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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하차 - 잘 나가던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기타무라 모리 지음, 이영빈 옮김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마흔 한살, 남들보다 초고속 승진에 한참 잘 나가던 편집장이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여섯살 아들과 여행을 하겠다 결심하였다.
사실 가장 큰 계기는 아빠의 공황 장애.
워커홀릭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업무를 소화해가면서 일에 매진하던 그가, 처음에는 비행기, 그 다음에는 지하철, 이런 식으로 꼭 이용해야할 (비행기는 그의 출장업무에 필히 필요한 교통수단이었다.) 대중 교통수단을 탈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세미나룸의 문이 닫히고, 회의 진행을 위해 파워포인트를 켜기 위해 불이 꺼지는 순간,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나, 본인은 미쳐버릴 것처럼 되어버리는 무서운 공황장애.
마흔이 다된 그의 나이에 갑자기 그 증세가 찾아왔다.
너무나 무서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나약하게만 느껴졌다.
두려움에 가족들에게 의지하려 하니, 다소 차가운 성격의 아내와 그동안 일때문에 바빠 멀리했던 아들은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였다.
한참 달려야 할 나이에, 일을 그만두겠다 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렸고, 심지어 정치를 하러 나가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워커홀릭은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흔한 일이다.
할수만 있다면 가장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시기에 성과를 높이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을 한다.
저자는 그런 와중에 공황장애라는 장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내는 그런 그를 따뜻하게 위로해주지 않았지만, 그가 사표를 내고, 아들과 여행하기 위해 천만원만 달라고 하자, 처음에는 어이없어했지만 이내 그에게 그 거금을 주고 아이와의 여행을 허락한다.
공황장애라는 질병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실제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다만, 평소 건강한듯 했던 내몸에도 어느 날 갑자기 이상이 올 수 있음을 예전 직장 생활때 경험해본적이 있었다. 심한 알러지나 아토피 등의 피부 이상이 없었던 내가, 어느날 갑자기 자다가 온몸이 너무너무 가려워서, 웬 모기가 이렇게 많아? 하면서 벅벅 긁었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온 몸에 너무 무서울 정도로 심각하게 부어오른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단순 모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피부에 손톱으로 자국을 내거나 글씨를 쓰면 글씨가 새겨지기도 하였다. 이게 뭐람? 피부과에 가보니 알러지일 수 있다 해서, 피부과에 있는 알러지 테스트를 모두 다 받아봤다. 결과는 이상없음.
한 일주일을 그 증세가 이어지고 나서, 신기하게 싹 가라앉았지만 이후에, 나는 건강해 멀쩡해~라는 말을 하기가 두려워졌다.
남들이 모르는 고충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올 수 있음을 깨달았기에, 나에게 그런 불행은 찾아오지않아 하는 착각은 더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는 여섯살, 한참 일해야할 가장이 사직을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겠지만, 교통수단을 더이상 탈수 없고 회의를 처리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더이상 일할 자신이 생기질 않았다. 무엇보다도 거리가 멀어진 아이와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였다.
그는 그렇게 아이와의 단둘 여행을 계획하면서, 또 실행하면서 조금씩 가정으로 돌아왔고 그러면서 자신의 상태도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병원에 조금 뒤늦게 가보기도 했지만, 다소 무례한 의사의 말투, 무엇보다 환자의 심리를 전혀 이해해주지 않으면서 설명 없이 약만 먹으면 낫는다 이야기한 무책임함에 그는 의사의 약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심리 상담을 통해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였다.
잡지 편집장이다보니 고급 요리점, 고급 호텔 등의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 혼자 다닌 여행들이 많았고 가족과는 다닐 시간도 경험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 자비로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간다. 그가 다닌 곳들이 몇 곳 소개되었는데, 무직 상태에서 감행하기에는 다소 비싼 여행이 되었을 지언정, 자기에게 줄 수 있는, 아니, 아이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나름의 최선의 치료책이자 멋진 방안이 아니었나 싶다.
아빠와는 뭐든 하기 싫어했던 아들이 조금씩 아빠에게 마음을 열어가던 과정, 심할 정도로 독설을 내뱉는다 생각했던 아내가, 사실은 그의 워커홀릭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고 (아내는 다소 남자처럼 말수가 적은 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속으로 고민하고, 배려하는 그런 스타일) 남편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오히려 일을 늘려가면서 일을 하면서도 남편에게는 집안일을 먼저 하지 말라하고, 먼저 최대한 쉬라고, 쉬다가 심심해지면 육아와 가사를 하라고 말해준 그 모든 것들이 백마디 말을 대신할 그녀의 감정이 담긴 행동이었다 싶어 감동적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갇힌 공간이 무섭도록 두려워지고, 기차와 비행기를 타는 일이 숨막히도록 두려워진다면 어찌해야할까.
저자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여행 자체를 즐기기에 그런 일이 온다고는 생각지 못했던 나였던지라, 지금의 건강함, 평범함 등의 일상이 정말 감사한 일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반강제적인 것이긴 하였으나 더 늦기 전에, 아이가 더 자라기 전에 아빠와의 시간, 교감을 나눌 시간을 갖게 된 저자 또한 자기 나름의 행복을 찾게 된 일이 아니었나, 저자의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