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할데 헤르만 헤세 선집 8
헤르만 헤세 지음, 윤순식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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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서 삶으로

헤르만 헤세 저, ‘로스할데’를 다시 읽고

7년 전 ‘로스할데’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주인공인 화가 요한 페라구트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공감할 수 없었다. 특히 가족을 버리고 일을 선택한 그의 결단을 도무지 지지할 수 없었다.

다시 이 작품을 읽고 나니 7년 전 나의 관점이 다소 가벼웠을 뿐 아니라 다소 치우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제를 가족과 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갇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요한 페라구트의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그가 가족 대신 일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맥락을 진중하게 고려했을 때 그는 어쩌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한 게 아니라,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길을 걸을 용기를 마침내 낸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두 관점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 있다. ‘요한 페라구트에게 과연 가족을 선택할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었던가?‘ 요컨대 초독 땐 여전히 선택권이 남아 있었다고 생각했으나 재독 땐 이미 손을 떠났다고 보았던 것이다. 과연 그런가?

초독 때의 관점은 그 당시 여전히 빠져 있던 나의 개인적인 상황의 연장선에서 나온 해석이었던 것 같다. 당시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9살 아이였고, 엄마 없이 아빠인 나와 3년을 살아낸 후 다시 가족이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성공이라는 구름을 잡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나의 욕망은 이미 꺾인 상태였고, 그와 함께 나의 성공지향적인 가치관도 무너졌던 때였다. 반대급부로 나는 일과 성공이 아닌 일상과 가족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고 그것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생을 걸고 지키겠노라고 다짐하던 차였다. 그랬던 내 눈에 자신의 일을 위해 가족과의 이별을 선포하는 요한 페라구트의 결연함이 좋아 보였을 리가 없었다. 내겐 그가 자기만을 생각하고 일을 위해 가족을 희생시키는 성공지향적인, 절대 닮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어떤 하나의 견고한 세상에 살다가 그 세상이 가진 한계를 깨닫는 동시에 다른 세상이 추구하는 이상을 쫓아 탈출한 자는 보통 용수철의 반동적인 힘에 의해 자신이 거했고 자신을 구성했던 모든 것을 필요 이상의 증오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거부하는 과정을 한동안 거치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속했던 세상의 반대쪽으로 지나칠 정도로 치우쳤던 게 아닌가 싶다. 이것이 재독 후 요한 페라구트에 대한 나의 관점이 달라진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먼저 요한 페라구트와 그의 아내 사이에 난 갈등의 깊은 골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과 같은 상태인 것 같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가 좀 더 자상하려고 노력하거나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듯했다. 작품 속에서도 이 부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데 나는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고 보았다. 요한이 그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아내에겐 그 행동이 가진 의미가 왜곡되어 전달될 것 같았다. 요컨대 요한만이 아니라 그의 아내 아델레도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별 특별한 사건 사고 없이 오해와 또 다른 오해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것이 하나의 관점이 되어 상대방을 원래 알던 그 사람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요한과 아델레는 바로 이 길 위에, 아니 더 이상 합칠 수 없을 만큼 갈라진 두 길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에게 남은 건 이별, 즉 이혼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은 초독 땐 보이지 않았지만 재독하고 나서야 보였던 부분이다. 

그렇다면 왜 둘은 진작 이혼을 하지 않았던가. 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선택을 하지 않고 이름만 부부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가. 이 질문 역시 오래된 부부 관계에서 종종 볼 수 있듯이 명확한 답을 가지지 않는다. 서로에게 적당한 존중을 유지하면서도 서로를 무시하는, 모순된 삶에 그들은 수년간 이미 친숙해 보였다. 그것이 물 흐르듯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다만, 요한의 오랜 친구 오토의 방문으로 인해 그 잘못 끼워 맞춘 옷이 실체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오토의 방문이 가진 중요한 의미가 되겠다. 말하자면 객관성의 재발견, 혹은 비뚤어진 상태를 비뚤어진 상태로 인정하고 그로부터 벗어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발화점이 되었던 것이다.

제1의 인생이 실패했다더라도 제2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거머리처럼 붙어있던 미련과 자책 (아들 피에르는 가장 큰 상징이리라)으로부터 해방받아 용기를 내어 새 삶을 시작하기로 결단한 요한 페라구트를 내가 이젠 응원하게 된 이유다. 작품 속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냉철한 제삼자로 등장하는 요한의 오랜 친구 오토 역시 요한에게 다시 부부 사이를 예전처럼 돌이켜보라고 권유하지 않았다는 점도 나는 의미심장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요한에겐 이미 더 이상 합칠 수 없는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 마치 아무 일 없는 듯 연극하는 삶, 그 늪과 같은 삶에서 빠져나올 때였던 것이다. 

가끔 우리에겐 오토의 방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뒤틀린 영점을 가지고 그것이 정상인 것처럼 합리화한 채 기울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진 않은지 점검해 봐야겠다. 요한에게 오토라는 친구가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 헤세 다시 읽기
1. 수레바퀴 밑에: https://rtmodel.tistory.com/1898
2. 게르트루트: https://rtmodel.tistory.com/1912
3. 로스할데: https://rtmodel.tistory.com/1924

* 헤세 처음 읽기
1. 수레바퀴 밑에: https://rtmodel.tistory.com/449
2. 싯다르타: https://rtmodel.tistory.com/453
3. 게르트루트: https://rtmodel.tistory.com/463
4. 페터 카멘친트: https://rtmodel.tistory.com/468
5. 황야의 늑대: https://rtmodel.tistory.com/488
6. 크눌프: https://rtmodel.tistory.com/499
7. 로스할데: https://rtmodel.tistory.com/529
8.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https://rtmodel.tistory.com/579
9. 데미안: https://rtmodel.tistory.com/469
10. 유리알 유희: https://rtmodel.tistory.com/708
11. 요양객: https://rtmodel.tistory.com/826
12.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https://rtmodel.tistory.com/1430
13. 헤세로 가는 길 (by 정여울): https://rtmodel.tistory.com/1552

#현대문학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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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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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저,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를 읽고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을 아직 절반도 읽지 못했지만 한 권만 읽고도 나는 그가 예사롭지 못한 필력가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았다. 그의 전작을 기어이 읽어낼 계획이지만 최근에 그의 미공개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고 해서 구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과 브라질로 건너간 이후,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 2년 동안 남긴 기록을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짧지만 묵직한 기분이었다. 

완독을 하고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역시 비범한 필력가라는 확인, 다른 하나는 책장에 꽂힌 그의 작품을 서둘러 읽어보고 싶은 욕구였다. 원주로 오가는 짧은 여정에서 남긴 감상을 옮긴다.

1. 걱정 없이 사는 기술
지극히 평범하나 누구보다도 비범한 인물, 안톤에 대한 이야기다. 안톤은 직업도 없고 아무런 고정 수입이 없었으며 집도 없었다. 그는 자는 곳이 매일 달랐고, 그날그날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매일 거리를 산책하며 세심한 눈으로 주위를 관찰한 뒤 필요한 곳에 선뜻, 당당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보수를 요구해서가 아니라 진정 그 사람을 돕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언제나 그의 도움을 감사히 받았고 그가 원하는 최소한의 사례를 했다.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일종의 초월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화자는 안톤 같은 사람만 있으면 법도 필요 없을 거라고 말하며 이 특별한 존재에 대한 회상을 마무리한다. 

2. 필요한 건 오직 용기뿐!
화자의 고등학생 시절의 회상기인 이 글에서는 메테르니히라는 인물로 인해 깨달았던 시기적절한 용기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그는 금수저였으나 고상하고 사려 깊고 친절하여 모든 이들이 그를 좋아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사기죄로 체포되어 전국적으로 메테르니히를 포함한 가족의 신상공개가 되었다.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거대한 금융 사기였던 것이다. 몇 주간 보이지 않던 메테르니히가 학교로 돌아온 날 화자를 비롯한 친구들은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주저했다. 메테르니히는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친구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메테르니히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화자는 자신을 포함한 친구들의 용기 없음을 반성하고 후회한다. 함부로 말했다간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었지만, 메테르니히를 도울 유일한 기회를 놓쳐버린 이유를 화자는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3. 나에게 돈이란
전후 오스트리아에서 있었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니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났던 인플레이션으로 돈의 가치가 땅바닥에 떨어졌던 때를 상기하는 글이다. 화자는 놀라움과 함께 두 가지를 깨닫는다. 하나는 돈의 가치가 사라져도 삶을 지탱하려는 힘은 유지되었다는 점, 다른 하나는 떨어진 돈 (물질)의 가치 덕분에 반대급부로 비물질적인 가치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화자의 마지막 문장은 이 글을 압축한다.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4. 센강의 낚시꾼
프랑스혁명 시기, 루이 16세가 단두대에 처형되는 순간,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센강에서는 낚시꾼들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듯 유유히 찌만 노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느낀 놀라움을 토로하며 화자는 그것으로 인해 얻은 인식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센강의 낚시꾼들은 사회에 무관심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거나 사익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은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자연주의적인 가치에 따라 살던 사람들이었다고 말이다. 화자는 자신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임을 밝힌다. 너무나도 많은 사건 사고들이 터지는 시대에 개별적인 인간은 그 모든 일에 공감할 수도 개입할 수도 없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일부 파괴되더라도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 자연의 연속성에 화자는 큰 의미를 둔다. 센강의 낚시꾼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했던 게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5. 영원한 교훈
‘생각하는 남자’ 조각상으로 유명한 로댕과의 짧은 만남으로부터 화자가 얻은 영원한 교훈 두 가지를 소개하는 글이다. 첫 번째 교훈은 위대한 사람은 거의 항상 매우 친절하다는 것, 그리고 과하게 나서지 않는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관대하다는 것. 두 번째 교훈은 세상의 모든 예술과 성과의 궁극적 비밀은 바로 집중이라는 것. 로댕을 찾아갔던 날, 로댕은 화자에게 작업실을 소개해주다가 화자가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한 시간 반 동안 작업에 집중하는 모습을 의도치 않게 보여주었는데, 화자는 바로 그 시간 동안 책으로도 수업으로도 배울 수 없는 귀중한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6. 알폰소 에르난데스 카타를 위한 추도사
알폰소 에르난데스 카타라는 작가의 죽음을 추도하는 글이지만 나는 츠바이크가 자신을 위한 추도사를 미리 쓴 게 아닌가 싶었다. 그가 기리는 알폰소 에르난데스 카타와 그의 작품이 남긴 의의가 츠바이크 자신과 자신의 작품이 가진 의의라고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만했기 때문이다. 츠바이크 역시 조국을 국경 너머 널리 알리고, 자신의 세계문학과 조국을 연결하여 그 위상을 높인 사람으로서 조국에 봉사한 사람이었다.

7. 거대한 침묵
화자는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육체적 폭력을 넘어선, 스스로 가장 잔인한 영혼 훼손이라 정의하는, 침묵의 고문을 이 글에서 고발한다. 한 사람 (히틀러이리라)을 제외한 모두의 입을 틀어막은 일이 유럽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책이 불태워졌고, 학자들은 연구실에서 쫓겨났으며, 성직자들은 설교단에서, 배우들은 무대에서 쫓겨났다. 언론이 통제되었고, 창작으로 문화를 풍요롭게 했던 사람들은 야생동물처럼 사냥당했다. 모두 나치의 소행이었다. 츠바이크의 이 글을 읽으며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나치 시대와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보고 섬뜩한 기분을 느낀다. 특히 한 세기가 지났음에도 힘을 가진 한 인간이 나머지 힘없는 인간들에게 폭력을 사용하고 입을 틀어막는 행위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고도 두려운 일로 다가왔다. 

8. 이 어두운 시절에
유럽 작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했던 츠바이크의 연설문인 것 같은 글이다. 먼저 그는 나치의 국가 독일인으로서 독일어는 쓰는 작가들이 괴롭고도 비극적인 우선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작가는 조국을 떠날 수 있어도, 창작하고 생각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와는 갈라설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이 사용하는 독일어야말로 세계를 파괴하고 인간 존엄을 시궁창에 던져버리는 범죄적 망상에 맞서 싸우는 데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고 말한다. 가장 어두운 시기를 맞이하여 인간이 존엄이 땅에 떨어졌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인간의 영혼에 자유가 필수임을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가장 어두울 때 빛의 소중함을 실질적으로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이 책의 제목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결연히 외친다. 망명한 자유국가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작가들에게 가장 시급하고 주요한 의무는 도덕의 힘과 무적의 정신을 흔들림 없이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츠바이크는 독일어 작가로서 공적인 책임감과 사명을 그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꼈던 게 틀림없다.  

9. 하르트로트와 히틀러
빈센테 블라스코 이바녜스라는 작가가 쓴 ‘묵시록의 네 기사’라는 책을 우연히 다시 접한 뒤 작중 인물인 독일 역사학 교수 율리우스 폰 하르트로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글이다. 그는 독일인의 정치적 열망을 히틀러에 앞서 먼저 선포한 작자였다. 25년 전에 읽었을 땐 그가 반미치광이 캐리터로 여겨졌으나,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뒤에는 그가 그 어떤 인물보다 현실적인 캐릭터로 보였다고 한다. 하르트로트의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들이 히틀러를 통해 7,000만 독일인의 공식 신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우생학적인 독일인 우월주의는 히틀러에 와서 꽃을 피웠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히틀러의 광기는 하르트로트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츠바이크의 놀라움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상 아홉 편의 짧은 에세이를 읽고 나는 생각에 잠긴다. 작가의 사명에 대한 숭고하고도 결연한 의지에 적잖은 감동을 느낀다. 시대를 대변하는 목소리, 그것이 갖는 고유한 의미에 대해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츠바이크가 타국으로 망명을 간 이후 자살로 생을 끝내기까지 얼마나 깊은 고뇌에 휩싸였을지 짐작이 되어 가슴이 아려오기도 했다. 

* 슈테판 츠바이크 읽기
1. 감정의 혼란: https://rtmodel.tistory.com/1608 
2. 환상의 밤: https://rtmodel.tistory.com/1615 
3.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https://rtmodel.tistory.com/1625 
4. 과거로의 여행: https://rtmodel.tistory.com/1652
5. 체스 이야기: https://rtmodel.tistory.com/1797
6.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https://rtmodel.tistory.com/1923

#다산북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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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부르그 연대기 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항재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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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과 몽상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여주인‘을 읽고


금세 바닥날까 두려워 아껴왔던 도스토옙스키 작품 하나를 조심스레 까먹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다 읽는다는 건 멋진 일이다. 그러나 이제 내겐 슬픈 일이기도 하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단편까지 포함하여 열린책들에서 번역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개수는, 내가 파악하기로는, 모두 서른다섯인데, 이번에 읽은 ‘여주인’을 빼면 이제 네 작품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문호의 작품을 읽어나가는 성취감이 남모를 아쉬움으로 변한 지도 벌써 오래되었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독서모임과 함께 내가 선별한 총 열다섯 편의 대표작을 재독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곧 맞닥뜨릴 상실로 인한 슬픔, 즉 읽지 않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사라질 시기를 늦추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주인‘은 도스토옙스키의 초기 단편 중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중 하나다. 우리가 잘 아는 그의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 그에 이은 ’분신’ 이후에 급하게 쓰였던 소설 중 하나다. ‘가난한 사람들‘로 높이 올라갔던 그의 명예가 ’분신‘으로 본의 아니게 실추된 이후 도스토옙스키 내면에서 일었을 심적 동요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적이고 집요한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가 텍스트의 옷을 입고 잘 드러나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성급함이 느껴졌다. 그 성급함은 이야기 전개의 미완결성과 미숙함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장편이 아닌 단편만의 특징이 잘 살아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작품들을 거의 모두 섭렵한 내 눈에는 무언가 아쉬운 점이 많았다. 물론 등장인물의 인생 전체를 단편에 모두 녹여낼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개연성이랄까 핍진성이랄까 하는 부분에서 선뜻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특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남성의 정체가 모호했는데, 마치 관념과 몽상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 아닌 사람 같았다. 물론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이보다 더 강한 캐릭터가 등장했었지만 적어도 모호하진 않았다. ’백야’에서도 비슷한 인물이 등장했으나 나름대로 낭만을 느낄 수 있었고, 주인공과 대비되는, 여자가 기다렸던 남자가 작품 끝에 등장하는 바람에 주인공의 개성이 도드라졌었다. 그러나 이 작품 속 주인공은 이도 저도 아닌 인물이었다. 맥락 없이 무대 위에 잠시 등장한 배우 같은 느낌이었다. 


뿐만 아니다. 그가 첫눈에 사랑에 빠진 ‘여주인’인 여성 역시, 비록 저자가 그녀의 과거사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유로지비를 연상케 하는 순진함과 광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격정적인 감정으로 채색되어 있어 내겐 낯설게만 느껴졌다. 또한 갑작스러운 친구의 등장도, 그 친구의 역할도 전체 서사와 무슨 연관을 가지는지 알 수 없었다. 등장인물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소수만 나오는 작품인데도 서사가 엉성하게 보였다. 가독성도 좋지 않았다. 나 같은 도스토옙스키 전작 읽기에 도전하는 소수의 찐 독자만이 자발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모호하고 관념적인 이 작품의 결말을 처리하는 부분도 도스토옙스키다운 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현대문학의 단편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였다. 이야기가 더 진행되어야 할 것 같은데 뜬금없이 끝나버리는 찝찝함이 작품을 다 읽고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내게 아직 남아 있다. 다만 주인공 남자의 꿈꾸는 듯한 관념적인 표현들이 하나의 어떤 독특한, 신비감까지 느껴지는, 아우라를 형성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념과 몽상, 이 두 단어는 '분신'의 골랴드낀을 창조한 도스토옙스키의 초기 작품들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아닌가 한다. 


* 도스토옙스키 처음 읽기

1. 죄와 벌: https://rtmodel.tistory.com/811

2. 백치: https://rtmodel.tistory.com/815

3. 악령: https://rtmodel.tistory.com/879

4. 미성년: https://rtmodel.tistory.com/928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https://rtmodel.tistory.com/1068

6. 죽음의 집의 기록: https://rtmodel.tistory.com/1087

7.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153

8.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159

9. 지하로부터의 수기: https://rtmodel.tistory.com/1171

10. 노름꾼: https://rtmodel.tistory.com/1174

11. 도스토옙스키 (by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https://rtmodel.tistory.com/1077

12.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177

13.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by 이병훈): https://rtmodel.tistory.com/1194

14. 매핑 도스토옙스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58

15.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62

16.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by 도제희): https://rtmodel.tistory.com/1388

17.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396

18. 상처받은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429

19. 악몽 같은 이야기: https://rtmodel.tistory.com/1435

20. 악어: https://rtmodel.tistory.com/1436

21. 인간 만세!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488

22.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by 슈테판 츠바이크): https://rtmodel.tistory.com/1625

23.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by 조주관): https://rtmodel.tistory.com/1644

24. 백야: https://rtmodel.tistory.com/1659

25. 뽈준꼬프: https://rtmodel.tistory.com/1702

26. 정직한 도둑: https://rtmodel.tistory.com/1703

27.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https://rtmodel.tistory.com/1704

28. 꼬마 영웅: https://rtmodel.tistory.com/1706

29. 약한 마음: https://rtmodel.tistory.com/1707

30.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https://rtmodel.tistory.com/1711

31. 농부 마레이: https://rtmodel.tistory.com/1717

32. 보보끄: https://rtmodel.tistory.com/1719

33. 백 살의 노파: https://rtmodel.tistory.com/1721

34. 우스운 사람의 꿈: https://rtmodel.tistory.com/1722

35. 온순한 여자: https://rtmodel.tistory.com/1723

36. 예수의 크리스마스 트리에 초대된 아이: https://rtmodel.tistory.com/1724

37. 영원한 남편: https://rtmodel.tistory.com/1823

38.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https://rtmodel.tistory.com/1825

39. 쁘로하르친 씨: https://rtmodel.tistory.com/1827

40. 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867

41. 여주인: https://rtmodel.tistory.com/1917

42. 아저씨의 꿈:

43.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44.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45. 자유 (by 석영중):

46.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 (by 석영중):

47.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 (by 안나 도스토옙스카야):

48.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by 윤새라):

49.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 (by 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50. 죽음의 집에서 보다 (by 석영중, 손재은, 이선영, 김하은): 


* 도스토옙스키 다시 읽기

1.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690

2.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6

3.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739

4. 상처받은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744

5. 죽음의 집의 기록: https://rtmodel.tistory.com/1761

6. 지하로부터의 수기: https://rtmodel.tistory.com/1776

7. 죄와 벌: https://rtmodel.tistory.com/1807

8. 노름꾼: https://rtmodel.tistory.com/1819

9. 백치: https://rtmodel.tistory.com/1849

10. 악령: https://rtmodel.tistory.com/1882

11. 미성년:

12.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3. 매핑 도스토옙스키 (by 석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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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 - 퇴근 후 15분, 편집자 아빠의 10년 독서 육아기
옥명호 지음 / 옐로브릭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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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가장 훌륭한 베드타임 스토리텔러

옥명호 저,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을 읽고

아이가 태어나고 기어 다닐 무렵부터 아이와 놀아줄 땐 항상 책이 있었다. 그림이 전부이거나 글자라곤 단어 하나 정도 있는 책이었지만. 돌이 지나고 걸어 다니기 시작할 때에도 퇴근하면 씻고 아이를 목욕시킨 후 방바닥에 앉아 다리 사이에 품고 간단한 책을 읽어줬다. 그러면 쉬지 않고 움직이던 아이는 가만히 아빠의 품 안에 앉아 아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부턴 본격적으로 매일 자기 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 후 3년간 떨어져 지내던 아내가 내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그만두었는데 그때가 이미 ‘베드타임 스토리' 4년 차가 된 시기였다. 갑자기 영어를 사용한 이유는 내가 본격적으로 읽어준 이야기책이 모두 영어책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초창기 나는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면서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었다. 발음도 악센트도 교정하면서 말이다.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은 탐정소설이었다. 이제는 열여섯 살이 된 아들에게 어제 물었다. 아빠가 미국에서 책 많이 읽어줄 때 기억나?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뭐였어? 그랬더니 역시나 ‘무슨무슨 미스터리‘ 등등을 얘기했다. 약 4년간 거의 매일 의식처럼 행하던 베드타임 스토리 시간은 나나 아들에게 깊이 뿌리내린 추억인 것이다. 어제 내게 대답하던 아들의 표정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사춘기 청소년이라 예전과 달리 말도 줄었고 별 이유 없이 반항도 하는 아들에게서 오랜만에 보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십 년이 넘도록 베드타임 스토리를 해준 한 아빠의 체험 이야기이자, 아빠가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리고, 이 거룩한 일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권면을 담고 있다. 저자의 필력이 예사롭지 않은데 한 페이지를 읽어도 밀도 높은 양질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을 읽는 큰 매력 포인트일 것이다.

저자는 두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기까지 거의 매일 밤 책을 읽어줬다고 한다. 베드타임 스토리텔러로서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무엇인가를 십 년간 지속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을 해낸 사람은 내공이란 걸 습득하지 않을 없기에 이 책을 읽어 봐야 하는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실제로 이 책엔 농축된 그의 노하우와 지혜가 녹아 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은 아빠라면, 혹은 남편에게 권하고 싶은 엄마라면 꼭 읽어보길 강추한다.

저자는 여러 가지 스타일의 책을 시도해 보았는데 이야기책이 가장 괜찮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탐정소설을 가장 많이 읽어주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책을, 그러니까 굳이 장르로 분류하자면 문학, 소설이 가장 아이와 함께 하기에 좋았다. 무엇인가가 궁금하고 더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아빠로서 단 한 번이라도 마주하게 된다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읽어주는 이나 듣는 이나 한 마음으로 그다음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하는 상황. 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이 샘솟듯 터져 나오는 그 내면의 변화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또한 아이의 나이에 따라 읽어주기에 적절한 책들의 리스트도 친절하게 제공한다. 나 같은 경우엔 아이와 함께 자주 공공도서관에 가서 영어책을 거의 닥치는 대로 빌려와 읽어주었지만, 베테랑의 엄선된 리스트는 한국에 거주하는 베드타임 스토리텔러로서 초보 아빠들에겐 유용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아들이 이제 열여섯이다. 아이를 보면 언제나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앞선다. 못났던 내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시기를 그대로 옆에서 목격한 산 증인이 바로 아들이었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무너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 만큼 아이와 함께 아빠로서 시간을 많이 보낸 경우가 또 있을까 싶은 마음에 약간은 뿌듯한 기분도 느낀다.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아들에게 유일하게 잘해준 것 하나가 바로 책을 꾸준히 읽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절대 손해 볼 일 없다. 하루에 십오 분에서 삼십 분 정도만 내면 된다. 그것의 수백 배 수천 배의 기쁨과 만족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기회가 있는 아빠들은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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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 그침, 쉼, 받아들임, 향연
마르바 던 지음, 전의우 옮김 / IVP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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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인생에서 온전함을 경험하는 삶


마르바 던 저, '안식'을 읽고


한 해의 마지막 날 이 책을 손에 들고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이 멈추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시간을 아껴서 하나라도 더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들로부터 오는 강박으로 인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쫓기고 있었던 것 같다. 쫓는 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쫓기는 자는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법이다.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단 멈추는 것이다. 자기 객관화는 멈춘 다음에 온다. 쫓는 자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또 그다음이다. 멈추니 깨달아졌다. 아, 내게 필요한 건 안식이었구나.


내가 아닌 남을 향한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나름대로 그 모토에 부합하는 삶을 살려고 부단히 애쓰고는 있지만, 아직 초보 혹은 아마추어여서 그런지 무엇을 해도 잔뜩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되어지는 상태' 이전에 뭔가를 자꾸 '하는 상태'에서 나는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태로는 그 어떤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해도 내겐 일이 될 뿐이다. 온전히 누리며 나누는 삶이 아니라 여전히 성취하고 채우려는 삶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멈추는 것. 그리고 돌아보는 것. 나에게 필요한 건 안식이라는 것. 2024년 마지막 날에 이런 순간을 맞닥뜨려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안식일 지키기가 가져다주는 많은 결과를 소개한다. 안식일 지키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잘 알다시피 십계명에 하나로 제시되어 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 나아가 존재 자체와 깊은 연결이 될 만큼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계명을 밥 먹듯이 무시하고 거절한다. 복음이 아닌 율법주의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며, 십계명은 구약의 유물이라며, 시대착오적인 계명일 뿐이라며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변명도 이미 시스템화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마르바 던은 당당하게 말한다. 안식일 지키기는 우리를 율법주의에 매이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율법주의에서 자유케 한다고. 


물론, 저자도 강조하다시피, 안식일 지키기는 결코 법적인 강제가 아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이 하던 방식을 나를 포함한 많은 개신교도들이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대와 문화와 상황에 맞춰, 나아가 각자 자신의 환경과 헌신에 맞게 서로 다른 방법으로 안식일을 지킬 수는 있다. 예수가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고 사람을 살렸던 것처럼, 우리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살리면서 우리의 상황에 맞춰 안식일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안식일 지키기의 개념이 얼마나 실제적이고, 안식일을 지킬 때 얼마나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저자는 이를 총 네 가지로 설명하는데, 곧 그침, 쉼, 받아들임, 향연이 그것이다. 아래 발췌문은 그것들의 요약이다. 


| 안식일 지키기의 그침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창조하려고 한 여러 가지 방법을 뉘우치는 회개의 깊이를 더한다. 안식일 지키기의 쉼은 하나님의 완전한 은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해 준다. 안식일 지키기의 받아들임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믿음의 진리를 취하여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실제적으로 적용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안식일의 향연은 우리의 종말론적 소망 의식을 고취시킨다. 하나님의 사랑을 현재에 경험하는 기쁨을 누리며 오는 기쁨을 미리 맛볼 수 있게 한다. |


기독교 내부의 안식일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나는 안식일 혹은 휴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패턴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패턴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효율적이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그 하루를 어느 날로 정할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게 멈추고 (그치고) 쉬고 돌아보는 시간은 전체 삶을 더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된다. 멈추고 쉬고 돌아보는 시간을 하나님의 임재를 오로지 경험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누리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영적인 사실을 다시 각인시키며 모든 것을 점검하고 다시 하나님을 향한 방향키를 바로 잡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안식일은 엿새 일한 뒤 찾아오는 휴식일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새로운 한 주를 위한 시작일의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안식일을 일주일 중 가장 중요한 날로 삼는 일. 전체 삶의 속도를 맞추고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하며 내가 누구인지, 지금, 여기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으로 안식일을 삼는 일.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함께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시간으로 안식일을 삼는 일.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나 쫓기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숙지해야 할 일이라 믿는다. 이런 삶이야말로 세상에 속하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아내는 초석이지 않을까 싶다. 깨달음을 넘어 구체적인 실천으로 넘어가 실제로 살아있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들도 안식일의 온전함을 매주 경험하게 되면 소망과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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