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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떠났다 - 220일간의 직립보행기
최경윤 지음 / 지식노마드 / 2013년 1월
평점 :

가끔 답답해 미칠 것 같은 때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여행을 딱!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참 많고도 많았다.
우선 겁이 좀 많다고 해야하나? 언어의 장벽도 그렇고, 치안 문제도 그렇고, 같이 갈 신원이 확실한 동반자(주로 가족이나 친구)가 있어야 하고, 숙소나 일정이 짜여져있고, 하다못해 원하는 관광지나 식당에 가기 위한 정확한 사전 정보가 있어야만 자유여행(?)이 가능한 줄 알았던 나였다. 내가 그렇게 최초로 떠난 해외여행(첫 여행이 자유여행이었다.)은 친구 2인과 같이 간 2박 3일 홍콩 여행이었다. 정말 한달에 걸쳐 얼마나 빼곡한 준비를 하고 갔던지.
그런데 이 처자, 21살의 당찬 대학생, 본인은 소심한 기계공학과 출신 공대녀라고 하지만 참으로 당차기 그지 없는 처자가 아닐 수 없었다.
휴학 후 열심히 돈을 벌다가, 갑자기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듯한 그 느낌에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날 결심을 하게 된 여자, 그녀의 여행지는 정말 뜻밖의 일정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인도에서 남미까지, 그것도 220일간의 대장정.
집에 계신 부모님들이 걱정할만한 딸의 나홀로 장기간 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떠난대도 걱정인데, 내 딸이 떠난다면? 생각만해도 아찔해진다. 그런데 그녀, 사실 아무런 준비 없이 툭 ~떠난 그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다.
특히나 인도에서의 많고 많은 고생담들은 남미의 여행을 보다 더 수월하고 행복하게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남미의 여행도 사실 숙소에서부터 교통 편 등등, 모든 여건이 그리 만족스러울 만한 것이 아니라 들었는데, 이미 인도를 경험하고 건너가서인지 그녀는 그저 만족만족할 수 밖에 없어보였다.
우선 놀라운 것은 스페인어를 하나도 모르고 (힌두어는 물론) 떠났던 그녀가 남미 여행을 6개월쯤 하고 나서 돌아올 적에는 간단한 의사소통을 스페인어로 가능할 정도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한국어가 낯설게 느껴질정도로 영어를 사용하다 와서, 돌아오자마자 의욕충만 토플시험까지 치뤘지만 결과는 대 참패였다고. 실전 영어가 바로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또 아닌가 보다.
얼마전 오소희님의 아들과의 중남미 여행기 두권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는데, 여대생의 나홀로 남미 이야기는 또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역시 사람을 만나는 여행기가 재미나다. 관광지에서 관광객 누구나 볼 수 있는 이야기보다도 (그런 것은 오히려 티브이 다큐멘터리나 사진첩 등에서 훨씬 더 멋진 사진을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쉽게 친해지지 못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금새 친해지고 (뭐 모든 사람이 그런건 아닐테고, 소심하다는 그녀, 소심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막강 친화력을 과시하는 듯 하였다. 모르겠다 실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진 속 모습만 보면 그녀는 정말 만나는 친구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고, 좋은 친구, 인연들을 많이 만나 누리다 온 것 같아보인다.) 굳이 또래가 아니더라도 몇살 더 어리거나 그보다 훨씬 더 많거나 다양한 연배의 친구들을 두루두루 만나며 행복한 인생사를 경험하고 돌아왔다.
그녀가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기록한 일기장은, 220일간 동안 총 세권이나 되었다. 그 세권이 압축되어 이 한권의 멋진 책으로 나온 것.
보통 여행기 하면 주로 글 못지 않게 상황을 연상하게 만드는 사진에도 집중하게 되는데, 책에는 사진은 몇컷 실리지 않았지만 그녀가 일기장에 주로 그려넣었던 정말 전문 일러스트레이터 못지않은 멋진 그림들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어쩌면 이렇게 잘 그릴 수가 있지?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다는데 그녀의 그림에는 멋진 개성과 그녀만의 색깔이 담겨있었다. 그녀의 그림을 보고, 해외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말이다. 만화처럼 그려진 그림에서부터 맨 뒤에 그녀가 여행지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을 하나하나 그린 인물화까지. 그저 그림만 봐도 입이 떡 벌어질 내용들이 많았다.
다만 그림과 함께 재미나게 쓰인 글들은 수기 그대로를 작게 실어 놓아 그림 옆 글씨를 읽으려면 눈이 빠지게 부릅떠야한다는 단점이 있어서 나중에는 그림과 본문의 글만 읽고 그림 옆 글씨는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했다는게 아쉬울 따름.
우리나라의 발랄한 여학생의 엉뚱 발랄함을 해외에서 그대로 만나게 된 듯한 그런 여행기였다.
그녀의 삐삐같은 사랑스러움은 해외의 많은 친구들에게도 금새 그녀와 친해지고 싶은 그런 친화성을 갖게 만든게 아니었나 싶다.
본인 또한 꽉 막힌 자신의 답답함을 뚫러 떠난 여행이었는데, 그 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그리고 세상을 새로이 보게 된 시각 등은 자신을 좀더 사랑하고, 세상을 좀더 알아가게 만드는 큰 깨달음의 시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사는게 무섭진 않을거야.
한국에서의 치열한 경쟁의 삶이라 해도, 사실 전혀 낯선 땅에서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사용해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며 온갖 악조건의 상황도 견뎌낸 그녀였으니 사는게 더이상 무섭진 않을거란 말에 동조할 수 있었다. 강해졌을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