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축복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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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축복 전 상실의 존재 의미.

오가와 요코 저, ‘우연한 축복’을 읽고.

이 얇은 단편집에 수록된 일곱 편의 에세이 같은 소설은 제목에서처럼 ‘우연한 축복’을 공통점으로 가진다. 축복은 일견 획득의 뉘앙스를 풍긴다. 우연히 찾아온 선물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획득 이전에 언제나 있었던, 그러나 번번이 잊히고 마는 상실의 존재를 조용히 일깨우고 작고 낮은 목소리로 덤덤하게 들려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삶이란 원래 그런 것처럼, 커다란 상실 뒤에 찾아온 우연 같은 축복을 감사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나를 찾아온 축복들을, 그 이면에 자리했을 상실들을, 그리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감사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감사를 회복한 상태로 맞이하길 바라면서.

상실 이후에 찾아온 선물 같은 축복. 잃었다 얻는 과정을 감히 축복이라 할 수 있는 까닭은 선행된 상실 덕분에 그 뒤에 찾아온 작은 축복이 깊은 의미를 가지고 우리의 삶을 이끄는 힘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감성과 이성을 모두 가진 인간에게 잃었다 얻는 과정은 바로 삶, 그 자체다. 그리고 축복은 ‘겨우 제자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침내 제자리’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제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마음. 나는 후자이길 조용히 바라본다.

#김영웅의책과일상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1244?category=751509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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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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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궐하고 사라지는 전염병, 끝까지 살아남는 인간의 본성.

정유정 저, ‘28’을 읽고.

이 작품은 화양이란 도시에서 28일 간 일어난 원인모를 에피데믹이자 인수공통전염병의 발단과 창궐을 주 배경으로 한다. 작품의 주인공 격인 서재형을 비롯한 몇몇 사람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심리와 본성을 파헤친다. 읽다 보면 언뜻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 혹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경험이 전무한 에피데믹이 돌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마련이다. 만약 COVID-19처럼 원인이 바이러스인 경우, 백신 개발에는 병원체 파악, DNA 나 RNA의 염기서열 파악, 백신 디자인, 예비실험, 오류 수정, 여러 차례에 걸친 검증 절차, 백신 대량 생산 등에 시간이 수개월 (길게는 수년) 소요된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주 기본적인 것들, 이를테면 손 자주 씻기, 타인과의 접촉 줄이기, 마스크나 장갑 등 개인보호장비 착용하기 이외엔 없다. 감염률, 격리율, 사망률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손실이다. 적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에 대항할 무기를 손에 쥐기 전에 희생자의 발생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 작품 속 에피데믹은 병원체가 무엇인지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많은 희생자와 사상자를 내고 종결에 이른다. 에피데믹의 발단과 종결의 과학적인 설명은 전무하다. 작가 정유정이 이러한 부분을 다루지 않은 건 아마도 전염병 자체가 아닌  전염병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야기된 인간 심리와 본성에 독자들이 더욱 집중하길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7년의 밤’에서 보여줬던 치밀한 서사, 그 안에 깃든 지독한 인간의 심리와 섬뜩하리만치 무서운 인간의 본성, 간결한 단문들의 휘몰아치는 연쇄는 그대로 유지된다. 독자들은 몰입하다 보면 빨라지는 호흡 때문에 문장을 미처 다 읽지도 않은 채 책장을 넘기게 될 것이다. 거대한 서사 가운데 팽팽하게 유지되는 긴장과 스릴은 과연 정유정 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먼저, ‘7년의 밤’과는 달리 이 작품은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무언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전염병은 28일 만에 종결되었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주요 이야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등장인물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주인공 격인 서재형도 죽었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도 소설의 결말의 미진함을 다 설명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무언가 한 끝이 모자란 것 같았다. 책의 중반에 들어서 살짝 긴장이 누그러지기도 하는데, 그건 아마도 정유정의 휘몰아치는 문체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또한, 결과 (혹은 미래)를 먼저 보여주고 원인 (혹은 과거)을 나중에 설명하는 식의 글쓰기 방식이 연거푸 반복되다 보니, 애초에 가졌던 호기심엔 약간의 짜증이 섞이기 시작했고, 친절하지 않은 글쓰기가 던져주는 신선함 대신 식상함이 그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었다. 여러 인물들의 개별 서사에 대한 병렬적인 소개로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장편을 채우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었다. 그중 서재형의 개별 서사에 초점을 두긴 했지만, 과거 알래스카에서 경험했던 아이디타로드 (죽음의 개썰매 경주) 서사와 서재형의 현재와의 연결점이 묘연하게 보였고 개연성마저 떨어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굳이 좋게 해석해보자면, 정유정이 드러내고 싶었던 인간의 심리와 본성은 전염병처럼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조용히 잠식하고 있다가 기회를 틈타 언제든 고개를 쳐드는 속성을 가진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종의 기원’이라는 책이 책장에서 대기 중이다. ‘28’보다는 ‘7년의 밤’과 같은 맛을 내길 바라본다. 

#은행나무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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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실루엣
미야모토 테루 지음, 이지수 옮김 / 봄날의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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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성을 겸비한 섬세함과 담백함.


미야모토 테루 저, ‘생의 실루엣’을 읽고.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을 읽은 지 거의 반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도 눈을 감고 그 작품에서 그려낸 한 남자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아무래도 사람의 뒷모습은 잔상이 오래가는 것 같다. 앞모습보다 언제나 더 외롭고 쓸쓸하다. 연민이 솟아오르고, 왠지 다정해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겨난다.

어떻게 된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환상의 빛’을 읽을 때나 읽고 나서나 지금까지 나는 미야모토 테루가 여자인 줄 알았다. 물론 소설만 보고서는 저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별해내는 게 항상 100퍼센트 정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작품을 읽고 나면 대충은 감이 오는 편인데, 유독 ‘환상의 빛’이라는 작품만은 내가 100퍼센트 잘못짚었던 것이다. 이번에 ‘생의 실루엣’이라는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미야모토 테루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럴 수가!

‘환상의 빛’의 화자가 환상의 빛을 쫓아 죽음으로 걸어갔던 남편의 뒷모습을 간직한 채 삶을 살아내고 있는 여자라서 그랬나 보다, 하며 나름대로 나 스스로를 납득시켜보려고 했지만,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마음에 앙금으로 남는다. 어떻게 남자가 이런 서정성을 겸비한 섬세함과 담백함을 표현해낼 수 있는지 아직도 나는 꿈을 덜 깬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나에게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남자도 이런 글을 쓸 수 있구나, 하는. 어쩌면 나도 가능할 수 있겠구나, 하는.

에세이는 소설과는 달리 작가의 시선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르다. 작가가 창조해낸 허구의 시공간이 매개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작가의 눈과 귀에 동참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좋은 에세이란 일상의 사소한 것들로부터 묵직한 울림을 주는 보편적인 통찰을 선보이는 글이다. 자칫 놓치거나 무심코 흘려버리기 쉬운 것들 가운데엔 언제나 소중한 것들이 들어있는 법이다. 에세이 작가는 이러한 소중한 일상의 조각들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주워 담아 관찰하고 그에 대한 성찰과 통찰을 글로 담아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에세이를 읽을 땐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작가와 동행한다는 심정으로 천천히 진도를 나가는 게 좋다. 서두르게 되면 자신의 일상에서도 놓쳤던 그 소중함 들을 에세이 안에서도 똑같이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이 요즘 조금씩 수정되고 있다. 나도 몰래 인정하고 있었던, 에세이 작가로서의 여성의 우월성도 어쩌면 한낱 편견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봄날의책
#김영웅의책과일상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1241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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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 더숲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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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서 저항하기 위하여.


델핀 미누이 저,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을 읽고.


이 책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그랬다. 이 함축적인 하나의 문장이 책의 거의 전부를 담고 있었다. 나는 딱히 덧붙일 말이 없다. 현실에서 있을법하지 않은 일이 공연한 역사적 사실임을 뒤늦게 깨닫게 될 때 느낄 수 있는 묵직한 한 방의 울림. 제삼자의 입장에서 고작 인터넷 뉴스 기사 몇 편으로 시리아 내전의 참혹함을 대충 주워들은 나는 이 책이 주는 무게를 감당할 재간이 없었던 것 같다. 더 깊은 공감을 하지 못함이 송구스럽기만 하다.


기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델핀 미누이는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며 책을 손에 놓지 않았던 시리아 젊은이들의 몸짓을 향해 감히 ‘매력적인 저항’이라고 표현했다. 총과 폭탄을 앞세운 폭력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사라져 가는 시공간. 그 시공간의 지하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책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좌표를 바로 알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내고 있는 그들의 조용한 몸짓. 그들의 삶은 조용하지만 묵직했다. 제한되었지만 갇히지 않았고 오히려 무한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폭력에 피하고 숨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비폭력으로 저항했다. 두려움과 현실과 무지에 저항했다. 


그들의 이러한 몸부림을 보면서 누군가는 그들이 마침내 현실감각을 잃고 몽상을 갈구한다고 함부로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두꺼운 역사책과 시와 소설이 담긴 문학책 등을 그 참혹한 폐허 가운데 읽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어제는 앞집 아저씨가 총에 맞아 죽었고, 오늘은 옆집이 폭탄에 맞아 가족 모두가 죽어나가는 현실에서 당신은 과연 숨어서 뉴스를 읽을 것인지, 아니면 역사와 문학을 읽을 것인지. 죽음이 바로 코 앞에 다가와있는 상황에서 현실감각을 키운다고 뉴스를 한 자라도 더 보는 게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 오히려 과거에 그 지옥과도 같은 비슷한 현실을 살아내고 이겨낸 사람들의 실화가 담긴 역사나 인간의 본성이나 심리가 깊이 투영된 문학작품, 소망의 메시지를 담은 시와 소설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시사에 능통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어쩌면 살 만하니까,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가거나 무미건조한 삶 위에서 부유할까 염려가 되니까 가능한 게 아닐까. 현실에 눈을 제대로 뜨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다라야 지하에서 연명하던 사람들의 상황처럼 이미 현실에 눈을 뜨고 말고 할 정도를 훌쩍 넘어선 상황에서도 과연 그 논리가 유용할까. 오히려 저 너머를 꿈꾸거나 삶의 끝까지 간 사람처럼 회한에 잠긴 채로 머물지 않고 아이처럼 새롭게 꿈을 꾸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처절한 현실에서 평화와 자유를 소망하는 방법에는 신문이 아니라 책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현실감각보다는 우선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들 중 살아남은 이들은 다라야를 무사히 벗어나서 새로운 삶의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그들이 침몰하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들이 만들고 누렸던 지하 비밀 도서관의 힘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폭력이 가져오는 공포와 두려움에 침몰되지 않기 위하여, 참혹한 현실에서 소망을 잃지 않기 위하여, 잠들지 않고 깨어서 저항하기 위하여. 바로 이것이 우리가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시리아 내전 상황에서 고통당했던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 여기, 우리가 서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도 유효한 메시지일 것이다.


#김영웅의책과일상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1238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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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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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시작.

요시모토 바나나 저, ‘키친’을 읽고.

미카게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그녀는 부엌을 보고 그 집이 어떤지 파악한다. 낯선 곳에서도 부엌과 친해지면 어려울 게 없다. 부엌은 그녀에게 있어 집이자 안식처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도, 숱한 삶의 냄새도 부엌은 항상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흡수하고 소리 없이 들려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갔다. 일찌감치 고아가 된 이후 미카게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할머니마저도 죽자 미카게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살아남은 건 미카게와 할머니의 흔적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부엌이었다.

이사하기 전 반년 정도 머물렀던 유이치의 집에서도 그녀를 가장 반겼던 건 부엌이었다. 그녀는 낯섦 가운데서도 그 집의 부엌이 맘에 들었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부모도 조부모도 모두 사라진 상황, 죽음이 다소곳이 그녀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상황. 그녀는 일어나 부엌을 청소하고 요리를 시작했다. 부엌은 다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미 죽은 자의 흔적이 아닌 현재 살아있는 자의 생기로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가 마음껏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이치와 그의 엄마 에리코가 있었다. 그들의 조용한 신뢰와 지지는 그녀에게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에리코가 살해를 당하자 유이치도 혼자가 되었다. 이번엔 미카게 차례였다. 미카게는 유이치의 허망한 마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 멍하니 시간만 보내고 있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작품의 끝, 혼자가 된 둘은 함께 보냈던 지난 반년의 기억의 연장선으로 돌입하게 된다. 해피엔딩의 전야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 이미 가족과도 같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인정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탐색하는 과정에는 음식이 있었다. 미카게가 요리하여 함께 먹던 음식. 문득 나도 아내와 매일 같이 하던 식탁이 그리워진다. 부엌은 일상이고 가족이며 사랑이며 치유다.

한 페친 덕분에 감사하게도 잔잔한 일상을 그림처럼 시처럼 풀어내는, 그러면서도 때론 절제된 송곳처럼 가슴 깊은 곳을 푹 찔러 공감을 유도하는 멋진 에세이 같은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여러 작가의 필체를 경험한다는 건 벅차도록 즐거운 일이다. 아무래도 나는 남성 작가보다 여성 작가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이 두 작품 ‘키친’과 ‘만월’에서도 느꼈다. 남성이라면 이런 글을 도저히 쓸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여자도 아닌데 이런 게 느껴져서 지금도 놀라고 있다. 상처를 받고 난 이후 미처 아물지 않은 상처를 그대로 안고서 일상을 꿋꿋이 살아내는 사람들. 왜 나는 이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남자보단 여자가 먼저 떠오르는 걸까. 아마도 내가 여성의 글에 더 끌리는 이유와 연결되어있진 않을까.

#민음사
#김영웅의책과일상

출처: https://rtmodel.tistory.com/1235?category=751509 [흩 어 진 행 복 의 조 각 을 찾 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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