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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더 메이드 살인 클럽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스토리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10대들은 이유없이 이해할 수 없는 것, 무서운 것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고 방금 뉴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죽음은 그 상징, 바로 그 핵심. 10대는 죽음에 가깝다.
내가 죽음과 가까운 곳에, 지금 열네 살이라는 나이로 서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10대가 끝나는 동시에 사라지는 사고방식으로 치부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젠가 이런 생각과 멀어질 날이 올까? 홍역이나 수두처럼 어렸을 때 누구나 걸리는 일종의 질병처럼 말하는게 불쾌했다. 세리카나 사치는 내가 생각하는 이런 감각과는 인연이 없다. 내일 치를 시험이나 좋아하는 남학생에 대한 소문이라면 자꾸 궁금해하고 고민할 테지만 죽음에 대해 고민할 것 같지는 않다. 세상에는 죽음과 거리가 먼 10대를 보내는 아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58.59p
죽음을 그리 동경해보지는 않았었는데..하고 10대 시절을 회상해보니, 자살까지는 아니더라도, 건강이 안 좋아져서(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에 비해 한없이 떨어져 있어서 사실 거의 매주 피를 뽑으며 검사를 받으러 다녀야했다. 나중에는 하도 피를 뽑아 혈관을 찾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무사히 잘 넘기긴했지만 당시엔 부모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무척이나 걱정하시는 엄마 앞에서 비극의 여주인공인듯 행세했던 기억은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철딱서니없는 발언이었지만, 그때는 죽을땐 죽더라도, 할일은 하고 죽겠다라는 철딱서니없는 발상이 더해져 있었다. 그런게 사춘기일까. 앞뒤 문맥 딱 자르고 황당한 사고 방식에 집중하게 되어버리는. 사람마다 다양하게 찾아오는 법인 듯 하지만.
고바야시 앤. 개그맨 예명같아서 놀림받기 쉽상인 그녀의 이름. 사실 그녀의 이름은 빨강머리 앤을 심하게 동경하는 그녀의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만화속 여주인공 이름을 따서 말이다. 실제 생활 역시 엄마의 삶은 다소 촌스러운듯 하나, 지극하게 앤을 동경하는 삶이 여기저기 뭍어 있었다. 뛰어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나고 자란 곳을 떠날 생각 없이 현실에 만족하는 듯 하면서 그 안에서 적당히 서구 생활을 동경하는 독특한 사치를 부리는 삶, 사춘기 소녀가 된 앤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엄마에 대한 불만이 나름 있었던 앤은 어느 날 자신이 스크랩한 일기장과 같은 소중한 스크랩북을 엄마가 몰래 열어보고 추궁했다는 사실에 심각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안 그래도 또래 여중생과 달리 죽음을 동경하고, 잔인한 시체 등의 사진에 열광하던 그녀는, 그녀가 무시해마지않던 곤충계 남학생이었던 도쿠가와가 우연히 쥐를 죽인 사실을 알고, 또 그가 자신의 이름이 빨강머리 앤이 아닌 앤 불린에서 따온 거 아니냐고 센스있게 질문해준것에 감동해서, 자신을 죽여달라고 의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순순히 이에 응한 도쿠가와와 함께 자신의 살해 계획(?)을 공모하고, 어떻게 죽으면 멋있을지, 구상하기에 이르른다. 그렇게 세상을 떠나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을 그렇게 희생하고 나면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줄 것 같아서 살아남은 너희들과 나는 달라, 라는 의식이 강한 그런 느낌이 마구 뭍어났다.
남학생들 사이에도 왕따가 분명 존재하는 듯 하지만, 여학생들의 왕따처럼 심하지는 않지 싶다. 대부분의 왕따 이야기가 사실 여학생들의 이야기에 집중이 되어있고 남자아이들은 대개 그에 동조하거나 혹은 방관자적인 입장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을까? 별거 아닌 이유로 여학생들은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거기에 잘 어울리는 집단에 끼이지 못하고 혼자 외톨이가 되는 경우 스스로 학급내 최하층 계급이라 생각되기에 이르기도 한다.
앤은 세리카, 사치와 친하게 지냈으나 그 둘 사이에서 분위기 맞춰가며 살아가는 평범한 현실을 살다가도 자신이 그들과 달리 곧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자살 여주인공이 될 생각에 꿈에 부풀어 있다. "난 너희들과 달라." 이런 의식이 팽배한 그녀이다.
정말 삶이 힘들어 자살하거나, 혹은 치정으로 살해를 당하거나 하는 삶과 달리 순수하게 자신은 자신의 죽음을 계획하고, 아름다운 시체로 미화되고 싶은 착각을 하기에 이르른다. 죽음을 이렇게 생각하다니, 참으로 알수가 없는 타인의 속이었다.
하기사, 그런 독특한 화보집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기도 했는데, 스스로가 주인공이되고 싶다 생각하다니.
그녀가 아주 이상한 취향을 갖고 있다기보다, 성장통을 심하게 앓고 있다 생각하는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자신 또한 엮이고 또 엮였던 여학생들과의 관계, 인기있는 남학생과의 교제와 이별이라던지, 다른 친구들의 왕따라던지 하는 문제들로부터 그녀 역시 자유롭고 싶으나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니 심지어 별거 아닌 문제로 그녀는 아주 곤란한 지경에 놓이기도 하였다. 도대체 어른이 되어도 알 수가 없는 10대 소녀들의 문제 같으니라고. 만났다 헤어지고, 미워하고 질시하는 그 관계도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아니 도대체 어쩌라고~ 소리가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보면 정말 부끄럽기 그지 없을 그런 행동들을 10대 때는 아주 대단한 일인양 서슴지 않고 해내는 것이다.
너무나 진지하게 살인 계획을 공모해나가는 도쿠가와와 앤을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걸까 불안함마저 들었다.
자살 카페 등이 존재한다는 뉴스를 들었을때 도대체 왜?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대부분 어른들이 회원인걸 생각하면 앤의 입장과는 많이 다르겠다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죽음을 타인과 공모하며 준비해나가는 그 과정이 참으로 괴이하게 느껴지면서도 어른이 된 입장에서 제발 누군가가 바로 잡아주었으면 하는 간절함마저 생기는 입장이었다.
이야기는 너무 앞서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게 은근한 재미다. 표지나 제목으로 보면 미스터리로 착각할 법도 한데, 살인 공모와 다소 으스스해 보이는 취미가 화보 그대로를 눈앞에 떠올리게 하긴 하지만, 성장 소설에 가깝게 쓰인 이 이야기가 절대 기분나쁘지가 않다. 그래서 오히려 고맙다.
아이들의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시선에서, (어른이 되어 이미 면역 주사를 맞아버리고 망각의 상태에 놓은 나를 다시 사춘기 그 시절로 되돌려 놓은 듯 하였다.) 얼마나 고통스러울 수 있는 상황인지를 되새기게 만들어준다. 어른들이 보면 별거 아닌 상황이지만, 그들에게는 죽을만큼 괴로운상황일 수도 있다. 그 죽음이라는 것을 손쉽게 선택할 사람은 거의 없지만, 드물게는 반드시 있다.
또래집단에서는 친구들을 이끄는 아이들이 어른들에 가까운 양 추대받기 일쑤였다. 사실 알고보니, 그들의 위치라는게 정말 하잘것없는것이었는데 말이다. 속내를 알고 보면 진정 성숙한 어른의 지름길로 가는 아이들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다.
어른이 되니 철없는 아이들의 이상한 동경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으나 그때로 되돌아가 생각해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아이들. 앤의 엄마처럼 반응하기 쉽겠지만 그것이 아이를 극단의 상황으로 몰아갈 수도 있음을 알고, 아이를 걱정하는 것도 지켜보는 것도 더더욱 조심하며 대해야할 문제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나도 천상 엄마가 되었구나 싶었다.
나오키상 수상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미스터리 소설을 기대했던 예상은 벗어났지만 아이들의 심정을 제대로 헤아려준 작품을 만났다는 생각에서 대만족하게 된 책이기도 하였다. 이해하기 힘들 비뚫어진듯한 아이들의 취미생활이라는 것도 사실 한때일 수 있는 것이었고, 그것이 아이의 본성까지 왜곡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그 힘든 시기를 벗어나면 아이는 바로 돌아올 수 있는 법, 중요한 부분을 작가는 결코 놓치지 않았다. 이런 것이 바로 수상작가의 저력이라는 것일까? 작가의 또다른 작품들 역시 어떤 내용일지 기대하게 만든 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