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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 ㅣ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722/pimg_781377146877474.jpg)
김정일이 죽었다. 2011년12월 19일 정오. 로 시작한 프롤로그는
김일성이 죽었다. 1994년 7월 9일 정오 북한의 조선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김일성 주석이 7월 8일 새벽 2시 사망했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라는 본문의 시작과 맞물린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분단 상태의 우리나라에게는 대대적인 사건이었을 이 두가지 사건의 시간대를 활용해서, 현재에서 과거로 훅~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이야기는 김정일, 김일성 등과 큰 관련이 없다. 다만, 그때 그 시절의 뉴스기사를 공감했던 때로 이야기를 되돌리는데 충분한 역할을 한다.
나 또한 주인공들과 비슷한 연배여서, 김일성이 죽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정말 갑자기 전쟁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과 과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는 할까 싶은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중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줄곧 셋이서만 섬처럼 어울렸던 친구들.
얼마전에 읽은 시게마츠 기요시의 "친구가 되기 5분전"이라는 책이 동시에 생각이 났다.
구성은 다르지만, 그 책에서도 다른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고 단 둘이서 단짝처럼 지낸 소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의 세 친구는 소녀 둘, 소년 하나였다.
세미는 다단계 다이아몬드까지 올랐다가 사기혐의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엄마는 미국으로 도피를 하고, 부잣집아들이었던 아빠는 딸을 친가에 데려다 놓은 후 나몰라라 한채 도망가버렸다. 사랑을 받지도 못하는 감옥같은 친가에서 그나마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것은 철없는 부잣집 막내딸이었던 고모 한 명 뿐이었다. 고모만이 유일한 숨통같은 것이었달까.
준모는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병 증세가 시작되면 의도하지 않은 욕설들이 입에서 튀어나오고,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준모에게 그런 증세가 시작된 계기가 참으로 무서웠다. 멀쩡했던 아이가 보이스카웃 캠프에 참여했다가 나쁜 형들의 성적인 장난으로 인해 지나친 수치심과 두려움을 안게 되었고 그것만이 원인은 아니었겠지만 그 사건이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하였기때문이었다. (요즘 세상은 정말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그를 자연스레 멀리 하게 되었고, 준모의 악화되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온 세미와 지혜만이 준모가 뚜렛 증후군 때문이라며 대신 주위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고 그렇게 준모를 지켜주게 되었다.
지혜는 숨어 지내길 간절히 지내는 타입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잘 나가는 교수 부부였지만 너무나 비상한 머리를 타고 태어난 지혜는 한번 본 것은 정확히 날짜와 시간, 그리고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다 기억하는 기억력을 갖고 있음에도 주목 받기 싫어서 일부러 시험 문제를 틀리기 위해 노력하는 (절대 주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자신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 싶은) 타입의 소녀였다. 다른 사람들은 지혜가 말수가 없는 아이로 알고 있으나 세미와 준모 앞에서만 청산유수와 같은 언변을 늘어놓으며 수다를 떨곤 하였다.
이 셋을 엮어놓은 주된 아이는 세미였다. 세미는 사실 자기 자신의 가정사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자기 복잡한 이야기를 다 털어놓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울기 좋아하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란 철부지 아버지와 순진함이 지나쳐 사기와는 도통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엄마 사이에서 너무나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 세미.
세 아이의 성장 소설과도 같은 이 이야기는 서로의 시선에서 조금씩 빗겨가는 안타까움을 안고, 그렇게 제대로 표현해보지도 못한 채 흘러나왔다.
자신의 증세가 시작되어 정신없이 욕설을 내뱉어도 그게 욕인지 못알아듣게, 새로운 곳에 가서 살고 싶다던 준모
세미 못지않게 준모의 그 상황이 너무나 가슴아팠다.
"넌 어디로 가는거야?"
내가 준모에게 물었다.
"덴마크, 일단은. xx (본문상의 욕설은 이하 x로 생략한다.)
덴마크.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의 나라. 내가 아는건 그게 거의 전부였다.
"왜 하필?"
"공주때문에. x같아."
그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인어공주?"
준모가 어이없다는 듯 커다랗게 웃었다.
그게 아니라 덴마크는 입헌 군주국인데 공주가 무척 예쁘다고 했다. 217p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했던 그 모든 시간.
그리고 안녕, 내 모든 것이라 말한 것은 그 소중했던 셋만의 그 시간들에 대한 안녕을 고한 말이 아니었을까.
너무나 보고 싶었고 그리웠을 친구들, 그들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