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쓰기의 말들의 힘

은유 저, ‘쓰기의 말들’을 읽고

본인을 평범한 생계형 주부라고 하는 은유 (본명 아닌 필명) 작가는 글 좀 쓴다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은유 작가는 스스로를 국문과나 문창과나 신방과 출신이 아니며 별도의 창작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위에 언급한 전공 출신이 아닌, 숱한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도 그랬다. 나 역시 상황만 다를 뿐 그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작가 중 하나였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이다. 이 책을 사놓고 언제 한 번 읽어봐야지, 하다가 마침내 다 읽고 말았다. 버스 안에서 시작해서 버스 안에서 끝낸 나의 첫 책이기도 하다. 한 손에 잡힐 정도로 작은 판형이라 늘 메고 다니는 가방 안에 쏙 들어갔고, 순서대로 읽을 필요 없이 아무 데나 펼쳐 읽고 싶은 데를 읽어도 되었기 때문에 출퇴근 버스에서 읽기에 적당했다. 

글쓰기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글쓰기를 어떻게든 시작했고 앞으로도 지속하려는 의지를 가진 미래의 작가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에는 글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내용보다는 글쓴이의 고뇌와 현실, 글쓰기에 대한 사랑과 한이 적나라하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곳곳에 쓴 많은 문장들을 나는 구구절절 공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쓴다는 것에 대한 절박함과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이 내 삶을 그대로 도려내어 써놓은 것 같았다.  

이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유명인이 남긴 문장들 중 은유 작가가 고른 한 문장 (곧 쓰기의 문장들, 즉 쓰기의 말들)이 새겨져 있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 문장으로부터 흘러나온 그녀의 산문이 실려 있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방법이 아주 효과적이라는 점에 나도 동감한다. 책을 읽다가 훅 하고 들어오는 문장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 문장들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수집해놓으면 그 수집함은 글쓰기 보물단지가 되기 때문이다. 책에 밑줄 긋거나 형광펜을 칠하는 것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노트에 옮겨놓는 것. 글쓰기를 지속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습관이 아닐까 한다. 참고로, 나 역시 이 습관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104개의 문장들이 소개되어 있지만, 나에게 꽂힌 딱 한 문장을 골라봤다. 존 플랭클린이 했던 (혹은 썼던) 문장이다. 

“상투성은 문장에서 발휘되면 민망하지만 주제가 되면 핵심 요소로 변화한다.”

2년 전부터 조금씩 쓰고 있는 소설의 주제는 상투적이다. 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루는 나의 문장들을 나는 상투적이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내는 능력을 나는 소설가의 가장 큰 재주라고 생각한다. 존 플랭클린의 저 문장이 내 마음 깊숙한 곳을 조망한 것 같다고 생각한 이유다. 그리고 나는 평생 숙원일지도 모르는 내 소설을 위해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어떤 문장은 쓰기의 시작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이처럼 쓰는 사람의 마음을 조망하기도 하고, 앞길을 비춰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쓰기의 말들’의 힘일 것이다.  

#유유
#김영웅의책과일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
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을 훔치는 글: 황홀하도록 반짝이는 에세이

알베르 카뮈 저, ‘결혼’ 중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읽고

5년 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무더운 여름날, 캘리포니아에서 전철을 타고 일터를 향하고 있었다. 커다란 창으로 웅장한 산가브리엘 산맥이 보였고, 내 손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러나 황홀할 정도로 반짝이는 문장에 압도된 채 나는 열 페이지도 되지 않는 분량을 가득 메운 문장들을 읽고 또 읽었다. 아, 그 묘했던 기분이란! 그 글은 카뮈의 에세이, ‘결혼’의 첫 꼭지, ‘티파사에서의 결혼’이었다. 나는 금세 상상 속에서 아프리카 대륙 북단에 위치한 알제리로 날아갔고, 그곳의 태양에 눈부셔하고, 그곳에서 강렬하게 풍기는 압생트 풀 향에 취했으며, 그곳의 차가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가 온몸을 자연에 노출시키고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을 훔치는 글이 있다. 그 글이 새로운 번역가와 새로운 출판사를 만나 새 옷을 입고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나는 이 책을 사지 않을 수 없었고, 이 글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동은 그대로였다. 아니, 증폭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번엔 조각난 순간들이 아닌 화자의 동선을 따라 온전한 한나절을 치열하게 보내고 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음은 나에게 해석된 ‘티파사에서의 결혼’이다. ‘티파사에서의 결혼’은 아무래도 이 책의 백미일 것이고, 이렇게 따로 조그맣게 기념이라도 하는 의미에서 감상문을 남긴다. ‘결혼’의 나머지 꼭지들과 ‘여름’까지 읽고 나면 모두 모아 감상문을 한 번 더 쓸까 한다. 

1. 티파사에서의 결혼

뜨거운 태양과 강렬한 압생트 풀 향으로 가득한 티파사는 자연과 폐허의 왕국이다. 눈부신 빛과 야생의 향기에 취한 나는 과거의 교훈과 인간의 철학조차도 가소롭게 느껴지는 장엄한 자연과 바다의 세계가 내뿜는 숨결에 호흡을 맞춘다. 듬직한 슈누아 산이 보이고 마을 전체가 조망되는 티파사의 폐허에서 나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봄에 티파사에 머무는 신들은 하객일 뿐이다. 나는 인간을 대표하여 자연과 폐허의 왕국에서 세계와 결혼을 한다. 세계와 하나가 되기 위해 마침내 나는 벌거벗고 바다에 뛰어든다. 여름이 오기 전 바닷물은 아직 차갑지만, 태양의 뜨거움과 바다의 차가움 속을 오가면서 나는 내 삶을 무제한으로 사랑할 권리를 깨닫는다. 아, 이 영광스러운 순간이란! 세계와 하나 됨으로써 나는 내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사랑하게 된다. 영겁과 같은 찰나의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나는 항구 근처의 작은 카페에 앉아 초록색 아이스 민트티를 큰 컵으로 한 잔 마시고, 베어 물면 과즙이 턱까지 흠뻑 적시는 복숭아를 먹는다. 먹고 마시는 이 피로연에서 나는 또다시 삶의 기쁨을 즐기고 행복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신들과 마찬가지로 티파사도 하객일 뿐이다. 오늘 나의 결혼을 증언해 줄 듬직한 존재들. 인간과 세계의 결혼을 목격한 산 증인들. 저녁이 찾아오고 피로연도 끝이 나면 나는 국도 근처에 위치한 공원 한구석을 찾는다. 선선해진 대기에 차분해진 정신으로 나는 충족된 사랑에서 비롯된 내면의 침묵을 음미한다. 인류를 대표해 치렀던 세계와의 결혼식을 떠올리며 나는 내 배역을 훌륭히 수행했음을 깨닫고, 밀려드는 기쁨에 몸을 떤다. 내 몸은 사랑으로 인해 세계로 가득 차고 세계와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곧 밤이 오고 다른 신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내내 그랬듯이 침묵할 것이다. 두 발을 대지에 딛고 있지만, 입가엔 만족스럽고 초월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녹색광선
#김영웅의책과일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 아름다움은 인간을 구원하는가
조주관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 덕분에 더 깊고 풍성해지는 글


조주관 저,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을 읽고

예술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걸까. 어떤 작가가 음악 혹은 미술을 좋아했다거나 거기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나는 동일한 생각을 하게 된다. 글을 쓰는 것도, 곡을 쓰는 것도, 미술작품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도 모두 창조의 행위에 속하며 그것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고뇌를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 쓰는 작가의 음악과 미술에 대한 사랑은 텍스트로 그 흔적이 남게 된다. 수많은 소설에서 음악이나 미술에 관계된 재료들 (이를테면 예술작품이나 예술가)이 빈번하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작품 ‘황야의 늑대’, ‘유리알 유희’, ‘게르트루트’에서 음악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로스할데’에서는 미술을 적극 활용하여 내러티브를 살려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녹턴’,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에서 음악을,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에서 미술을 주재료로 삼아 그의 문체를 녹여냈다. 

도스토옙스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음악보다는 미술작품을 감상, 비평하는 (그림을 글로 번역해 내는) 일에,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작중인물을 노트에 직접 스케치하는 일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한 미술품을 언급하며, 그 미술품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해석을 통해 그 작품들을 재방문하여 여태껏 몰랐던 숨은 의미를 알려주고, 가볍게 넘어갔던 부분들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안내자다. 특별히,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으며 거룩함과 아름다움과 어리석음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 ’백치’, 악령과도 같은 이념과 사상의 환상을 보여주며 러시아의 회복을 소망하는 작품 ‘악령’,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정수가 녹아있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소개되는 숱한 미술작품들을 보며 나는 내 안에서 다시 이 모든 작품들이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작품은 동일하나 또 다른 렌즈를 장착한 독자에겐 재독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대학생 때 교양으로 배웠던 세계미술사 시간을 나는 사랑했다.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감명 깊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듣던 클래식 음악은 지금도 가장 즐겨듣는 음악 장르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미술관에 들러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는 순간은 내겐 소중한 삼찰의 시간이 된다. 나 역시 미천한 수준이지만 작가로서 음악과 미술작품을 대하면서 그것들로부터 영감을 얻곤 하는 것이다. 헤세도, 이시구로도, 그리고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하는 나는 그들의 예술 사랑도 사랑하게 된다.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를 이해하고 그들의 작품을 더 깊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도스토옙스키 읽기
1. 죄와 벌: https://rtmodel.tistory.com/811
2. 백치: https://rtmodel.tistory.com/815
3. 악령: https://rtmodel.tistory.com/879
4. 미성년: https://rtmodel.tistory.com/928
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https://rtmodel.tistory.com/1068
6. 죽음의 집의 기록: https://rtmodel.tistory.com/1087
7. 가난한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153
8. 분신: https://rtmodel.tistory.com/1159
9. 지하로부터의 수기: https://rtmodel.tistory.com/1171
10. 노름꾼: https://rtmodel.tistory.com/1174
11. 도스토옙스키 (by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https://rtmodel.tistory.com/1077
12.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177
13.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by 이병훈): https://rtmodel.tistory.com/1194
14. 매핑 도스토옙스키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58
15.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362
16.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by 도제희): https://rtmodel.tistory.com/1388
17.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396
18. 상처받은 사람들: https://rtmodel.tistory.com/1429
19. 악몽 같은 이야기: https://rtmodel.tistory.com/1435
20. 악어: https://rtmodel.tistory.com/1436
21. 인간 만세! (by 석영중): https://rtmodel.tistory.com/1488
22.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by 슈테판 츠바이크): https://rtmodel.tistory.com/1625
23.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by 조주관): https://rtmodel.tistory.com/1644

#arte

#김영웅의책과일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렐란드라 C. S. 루이스의 우주 3부작 2
C. S. 루이스 지음, 공경희 옮김 / 홍성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낙원이 아닌 낙원의 이미지를 금성에서 구현하다

C. S. 루이스 저, ‘페렐란드라’를 읽고

‘우주 3부작’의 1부 ‘침묵의 행성 밖에서’가 1938년에 출간되고, 5년 뒤인 1943년에 2부 ‘페렐란드라’가 출간된다. 그 사이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1942년 출간)’를 출간했고, ‘페렐란드라’와 같은 해에 ‘인간폐지’를 출간한다. 5년간 그는 3권의 책을 쓴 셈이다. 루이스의 첫 저서, ‘순례자의 귀향’이 1933년에, 마지막 저서, ‘폐기된 이미지’가 1964년에 출간되었으니, 30년 남짓 루이스는 3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으며, 평균 1년에 적어도 1권을 출간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주 3부작’의 1부와 2부 사이인 5년간 3권의 출간은 평균 이하라 볼 수 있다.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하고 살짝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마침 그 시기가 제2차세계대전 기간과 대부분 겹친다는 사실을 알고 나의 염려는 이내 감탄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알고 보니 같은 시기에 루이스는 나중에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으로 묶일 라디오 방송까지 했다. 그러므로 5년간 3권밖에 못 낸 게 아니라, 그 와중에도 3권이나 냈구나!,라고 반응해야 적절할 것 같다.


루이스도 밝히고 있지만, 2부 ‘페렐란드라’는 1부 ‘침묵의 행성 밖에서’를 읽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이야기를 가진다. 굳이 순서를 바꿔서 읽겠다거나, 3부작 중 2부만 읽겠다는 고집만 부리지 않는다면, 1부를 읽고 2부를 읽는 게 훨씬 매끄러울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나 보군’으로 대충 넘어갈 것들이 ‘그래서였군’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1부의 주요한 공간적 배경은 ’말라칸드라’, 즉 화성이었다. 2부의 제목이기도 한 ’페렐란드라‘는 금성이라는 뜻으로써 2부의 공간적 배경이 된다. 주인공은 랜섬, 악역은 웨스턴으로, 비록 다른 악역이었던 드바인이 빠졌지만, 1부와 같다. 즉, 2부에서 랜섬과 웨스턴의 대립구도는 공간만 바뀔 뿐 1부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리고 그 대립구도는 랜섬이 선, 웨스턴이 악으로 뚜렷하게 그려진다. 랜섬은 창조주이자 기독교의 하나님에 해당하는 말렐딜에게 순종하여 쓰임 받는 인물로서 화성에서처럼 금성에서도 타 생명체들을 존중하며, 언어학자답게 예부터 존재했던 태양계 언어로 그들과 소통한다. 한편, 1부에서 똑똑하고 무모한 물리학자이자 냉혈한이었던 웨스턴은 2부에선 악에게 몸을 내주어 철저하게 이용당하는 매개체, 다시 말해 성경에서 ‘귀신 들린 자’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일개 귀신이 아니라 그들의 우두머리이자 악마라고 불리는 영적 존재를 담아내는 육체로 등장한다. 그 악마가 랜섬에게 자신을 드러낼 때 했던 말에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선은 지키려 하고 악은 파괴하려 한다,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이 작품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랜섬은 말라칸드라에서 했던 것처럼 페렐란드라에서도 지키는 역할을 감당한다. 1부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1부에서는 드바인과 웨스턴에 의해 강제로 말라칸드라에 잡혀가서 그 일을 감당했고, 2부에서는 말렐딜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함으로 페렐란드라에 가서 그 일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전제가 되는 건 말라칸드라든 페렐란드라든 모든 게 말렐딜에 의해 창조된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랜섬이 지킨 건 단순히 말라칸드라 혹은 페렐란드라가 아닌 창조세계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랜섬은 강제로 말라칸드라에 끌려가서 타 생명체를 접하고 두려움과 놀라움을 느꼈지만, 자발적으로 페렐란드라에 와서는 경이의 눈으로 타 생명체를 맞이할 수 있었다. 1부에서도 결국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2부에서 랜섬은 전혀 몰랐다. 누구를 만나게 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언제까지 머물러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그저 말렐딜의 뜻에 자기 몸을 맡기고 순종한 것이었다. 이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나게 하는데, 나는 루이스가 의도적으로 랜섬이 어떤 사람인지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 이런 패러디를 이용한 거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랜섬은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함 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랜섬은 이 작품 속에서 예수님과 비슷한 역할도 감당하게 된다. 페렐란드라를 악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악마가 들어앉은 웨스턴을 결국엔 물리쳐 악마에게 승리했으며, 웨스턴에게 발목을 붙잡혀 죽음을 상징하는 지하 깊숙한 곳으로 함께 떨어진 지 사흘 만에 가까스로 빛이 있는 곳으로 나와 마치 부활을 경험한 것처럼 죽었다가 다시 사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웨스턴과 싸우다가 온몸에 상처를 입게 되는데, 가장 치명적인 상처이자 가장 나중에 치유되는 부위가 발꿈치라는 점 또한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온 ‘여자의 후손’이 금성 버전에서는 바로 랜섬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루이스의 의도라 생각된다. 참고로, 랜섬을 영어로 쓰면 우리말로 몸값에 해당하는 Ransom이다. 루이스의 치밀한 설계에 나는 또 한 번 감탄한다.

기독교의 상징과 알레고리는 이것만이 아니다. 랜섬이 페렐란드라에서 처음 만난, 이성을 가진 생명체는 초록 여인인데, 창세기 1-2장에 등장하는 에덴동산 속 하와에 해당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웨스턴이 우주선을 타고 날아와 페렐란드라에 착륙하고 악마에게 몸을 내어준 뒤 끊임없이 유혹의 말을 건네는 대상도 바로 초록 여인이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하는 장면과 겹치는 대목이다. 랜섬은 창세기 1-2장의 에덴동산을 지키기 위해 3장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뱀의 유혹으로부터 하와를 보호하려는 역할이 자기의 사명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는 목숨을 걸고 그 사명을 달성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랜섬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엘딜들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사명이라 믿고 말렐딜을 처음부터 끝까지, 비록 의심 속에 빠지는 순간이 간간이 있었지만, 신뢰했다는 사실이다. 랜섬이 혼자서 했던 수많은 생각 중에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자기 자신이 실패해도 멜렐딜의 뜻은 결국 성취될 거라고 믿는 것. 이 대목에서 나는 이해하지 못해도, 때론 버려진 것처럼 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이 느껴져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삶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이 창세기 1-3장의 배경인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패러디한 사실을 알게 되면 17세기에 써진 밀턴의 ‘실낙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읽지 않은 루이스의 작품 중 ‘실낙원 서문’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된 해가 ‘페렐란드라’가 출간되기 1년 전인 1942년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작품을 쓰기 전 루이스는 이미 실낙원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마친 상태였다. 또한, 루이스가 그의 첫 소설 ‘순례자의 귀향’을 쓸 때 17세기 존 번연의 작품 ‘천로역정’을 패러디했던 것처럼, 이 작품을 쓰면서 밀턴의 ‘실낙원’을 패러디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루이스 버전의 실낙원, 페렐란드라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지만 말이다. 루이스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즉 금성에서 실낙원이 아닌 낙원의 이미지를 구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제 ‘우주 3부작’ 중 가장 긴 3부 ‘그 가공할 힘’이 남았다. 화성도 금성도 아닌 지구를 다룬다고 한다. 돌고 돌아 다시 지구인 셈이다. 1, 2부를 모두 읽어서 그런지 더욱 기대가 된다. 

* 루이스 읽기
1. 예기치 않은 기쁨: https://rtmodel.tistory.com/682
2. 고통의 문제: https://rtmodel.tistory.com/695
3. 헤아려 본 슬픔: https://rtmodel.tistory.com/699
4.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https://rtmodel.tistory.com/822
5. 천국과 지옥의 이혼: https://rtmodel.tistory.com/852
6. 순전한 기독교: https://rtmodel.tistory.com/911
7. 시편 사색: https://rtmodel.tistory.com/942
8. 순례자의 귀향: https://rtmodel.tistory.com/1164
9. 순전한 그리스도인 (by 김진혁): https://rtmodel.tistory.com/1176
10. 세상의 마지막 밤: https://rtmodel.tistory.com/1629
11. 침묵의 행성 밖에서: https://rtmodel.tistory.com/1633 
12. 루이스가 메리에게: https://rtmodel.tistory.com/1635
13. 페렐란드라: https://rtmodel.tistory.com/1637 

#홍성사 
#김영웅의책과일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이스가 메리에게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14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친근하게 다가온 루이스

C. S. 루이스 저, ‘루이스가 메리에게’를 읽고

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듯, 이 책은 처음부터 책으로 의도된 게 아니라, 루이스가 51세가 되던 1950년부터 세상을 떠나던 해인 1963년까지 그가 메리라는 한 미국 여성 작가에게 쓴 편지들의 모음집이다. 루이스는 평생 투덜거리면서도 꾸준히 많은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루이스의 명성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의 성실함과 겸손함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루이스는 편지를 많이 받은 것만이 아니라 그 많은 편지들에 대한 답장에 게으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가 쓴 수많은 답장 중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루이스의 저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기독교 변증서, 소설, 그리고 전공 관련 학술서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겐 변증서와 소설이 많이 소개되어 있는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그러한 루이스의 고유한 매력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독자가 어떤 계층이나 집단이 아닌 단 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먼저 쓴 편지가 아니라 답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루이스는 스스로도 자기는 편지 쓰기 싫어하는 숱한 남자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답장을 놓치지 않는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일정 시간을 늘 할애하여 그렇게 답장을 했다는 사실로부터 루이스는 이를 일종의 사명 같은 거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읽다 보면, 한두 단락 정도밖에 안 되는 그 짧은 답장에서도 자기가 너무 바쁘다는 둥 써야 할 답장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둥 불평을 하는 루이스의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그가 가장 싫어하는 시즌은 크리스마스 경인데, 이는 편지 양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많아져 답장 쓰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어쨌거나 루이스는 답장을 사명처럼 대부분은 다 써낸 것 같다.

변증서에서 보이는 예리함이나 소설에서 보이는 탁월한 상상력과 비유 등은 이 책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루이스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으며, 그가 주위 사람들을 어떤 자세로 대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루이스는 고집이 있으면서도 타자를 존중했으며 친절하고 신사적인 모습으로 일관했던 것 같다. 루이스 같은 선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루이스를 닮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군데군데 역시 루이스구나, 하는 통찰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들은 평소에 그가 가진 생각이 그저 흘러나온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문장들에 밑줄을 긋고 몇몇은 노트에 옮겨놓았다. 그는 정말 깊은 사유를 통해 얻은 통찰력을 가진 아주 드문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다시 한번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에 감사를 느낀다.

이 책이 의미가 있는 점 중 한 가지는 그가 노년에 쓴 편지들의 묶음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수신자인 메리 역시 노년기에 속했는데 서로 노화의 과정을 겪어가며 서로 기도하며 은총과 축복을 비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늘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루이스의 모습은 그가 말과 글만이 아닌 일상에서도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가 아는 그의 저서 중 거의 절반이 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놀라게 될 것이다.

한동안 루이스를 읽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요즈음 루이스를 자주 읽게 된다. 참고로, 이 책을 읽고 나니 루이스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도 더 빨리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루이스 읽기
1. 예기치 않은 기쁨: https://rtmodel.tistory.com/682
2. 고통의 문제: https://rtmodel.tistory.com/695
3. 헤아려 본 슬픔: https://rtmodel.tistory.com/699
4.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https://rtmodel.tistory.com/822
5. 천국과 지옥의 이혼: https://rtmodel.tistory.com/852
6. 순전한 기독교: https://rtmodel.tistory.com/911
7. 시편 사색: https://rtmodel.tistory.com/942
8. 순례자의 귀향: https://rtmodel.tistory.com/1164
9. 순전한 그리스도인 (by 김진혁): https://rtmodel.tistory.com/1176
10. 세상의 마지막 밤: https://rtmodel.tistory.com/1629
11. 침묵의 행성 밖에서: https://rtmodel.tistory.com/1633 
12. 루이스가 메리에게: https://rtmodel.tistory.com/1635

#홍성사
#김영웅의책과일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