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책으로 키우다보니
어릴 적부터 함께 읽던 그림책들이 마음의 양식처럼 켜켜히 쌓여있다.
밤독서, 베드타임용으로 읽는 그림책들을
엄마의 사심 가득한 책으로 한 권씩 끼워 읽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참 좋아했어서 고맙기도 했고
빽뺵한 텍스트가 아닌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은 또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 포근함과 따뜻함, 그림이 주는 시각적인 자극이
엄청난 매력과 힘이 있는 걸 잘 알기에
어른이 되어서 책읽기가 독립된 상태인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도
이따금 어릴 적 읽었던 그림책을 꺼내 혼자 읽기도 한다.
이 책은 그림책을 심리 처방의 좋은 수단으로 권하며
다양한 사연과 고민들 속에 녹아들어간 대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들이 위로를 줄 수 있을지 충분히 고민해보면서
그림책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는 참 괜찮고도 친절한 심리서이다.
아이들과 읽었던 책들이 나와서 반갑기도 했었고
아직 읽지 못했던 그림책은 꼭 읽어보고 싶었다.
마흔 번의 상담 중에 나도 한번쯤은 고민해보았을 문제들도 있었고
이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풀어가는 과정이 나에겐 좋은 힐링의 시간이기도 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엄마가 좋은 엄마 되기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자기들은 숨이 막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때 엄마가 좋은 엄마 되기를 포기하고 부족한 엄마로 변신했기에
자기들이 자기 삶을 온전히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아이들의 사춘기를 맞으면서 완벽한 엄마가 되길 원했던
내가 무너지고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부족한 엄마임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엄마 역할을 하자,
아이들이 알아서 엄마의 빈자리를 메워나가기 시작했다.
p82
이같은 시행착오를 수도 없이 반복하고 서로 상처만 주고 있었다는 걸 알고
엄마인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려놓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독립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자
나와 대립되는 싸움으로 불필요한 에너지와 감정 소모없이
자신의 인생에 더 몰입하며 사는 것을 보고 참 씁쓸하면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열심으로 절대 될 수 없는 건 자녀와 나와의 분리였다.
여전히도 아이를 나의 가치관과 틀 안에서 안전하게 키우고 싶지만
호기심 많은 아이의 눈에는 그런 엄마가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좋은 엄마를 포기하는 편이 훨씬 나으리라 생각한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에게
내 인생은 내가 꾸려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내 이름은 자가주>라는 그림책에서
쉴 새 없이 변신하는 자가주처럼 혹독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 그려지는 게 지금의 상황과 너무 흡사해서 실소를 토한다.
우린 모두가 부족할 수 밖에 없고
아이를 인정하고 믿는 것밖에는 별 수 없다.
그러기 쉽지 않지만 그게 서로 윈윈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꾸 평가하고 판단하며 내 생각을 주장하거나 조언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때,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제대로 들어주려면 토끼처럼 아주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
상대방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상대방의 속도에 맞춰서
상대방이 원하는 자리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버텨주는 것이 필요하다.
p234
가족을 향한 믿음과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만히 들어주었어> 에서 모두의 위로를 뒤로하고 혼자가 된 주인공 테일러가
혼자 있던 그때에 토끼 한 마리가 조용히 다가와
등을 맞대고 말없이 앉아 있기만 했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그냥 같이 있어주기만 해도, 가만히 들어주기만 해도 되었을텐데.
우린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고 사는게 아닐까.
무얼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 시간을 곁에서 꿋꿋하게 지키면서 그냥 가만히 있어주기만 해도 좋다.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려와 힘들 때
가만히 다가와 그저 들어만 주는 한 사람이 내 곁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여러 사연과 고민들 속에서 느끼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감정이
한 권의 그림책 속에 스며들어
다정한 위로를 건네주는 선물처럼
책이 그런 매체가 되어준다는 게 너무 소중하고도 감사하다.
지금 난 <엄마를 산책시키는 방법>이라는 책을 찾아 읽어보려고 한다.
나에게 쉼을 떠올릴 수 있는 걷기와 산책이 너무도 필요한 때라는 걸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