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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장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평점 :

결혼생활이란, 게다가 우리나라도 아닌 타국 일본 주부가 느낀 결혼 생활의 감상이란, 참으로 이국적이고, 낯설게 느껴져야만 할것 같은데..어찌 이다지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가 있는 건지..
태풍 때문에 한동안 외출도 못 하고 살다가, 며칠 전 두 번의 태풍이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늘 갑자기 날씨가 맑아, 친구와 약속을 잡고, 공원에 놀러 갔다가 이 책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특히나 결혼한 누군가에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에쿠니만의 매력. 그렇게 난 이 책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 친구에게도 빌려줘야겠다. 읽어보라고.. 그렇게 우리 둘은 금새 공감하였다.
처음에, 띠지의 우리, 둘이 있으면 둘다 외로워지는거야. 와 표지의 불협화음, 그것은 단조로운 화음과 견주어 얼마나 매력적인가. 라는 결혼에 대한 표현들이 참으로 불안하게 들리기만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 생활에 불만인 것일까? 그런 말을 들으면 어쩐지 부정한 것만 같아서, 이 책을 읽을 엄두를, 처음에는 못 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에쿠니의 책이었기에 그녀의 이야기였기에 읽고 싶었다. 물론 책은 소설로 씌여져 있지만 어쩐지 그녀 속속들이 들어가 실제 결혼생활의 독백을 듣고 나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나니, 불안한, 어쩐지 불협화음 속의 부부의 일상을 그리고 있으나 10여년이 넘도록 여전히 낯설어하고 불편해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인터넷 등에 떠도는 결혼 몇년차면, 권태기가 어떻네 하는 식의 이야기에서 읽어보자면, 어쩌면 동화같을 수 있는 그런 부부의 이야기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아내 히와코의 시선에서만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중후반서부터는 히와코, 쇼조 둘의 같은 상황 속 다른 이야기와 생각이 번갈아 흘러나온다. 아, 이럴때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 구나, 그렇게 읽어보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여자라, 주부라 그런지 히와코에게 많이 공감이 간다.
아내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남편, 시키는 말을 듣지 않는게 아니라, 그냥 평소 아내가 이야기하는 그 모든 것들에 남편은 무신경하게, 응 하고 대답하는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두가지 이상을 동시에 묻거나 해도 응이라 대답하기에 차라리 두가지 질문은 하지 않는게 낫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대화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들에게는 그런 남편의 태도는 정말 빵점으로 느껴질수도 있다.
게다가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않는 남편, 아내가 주말에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마저 아내 손으로 사다주거나, 같이 사러 나가야할 형편이다. 말도 안 듣고, 늘 고집스럽고, 아내가 싫다고 해도 늘 자기 고집대로의 선물을 하는 남편, 크리스마스니까, 내지는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이니까 아내가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선물을 하고 만다.
그런 남편에게 불안함과 피로함을 동시에 느끼는 아내, 요일제 근무를 하고 있는 직장에서 아무리 못되게 구는 손님이 와도 피로하지않은데, 남편과는 아주 잠깐만 있어도 온 정신을 다 팔린듯, 금새 피로해지고 만다. 이런 저런 불만이 쌓일수밖에 없는 상황, 지쳐버릴 법도 한데, 놀랍게도 남편이 없는 순간순간마다 자유와 행복을 느끼기는 커녕 불안함을 느끼며, 남편 곁으로, 집 안으로 돌아가고픈 그리운 마음을 갖고 있다는 발견에 스스로도 깜짝 놀라고 만다.
남편 쇼조, 회사에서는 술자리에 잘 참석 않고 집으로 곧장 향하는 그를 애처가라 부르지만, 스스로는 왜 자신이 애처가인지 모른다.
아내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누군가와 대화를 할때, 그 대화의 내용이 겉돌고 귀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어떤 '막'이 쳐진 그런 느낌.
그 막을 스스로 걷어내려 노력하지도 않고, 그냥 불편함만을 느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보다 더 쓸데없을 것 같은 아내의 모든 중얼중얼하는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소소하게 그의 귀에 들어오지는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그것처럼 싫지가 않다. 아내의 것, 아내의 목소리만은 편안하게 느껴진다.
에쿠니의 이야기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지난번 에쿠니의 책을 읽으며, 모 작가가 했던 작품 추천 후기란에 그런 이야기가 실려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정말 에쿠니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독자들에게도 나는,,나는 말이지..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정말 털어놓고 싶게 만드는 재주. 늘 에쿠니의 책을 읽으며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아왔는데..
그걸 콕 집어 말해낼수있는 다른 작가의 눈길에도 놀라고 말았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단 말이야? 하고 말이다.
결혼생활에 대해 여러 감상이 있다.
작품 속 부부의 불협화음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서로에게 낯설어하면서도 조금씩 맞춰가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아주 깨가 쏟아지게 격정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들 나름대로 조용조용하게 평온한 삶을 유지하려 애 쓰고 있다.
정말, 애씀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결혼생활이었다.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은 정말 힘든 느낌일 것이다.
대화를 제일로 중시하는 여성들에게는 남편의 무심한 대꾸, 혹은 무관심해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속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히와코는 남편 쇼조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무심해보이는 쇼조 또한, 아내가 테니스를 치러 간다 했을적에 괜찮다 해놓고, 몰래 숨어서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아무 말 없이 몇주째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부부의 사랑도 있다.
우리 부부는 어떤가?
십년까지는 아니지만, 신혼은 벗어났다 싶을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서로를 다 알았다 말하기엔 부족한 생활을 살아왔다.
한뱃속에서 나고 자란 형제 지간에도 다툼이 있고, 하물며 서로의 머릿속을 이해하기엔 어려운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성 지간으로 만나,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해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난제일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이해와 포용이 필요한 것이다.
서로 너무나 행복할때도 있지만 그만큼 서운한 일도 생긴다.
하나하나 말로 풀어 해결하고 싶은 아내와, 굳이 다 말로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남편, 처음에는 그 간극을 풀어가기가 참 어렵다 싶었는데, 그래도 풀어야지~ 그런게 결혼 생활인것을..
에쿠니가 이야기하는 결혼 생활 속의 이야기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고 하나하나 다른 부부라 공감 안되는 상황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이해되는 상황들이었다. 그래, 에쿠니니까, 이렇게 나를 마음 놓게 만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