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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 ㅣ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평점 :

선암여고 탐정단이라니, 처음에 제목만으로는 크게 끌리지 않았는데.. 나를 잡아 이끈건, 바로 작가 박하익님의 이름이었다.
예전 작품인 종료되었습니다에 대한 추천 리뷰를 여럿 봐왔기에 읽고 싶어 책장에 얼른 꽂아놓은 책이 종료되었습니다였는데, 정작 그 책은 못 읽어보고 신간인 방과후의 미스터리를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역시 편견은 무섭다. 남자작가분일줄 알았는데 이번 제목과 소재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15개월난 딸의 몸종으로 살고 계시다는 설명이 혹시? 싶었는데 역시나 여자분이셨다. 우와~ 본인의 실제 여고시절이 방황과 미스터리로 점철되어 있으셨다니 어떤 여고시절을 보내셨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읽어내려간 선암여고 탐정단, 읽는 내내 여고생들의 그 재치 발랄하면서도 똘끼 충만한 4차원 소녀들의 재미난 이야기에 마구마구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무엇보다 레고 머리 단신에 엉뚱함이 전교 최고일 탐정단 단장 미도는 주인공 소녀 뿐 아니라 담임과 남자선생님들 모두 기피하고픈, 가까이하고싶지 않은 그런 두려운 분위기의 소녀이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뭐랄까, 가까이하면 물릴 것같은 이상한 느낌? 암튼 본능적으로 그들은 미도를 꺼려한다. 뭐라 딱 꼬집기 힘들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있을까 싶은, 끼가 넘치는 소녀들의 총집합.
여고에 대한 환상이 있던 남자들이라면 아마 그 환상을 무참히 깨버려야 할것이리라.
내가 여고에 들어갔을 적에 대학생이던오빠는 여고에 대한 환상을 나를 통해 깨트리게 되었다. 내 동생이야 그렇다 쳐도, 나와 함께 오빠에게 같이 수학과외를 받은 친구와 둘이서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고, 아니 여고생들이 쉬는 시간에 밥을 먹는단 말이야? 부터 시작해서, 청초할 것 같은 (물론 내 여동생 외에) 여고생들이 남고생과 전혀 다를바 없는 모습으로 왁자한 삶을 보낸다는 것에 오빠는 급실망을 하고 말았다.
여기, 이 소설은 더욱 적나라하다. 그리고 재미나다.
처음엔 무는 남자라는 기괴망측한? 바바리맨과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이상한 사건을 통해 점차적으로 미스터리에 접근해가는 듯 한데, 그 사소한 듯 느껴지는 미스터리 들이 나중에는 살인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코지 미스터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가볍지만은 않은, 깊이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읽는 내내 깔깔깔, 여고시절로 되돌아간듯 웃음을 터뜨리니 아기가 자길 보고 (예뻐서) 웃는거냐 묻기도 했다. 우리아들 사실 좀 왕자다.
'미안하다 아들, 엄마 책이 재미있어 웃었다.'
천재소녀로 소문난 채율.
사실 그녀는 진짜 천재이고, 너무나 잘난 엄친아인 오빠때문에 늘 치이는 존재였다. 엄마의 드러내놓은 편애와 오빠의 자아도취 등은 그녀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여보란듯이 명문외고에 합격하고 싶었지만 놀랍게도 떨어지고 말았다. 엄마는 너무나 잘나가는 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느껴지는 채율이 혹시나 자기 얼굴에 먹칠을 할까 걱정하는 타입이었다. 엄마는 우선 딸을 2류학교인 선암여고에 입학시킨 후 미국 학교로 유학시키려는 준비를 진행중이었다. 이미 그녀가 떨어질 것을 예감하고.
그 사실은 딸을 더욱 비참하게 하였고 말이다.
그런 채율이 등교하는 길에 웬 남자에게 팔을 물리고 말았다.
무는 남자의 소문은 들었지만 막상 당하고 나니, 어디 하소연할데도 없고 (친구조차 사귀지않고 공부만 했기에)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고 난감한 노릇이었다.
그때 등장한 선암여고 탐정단.
정말 똘끼 충만해 보이는 이상한 소녀들의 집단에 채율은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채율을 탐정단 고문으로 앉혀놓았다.
그리고 채율의 똘똘한 머리는 정말 탐정단을 위해 대 활약, 아니 엑기스가 쭉쭉 뽑혀서, 채율을 피골이 상접한 피로 상태로 몰고가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탐정단은 엉뚱하지만 잇속 챙기는 데는 일가견을 보인다. 그런데 또 이 친구들이 괴짜긴 하지만 나쁜 친구들은 또 아니다. 채율도 처음에는 거머리처럼 느껴졌던 이 친구들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채율네 가족의 갈등과 함께 엉뚱해보였지만 어떻게든 그들과 얽히고 설켜 학교의 미스터리들을 풀어나가게 된 재미난 이야기들.
그리고 그들을 돕는듯, 늘 이상한 구석에 숨어있던 미중년 하연준 선생님의 이야기까지.
그 재미난 선암여고 속의 이야기로, 다시 한번 퐁당 빠져보기를.
우리 여고시절엔 이런 미스터리까지는 없었어도 분명, 이런 캐릭터의 친구가 존재했음을.
그래서 갑자기 그리워지는 우리 반 반장, 별명이 미저리인 친구.
아, 정말 그립구나.
그동안 미스터리하면 대부분 일본 작가의 책을 읽어오곤 했는데, 박하익 작가, 윤해환 작가등의 작품들을 통해 최근 우리나라 미스터리가 갈수록 흥미진진한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이제는 작가 이름을 보고 믿고 선택해도 되겠단 생각에 행복감이 밀려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