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평점 :
아직 7월이니 올해의 절반 밖에 오지 않은 셈인데, 올해의 최고의 책으로 제노사이드를 꼽고 싶다.
아마, 남은 기간 동안 읽게 될 무수한 책들 가운데서도 제노사이드를 능가할 재미난 책은 만나기 힘들거라는 가정에서이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며 마음 먹게 된 것은 작가의 이름때문이었다. 다카노 가즈아키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제 47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13계단이라는 작품에 대해 재미나다는 평이 무척이나 많았다. 일본 작가들의 미스터리 장르 소설들을 재미나게 읽고 있던 터라, 이 책의 장르와 내용 등에 대해서 미리 관심을 갖지 않고, 저자의 이름만으로 선택을 해도 후회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기대했던것 이상의 성과(재미)를 거두었다.
한때 로빈쿡의 의학 소설들을 무척 심취해 읽었었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 역시 재미나게 읽었었다. 로빈 쿡의 경우 의학 석사여서,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이 뛰어날 수 밖에 없었고, 지식과 더불어 책에 녹여낸 서술이 재미날 수 밖에 없었지만, 다카노 가즈아키는 의학이나 약학 전공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만난 약학 전공 교수와 대학원생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이런 소설을 써냈다는 게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제노사이드. 대학살이라는 의미.
인간의 대학살에 대해 끔찍한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믿기기 힘든 이야기들.
그 속에는 관동 대지진때의 일본인의 무차별적이고, 너무나 비인간적인 조선인 대 학살 이야기에서부터 미국의 이라크 파병 이후 일어난 살상,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학살과 식인, 끔찍한 강간 등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이라고 믿기 힘든, 이 땅 다른 곳에서 분명 일어나고 있는, 문명화된 인간들이 일으키고 있는 끔찍한 사건들이 말이다.
용병인 조너선 호크 예거는 폐포상피세포 경화증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들의 목숨을 구할 방법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생명 연장을 하기 위해 드는 엄청난 비용 감수를 위해 위험한 일이라도 도전할 수 밖에 없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위험한 바이러스를 제거하러 가야한다는 것, 콩고의 피그미 족 한 마을 사람들을 전부 몰살하고 그들과 함께 있는 미국인 학자까지도 죽여야한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특히, 정체불명의 물체는 반드시 사살하고 시체를 회수해오라는 명까지 덧붙여 말이다.
지구상 또다른 곳, 일본에서는 바이러스 학자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에게 큰 애정을 못 느꼈던 약학대학원생 겐토가 죽은 아버지로부터 이상한 메일을 받았다. 부자지간에만 알 수 있는 책에 아버지가 숨겨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겐토는 이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켜지지 않는 이상한 검은 노트북과 커다란 노트북, 그리고 아버지에 비밀리에 실험을 진행하던 곳에서 낯선 이들의 추적을 피해 신약을 개발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정훈이라는 한국인 유학생의 도움을 받아 풀리지않는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을 겪게 된다.
관동 대지진, 유력한 조력자로써의 정훈의 도움 등은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드문 일본인 작가를 만났음을 알게 하였다. 극우파가 많은 일본내에서는 불편한 시각도 있었겠지만 한국인으로써이 책을 접할 때에는 조상의 잘못을 시인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며 그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조선인을 멸시하는 할아버지와 큰 아버지 등과는 달리 겐토와 그의 아버지가 순수한 마음으로 한국인의 능력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에서는 '화해'의 이미지마저 엿볼 수 있어 즐거웠다. 일본 책이 재미나다고 해도 여전히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이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는데,그런 마음까지 깨트려주는 책이었다니 의외의 놀라움을 주는 책이었다.
어쨌거나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사이에는 페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 사람은 그 병을 앓는 아이를 둔 아버지이고, 또 한 사람은 이유를 모르는 채 그 병의 치료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초반부터 등장한 미국의 대통령 번즈는 그들을 강력하게 위협하는 그런 세력이 되어버렸다. 다른 이름으로 개명되어 등장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뻔뻔한지 세계 최고의 강자가 되기 위해 위협이 되는 세력은 아주 간단히 제거해버릴 수 있는 도덕성 불감증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어느 쪽에게는 충분히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 싶었다.
인류 멸망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소행성 충돌, 핵전쟁, 바이러스.. 이 책에는 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새로운 위협이 등장한다.
위협이 될지,아니면 좀더 지켜봐야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다만 그 존재에 대해 미리부터 짐작하고 판단해낼 수 있었다는, 그 판단에 너무나 부합하는 존재가 드러나, 인간의 능력 그 이상의,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인다는 설정은 무시무시하기도 하였다.
인간은, 인간의 능력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과신하는 듯 하다.
그보다 우월한 존재의 가능성은 믿으려하지않고, 게다가 자신의 인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더욱 파격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작가의 상상력의 발로라고만 보기에는 정말 언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이기에, 이런 가능성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는게 놀랍기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