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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관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순수할거라 믿을 어린 아이들이 이토록 잔인하고, 짐승같은 면이 있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슬프게 다가왔다.
여관을 경영하고 있는 집안의 장남인 이쓰오, 마을에서는 잘날 것도 없고, 외모도 평범하고 모든 것이 평범한 그런 아이였다.
이쓰오네 마을로 전학 온 아쓰코, 이혼한 엄마는 술집에 나가 늦게 들어오고, 돌때부터 세살이 될때까지 어린 나이의 여동생을 돌보는 몫은 늘 아쓰코의 몫이었다. 사춘기 소녀에게는 가족을 돌봐야한다는 부담만도 컸을텐데, 학교에서는 그녀를 약자로 보고, 무조건 괴롭히는 부잣집 딸이 주동한 집단 괴롭힘이 심각할 지경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피해자와 가해자만 알고 있는 괴롭힘, 이대로 그들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평범함이 싫은 이쓰오와 잔인한 현실을 벗어나고 잊고싶은 아쓰코, 두 아이의 이야기가 교차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였다.
다양한 수상경력이 돋보이는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이어서 기대감이 컸지만, 대단한 반전과 스릴을 기대할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었다. 다만, 왕따를 다룬 이야기를 가슴아프고 슬프게만 그려내었다기보다 서정적으로 이렇게 그려낼수 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쓰오는 아주 우연히 아쓰코와 준비물 준비 위원이 되어서, 아쓰코의 사정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에게 평생 죄의식을 품게 해주기 위해 그동안 당했던 왕따 경험을 있는 그대로 편지에 적어 타임캡슐에 넣었던 아쓰코는, 그 편지 자체가 족쇄가 되어 더이상 나아질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는 것 같아서 편지를 바꾸기로 결심하였다. 거짓이었지만 평범하고 행복한 자신의 일상을 거짓으로 적어 넣은 편지를 바꿔치기하면, 그렇게 행복한 아이로 살고 싶은 꿈을 이루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었다. 혼자서 타임 캡슐을 파낼 자신이 없던 아쓰코는 이쓰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리고 처음 접한 도롱이 벌레 이야기. 할머니가 취미 삼아 키우고 있는 도롱이 벌레는 옆에 색종이와 털실 등 예쁜 것들을 주위에 두면 그것으로 고치같은것을 만들어 스스로 어여쁘게 장식을 한다 하였다. 그렇게 잘 꾸며진 도롱이 벌레를 키우는 취미가 있다하였는데 이쓰오는 할머니의 도롱이 벌레를 아쓰코에게 선물해주게 되고, 평범하게 지나갈 것 같았던 도롱이 벌레는 그렇게 또 하나의 멀고 긴 인연을 이어 주는 듯 하였다.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쓰오의 할머니, 여든 살이 훌쩍 넓은 고령의 할머니와 이쓰오의 같은 반 친구인 아쓰코, 둘 사이에 전혀 공통점이 없을 법 한데 이쓰오가 들어버린 할머니의 비밀, 그리고 아쓰코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 사연 등으로 이쓰오는 그 둘을 묶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른들이 보는 시각의 사춘기 소년 소녀들은 일탈을 하기 쉬운 불안한 존재로 보이기가 쉽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보기보다, 아무래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어른들이 생각하는 한정적인 상황만으로 판단하여 극단적으로 몰고가기 쉽상이었다. 이쓰오는 평범했던 현실로 되돌아가고싶은 그런 상황에 처하기도 하였다.
평범한 아이도, 결코 맞은 것을 잊을 수 없는 피해자 아이도 커가는데 겪는 아픔은 존재하였다.
가해자의 입장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어른이 되고 아이엄마가 되어서 어렸을 적에 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싶은 불쌍한 생각마저 들기도 하였다.
미치오 슈스케 작가의 대표작 달과게를 읽어보진 못했지만 구체의 뱀을 인상 깊게 읽었었다.
그리고, 물의 관, 겉으론 두꺼워보이는데 정말 믿기지 않는 속도로 빨리 읽어내릴 수 있는 그런 소설이었다.
이렇게 승화할 수도 있구나. 작가의 서정적인 생각들과 표현들이 남성 작가가 표현해낸것이라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작가의 또다른작품들에 대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봐질 수 있겠단 희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