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8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상룡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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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다른 이름, 미성년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미성년‘을 다시 읽고

나에게도 ‘이념‘이 있었다. 그 이념은 하나의 진리처럼 나에게 빛을 비춰주었고, 비밀스러운 힘을 공급해 주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나는 은밀한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그 이념이 향하는 목적만 달성하면 세상 따윈 다 감당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나름대로의 왕이었다. 

문제는 그 왕좌가 좁디좁은 '나'라는 우물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도 바로 그 우물 안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념은 나의 빈약한 내면을 풍선처럼 부풀려주었고, 그래서 바닥에 붙어 있으나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aka 허영 혹은 허세), 나의 세계관과 가치관마저도 형성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 렌즈는 유효기간이 있었고, 우물 밖을 볼 땐 왜곡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우물 밖 관점에서 바라볼 땐 망상이 될 수밖에 없는,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나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하나는 그 렌즈를 계속해서 사용하며 왕 노릇하기 위해 '나'라는 우물을 고수하는 것, 다른 하나는 그 렌즈를 벗어던져 버리고 용기를 내어 우물 밖으로 탈출하는 것이었다. 

우물 안이 모든 세상인 줄 아는 정신적 유년 시절에는 그리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아니, 발생했다 하더라도 인지하지 못했거나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는 법. 내가 애써 지키려 했던 우물은 언젠가부터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우물 밖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차차 알게 되었고, 인간인지라 저 너머의 세상, 즉 우물 밖 세상이 궁금했기 때문에 내가 들고 있는 유일한 렌즈를 들고 우물 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우물 안에서 제작된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우물 밖 세상을 판단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어느 정도는 괜찮았다. 그 정도 수준의 합리화는 나를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라 믿었고, 나는 절대 무너질 수 없는 존재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우물 밖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수록 그 렌즈의 왜곡은 점점 더 심해져야만 했고, 급기야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를 취하려는 자아가 형성되고야 말았는데, 그것은 곧 우물 안에서처럼 우물 밖 세상에서도 나는 왕 자리를 꿰찰 수 있다고 믿었던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언제나 옳아야 했고,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믿는 것은 진리여야 했으며, 나와 다른 시선을 가진 모든 사람은 나를 해하려 하거나 제거하려 하는 적으로까지 간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병이었다. 그것도 심각한 병이었다. 결국 나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나중엔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죽음으로 내몰렸고, 기나긴 세월을 거쳐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던 '나'라는 우물은 그렇게 말라갔다.

놀라운 일은 그다음부터였다. 우물은 파괴되었지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물을 버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게다가 죽어야만 했던 자아는 진작에 죽어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고백하게 되었다. 내가 고수하던 우물은 알과 같았다. 내가 살려고 발버둥 치던 모든 행동들은 앞으로 성장하지 않겠다는 철부지 어린아이의 몸부림 (aka 땡깡)에 불과했다. 나를 이끌고 나에게 하나의 진리로 자리 잡았던 이념이란 것은 궁극적으로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것이다! 

인생은 우물 탈출기와 같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아가, 하나의 우물을 탈출하여 다다른 곳은 우물 밖이 아니라 또 다른 우물 안이라는 사실도 나중엔 알게 되었다. 삶은 양파 껍질처럼 다중의 우물로 이루어져 있음도 알게 되었다. 안타까운 인간의 한계는 가장 바깥의 양파 껍질에 닿기 전에 죽는다는 점, 그리고 그 껍질에 언제쯤 닿을 수 있을지조차 계산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모든 인간은 누구나 깊이와 너비가 다를 뿐 우물 안에 있는 것이었다. 

건강한 사람은 끊임없이 우물을 탈출하는 과정의 연속선 상에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우물이든지 정착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성장이 멈춘 인간은 정도가 다를 뿐 모두 미성년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의 또 다른 이름은 '미성년'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바로 내가 도스토옙스키의 5대 장편 중 네 번째 작품 '미성년'을 재독 후 내린 하나의 중요한 결론 중 하나가 되겠다. 

이 작품을 읽고 나는 성장과 성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섰다. 나를 돌아봤다. 과연 나는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 중에 있는지, 아니면 몇 번째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우물 안에 멈춰 거기서 뿌리내리려고 애쓰고 있진 않은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미성년'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물으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그리 어렵지 않게 답을 낼 수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두 가지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하나는 여전히 어떤 이념에 사로잡혀 그것을 숭상하며 그곳이 우물인 줄도 모르고 왕 노릇하기 위해 정착하려 애쓰면서 현실이라는 핑계로 물질적이고 욕망에 이끌리는 삶을 추구하는 자아였다. 다른 하나는 안정적인 정착이 가져다주는 정체감에서 신물을 느끼고는 불안을 감수하고서라도 또 다른 이념을 쫓아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는 자아였다. 하나인 줄 알았던 나의 내면은 이렇게 적어도 두 개의 자아로 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두 자아를 모두 나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이제는 이 분열이 내겐 세계관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렌즈의 출발점이 되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하나가 아니었다. 둘 이상의 자아가 서로 다투기도 하고 융합하기도 하면서 한 몸 안에서 합일을 이루는 존재자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이 작품 속 이야기를 이끄는 중추는 '이념'에 있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인 수기 형태의 작품 속 주인공 아르까지 돌고루끼는 제목이 가리키는 '미성년'의 대표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19세의 나이로 법적으로는 갓 성인이 된 청년이다. 성년이 되었으나 여전히 미성년에 머문 인물이 바로 아르까지 돌고루끼인 것이다. 그의 나이를 19세로 설정한 이유에서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합리성과 현실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로 봐도 '미성년'이라는 타이틀이 충분히 이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의 제목 '미성년'이 단지 아르까지를 지칭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로 등장하는 베르실로프, 여자 베르실로프라고 할 수 있고 모든 남자들이 반하게 되는 까쩨리나, 아르까지의 친동생 리자, 리자를 임신시키고 또 다른 여자에게 청혼을 하는 세료자 공작, 어떤 독특한 이념에 사로잡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끄라프뜨, 까제리나의 아버지이자 돈의 원천으로 상징되는 소꼴스끼 노공작, 아르까지가 주머니에 바느질로 꿰매어 보관하고 있던 중요한 편지를 결국 훔쳐가 아르까지의 뒤통수를 때리게 되며 과거 아르까지를 폭행하기도 했던 학폭 가해자 람베르뜨, 그의 프랑스 연인으로 다소 코믹하게 나오는 알폰신느, 베르실로프의 허망한 사랑의 실천이 가져온 커다란 상처와 오해로 인해 자살을 선택한 올랴, 그녀의 어머니이자 이름이 작품 중간에 바뀌어 혼동을 조장했던 다리아 오니시모브나, 그리고 아르까지의 법적인 부모인 마까르와 소피아까지 모두 정도만 다를 뿐 미성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말하자면 모든 인간을 미성년으로 볼 수 있다는, 위에서 한번 언급했던 나의 주장을 반복하는 해석인 것인데, 모두 어딘가 분열되어 있고 어리숙하며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며, 나아가 모두가 저마다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작품 제목 '미성년'의 다른 이름을 그래서 '인간'이라고 읽는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등장인물에게 해당되겠지만, 아르까지 돌고루끼에게는 이념이 있었다. 그 이념이 그에겐 힘의 근원 같은 것이었다. 그의 이념은 우습게도 로스차일드와 같은 인물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단순히 부자나 저명인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굳은 의지와 억센 인내심으로 얻을 수 있는 '혼자만의 고독한 상태'였다 (나는 여기서 도스토옙스키의 조롱 섞인 뉘앙스를 읽는다). 단지 돈과 명예를 쟁취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고 돈과 명예를 쟁취한 이후에 누릴 수 있는 자유, 즉 더 이상 돈과 명예에 압도되지도 속박되지도 않는 상태였다. 말하자면, 강한 자가 아닌 강한 자의 여유를 원했던 것이다. 이는 강한 자보다 우위를 점하는 상태에 속하게 되는 심리를 조장하기 때문에 아르까지는 지상 최고의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이념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념의 문제는 망상에 가까울 정도로 허망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이념이 지향하는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가장 강한 자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 부분에서 돈을 지목한다. 돈이야말로 보잘것없는 인물까지도 최고의 지위로 이끌어 주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이 그의 이념의 주요한 내용이며, 그것을 쟁취함으로써 비로소 그의 이념에 힘이 실린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그러나 그에겐 돈이 없었다. 그러므로 큰돈을 거머쥐기 위해 그는 굳은 의지와 억센 인내심으로 말초적인 욕망을 이겨내는 자기 극복을 실천도 해보지만 결국 도박 같은 한탕주의에 빠지는 모순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그의 이념이 만들어낸 이상은 그가 처한 현실과의 간극이 너무나도 컸으며, 그 결과로 그는 이념과 현실이라는 양극으로 분열된 채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미성년'의 의미는 모든 인간으로 확장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베르실로프는 아르까지의 가까운 미래의 인물로 설정된 게 아닌가 싶었다. 베르실로프는 누가 봐도 성년임이 분명했지만, 그의 삶은 극명하게 분열되어 있어 누가 봐도 모순과 분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단적인 예로, 베르실로프의 이념을 추구하는 자아는 자신을 러시아를 가장 사랑하는 귀족으로 여기면서 전 인류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베풀기 위해 어설픈 용기를 내어 영혼 없는 실천을 일삼기도 하는데, 그 실천이 낳은 열매는 한결같이 불행을 가져다주었다 (베르실로프의 이념적 자아의 단일 모델의 최종 형태가 마까르로 설정된 것이리라). 대표적인 열매는 아르까지의 어머니인 소피아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올랴, 그리고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한 까쩨리나의 의붓녀 리지아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베르실로프는 소피아, 올랴, 리지아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가식 혹은 거짓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쪽 짜리 자아의 진심이었기 때문에 베르실로프의 전인적인 진심이라 할 수 없다. 나는 이 부분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랑은 이념에 따른 것도, 현실에 따른 것도 아닌, 두 가지가 모두 하나가 된 전인적인 마음과 행동이라고 말이다. 전 인류를 향한 공상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야 말로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내어줌이 없다면, 즉 자신의 희생이 동반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베르실로프의 또 다른 자아, 즉 현실과 욕망을 따르는 자아 역시 파괴를 가져왔다. 그가 마음을 품었던 까쩨리나에게 베르실로프의 현실 자아는 유부남이면서도 청혼을 하는 엽기적인 행동을 선보였는데, 이 사실이 어쩌면 이 작품 속 모든 이야기의 근간에 깔린 불협화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마까르가 죽으면서 선물한 성상을 두 조각으로 부서뜨리며 또다시 소피아를 떠나 방랑을 일삼으리라고 선포하기도 하는데, 주위 사람으로서는 기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베르실로프의 이념 자아와 현실 자아의 분열은 단적으로 각각 소피아와 까쩨리나를 통해 발현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피아와 까쩨리나를 오가는 베르실로프의 마음은 그의 분열된 자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르까지는 베르실로프의 이념적인 자아를 숭배할 정도로 감동했고 사랑했다. 이런 면에서 아르까지는 베르실로프의 이념적인 자아가 낳은 이념적인 아들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아르까지만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베르실로프 역시 정신적인 면에서 볼 때 미성년이었다는 나의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다른 등장인물들도 저마다의 이유도 저마다의 이념에 사로잡혀 성숙하지 못하고 치우친 생각과 판단에 의거하여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모두 미성년의 의미를 충족시키는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이 작품의 제목 '미성년'의 다른 이름은 '인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우리 모두는 신체적인 나이와 상관없이 미성년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년은 무엇일까? 어떤 하나의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끊임없이 낯설고 새로운 물줄기의 유입을 수용하며 한 우물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우물을 탈출하며 깊고 풍성한 삶을 도모하는 도상에 있지 않을까? 그 도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성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념은 성장으로도 정체로도 이끌 수 있는 힘을 지닌다. 정체되면 미성년에 머물고, 성장의 길 위에 있기만 하면 성년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년은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이다. 우리 안의 미성년을 인지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년의 길 위에 서는 나와 모든 사람이 되면 좋겠다.  

* 도스토옙스키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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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 (by 안나 도스토옙스카야):
48.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by 윤새라):
49.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 (by 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50. 죽음의 집에서 보다 (by 석영중, 손재은, 이선영, 김하은):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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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부르그 연대기 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항재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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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과 몽상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저, ‘여주인‘을 읽고


금세 바닥날까 두려워 아껴왔던 도스토옙스키 작품 하나를 조심스레 까먹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다 읽는다는 건 멋진 일이다. 그러나 이제 내겐 슬픈 일이기도 하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단편까지 포함하여 열린책들에서 번역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개수는, 내가 파악하기로는, 모두 서른다섯인데, 이번에 읽은 ‘여주인’을 빼면 이제 네 작품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문호의 작품을 읽어나가는 성취감이 남모를 아쉬움으로 변한 지도 벌써 오래되었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독서모임과 함께 내가 선별한 총 열다섯 편의 대표작을 재독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곧 맞닥뜨릴 상실로 인한 슬픔, 즉 읽지 않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사라질 시기를 늦추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주인‘은 도스토옙스키의 초기 단편 중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중 하나다. 우리가 잘 아는 그의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 그에 이은 ’분신’ 이후에 급하게 쓰였던 소설 중 하나다. ‘가난한 사람들‘로 높이 올라갔던 그의 명예가 ’분신‘으로 본의 아니게 실추된 이후 도스토옙스키 내면에서 일었을 심적 동요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적이고 집요한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가 텍스트의 옷을 입고 잘 드러나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성급함이 느껴졌다. 그 성급함은 이야기 전개의 미완결성과 미숙함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장편이 아닌 단편만의 특징이 잘 살아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작품들을 거의 모두 섭렵한 내 눈에는 무언가 아쉬운 점이 많았다. 물론 등장인물의 인생 전체를 단편에 모두 녹여낼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개연성이랄까 핍진성이랄까 하는 부분에서 선뜻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특히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남성의 정체가 모호했는데, 마치 관념과 몽상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 아닌 사람 같았다. 물론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이보다 더 강한 캐릭터가 등장했었지만 적어도 모호하진 않았다. ’백야’에서도 비슷한 인물이 등장했으나 나름대로 낭만을 느낄 수 있었고, 주인공과 대비되는, 여자가 기다렸던 남자가 작품 끝에 등장하는 바람에 주인공의 개성이 도드라졌었다. 그러나 이 작품 속 주인공은 이도 저도 아닌 인물이었다. 맥락 없이 무대 위에 잠시 등장한 배우 같은 느낌이었다. 


뿐만 아니다. 그가 첫눈에 사랑에 빠진 ‘여주인’인 여성 역시, 비록 저자가 그녀의 과거사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유로지비를 연상케 하는 순진함과 광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격정적인 감정으로 채색되어 있어 내겐 낯설게만 느껴졌다. 또한 갑작스러운 친구의 등장도, 그 친구의 역할도 전체 서사와 무슨 연관을 가지는지 알 수 없었다. 등장인물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소수만 나오는 작품인데도 서사가 엉성하게 보였다. 가독성도 좋지 않았다. 나 같은 도스토옙스키 전작 읽기에 도전하는 소수의 찐 독자만이 자발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모호하고 관념적인 이 작품의 결말을 처리하는 부분도 도스토옙스키다운 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현대문학의 단편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였다. 이야기가 더 진행되어야 할 것 같은데 뜬금없이 끝나버리는 찝찝함이 작품을 다 읽고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내게 아직 남아 있다. 다만 주인공 남자의 꿈꾸는 듯한 관념적인 표현들이 하나의 어떤 독특한, 신비감까지 느껴지는, 아우라를 형성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념과 몽상, 이 두 단어는 '분신'의 골랴드낀을 창조한 도스토옙스키의 초기 작품들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아닌가 한다. 


* 도스토옙스키 처음 읽기

1. 죄와 벌: https://rtmodel.tistory.com/811

2. 백치: https://rtmodel.tistory.com/815

3. 악령: https://rtmodel.tistory.com/879

4. 미성년: https://rtmodel.tistory.com/928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https://rtmodel.tistory.com/1068

6. 죽음의 집의 기록: https://rtmodel.tistory.com/1087

7.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153

8.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159

9. 지하로부터의 수기: https://rtmodel.tistory.com/1171

10. 노름꾼: https://rtmodel.tistory.com/1174

11. 도스토옙스키 (by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https://rtmodel.tistory.com/1077

12.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177

13.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by 이병훈): https://rtmodel.tistory.com/1194

14. 매핑 도스토옙스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58

15.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62

16.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by 도제희): https://rtmodel.tistory.com/1388

17.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396

18. 상처받은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429

19. 악몽 같은 이야기: https://rtmodel.tistory.com/1435

20. 악어: https://rtmodel.tistory.com/1436

21. 인간 만세!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488

22.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by 슈테판 츠바이크): https://rtmodel.tistory.com/1625

23.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by 조주관): https://rtmodel.tistory.com/1644

24. 백야: https://rtmodel.tistory.com/1659

25. 뽈준꼬프: https://rtmodel.tistory.com/1702

26. 정직한 도둑: https://rtmodel.tistory.com/1703

27.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https://rtmodel.tistory.com/1704

28. 꼬마 영웅: https://rtmodel.tistory.com/1706

29. 약한 마음: https://rtmodel.tistory.com/1707

30.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https://rtmodel.tistory.com/1711

31. 농부 마레이: https://rtmodel.tistory.com/1717

32. 보보끄: https://rtmodel.tistory.com/1719

33. 백 살의 노파: https://rtmodel.tistory.com/1721

34. 우스운 사람의 꿈: https://rtmodel.tistory.com/1722

35. 온순한 여자: https://rtmodel.tistory.com/1723

36. 예수의 크리스마스 트리에 초대된 아이: https://rtmodel.tistory.com/1724

37. 영원한 남편: https://rtmodel.tistory.com/1823

38.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https://rtmodel.tistory.com/1825

39. 쁘로하르친 씨: https://rtmodel.tistory.com/1827

40. 도스토옙스키의 철도, 칼, 그림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867

41. 여주인: https://rtmodel.tistory.com/1917

42. 아저씨의 꿈:

43.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44.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45. 자유 (by 석영중):

46.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 (by 석영중):

47.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 (by 안나 도스토옙스카야):

48.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by 윤새라):

49.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 (by 니콜라스 A. 베르댜예프): 

50. 죽음의 집에서 보다 (by 석영중, 손재은, 이선영, 김하은): 


* 도스토옙스키 다시 읽기

1.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690

2.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6

3.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739

4. 상처받은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744

5. 죽음의 집의 기록: https://rtmodel.tistory.com/1761

6. 지하로부터의 수기: https://rtmodel.tistory.com/1776

7. 죄와 벌: https://rtmodel.tistory.com/1807

8. 노름꾼: https://rtmodel.tistory.com/1819

9. 백치: https://rtmodel.tistory.com/1849

10. 악령: https://rtmodel.tistory.com/1882

11. 미성년:

12.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3. 매핑 도스토옙스키 (by 석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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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 - 퇴근 후 15분, 편집자 아빠의 10년 독서 육아기
옥명호 지음 / 옐로브릭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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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가장 훌륭한 베드타임 스토리텔러

옥명호 저,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을 읽고

아이가 태어나고 기어 다닐 무렵부터 아이와 놀아줄 땐 항상 책이 있었다. 그림이 전부이거나 글자라곤 단어 하나 정도 있는 책이었지만. 돌이 지나고 걸어 다니기 시작할 때에도 퇴근하면 씻고 아이를 목욕시킨 후 방바닥에 앉아 다리 사이에 품고 간단한 책을 읽어줬다. 그러면 쉬지 않고 움직이던 아이는 가만히 아빠의 품 안에 앉아 아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부턴 본격적으로 매일 자기 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 후 3년간 떨어져 지내던 아내가 내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그만두었는데 그때가 이미 ‘베드타임 스토리' 4년 차가 된 시기였다. 갑자기 영어를 사용한 이유는 내가 본격적으로 읽어준 이야기책이 모두 영어책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초창기 나는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면서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었다. 발음도 악센트도 교정하면서 말이다.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은 탐정소설이었다. 이제는 열여섯 살이 된 아들에게 어제 물었다. 아빠가 미국에서 책 많이 읽어줄 때 기억나?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뭐였어? 그랬더니 역시나 ‘무슨무슨 미스터리‘ 등등을 얘기했다. 약 4년간 거의 매일 의식처럼 행하던 베드타임 스토리 시간은 나나 아들에게 깊이 뿌리내린 추억인 것이다. 어제 내게 대답하던 아들의 표정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사춘기 청소년이라 예전과 달리 말도 줄었고 별 이유 없이 반항도 하는 아들에게서 오랜만에 보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십 년이 넘도록 베드타임 스토리를 해준 한 아빠의 체험 이야기이자, 아빠가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리고, 이 거룩한 일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권면을 담고 있다. 저자의 필력이 예사롭지 않은데 한 페이지를 읽어도 밀도 높은 양질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을 읽는 큰 매력 포인트일 것이다.

저자는 두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기까지 거의 매일 밤 책을 읽어줬다고 한다. 베드타임 스토리텔러로서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무엇인가를 십 년간 지속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을 해낸 사람은 내공이란 걸 습득하지 않을 없기에 이 책을 읽어 봐야 하는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실제로 이 책엔 농축된 그의 노하우와 지혜가 녹아 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은 아빠라면, 혹은 남편에게 권하고 싶은 엄마라면 꼭 읽어보길 강추한다.

저자는 여러 가지 스타일의 책을 시도해 보았는데 이야기책이 가장 괜찮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탐정소설을 가장 많이 읽어주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책을, 그러니까 굳이 장르로 분류하자면 문학, 소설이 가장 아이와 함께 하기에 좋았다. 무엇인가가 궁금하고 더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아빠로서 단 한 번이라도 마주하게 된다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읽어주는 이나 듣는 이나 한 마음으로 그다음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하는 상황. 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이 샘솟듯 터져 나오는 그 내면의 변화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또한 아이의 나이에 따라 읽어주기에 적절한 책들의 리스트도 친절하게 제공한다. 나 같은 경우엔 아이와 함께 자주 공공도서관에 가서 영어책을 거의 닥치는 대로 빌려와 읽어주었지만, 베테랑의 엄선된 리스트는 한국에 거주하는 베드타임 스토리텔러로서 초보 아빠들에겐 유용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아들이 이제 열여섯이다. 아이를 보면 언제나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앞선다. 못났던 내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시기를 그대로 옆에서 목격한 산 증인이 바로 아들이었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무너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 만큼 아이와 함께 아빠로서 시간을 많이 보낸 경우가 또 있을까 싶은 마음에 약간은 뿌듯한 기분도 느낀다.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아들에게 유일하게 잘해준 것 하나가 바로 책을 꾸준히 읽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절대 손해 볼 일 없다. 하루에 십오 분에서 삼십 분 정도만 내면 된다. 그것의 수백 배 수천 배의 기쁨과 만족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기회가 있는 아빠들은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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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 - 그침, 쉼, 받아들임, 향연
마르바 던 지음, 전의우 옮김 / IVP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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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인생에서 온전함을 경험하는 삶


마르바 던 저, '안식'을 읽고


한 해의 마지막 날 이 책을 손에 들고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이 멈추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시간을 아껴서 하나라도 더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들로부터 오는 강박으로 인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쫓기고 있었던 것 같다. 쫓는 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쫓기는 자는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법이다.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단 멈추는 것이다. 자기 객관화는 멈춘 다음에 온다. 쫓는 자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또 그다음이다. 멈추니 깨달아졌다. 아, 내게 필요한 건 안식이었구나.


내가 아닌 남을 향한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나름대로 그 모토에 부합하는 삶을 살려고 부단히 애쓰고는 있지만, 아직 초보 혹은 아마추어여서 그런지 무엇을 해도 잔뜩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되어지는 상태' 이전에 뭔가를 자꾸 '하는 상태'에서 나는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태로는 그 어떤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해도 내겐 일이 될 뿐이다. 온전히 누리며 나누는 삶이 아니라 여전히 성취하고 채우려는 삶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멈추는 것. 그리고 돌아보는 것. 나에게 필요한 건 안식이라는 것. 2024년 마지막 날에 이런 순간을 맞닥뜨려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안식일 지키기가 가져다주는 많은 결과를 소개한다. 안식일 지키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잘 알다시피 십계명에 하나로 제시되어 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 나아가 존재 자체와 깊은 연결이 될 만큼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계명을 밥 먹듯이 무시하고 거절한다. 복음이 아닌 율법주의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며, 십계명은 구약의 유물이라며, 시대착오적인 계명일 뿐이라며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변명도 이미 시스템화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마르바 던은 당당하게 말한다. 안식일 지키기는 우리를 율법주의에 매이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율법주의에서 자유케 한다고. 


물론, 저자도 강조하다시피, 안식일 지키기는 결코 법적인 강제가 아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이 하던 방식을 나를 포함한 많은 개신교도들이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대와 문화와 상황에 맞춰, 나아가 각자 자신의 환경과 헌신에 맞게 서로 다른 방법으로 안식일을 지킬 수는 있다. 예수가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고 사람을 살렸던 것처럼, 우리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살리면서 우리의 상황에 맞춰 안식일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안식일 지키기의 개념이 얼마나 실제적이고, 안식일을 지킬 때 얼마나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저자는 이를 총 네 가지로 설명하는데, 곧 그침, 쉼, 받아들임, 향연이 그것이다. 아래 발췌문은 그것들의 요약이다. 


| 안식일 지키기의 그침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창조하려고 한 여러 가지 방법을 뉘우치는 회개의 깊이를 더한다. 안식일 지키기의 쉼은 하나님의 완전한 은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해 준다. 안식일 지키기의 받아들임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믿음의 진리를 취하여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실제적으로 적용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안식일의 향연은 우리의 종말론적 소망 의식을 고취시킨다. 하나님의 사랑을 현재에 경험하는 기쁨을 누리며 오는 기쁨을 미리 맛볼 수 있게 한다. |


기독교 내부의 안식일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나는 안식일 혹은 휴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패턴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패턴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효율적이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그 하루를 어느 날로 정할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게 멈추고 (그치고) 쉬고 돌아보는 시간은 전체 삶을 더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된다. 멈추고 쉬고 돌아보는 시간을 하나님의 임재를 오로지 경험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누리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영적인 사실을 다시 각인시키며 모든 것을 점검하고 다시 하나님을 향한 방향키를 바로 잡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안식일은 엿새 일한 뒤 찾아오는 휴식일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새로운 한 주를 위한 시작일의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안식일을 일주일 중 가장 중요한 날로 삼는 일. 전체 삶의 속도를 맞추고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하며 내가 누구인지, 지금, 여기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으로 안식일을 삼는 일.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함께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시간으로 안식일을 삼는 일.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나 쫓기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숙지해야 할 일이라 믿는다. 이런 삶이야말로 세상에 속하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아내는 초석이지 않을까 싶다. 깨달음을 넘어 구체적인 실천으로 넘어가 실제로 살아있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들도 안식일의 온전함을 매주 경험하게 되면 소망과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I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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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북꾸 에디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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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상력을 넘어서는 모호함

무라카미 하루키 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무려 761 페이지 장편소설을 8시간 정도에 독파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하루키의 필력 때문일 것이다. 역시 하루키는 타고난 이야기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작품들을 수차례 시도만 했을 뿐 이 작품을 포함하여 지금껏 네 편밖에 읽지 않았는데 거기에 내 본심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너무 유명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루키 작품은 다분히 관념적이고 몽환적이며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되는 '현실과 비현실이 중구난방으로 섞여 있는 모호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그의 작품을 끝내 읽지 않게 되는 나를 설명하기에 더 적절하지 않나 싶다.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단어는 '모호함'이다. '난해함'이 아닌 '모호함'. 이 벽돌책에 대한 나의 감상의 단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네 편밖에 읽지 않은 독자의 성급한 일반화일지도 모르겠지만,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그의 모든 작품 중 가장 (혹은 탑 3 이내) 모호한 작품이지 않나 싶다. 집중해서 읽어냈음에도 여전히 이 작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단순한 문학적 상상력이 허락하는 자유를 거뜬히 넘어서는 모호함이 내 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노릇이다. 읽는 내내 지루함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오히려 책 속으로 빨려 들어 술술 읽어냈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것이 하루키의 매력이지 않나 싶다. 

나름대로의 해석을 펼쳐보고 싶은 생각도 잠시 했으나 그러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작가인 하루키 역시 어떤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쓴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필력이 좋은 이야기꾼이 자신의 상상력을 계속해서 따라가며 텍스트로 받아 적은 이 작품은 장편소설이 아니라 어쩌면 한 편의 거대한 시라는 장르에 속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성으로 냉철하게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흠뻑 빠져들어 느끼는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의 본질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 읽은 듯하다. 한 편의 꿈을 꾼 듯한 느낌이 아직 남아 있다. 몽상 속의 몽상, 관념 속의 관념, 꿈속의 꿈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강하다. 만약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이 작품을 분석하려고 시도를 한다면 정신분석학이라는 채널이 적당하지 않을까 한다. 하루키라는 이야기꾼의 오랜 세월에 걸친 집요한 상상력의 시작과 과정과 끝이 이 장편 속에 녹아있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키 자신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내면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마음 (혹은 잠재의식)의 이야기로 이 작품을 읽고 하루키라는 이야기꾼의 정신을 분석하는 시도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작품을 읽고 한 편의 꿈같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으면서도, 그것보다는 창작자인 하루키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본 기분이다. 

내가 이 작품을 '모호함'으로 압축하는 중요한 이유는 작품 속에서 사용되는 몇 가지 단어의 의미의 모호성 때문이다. 도시, 벽, 그림자, 시간, 사랑, 믿음,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비현실 등, 익숙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의미와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가항력적인 모호함이 나에겐 이 작품을 읽으며 느낀 지배적인 인상이었다. 또한, 이 단어들을 한 번에 꿰는 어떤 일관된 논리랄까 관점이랄까 하는 것도 모호하여 각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작은 메시지들이 파편적으로 산재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나의 파편적인 이야기를 읽을 땐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그것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종합하려는 시도에서 여러 번 막히고 말았다. 이것은 내가 이 작품을 읽고 어떤 하나의 큰 메시지가 잡히지 않는다고 말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역시 하루키는 하루키구나'라는 생각을 공고히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관념과 몽상으로도 인간의 본성이나 심리를 해부하여 드러내는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렸다. '하루키는 역시 하루키'라는 말속엔 뼈가 있다. 그가 뛰어난 이야기꾼인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결론에 나는 결국 다다르게 되기 때문이다. 하루키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지만, 내겐 뭔가 부족하다. 아쉽다는 마음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내가 하루키를 더 읽을진 잘 모르겠다.

* 하루키 읽기
1. 노르웨이의 숲: https://rtmodel.tistory.com/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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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https://rtmodel.tistory.com/1913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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