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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안정과 모험, 일상과 예술, 죽은 삶과 살아있는 삶
서머싯 몸 저, '달과 6펜스'를 읽고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으나 끝내 제목은 설명되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해설을 일부러 읽지 않고 유추를 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영어 단어 'lunatic'이었다.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이 단어는 '정신 나간' 혹은 '미친'을 뜻한다. 나는 '광기 어린'이라고 읽었다. 오래전부터 서양에서 ‘달’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광기를 부추긴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늑대인간이 짐승으로 변하는 시간은 보름달이 뜬 밤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하이드가 악행을 저지르는 밤거리 위에도 달이 떠 있었다. 아서 플렉이 조커로 변모해 가는 공간적 배경 역시 도심의 밤거리와 차가운 달빛이었다. 문학적으로 달빛은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광기를 발현시키는 어둡고 은밀한 마법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착상을 '달과 6펜스'에 적용시켜도 말이 된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을 '광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스트릭랜드가 아내와 두 자녀, 안정된 직장, 집, 재산까지 모두 버리고 혈혈단신으로 단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니 그려야만 했기 때문에, 파리로 떠났던 날 밤하늘에도 보름달이 떠있지 않았을까 싶다. 스트릭랜드의 떠남은 이성과 합리로는, 나아가 윤리나 도덕으로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에 속한다. 나는 이를 광기 말고 달리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달은 이 작품 속에서 직접적인 배경이나 소재로 등장하진 않지만, 마치 늑대인간이나 하이드나 조커를 발현시킨 것처럼 스트릭랜드 안에서 잠자고 있던, 그렇다고 개성이라고 표현하기엔 너무도 모자란, 광기 어린 그 무엇을 깨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패턴은 비단 스트릭랜드에게서만 발견되지는 않는다. 작품 속에서 상황과 원인은 다르지만 평소와 전혀 다른 삶으로의 전환을 이행해 버리는 인물이 세 명 더 등장한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나의 상상 속에서는 이들이 갑작스러운 삶의 전환을 이행하던 날에도 보름달이 떠 있었을 것만 같다.
먼저 블란치 스트로브의 경우다. 이 여인은 처음엔 더크 스트로브의 아내로 등장한다. 하지만 어느 날 남편의 간곡한 부탁으로 죽기 직전의 찰스 스트릭랜드를 자기 집에 데려다 놓고 간병하게 되는데, 그 기간에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남편도 집도 재산도 모두 버리고 스트릭랜드를 따라나서겠다고 선언한다. 남편도, 화자도, 심지어 스트릭랜드조차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도대체 왜 그녀는 그런 결단을 내렸던 것일까. 스트릭랜드에게 비친 달빛의 힘이 블란치 스트로브에게까지 미쳤던 것일까. 정황적인 추론으로는 육체적 관능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부정적이고 불쾌감을 주는 외로운 독고다이 캐릭터인데 저자인 서머싯 몸은 그를 남성적인 육체를 가진 인물로 그려놓았다. 아마도 블란치는 간병 중 찰스에게 모성애와 함께 본능적인 관능이 깨어남을 느끼고 남편으로부터 얻지 못했던 쾌락을 향유할 수 있을 거라 여겼던 듯하다. 이에 대한 화자의 해석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그녀는 다정하면서도 성마르고, 생각이 깊으면서도 분별이 없던 복잡한 여자였지만 이제는 딴사람이 되어 버렸다. 바커스 신의 무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욕망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물론 그녀가 그런 비상식적인 결단을 내린 건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은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 함구한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스트릭랜드로부터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그 무엇을 얻지 못했던 듯했다. 독약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했으며, 입과 식도가 타버려 극심한 고통을 받다가 병원에서 죽음에 이른다. 아, 그녀의 죽음은 또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인물은 책의 후반부에 잠시 소개되는 아브라함이라는 유능한 의사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탁월한 실력을 가진 천재 외과의였다. 그에겐 모든 게 보장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휴가차 배를 타고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했을 때 그는 어떤 계시와 같은 순간을 맞이한다. 에피파니였을까. 모든 게 돌연 새롭게 보이고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서 나머지 인생을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이 없었다. 그는 그 순간 이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만 것이었다. 실제로 알렉산드리아에서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 것이다. 자신의 천재적인 능력에 힘입어 남은 인생을 부와 명예와 권력을 거머쥐고 살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어쩌다가 이런 기구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아니, 그에게 선택권이 있기라도 했던 것일까. 단순한 충동에 휩쓸렸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아브라함에게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삶은 무언가 압도적인 힘에 의해 이끌려 오게 된 외나무다리가 아니었을까. 이를 광기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과연 설명할 수 있을까.
나머지 인물은 찰스 스트릭랜드가 마지막 숨을 쉬었던 타히티에서 끝까지 그의 곁에 머물며 그를 도왔던 아내 ‘아타’이다. 비록 중간에 티아레가 중개인으로 역할하지 않았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아타는 타히티에 와서도 여전히 독고다이 캐릭터로 살아가는 스트릭랜드의 아내가 되어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그를 도우며 살기로 작정한다.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 그녀 혼자만의 결정이었다. 앞에서 소개했던 블란치가 스트릭랜드를 따라나섰던 이유와는 다른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타는 스트릭랜드의 모든 것을 수발했고 아이까지 낳았으며 나중에 문둥병으로 죽어가는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킨 결연한 여인이었다. 무엇이 그녀에게 이런 삶을 선택하게 했던 것일까. 아니, 이번에도 이 질문은 틀린 질문일 것이다. 그녀에게도 어떤 운명 같은 순간이 닥쳐왔고 그저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무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이런 갑작스러운 삶의 전환을 광기라는 표현을 빼고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찰스 스트릭랜드, 블란치 스트로브, 아브라함, 그리고 아타, 이렇게 네 인물은 이 작품 속에서 일생일대의 운명 같은 삶의 전환을 맞이했고, 비록 끝은 다르지만,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일 없이 마지막까지 후회 없이 그렇게 살았다. 한동안 내 머릿속은 이들의 패턴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려고 바빴다.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솔직히 내 작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어떤 근거를 대며 설명하려 해 보아도 근사치에 머물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감이 가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현실에서는 충분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이런 일이 의외로 많이 일어나지 않는가. 나는 다시 겸손해진다. 세상엔 이해할 수 있는 일보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겸허히 인정하게 된다. 그것의 시작이 광기이든 무엇이든 상관은 없다. 광기라고 해석하는 것조차 하나의 이성적인 접근에 불과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제목에서 '달'을 제외한 나머지 ‘6펜스’에 대한 해석을 해 볼 차례다. 작품을 다 읽고 달의 의미를 유추했더니 그와 대조적인 이미지로써 6펜스가 자연스레 해석되었다. 6펜스는 돈이다. 달이 안정적인 삶 혹은 일상에서 사람을 끄집어내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면, 6펜스는 그와 반대되는 힘일 것이다. 달이 원심력이라면 6펜스는 구심력으로 작용했을 거라는 말이다. 즉 안정적인 삶 안에 가둬두려는 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앞에서 언급한 네 인물은 모두 6펜스의 삶으로부터 달의 이끌림으로 인해 일생일대의 대전환을 이뤄낸 사람들이다. 원의 바깥으로 궤도 이탈을 이뤄낸 소수의 사람들인 것이다.
6펜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다수다. 그들은 주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대의 조류이기도 하고, 그 시대의 얼굴이자 정체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세속에 따라 살아가는,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정신에 따라 그것이 추구하는 방향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그 안에서 안정과 만족을 얻으며 살아가는 무리들인 것이다. 이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익명성에 의지하여 어느 곳에나 존재하며 살아간다. 이분법으로 나눌 수는 없겠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네 인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6펜스의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화자처럼 나름대로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달의 삶과 6펜스의 삶 양쪽 모두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부류도 존재할 테지만 말이다.
문제는 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바로 옆에 존재하는 6펜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문자적으로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행운을 거머쥐는 자가 되기도 하며, 기회주의자처럼 눈치를 보다가 자신의 이익에 위해 더욱더 견고한 6펜스의 삶을 살아가는 자로 강성해지기도 한다.
먼저 스트릭랜드의 첫 아내의 경우다. 그녀는 전적으로 피해자로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모든 걸 버리고 떠나면서 편지 한 장 달랑 남겼는데, 그 편지에는 왜 떠나는지에 대한 이유는 적혀 있지도 않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만 적혀 있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갑자기 경제적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아내로서 느꼈을 그 황당함이 적이 공감이 간다. 그리고 남편이 떠난 이유가 어떤 여자 때문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싶기 때문이라는 말에 남편을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반응 역시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그녀는 남편이 달의 삶을 사는 사람인 줄 진짜 몰랐던 것일까. 부부인데도 남편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속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일까. 그래놓고도 안정적인 부부 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일까. 스트릭랜드의 인격이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는 위선과 거짓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다. 아마도 스트릭랜드는 6펜스의 삶에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깊숙이 빠져 살아가는 아내와 대화조차 되지 않는다고 여겼을 것이다. 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었으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달의 삶을 사는 사람과 6펜스의 삶을 사는 사람 사이의 소통이 정말로 불가능한 것일까 하는 물음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
그다음으로는 블란치 스트로브의 남편 더크 스트로브의 경우다. 그 역시 스트릭랜드 부인의 데칼코마니처럼 어느 날 갑자기 자기를 떠난 아내 때문에 불행을 겪게 되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는 천재적인 재능은 없었지만 스트릭랜드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매우 드문 사람이었다. 그는 체면도 자존심도 내던지고 광대짓을 기꺼이 하면서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선한 인물이었다. 그가 한 것이라고는 스트릭랜드를 온마음 다해 도운 것밖에는 없다. 스트릭랜드를 일견에 싫어한 아내를 간신히 설득해서 아픈 스트릭랜드를 자기 집으로 데려오자고 했던 사람도 더크 스트로브였다. 그런데도 그는 친구도 잃고 아내도 잃는 신세가 되고야 만다. 저자는 그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의 인생은 익살극의 소란스러운 대사로 가득 찬 비극과 같았다." 그래서일까. 익살극을 펼치며 그의 너그러움 성품을 발휘해도 그의 삶은 비극일 수밖에 없었다. 더크 스트로브를 보며 나는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 역시 이런 말을 덧붙인다. 허를 찌른다. "그처럼 허다한 모순을 안겨주고선 이 사내로 하여금 당혹스럽고 냉엄한 세상에 맞서게 한 거 보면, 조물주의 장난도 잔인하기만 하다." 전적으로 동의가 되는 문장이지 않을 수 없다. 뭐라고 분석할 수조차 없는 이 인물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기로 한다.
마지막으로는 알렉 카마이클이라는 인물이다. 아브라함이 알렉산드리아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서 그로 예정되어 있던 여러 자리는 아브라함에 밀려 언제나 2등 신세를 면하지 못했던 알렉 카마이클의 것이 되었다. 그는 대여섯 개 병원에서 정식 의사직을 가지고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다. 화자의 친구이기도 한 그는 화자에게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모든 게 아브라함 덕분이라고. 하지만 그가 아브라함에게는 인격이 없었다고 한 말에 대해서는 화자뿐 아니라 나 역시 반기를 들 수밖에 없다. 아브라함에게는 인격이 없었던 게 아니라 6펜스의 삶이 주는 최고의 복을 넙죽 받아들이는 이해타산적인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질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찾아 용기 있게 떠난 사람이었다. 알렉 카마이클은 6펜스의 세상에서는 아브라함의 자리를 꿰찰 수 있었겠지만, 아브라함이 정착한 달의 삶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외계인에 불과했다. 그래서일까. 알렉 카마이클의 삶에서 공허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의 삶을 달의 삶과 6펜스의 삶, 이런 식으로 둘로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분법이 아니라 방향으로 해석하면 생각해 볼 만한 거리가 많은 것 같다. 6펜스의 삶이 인간의 모든 삶인 것처럼 믿고 그 안에서 경쟁하고 피라미드 상층부를 차지하려 애쓰며 안정과 만족을 얻으려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광기라는 강한 어감의 단어를 사용할 만큼 인간 내면에 깃들어 있는, 다시 말해 6펜스의 삶에 반대되는 가치를 지향하며 언제나 저 너머를 궁금해하고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안정과 만족이 아닌 인간다운 그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삶은 어느 쪽을 향하고 있을까. 나는 잘 정돈된 행복만을 얻으면 된다고 여기고 있을까. 물질적인 만족과 기쁨이면 만사가 괜찮다고 여기고 있을까. 나는 안정을 원할까, 모험을 원할까. 내 삶은 너무도 안정적이어서 죽은 것 같은 삶일까, 불안정하고 불확실하지만 언제나 길 위에서 오늘을 살아내는 살아있는 삶일까.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은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극단으로 보여준 이 소설을 통해 우린 우리의 현재 삶의 방향을 성찰하고 미래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바라기는 6펜스의 삶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달의 삶을 잊지 않고 항상 추구하며 살아내려고 애쓰는 삶이 되면 좋겠다. 가능할 런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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