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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고전강독 3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진정한 행복을 묻다 ㅣ 공병호의 고전강독 3
공병호 지음 / 해냄 / 2012년 8월
평점 :
오랜 시간 두고 읽어도 그 빛이 바래지 않는 것, 바로 고전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많은 사람들의 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사실 그 내용의 깊이를 따져 보자면, 재미 위주로 쓰이는 소설을 몇백권 읽는 것 보다 고전 몇권을 독파해서, 온전한 지혜를 얻는 것이 더 내실 있는 행동일 것이다. 고대 성인들로부터 지혜를 배우고, 답습하기 위해서라도 고전에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하는데 그동안의 나는 주로 당장 재미있는 소설 등에만 심취해왔다가 올 초에 고전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고전을 읽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동양의 고전인 사기, 논어를 읽어보았고, (사실 한번 읽어본 거라 거의 훑어봤다 표현함이 옳을 것이다.) 서양의 고전은 공병호님의 고전 강독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 3권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여러 주제 중에서 행복과 탁월성에 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룬 책이다.
공병호의 고전강독은 말 그대로 고전을 읽고, 해석해주며 한 구절 한 구절 곱씹어야할, 고전의 중요성을 쉽게 체득하기 힘든 일반 독자들을 위해 깊이 있는 성찰 끝에 분석한 내용을 곁들여, 이해를 돕는 그런 내용이었다. 사실 당장 눈앞에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펼쳐져 있다고 해도, 원문이 아닌 번역본이라고 해도, 그것 자체만 읽어보고서는 딱딱한 내용에 쉽게 와닿을 것 같지 않더란 말이다. 그런데, 이해를 돕기 위한 실례 등이 첨부된 해설을 곁들여 읽으니, 아리스토텔레스와 공병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동시에 만나며, 수천년전 철학자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눈 앞에 차려진 밥상을 받기까지 작가의 고된 노력이 뒷받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고전은 실상 읽기가 참으로 힘든 책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만큼 수십 번의 독서와 내용 해부를 거친 다음에 현대인에게 맞게 재정리되고 재해석된 이 책이 여러분의 영적 오디세이에 길잡이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8p 시작하는 글 중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행복을 수천년전의 성인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고스란히 전해주며, 풀어내고 있었다.
나 또한 행복해지고 싶다.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다르겠지만 그 목표들을 모아모아 궁극적인 것들에 도달해보면, 자신의 행복, 가족의 행복, 그리고 사람들의 행복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좋은, 즉 행복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의 9장은 행복을 성취하는 방법을 정확히 설명해준다.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세 가지이다. 첫째, 배움을 통해서 얻을 수 있고, 둘째 좋은 훈련이나 습관을 받아들임으로써 얻을 수도 있고, 셋째 신적인 운명이나 우연에 의해 생겨날 수도 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방법들 중에서도 "탁월성을 획득하는 능력이 손상되지 않았다면 누구나 배움과 노력을 통해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71.72p
삶이 팍팍하게 느껴지는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행복의 원리가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느냐 등 손에 잡히지 않는 생각을 분석하는 철학자들의 생각은 다소 배부른 고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눈앞의 경제활동에 치중을 하고,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다보니, 행복의 원리를 생각하며 분석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최소한, 아니 일정 수준의 경제적 생활이 보장되고 난 이후에 비로소 이후의 것들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지만, 마음가짐 하나만 달리해도 현재의 삶을 즐기고, 행복하다 여길 수 있다고 누누히 배워왔다. 실제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제왕의 자리에서부터 또 대기업 총수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누린 사람들 또한 평생 행복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삶을 살아온 예가 많았다. 말년에 자식을 앞세운다거나, 자신이 소신있게 지켜온 나라, 기업 등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봐야하는 고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그 앞에서 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행복하다 느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우연이건 필연이건 무조건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쓰고 단맛을 모두 경험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그 시련의 시기를 참고 다스릴 줄 아는 성숙함이 뒷받침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탁월성을 키워나가는 과정은 비단 지적 탁월성 뿐 아니라, 성격적 탁월성을 갈고 닦아야하는 것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학창 시절 공부하는 목표를 대부분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 그것이 곧 경제적 자립을 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일정 학력을 취득하고, 시험 등을 통과하여 원하는 직업을 얻고자 하는게 많았다. 철학자들의 그것처럼 지혜와 지식 자체를 습득하는 일 자체가 행복이다 느끼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적 욕구가 경제적 자립을 위한데만 쓰인다면, 학교 등에서의 학문 성취 말고 사업이라거나 다른 방법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일이 더 빠를 수도 있을 것이다. 지적인 욕구 충족, 즉 지혜를 쌓아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곧 행복의 지름길임을 책에서는 일깨우고 있었다.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는 실용지식을 쌓는데 바쁜 시대이다. 이러한 때에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철학과 같은 인문학 공부가 왜 필요한가? 여러가지 지적 탁월성은 개인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겉으로만 보자면 철학적 지혜는 무엇인가를 제작하거나 개선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행복에 별다른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242p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을 빌어 세 가지 이유로 반박하고 있다.
첫째, 실천적 지혜나 철학적 지혜는 영혼의 각 부분에 있는 고유한 탁월성들이다. 이들은 지적 탁월성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때문에 그 자체로서 선택할 가치가 있다.
둘째, 철학적 지혜는 그 자체가 행복을 만들어낸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지혜로운 것을 뜻하는 철학적 지혜는 자신에 대한 이해, 타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도움으로써 세상의 분위기와 유행에 영향을 받지 않고 뚜렷한 주관을 갖고 최고의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다.
물질과 같은 외부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된 상태에서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의 정도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면 할수록 불필요한 것, 사소한 것, 덧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셋째, 사람들이 자신의 고유한 기능을 최고로 발휘하는 일은 실천적 지혜와 성격적 탁월성에 따라 가능하다. 성격적 탁월성은 우리에게 올바른 목표를 선택하도록 도움을 주고, 실천적 지혜는 우리로하여름 올바른 수단을 사용하도록 도와준다. 245p
행복을 주제로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나오고 있고, 바쁜 짬을 쪼개어 다양하게 쓰여진 그 책들을 읽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철학적 성찰까지는 힘들겠지만, 내가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지는 자신을 되돌아보려는 생각으로 책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보여진다. 현대인들의 시각에 맞춰 동화등을 인용해 손쉽게 쓰여진 책들도 와닿을 수 있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을 심도 있게 분석해 행복의 원점에 도달하고자 하는 진리를 배워봄도 인생에 깊이있는 자양분을 줄 행복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