놓고 음악감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둘다 무조건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유아동요에 익숙해질수밖에 없었다. 차에서 다른 노래가 나오면 아이가 꺼달라고, 자기 노래 틀어달라고 하고, 집에서도 재즈나 클래식, 가요 등이 나오면 다른거 듣거나 끄자고 하는 아이가 있기에 말이다. 잊고 있던 노래의 추억을, 저자의 글들 속에 담긴 노랫말들을 눈으로 읽으며 (귀로 들으면 더욱 환상일) 되살려보게 되었다.
"힘들지? 힘들때 누가 손잡아주면 좋더라. 손잡으니까 의외로 마음이 좀 괜찮지?" 148p
신체적으로 몸이 약골이었다는 그가 군대에서 너무나 힘든 훈련에 괴로워할 무렵, 방위병 상병 선배가 잡아줬던 그 손, 그 손을 그는 잊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에 자신을 찾아온 후배를, 너무나 힘든 상황에 직면해 병원에 다녀야할 정도로 망가져버린 그가 완전히 회복할때까지 그는 손을 잡아주고 그를 놓지 못하고 붙들어 주었다.
그러고보면 인생은 예고편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크리스마스나 소풍이나 여행처럼 각자 다른 이름을 달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예고편에 불과한 한결같은 인생이었다. 그럴 바엔 투덜거리는 대신 원해 본편은 아무리 용써도 예고편보다 재미없다는걸 인정하는게 어떨까. 예고편의 반만 재미있어도 되는거지 뭘 더 바래, 그러고나면 속은 편할테니까.
그게 영 허탈하다면 좀 다르게 생각해보련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상상하는 순간부터 본편이 시작하는 거라고. 꿈꾸고 설레는 시간부터 여행에 포함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고 캐럴을 듣고 꼬마 전구가 달린 창틀 앞에서 크리스마스를 떠올릴때부터 크리스마스라고.
그러면 인생의 크리스마스는 하루가 아니라 열흘이나 한달이 될 수도 있을테니 즐거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더 높아질테니까. 172.173p
나 또한 어려서부터 크리스마스 한달전부터 캐롤을 듣고 설레고, 당일에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환상에 빠지곤 하였다.
어렸을 적엔 분명 부모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고 (산타할아버지 선물인줄 알고), 좀더 자라선 가족과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뭔가 로맨틱하지 못하다고 투덜거리기도 하였고, 애인이 생기면 뭔가 대단할 것 같았던 크리스마스가, 막상 애인이 생겨도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어떻게 하면 크리스마스가 아름다울 수 있는 거지? 우습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일보다도 크리스마스가 괜스레 좋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냥 지나가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저자분 말에 한참을 공감하였다. 여행 역시 준비하는 기간은 한달이상 걸려도 막상 며칠 다녀오면 허탈하기 그지 없었지만 어디를 돌아볼까 준비하고 예약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하단 말인가.
하나하나 하고 싶은 말들이 참 많았다.
번쩍거리는 것들만 좋아해 고급 향수 냄새를 좋아할 것 같았던 여자 후배가 알뜨랑 비누 냄새를 가장 좋아한다고 사연을 들려주어 인상깊어진 이야기, 어렸을적 쥐(새끼라고 표현이 되어 있다.)를 너무나 무서워하고 싫어했는데 어른이 되어선 닫혀진 변기 뚜껑을 제일 무서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그게 왜? 라는 분들은 왜 그게 닫혀져있을지를 상상해보라.), 얼그레이로 시작하던 첫 꼭지의 가슴아픈 이야기, 윤상, 결국 흔해빠진 사랑얘기를 듣고 싶게 만드는 좋은 여자가 되어가던 여자친구의 이야기, 남편이 떠난 후 매일밤 미처 빨지 않고 둔 남편의 옷을 끌어안고 자며 그 냄새가 옅어짐을 슬퍼하는 후배의 이야기 등..하나하나 기억에 남는다.
하나하나 인덱스를 붙여가게 만든 그 페이지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