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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 - 잔혹한 여신의 속임수
마이클 에니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와 천재 화가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여인의 토막 연쇄 살인사건을 같이 파헤친다면?
이 놀라운 가설에 의해 쓰여진 책이 바로 포르투나, 잔혹한 여신의 속임수이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에니스는 역사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칠 정도로 역사에 관해 방대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 한다. 그는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비단 억측과 가설에 의존해서만 소설을 쓰지 않고, 실제 인물들의 당시 시대적 상황등을 충분히 고려한 가설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완성해 내었다. 그러기에 그만큼 치밀하게 책의 재미 또한 높아지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이 책을 너무나 재미나게 읽고, 바로 연달아 중세시대를 바탕으로 한 지적 스릴러라는 다른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유명한 상을 수상했다는 작품임에도 상대적인 재미는 좀 반감되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역사교과서에서 만난 너무나 유명한 인물들의 추리소설 등장이라는 다소 생뚱맞을 수 있는 설정은, 극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부풀어진 기대감을 급격히 떨어뜨릴 수 있을만큼 위험 부담이 큰 설정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기대가 무너지지 않을만큼 충분히 재미있게 느껴진 책이었다. (아니 사실 레오나르도와 마키아벨리의 주도적 추리 소설처럼 소개된 이 책이 사실은 역사적으로는 덜 중요했을지 모르나, 이 책 자체에서는 누구보다 중요한 다미아타라는 한 여인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데서 놀랍게 몰입하게 만들게 되었다. )
책을 읽고 나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라는 책을 읽어보고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재미났겠단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 제목만 접했던 책이었기에 그 실제 내용을 잘 알지 못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 되는 마키아벨리의 이야기가 주로 실려져있고, 또 그 군주론의 바탕이 될법한 사건과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데서, 인문서로서만 생각했던 그 책의 행간의 의미가 무엇일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역사를 제대로 깊이있게 공부한 사람들은 참으로 많은 의문과 가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교황이 결혼만 하지 않았을뿐 그의 권력이 막강했을 당시에 수많은 자녀들을 두고 왕처럼 행세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들의 신분이 서자로 되어있을뿐 엄연히 왕자나 공주 못지 않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고, 아버지의 총애를 입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세상을 호령할 강력한 힘과 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상 가장 세속적이고 부패한 교황으로 알려진 알렉산더 6세, 로드리고 보르자와 그들의 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실세를 가진 왕이 대부분 자신의 권력을 장남이나 가장 뛰어나게 총명한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과 다르게, 이상하게도 로드리고 보르자는 자신을 가장 닮았으며 총명했던 장남 발렌티노를 무시하고, 후안 보르자라는 아들을 더욱 사랑해 그 아들에게 가장 막강한 부와 권력을 물려주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살해당한 사건은 아직도 미제의 사건으로 남아있다 한다. 실제의 인물들이 관여된 이 사건과 연이은 마녀사냥과도 같은 놀랍게 잔인한 사건들이 바로 세기의 인물들로 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마키아벨리가 파헤쳐나가는 사건들로 탄생하게 되었다.
애매하게 추론만 하고 서둘러 끝맺음을 맺는 다른 책과 달리 이 책은 자신이 추론한 것을 바탕으로 시원하게 서술해준데 고마움을 느낀다.
후안 보르자의 연인인 다미아타의 이야기부터 시작이 되었다. 후안 보르자의 아들을 숨어서 키워낸 그 여인은 당시의 고급 창녀로 치부된 코르티지아나 오네스타 부류에 속한 여인이었다.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의 연인답게 그녀는 당시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빼어난 미모와 놀라운 지성을 겸비한 여성이었다. 단지 아름다움만을 가진 백치미의 여성이 아닌, 가난으로 인해 벗어날 수 없었던 지옥같은 구렁텅이에서 그녀를 높이 이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단테의 신곡을 통해 가르쳤던 글로 시작을 해서 그녀가 참기 힘든 일을 해가면서도 놓지 않았던 수많은 명사들의 책을 통해 얻은 지식에 있었다. 높은 지위에 있는 남자들은 그녀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녀의 지성에서 나오는, 비등하게 토론을 할 수 있는 그 지성미 또한 넘치게 사랑하였다.
연인이 살해된 이후, 연인의 살해범으로 오해를 받던 (그녀의 연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있던 거의 유일무이한 인물이 바로 그녀였기에) 다미아타는 자신의 뱃속에 있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숨어지냈지만 결국 교황에게 잡혀가고 말았다. 교황은 그녀의 아이를 인질로 삼아, 최근 발견된 어느 여인의 토막난 시체 속에서 발견된 연인의 증표를 통해 연인의 살해범(만약 그녀가 아니라면)을 밝혀내라는 명을 임명받고 그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다. 다미아타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을 되찾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사실을 밝혀내기에 힘을 쓰게 되었다. 바로 거기에서 피렌체의 서기관 마키아벨리 역시 그 살인사건을 조사함을 알게 되었고, 또 그 이후에 당시로선 굉장히 파격적인 과학적 측량방법을 통해 살인사건을 조사중이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여인의 시신을 끔찍하게 훼손한 살인사건은 그것이 시작일 따름이었다.
이후에도 마치 암호처럼 예측이 가능한 부근에서 또다른 여인의 또다른 신체 부위가 발견되는 등, 살해범의 소행은 잔혹하기 그지 없었다.
다미아타는 그 사건을 파헤치는 와중에 너무나 소중히 여겼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여인 카밀라를 잃게 되었고, 그 스스록 그녀에게 거리를 두지만 결국은 그녀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되어주는 마키아벨리를 통해 사건의 본질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사실 레오나르도와 마키아벨리의 보다 더 큰 활약이 빛을 발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의 천재성은 눈에 띄어도 사건에서 보다 더 활약하는 이는 마키아벨리와 역사속에서는 묻혀버린 다미아타였다.
그들의 활약은 정말 끝까지 흥미진진하였다.
선조들의 시대를 너무 간과하면 안되는 것이지만 그 시대의 사건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사이코패스 경향을 깊이 보이는 범인은 오늘날에 사건으로 발현이 되어도 세기를 놀라게 했을 충격적인 인물이었다. 역사적 단순 미스터리라 하기엔 정말 숨가쁘게 읽히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어서, 한번 손에 잡으니 내려놓기가 어려운 책이었다. 이 책의 진정한 재미는 이 책의 가설이 가설로 끝나는게 아니라 실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사실처럼 뒷받침해준다는데 있었다. 실제 있었을 수 있는 일들, 현대인에게는 전해지지 못한 그 실상을 우리는 이렇게 소설이라는 이름을 빌어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았는가.
다빈치와 마키아벨리가 실제로 1502년에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의 궁정에 있었으며, 이후 피렌체에서 함께 일했다는 사실은 역사적 기록으로도 남아있어 흥미를 더한다. -뒷표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