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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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상실, 기억을 덮는 사랑

폴 오스터 저, ‘바움가트너’를 읽고

죽음, 상실, 그리고 기억. 이 책이 내게 남긴 세 단어다. 커다란 상실을 겪은 후 암 투병으로 홀로 죽음을 앞두고 있던 폴 오스터가 남긴 마지막 단어들, 혹은 인간이라는 필멸의 존재자에게 던져진 보편적인 단어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는 누구나 이 세 단어를 떠올릴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인생을 절반 이상 살아버린 사람들은 이성을 뛰어넘어 가슴으로 곧바로 전해지는 묵직한 그 무엇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은 바움가트너가, 환지통을 겪을 만큼 큰 상실을 겪은 바움가트너가, 폴 오스터의 분신이기도 한 바움가트너가 조용히 읊조리고 가만히 되뇌는 인생은 다름 아닌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근사해 보인 적이 있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러다 마흔을 넘긴 어느 날, 절반의 물이 컵 꼭대기보다 바닥에 가까워 보였다. 나이 들어간다는 말보다 늙어간다는 말이, 오래 살았다는 말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내가 상관하지 않을 수 없는 말로, 때로는 폭력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들리기 시작했다. 두려웠던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두려워했던 걸까. 모든 필멸의 인간에게 주어진 존재론적 불안의 근원, 죽음이 성큼 나의 조그만 레이더망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결혼식보다 장례식에 참석하는 날이 늘어나면서 죽음이 늘 내 주위에 맴돈다는 사실에 나는 익숙해져야 했다. 나이 든다는 건 죽음에 익숙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과거의 흩어진 기억들이 지금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불쑥불쑥 나를 급습하곤 한다. 죽음에 가까울수록, 상실이 깊어질수록 기억하는 시간도 많아지는 듯하다. 집착일까, 애착일까. 둘을 구분할 수는 있는 걸까. 죽음과 상실이 나의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혹은 내게 소중했던 사람들의 것이어도, 아니 오히려 그런 죽음과 상실일수록 더욱더 그 효과는 증폭되는 것 같았다. 그럴 때의 기억은 나의 기억만이 아닌 우리의 기억으로 확장되기 때문이었다. 바움가트너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인생은 아내의 죽음 전후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 아내를 잃은 이후 그는 반만 살아있는 사람으로, 반은 죽어있는 채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의 기억은 아내와의 기억이었다. 

기억은 이상하다.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통째로 기억에서 자주 사라지는 반면, 시시콜콜하고 별거 아닌 것들은 공감각적으로 생생하게, 어떤 것은 초단위로도 기억된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체도, 기억하는 주체도 모두 나인데, 왜 이 두 주체는 내 안에서도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바움가트너를 관통하는 기억은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아내가 죽고 그는 아내가 자신의 일부였음을 체감하게 된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여전히 잃어버린 그 부위의 고통을 느끼듯 바움가트너는 아내의 상실로 인해 환지통을 겪는다. 환지통!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피부에 와닿도록 절절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나는 그런 바움가트너를 보고 그가 아내를 진정으로 많이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려자와의 이별은 피할 수 없다. 누가 세상을 먼저 떠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죽음보다 이별이야말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고통이지 않을까. 아내가 죽은 지 십 년이 지난 작품 속 현재, 바움가트너의 일상은 평범한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는 자잘한 많은 것들에도 요동한다. 무엇 하나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마치 원래 붙어있던 팔다리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그는 죽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고, 세상에서 가장 큰 상실을 겪은 자로서 과거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피할 수 없고 제거할 수 없는, 뼈에 새겨진 각인이다. 

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숙고할 수 있었다. 바움가트너의 아내 애나는 많은 글을 남겼다. 그 글의 세상 속에서 바움가트너는 아내를 이미지 없는 이미지로 기억한다. 그리고 함께한다. 그녀의 옷가지들을 끝내 다 치워버려도 글만은 그러지 못한다. 아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글은 그녀가 남긴 그 무엇이 아니라 그녀의 한 부분이었을 테니까.

이제 이 책이 남긴 세 단어는 내 안에서 한 단어로 압축된다.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작품 내내 죽음과 상실과 기억이 혼재되어 숭고함이 느껴질 정도로 차분한 마음이 되었지만,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이 되니 모든 게 사랑이라는 단어로 채색되는 것 같다. 그렇다. 폴 오스터는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바움가트너’라는 글로 우리들에게 죽음도 상실도 기억도 아닌 사랑을 남긴 것이다.

언젠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나는 글을 쓰고 있길 바랐다. 그러나 그 글이 무엇을 말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내 글도 나지막이 사랑을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죽음, 상실, 기억을 덮고도 남는 사랑을.

#열린책들 
#김영웅의책과일상 

* 폴 오스터 읽기
1. 뉴욕 3부작 중 유리의 도시: https://rtmodel.tistory.com/1788
2. 뉴욕 3부작 중 유령들: https://rtmodel.tistory.com/1791
3. 뉴욕 3부작 중 잠겨 있는 방: https://rtmodel.tistory.com/1794
4. 빵 굽는 타자기: https://rtmodel.tistory.com/2048
5. 바움가트너: https://rtmodel.tistory.com/m/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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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사생활 - 업무일지가 이렇게 솔직해도 괜찮을까?
고우리 지음 / 미디어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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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만드는 일

고우리 저, ‘편집자의 사생활‘을 읽고

’사생활’이라는 단어는 묘한 매력이 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몰래 알고 싶은 마음이 거의 동시에 든다. 나의 사생활은 보호받고 싶지만, 타인의 사생활은 궁금한 이런 마음은 아마도 인간의 양면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제목에서부터 이 단어가 들어가 관심이 갔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관심 없는 척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론 관심이 가는 것. 마치 양손으로 두 눈을 가렸지만 조심스레 한 손가락씩 벌려 보게 되는 마음과 같달까.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책에 관련된 내용이라, 게다가 최근에 읽었던 정아은 작가의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를 출간했던 마름모 출판사 대표의 자서전적 이야기라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알고 바로 구했다. 

가족을 만나러 엘에이행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첫 식사가 준비될 즈음이었으니 두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저자의 필력이 좋았다. 술술 읽히는 문체였다. 정아은 작가도 언급했던 것 같은데, 편집자가 작가만큼 혹은 작가보다 글을 잘 쓴다는 게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진정성‘이 글 전체에 녹아 있어 마치 내가 편집자라도 된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독자로부터 흡입력을 이끌어내는 건 전적으로 작가의 내공이라 믿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편집자의 일상이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의외로 멋지게 다가왔다. 편집자가 쓴 다른 책을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이 책은 편집자의 일이 알고 보면 이런저런 일인다역을 소화해야 하느라 엄청 힘든 일이랍니다, 돈도 안 되고요, 하는 뉘앙스가 강조하지 않았고, 대신 편집자라는 직업이 의례히 가져야 할 것만 같은 어떤 ’숭고함’이랄까 하는, 물론 누군가에겐 낭만으로 보일 수도 있을, 비물질적 가치를 소중히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오히려 편집자라는 직업이 내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숭고함을 저버린 물질주의적 직업인에게서는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저자는 우스갯소리로 10층 빌딩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목표도 좋게 보였다. 저자 같은 편집자(이자 작가이자 일인출판사 마름모 대표)라면 그래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돈 흘러가는 데만 눈이 밝은 자들로부터 그 빌딩을 꼭 사수하길 바라게 되었다(물론, 먼저 지어야 하겠지만^^). 한 번도 함께 작업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은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적어도 그런 믿음과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책은 상품이다,라는 명제는 참이다. 하지만 이 명제는 책이라는 고유한 가치를 다 담아내진 못한다. 책은 상품이긴 하지만 상품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이런 가치를 알고 존중하고, 나아가 먹고사니즘이 지향하는 자본주의적 가치와 종종 부딪치더라도, 끝까지 지켜내고 싶어 하고 또 지켜내고야 마는 편집자 혹은 출판사의 존재가 많아지면 좋겠다. 돈을 벌어주는 책이 아닌 그야말로 ‘좋은‘ 책,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책, 꼭 읽히면 좋을 책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베스트셀러’의 퇴색된 의미가 사라지고 좋은 책이 많이 팔리고 읽히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내는 출판사들이 잘 되면 좋겠다. 더불어 편집자의 일상(사생활)은 곧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이라는 명제도 참이길 바란다.

#미디어샘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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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준 것 마음산책 짧은 소설
문지혁 지음, 박선엽 그림 / 마음산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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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성장, 작품으로 말하다

문지혁 저, ‘당신이 준 것’을 읽고

KISS
거의 이십 년 전 대학원 워크숍에서 썼던, A4지 한 장 정도 분량의 초단편 소설. 첫 문장부터 긴장과 스릴을 조성하다가 외통수의 마지막 문장으로 끝나는 강렬한 작품. 제목의 철자를 다시 보게 되고 작품 속 공간이 어딘지 재차 확인하게 되는 이야기. 초단편 소설은 이렇게 써야 하는구나, 하는 걸 보란 듯 보여주는 작품.

강과 맥주
완결성을 갖는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의 아주 작은 한 장면을 묘사한 듯한 작품.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며 맥주만 홀짝거리는 한 남자와 마음이 이미 많이 멀어진 듯, 식은 듯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가야 한다며 먼저 일어나 가버린 여자. 여자의 맥주는 거의 마시지도 않은 상태였다. 시간은 남자와 여자에게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맥주를 세 캔이나 마시던 남자에게 시간은 홀짝대는 만큼 멈추고 있었으나, 맥주를 거의 마시지도 않은 채 침묵을 지켰던 여자에게 시간은 무겁고 느리게 계속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먼저 입을 열고 일어나 가버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더 이상 시간을 멈출 필요가 없어진, 홀로 남겨진 남자는 여자가 남긴 맥주를 마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강물에 그냥 흘려보낸다. 하지만 네 개의 빈 캔은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간다. 미련이었을 것이다. 

7초만 더
기다리던 메시지는 그녀에게 고백을 한 뒤 2주 만에 왔다. 유니온 스퀘어에서 만나자는 건조한 텍스트가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 그는 평소에 타지 않던 라인의 지하철을 타고 약속장소로 향한다. 운명이었을까. 그가 무작위로 튼 곡 제목은 ‘추억과 함께 영원히 둘로 남는다’였고, 같은 칸에 타고 있던 방화범의 방화로 그는 곡이 끝나기 7초 전 생을 마감한다. 7초가 더 지나도 달라질 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가 바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던 것 같다. 마치 그 곡을 끝까지 들으면 혼자가 아니라 둘로 남을 수 있을 것처럼 여겨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결국 ’추억과 함께 영원히‘까지만 듣고 ‘둘로 남는다‘는 듣지 못했다. 

굿나잇, 웨스트엔드
외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덴마크 출신의 교사 라리사를 화자는 종강파티 2차를 가기 직전에 찾는다. 그녀의 집으로 택시를 타고 달린다. 건물에 도착했으나 어느 집이 그녀의 집인지 모른 채, 머릿속에서 많은 문장을 만들었지만 우물쭈물하다가 전화도 하지 못하고 그는 문자 하나만 달랑 넣고 만다. Good night. 그리고 다시 2차 장소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남자가 애절하다는 느낌보다 찌질하다는 생각이 남는 작품. 아마도 내가 더 이상 이십 대가 아니라 그런 것이리라.

싱글 허니문
청첩장도 돌리고 여러 예약도 하고 신혼여행도 예약한 젊은 예비부부 이야기. 예비 신부는 결혼 3주 전 급작사로 세상을 떠난다. 아내가 될 여자가 사라진 ‘무의미‘와 싸우면서 어쩌다 혼자 살아남게 된 남자는 여자가 도맡아 준비했던 신혼여행을 취소하지 않고 혼자 떠나기로 한다. 세계 3대 야경을 볼 수 있는 한 곳, 하코다테였다. 호텔에만 처박혀 있다가 체크아웃을 하고 전망대에 오른 그는 호텔에서 썼던 편지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홀로 선 전망대에서 날린다. 까마귀 떼가 그것을 잽싸게 잡아채 하강하는 장면을 목도한다. 그리고 그는 저녁 비행기 시간에 개의치 않고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서 있는다. 죽은 예비 신부의 전령이었을까. 야경을 보지도 않고 돌아가려는 남자를 사로잡는 그 장면은. 

핏자국
카페에서 발견한 핏자국을 ‘그 핏자국‘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바로 소설을 쓰는 일임을 말해주는 이야기. 문지혁 작가의 짧은 수업을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저자인 듯한 화자는 정체 모를 핏자국으로부터 남녀 사이의 이별 장면을 상상하며 손목을 그은 여자를 떠올린다. 그렇다. 아주 작은 재료로도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소설은 그런 것이다. 

얼음과 달
‘핏자국’에 이어 허구적 상상력은 이렇게 작동하는 거다,라는 예시를 보여주는 작품. 한 여자에게 술을 얻어 마시고 잠에서 깼는데 얼음 욕조 안에 있더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 그 남자는 신장을 도둑맞은 직후였다. 그리고 매일 괴물이 되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상황이 연출되고 끝내 살아남게 되는 한 여자의 이야기. 여자가 가까스로 탈출한 날 밤은 언제나 붉은색의 만월이었다. 화자가 술집에서 그 여자와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여자가 먼저 떠나고 밖을 나왔는데, 갑자기 코가 사라진 남자가 와서 자기 배를 찌른다. 하늘을 보니 붉은빛 만월이었다. 단편소설만이 줄 수 있는 이런 과감하고 조각난 상상력의 향연.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 식의 소설을 읽고 나면 똥 싸고 제대로 닦지 않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무책임함’이 단편소설의 독특한 맛이리라.

당신이 준
이야기가 막 진행되려 하는 차에 끝나버리고 마는 듯한 소설. 예전에 선물 받았던 오르골의 의미를 소설이 조금만 더 진행이 되면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아 아쉬운 작품. ‘당신이 준 시간‘이라는 메시지도 모호하기만 한 작품. 몇 페이지만 더 저자가 써줬으면 싶었던 이야기.

체이서
SF 소설. 안드로이드인 주인공은 탐정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은 가인과 아벨 이야기부터 시작된 오래된 일이지만, 안드로이드가 안드로이드를 대하는 방식도 작품 속에서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설정이다. 살인사건 해결로 목돈을 마련하여 안과 수술을 받으려는 주인공 안드로이드와 그와 친분이 있는 경찰 안드로이드 프랭크. 프랭크는 주인공이 안과에서 마취를 당했을 때 이용당했음을 간파해 내고 주인공을 살인사건 용의자로 체포하려 한다. 기지를 발휘하여 주인공은 프랭크를 공격하고 서로의 칩을 맞바꾸는 선택을 한 뒤 실행에 옮긴다. 안드로이드에게도 정체성이란 게 있는지, 중요한지,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묻는 듯한 이야기. 이 책을 구성하는 열두 편의 짧은 소설 중 꽤 긴 작품임에도 내겐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여전히 모호하게 다가왔다. 장편으로 확장하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을 했다.

홀 시커
역시 SF. 외계인은 물론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공간 속 이야기. 주인공은 가방 속 알 수 없는 책 한 권을 읽으며 먼 출장길에 오른다. 그 책은 지구동공설에 관련된 책이었고, 언젠가 사라졌다던 할아버지 이름도 적혀 있었다. 주인공의 아버지 역시 우주 싱글라이딩을 하다가 어느 날 돌아오지 않은 채 행방불명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듯한, 아버지가 마지막 모습을 보였던 좌표 가까이 가게 된 주인공은 자신이 가지고 간 혈액샘플이 반지 형태로 가운데 구멍이 생긴 모양새를 하게 된 것을 샘플 문제로만 여겼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블랙홀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지구의 구멍을 찾는 자, 홀 시커를 우습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홀 시커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작품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우주의 구멍 블랙홀을 찾게 되고 빨려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지구의 구멍과 우주의 구멍을 연결시킨 이야기. 앞뒤의 연결에 어색하고 뜬금없다는 인상이 강했던 소설. 역시 장편으로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이 책에 실린 열두 편의 작품 중 긴 편에 속하는데 읽는 내내 엉덩이에 힘을 뺄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이 강했던 소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의 전개는 물론 불친절한 연결조차 작품성을 더 훌륭하게 만든 것처럼 느껴졌던 작품. 완전한 결론이 나지 않아 여전히 궁금함이 남았지만, 정유정의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까지 든 수작이었다. 다이아몬드와 연필의 대비도, 꽃반지와 다이아몬드 반지의 대비도 그 상징성을 잘 드러내 주었다. 택배 주인을 알게 되기까지의 주인공 부부의 모습들에서도 나는 인간 본성과 심리를 통찰할 수 있었다. 문지혁 작가가 이런 유형의 소설을 장편으로 쓰면 딱이겠다는 강렬한 생각이 들었다. 써주세요 작가님~ 제2의 정유정 작가로~

멸종과 생존
이 책의 저자인 문지혁 작가가 등장하는 소설. 그러나 시간대는 현재가 아니다. 살짝 디스토피아의 뉘앙스마저 느껴지는, 몇 년 혹은 몇십 년 뒤일까, 아니 오지 않길 바라야 하는 시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북토크를 한다. 종이책도 마지막인 듯하다. 출판계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문지혁 작가의 우려가 허구적 상상력을 입고 구체화된 현실일 것이다. 고등학생인 첫아들이 북토크가 끝날 무렵 들어와 종이로 만들어진 포스터를 가져도 되냐고 묻는다. 학교 과제를 하기 위해서였다. 주로 새벽에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 이메일이 온다. 첫아들이 보낸 거다. 발표자료를 검토해 달라는 부탁인데 첨부파일 제목이 ‘멸종과 생존: 종이책이 사라진 39가지 이유와 생존자를 아빠로 둔 나의 북 토크 탐방기’였다. 작품은 주인공이 아들에게 피드백을 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문지혁 작가의 종이책에 대한 염원과 사랑이 담긴 글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종이책이 영원하길 바란다. 

총평
눈여겨보고 있는 차세대 한국작가 문지혁의 일대기 혹은 성장기를 그의 자서전이 아니라 작품으로 읽은 느낌이랄까. 극초단편부터 초단편, 단편까지 여러 분량, 그리고 스릴러, SF, 드라마 등에 이르는 여러 장르를 뛰어넘는 열두 편의 작품들을 읽으며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문지혁 작가의 사상과 시선, 작품 속에 녹아든 그의 고유한 정서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 생각. 다른 하나는 소설가의 성장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구나, 하는 깨달음. 

둘 다 내겐 유익했다. 무엇보다 문지혁 작가가 강사로 수업하는 내용의 청사진을 작품으로 본 것 같아서 좋았다. 소설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이런 식으로 상황을 전개하고 반전을 주는구나, 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나도 소설 습작을 하는 취미가 있고 언젠간 멋진 장편을 하나 쓰려고 염두에 두고 있는 터라 내게 이 책은 하나의 소설 쓰는 교본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위에서 각 작품에 대한 감상을 짧게 나누면서 잠시 언급했지만, 문지혁 작가에게는 정유정 작가 스타일의 스릴러, 그리고 ’고잉 홈‘에서 물낀 풍겼던 이민자만의 고유한 정서와 감성 혹은 문화를 소외나 배제 혹은 소수자라는 개념과 연결 지어 아련한 느낌을 주는 소설 형식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작품을 더 써주길 기대하게 된다. 

#마음산책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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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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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에서 작가로: 나만의 목소리, 나만의 언어로


파스칼 메르시어 저, ‘언어의 무게’를 다시 읽고


같은 영화를 다시 볼 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동은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다는 여유에서 비롯된다. 그다음 장면이 이전보다 궁금하지 않기 때문에 줄거리 파악에 상대적으로 힘을 덜 들이게 되며, 처음 볼 때 놓쳤던 부분들까지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원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될 뿐만 아니라 단순한 관객을 넘어 스스로 감독이나 원작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단계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 


같은 책을 다시 읽게 될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영화와 차이점이라면 '상상력의 능동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감독의 상상력이 기술력 및 재력과 타협한 지점에서 가시화되어 관객은 그저 수동적으로 감상하고 감동할 뿐이지만, 책의 경우는 영화에서의 감독처럼 이야기를 가시화시키는 매개자가 없기 때문에 같은 책을 재독 한다 하더라도 독자는 또다시 머릿속에서 초독 때처럼 능동적으로 상상하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이 차별적인 수고로움(혹은 번거로움)이야말로 나는 재독의 고유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몰러).


초독 시 머릿속에 그렸던 책 속의 장면들이 재독 시에도 동일하게 그려지게 될 때, 나는 마치 고향을 찾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한동안 잊고 있던 책 속의 공간과 인물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에 일종의 안도감도 느낀다. 그러나 영화의 재시청처럼 초독 때 보지 못했던 부분들도 보게 되고 그것을 기존에 머릿속에 그렸던 장면들에 더하게 되는데, 종종 이 작업은 단순한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가 될 때도 있고 대폭 수정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상상력의 재구성'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묘미는 바로 이것이다.


약 2년 전에 '언어의 무게'를 읽었을 때도 겨울이었다. 서사보다 묘사가 주를 이루고, 주인공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이 책은 분량만 해도 600페이지가 넘는다. 정신없는 서사가 빼곡한 600페이지의 장편소설과는 읽는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줄거리나 재미 위주로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아마도 충분히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이 단순히 줄거리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는 것, 그것은 깊은 사유의 열매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과 상념들과 공명을 이룰 때가 많다는 것 등을 조금이라도 아는 독자라면 이 책을 내가 왜 두 번 읽게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이 책은 재독, 아니 삼독을 해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다. 


이번에도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하루에 30페이지 정도씩 거의 매일 읽었다. 한 달이 넘게 걸렸다. 행복했다. 레이랜드와 함께 나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위치한 몰로 아우다체에 앉아 바다에 발을 담그기도 했고, 아내와 사별하기 전에는 아내가 사장이었다가 사별 후 레이랜드 자신이 사장이었던 출판사 앞에 위치한 카페에 앉아 카를로타가 가져다주는 커피도 마셨으며, 안드레이가 수감되었던 감옥 안에도, 출옥 후 감옥 같이 살던 그의 집 안에도, 그리고 레이랜드가 사준 집 안에도 거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뿐인가. 운명 같은 오진 때문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영국 햄프스테드에도 가볼 수 있었고, 그와 함께 런던 거리와 서점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 공간뿐인가. 레이랜드 옆에는 항상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덕분에 레이랜드의 절친이 된 이웃 케네스 버크의 첼로 연주를 여러 번 들을 수 있었고, 그가 도움을 주고받았던 숀과 린도 만날 수 있었으며, 그가 과거에 번역을 했던 책의 저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랜드의 딸 소피아와 아들 시드니의 내외면의 성장과정을 목도하며 아버지로서의 레이랜드를 볼 수 있었다. 한 달이 넘도록 유지되었던 이들과의 교유가 나는 벌써 그립다.


교모세포종이 분명한 MRI 사진은 레이랜드의 것이 아니었다. 의사와 병원의 실수였지만, 레이랜드에게는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레이랜드는 자신을 병원으로 실려가게 했던 발작의 원인이 교모세포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 암은 치료가 불가능하며 시한부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출판사를 팔았고, 생을 정리하려고 했다. 날벼락처럼 찾아온 죽음의 방문 앞에서 그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 열흘만 일찍 사진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레이랜드의 인생은 과거의 연장선에 머물렀을 것이다. 출판사도 그대로 자기 소유였을 테고, 트리에스테에서 계속 살 것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러지 못했다. 딱 그 열흘 사이에 출판사를 팔고 삶을 마감하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레이랜드에게 출판사는 단순한 건물이나 직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심장마비로 세상을 먼저 떠난 아내 리비아의 분신이었고, 영국에서 이탈리아로 옮겨오게 만든 이유였으며, 그의 모든 것이었다. 의사와 병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하나가 레이랜드에게서 그의 모든 것인 출판사를 빼앗았던 셈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레이랜드에게 일어난 이러한 운명 같은 사건이 결코 그를 무너뜨리지도 불행하게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담담히 보여준다. 트리에스테에서 햄프스테드로의 이동 역시 그에겐 생소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지만, 그 덕분에 그는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의대와 법대에서 각각 하얀 카스트와 검은 카스트에 신물을 느끼고 저항하며 정의롭게 인간답게 살려고 아등바등 대는 소피아와 시드니에게도 햄프스테드의 새로운 집과 그로 인해 파생된 여러 만남들은 얽기 설기 연결되어 영양분이 되었다. 


이쯤에서 다시 묻게 된다. 레이랜드에게 일어난 그 황당무계한 사건은 과연 그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었을까, 아니면 행복을 가져다주었을까? 아니, 질문이 틀렸다. 불행과 행복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나는 이번에 재독을 하면서 잡아냈기 때문이다. 삶은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것,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은 소수이지만 늘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좋은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 보이고 연결된다는 것. 어쩌면 그 사건 덕에 레이랜드는 그가 작품 후반에서 그의 언어로 써 내려가는 소설 속 주인공 루이 퐁텐처럼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지 않을까. 어쩌면 그 사건 덕에 그는 암암리에 그를 잡고 있던 과거의 흔적을 뒤로하고 마침내 그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번역자에서 작가로의 변화는 곧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언제든 운명 같은 사건을 맞닥뜨릴 수 있다. 그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될 때 나는 아마도 레이랜드를 떠올릴 것 같다. 그 사건이 아무리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될지라도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다 보면 거기엔 새로운 길이 있고 행복이 깃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 길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 뒤에 숨지 않고 당당히 내 목소리로 삶을 노래하고 싶다. 나만의 언어로 삶을 써 내려가고 싶다. 그때 비로소 언어의 무게를 말할 수 있으리라. 


#비채 

#김영웅의책과일상 


* 파스칼 메르시어 읽기

1. 리스본행 야간열차: https://rtmodel.tistory.com/1203

2. 언어의 무게: https://rtmodel.tistory.com/1726


* 파스칼 메르시어 다시 읽기

1. 언어의 무게: https://rtmodel.tistory.com/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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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정아은 지음 / 마름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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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거절의 벽을 넘어 끌어안기까지


정아은 저,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를 읽고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글쓰기를 일상으로 장착시키는 지난한 과정과 저자가 생각하는 글쓰기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를 소개한다. 다른 글쓰기 책과 중첩되는 내용도 있지만, 저자만의 독특한 (글쓰기를 오래 경험한 사람은 아마 누구나 공감할, 그러나 글쓰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도발적인) 주장인 "잘 쓰지 않겠다" 같은 내용도 있어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볼 만하다. 


2부는 여러 유형의 글쓰기에 대한 친절한 소개와 함께 각 유형의 글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잡아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연자의 목소리가 아닌 옆집 누나 같은 목소리로 사적인 경험을 동반해서 알려주는 방식이라 술술 읽힌다. 서평, 칼럼, 에세이, 논픽션, 그리고 소설의 차이를 잘 모르는 분들이라면 유익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눈에 불이 켜진 시점은 3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빨라졌고 들리던 시계 초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쓰는 마음'이라는 제목의 3부는 저자의 사적인 경험담으로 이뤄진다. 저자는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그 이후 거절의 구렁텅이들을 숱하게 거친다. 누군가의 실패는 이미 실패에 몸을 담고 있는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는 법이다. 비록 본인에게는 모든 걸 손에서 놓고 싶은 순간들일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인생의 가장 낮은 지점들을 통과하며 비로소 본인이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 깊숙이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외통수와 같은 나날들 속에서 사활을 걸고 작가라는 운명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고 농담처럼 다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내 눈에는 저자가 예전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궤도에 안착한 듯 보였다. 3부 마지막 페이지에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4부에서는 책 출간 시 관여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을 소개한다. 저자의 개인 경험담이 진득하게 녹아있어 나는 4부를 3부의 연장선에서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저자가 함께 일한 편집자 세 분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는 다시 시간을 잊고 말았는데, 편집자의 자질과 작가에게 미치는 위력, 긴장과 갈등이 얽힐 수밖에 없는 책 출간의 전반적인 과정, 작가의 눈에 비친 독자, 기자, 동료 작가의 위상이 실감 나는 문체로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저자가 직접 겪은 일이라지만, 저자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 읽고 다시 제목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을 보니 다르게 느껴졌다. 책 읽기 전에는 머리로 알던 것이 다 읽고 나니 가슴으로 느껴졌다고 할까. 작가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조금은 더 존경이 묻어나게 되는 의외의 열매도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많이 모자라지만, 정아은 작가처럼 '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신> 저자가 사고를 당해서 재작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소식을 방금 알게 되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시 눈을 감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마름모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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