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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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에서 작가로: 나만의 목소리, 나만의 언어로


파스칼 메르시어 저, ‘언어의 무게’를 다시 읽고


같은 영화를 다시 볼 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동은 줄거리를 이미 알고 있다는 여유에서 비롯된다. 그다음 장면이 이전보다 궁금하지 않기 때문에 줄거리 파악에 상대적으로 힘을 덜 들이게 되며, 처음 볼 때 놓쳤던 부분들까지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원작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자기 모습을 발견하게 될 뿐만 아니라 단순한 관객을 넘어 스스로 감독이나 원작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단계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 


같은 책을 다시 읽게 될 때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영화와 차이점이라면 '상상력의 능동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감독의 상상력이 기술력 및 재력과 타협한 지점에서 가시화되어 관객은 그저 수동적으로 감상하고 감동할 뿐이지만, 책의 경우는 영화에서의 감독처럼 이야기를 가시화시키는 매개자가 없기 때문에 같은 책을 재독 한다 하더라도 독자는 또다시 머릿속에서 초독 때처럼 능동적으로 상상하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이 차별적인 수고로움(혹은 번거로움)이야말로 나는 재독의 고유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몰러).


초독 시 머릿속에 그렸던 책 속의 장면들이 재독 시에도 동일하게 그려지게 될 때, 나는 마치 고향을 찾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한동안 잊고 있던 책 속의 공간과 인물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에 일종의 안도감도 느낀다. 그러나 영화의 재시청처럼 초독 때 보지 못했던 부분들도 보게 되고 그것을 기존에 머릿속에 그렸던 장면들에 더하게 되는데, 종종 이 작업은 단순한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가 될 때도 있고 대폭 수정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상상력의 재구성'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묘미는 바로 이것이다.


약 2년 전에 '언어의 무게'를 읽었을 때도 겨울이었다. 서사보다 묘사가 주를 이루고, 주인공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이 책은 분량만 해도 600페이지가 넘는다. 정신없는 서사가 빼곡한 600페이지의 장편소설과는 읽는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줄거리나 재미 위주로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아마도 충분히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이 단순히 줄거리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아니라는 것, 그것은 깊은 사유의 열매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고민과 상념들과 공명을 이룰 때가 많다는 것 등을 조금이라도 아는 독자라면 이 책을 내가 왜 두 번 읽게 되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이 책은 재독, 아니 삼독을 해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다. 


이번에도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하루에 30페이지 정도씩 거의 매일 읽었다. 한 달이 넘게 걸렸다. 행복했다. 레이랜드와 함께 나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위치한 몰로 아우다체에 앉아 바다에 발을 담그기도 했고, 아내와 사별하기 전에는 아내가 사장이었다가 사별 후 레이랜드 자신이 사장이었던 출판사 앞에 위치한 카페에 앉아 카를로타가 가져다주는 커피도 마셨으며, 안드레이가 수감되었던 감옥 안에도, 출옥 후 감옥 같이 살던 그의 집 안에도, 그리고 레이랜드가 사준 집 안에도 거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뿐인가. 운명 같은 오진 때문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영국 햄프스테드에도 가볼 수 있었고, 그와 함께 런던 거리와 서점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 공간뿐인가. 레이랜드 옆에는 항상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덕분에 레이랜드의 절친이 된 이웃 케네스 버크의 첼로 연주를 여러 번 들을 수 있었고, 그가 도움을 주고받았던 숀과 린도 만날 수 있었으며, 그가 과거에 번역을 했던 책의 저자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랜드의 딸 소피아와 아들 시드니의 내외면의 성장과정을 목도하며 아버지로서의 레이랜드를 볼 수 있었다. 한 달이 넘도록 유지되었던 이들과의 교유가 나는 벌써 그립다.


교모세포종이 분명한 MRI 사진은 레이랜드의 것이 아니었다. 의사와 병원의 실수였지만, 레이랜드에게는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레이랜드는 자신을 병원으로 실려가게 했던 발작의 원인이 교모세포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 암은 치료가 불가능하며 시한부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출판사를 팔았고, 생을 정리하려고 했다. 날벼락처럼 찾아온 죽음의 방문 앞에서 그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단 열흘만 일찍 사진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레이랜드의 인생은 과거의 연장선에 머물렀을 것이다. 출판사도 그대로 자기 소유였을 테고, 트리에스테에서 계속 살 것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러지 못했다. 딱 그 열흘 사이에 출판사를 팔고 삶을 마감하려고 작정했기 때문이다. 레이랜드에게 출판사는 단순한 건물이나 직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심장마비로 세상을 먼저 떠난 아내 리비아의 분신이었고, 영국에서 이탈리아로 옮겨오게 만든 이유였으며, 그의 모든 것이었다. 의사와 병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하나가 레이랜드에게서 그의 모든 것인 출판사를 빼앗았던 셈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레이랜드에게 일어난 이러한 운명 같은 사건이 결코 그를 무너뜨리지도 불행하게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담담히 보여준다. 트리에스테에서 햄프스테드로의 이동 역시 그에겐 생소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지만, 그 덕분에 그는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의대와 법대에서 각각 하얀 카스트와 검은 카스트에 신물을 느끼고 저항하며 정의롭게 인간답게 살려고 아등바등 대는 소피아와 시드니에게도 햄프스테드의 새로운 집과 그로 인해 파생된 여러 만남들은 얽기 설기 연결되어 영양분이 되었다. 


이쯤에서 다시 묻게 된다. 레이랜드에게 일어난 그 황당무계한 사건은 과연 그에게 불행을 가져다주었을까, 아니면 행복을 가져다주었을까? 아니, 질문이 틀렸다. 불행과 행복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나는 이번에 재독을 하면서 잡아냈기 때문이다. 삶은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것,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은 소수이지만 늘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좋은 마음을 품은 사람에게 보이고 연결된다는 것. 어쩌면 그 사건 덕에 레이랜드는 그가 작품 후반에서 그의 언어로 써 내려가는 소설 속 주인공 루이 퐁텐처럼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지 않을까. 어쩌면 그 사건 덕에 그는 암암리에 그를 잡고 있던 과거의 흔적을 뒤로하고 마침내 그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번역자에서 작가로의 변화는 곧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언제든 운명 같은 사건을 맞닥뜨릴 수 있다. 그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될 때 나는 아마도 레이랜드를 떠올릴 것 같다. 그 사건이 아무리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될지라도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좋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다 보면 거기엔 새로운 길이 있고 행복이 깃들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 길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 뒤에 숨지 않고 당당히 내 목소리로 삶을 노래하고 싶다. 나만의 언어로 삶을 써 내려가고 싶다. 그때 비로소 언어의 무게를 말할 수 있으리라. 


#비채 

#김영웅의책과일상 


* 파스칼 메르시어 읽기

1. 리스본행 야간열차: https://rtmodel.tistory.com/1203

2. 언어의 무게: https://rtmodel.tistory.com/1726


* 파스칼 메르시어 다시 읽기

1. 언어의 무게: https://rtmodel.tistory.com/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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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 먹고사는 법까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글쓰기 세계의 리얼리티
정아은 지음 / 마름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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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거절의 벽을 넘어 끌어안기까지


정아은 저,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를 읽고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는 글쓰기를 일상으로 장착시키는 지난한 과정과 저자가 생각하는 글쓰기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를 소개한다. 다른 글쓰기 책과 중첩되는 내용도 있지만, 저자만의 독특한 (글쓰기를 오래 경험한 사람은 아마 누구나 공감할, 그러나 글쓰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도발적인) 주장인 "잘 쓰지 않겠다" 같은 내용도 있어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볼 만하다. 


2부는 여러 유형의 글쓰기에 대한 친절한 소개와 함께 각 유형의 글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잡아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연자의 목소리가 아닌 옆집 누나 같은 목소리로 사적인 경험을 동반해서 알려주는 방식이라 술술 읽힌다. 서평, 칼럼, 에세이, 논픽션, 그리고 소설의 차이를 잘 모르는 분들이라면 유익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눈에 불이 켜진 시점은 3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빨라졌고 들리던 시계 초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쓰는 마음'이라는 제목의 3부는 저자의 사적인 경험담으로 이뤄진다. 저자는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그 이후 거절의 구렁텅이들을 숱하게 거친다. 누군가의 실패는 이미 실패에 몸을 담고 있는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는 법이다. 비록 본인에게는 모든 걸 손에서 놓고 싶은 순간들일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인생의 가장 낮은 지점들을 통과하며 비로소 본인이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 깊숙이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외통수와 같은 나날들 속에서 사활을 걸고 작가라는 운명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고 농담처럼 다시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내 눈에는 저자가 예전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궤도에 안착한 듯 보였다. 3부 마지막 페이지에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4부에서는 책 출간 시 관여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을 소개한다. 저자의 개인 경험담이 진득하게 녹아있어 나는 4부를 3부의 연장선에서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저자가 함께 일한 편집자 세 분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는 다시 시간을 잊고 말았는데, 편집자의 자질과 작가에게 미치는 위력, 긴장과 갈등이 얽힐 수밖에 없는 책 출간의 전반적인 과정, 작가의 눈에 비친 독자, 기자, 동료 작가의 위상이 실감 나는 문체로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저자가 직접 겪은 일이라지만, 저자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 읽고 다시 제목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을 보니 다르게 느껴졌다. 책 읽기 전에는 머리로 알던 것이 다 읽고 나니 가슴으로 느껴졌다고 할까. 작가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조금은 더 존경이 묻어나게 되는 의외의 열매도 맺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많이 모자라지만, 정아은 작가처럼 '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신> 저자가 사고를 당해서 재작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소식을 방금 알게 되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시 눈을 감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마름모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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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란 뭘까? - 쓰기에서 죽기까지 막간 1
유진목 지음 / 난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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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재능보단 글쓰기의 힘을


유진목 저, '재능이란 뭘까?'를 읽고


'재능이란 뭘까?'로 시작해서 '나는 나와 오래도록 함께하는 불행을 사랑하기로 결정했다.'로 끝나는 산문집. 저자는 스스로를 불행하다 말한다. 그것도 기꺼이. 그리고 첫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동안 자신이 불행한 재능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행복을 마음 다해 바란 적도 없고, 행복 또한 찰나에 지나버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 그녀가 불행을 사랑하기로 결정해서 다행인 걸까?


툭툭 내던지듯 써놓은 조각난 산문들 가운데 로버트 맥키의 말을 빌려 저자는 재능을 정의한다. 무엇을 쓰고 무엇을 쓰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이 재능이라고. 그리고 그녀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은 삶에 대한 재능일 수 있겠다고 말한다. 삶에 대한 재능은 없지만 글쓰기에 대한 재능만은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진단하는 그녀. 그녀는 빠듯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생의 모든 것들을 글쓰기와 바꾼 듯한 삶을 살아간다. 절박함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더 이상 표현이 불가능한, 어떤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선 듯한 삶을 살아간다. 페이지마다 우울과 냉소, 처절하고 지독한 현실, 그리고 자기 비하와 학대까지 이어지는 문장들로 수놓고 있다. 돈, 글, 삶, 그리고 또 돈, 글 삶… 저자의 무한반복되는 일상은 비참하다는 표현을 사용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게 한다. 그러나 나는 그 표현은 사용하지 않을 작정이다. 아직 글쓰기가 그녀에게 남아 있어서다. 나는 글쓰기의 힘을 믿는다.


이제 마흔 중반에 이른 저자는 다른 것들을 다 잃거나 버린 것 같은 초탈함에 접어든 것 같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은 '가정 불화, 결혼 실패, 그리고 두 번의 자살 실패를 한 몸에 겪어내면 저렇게 될 수 있겠구나' 싶은 정도에 불과하다. 인지적 공감은 가능하나 정서적 공감은 불가한 이런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할 말을 잃는다. speechless.


한 가지 바라는 게 있다. '가정 불화, 결혼 실패, 자살 실패'가 어쨌거나 살아있는 저자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길 바란다. 그런 과거의 깊은 우물에서 길어낸 글은 무겁고 어둡고 외롭다. 전염력이 강하다. 경쾌한 단문의 연쇄조차도 냉소를 머금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짧아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연작이 출간된다면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불행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문장들이 줄어들어, 아니 사라져서, 다시 삶을 노래하게 되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글쓰기의 마력을 믿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쓰기 재능이 마력을 부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자의 문장력과 문체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은 것 같아서다.


#난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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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김양현 지음 / 한국NCD미디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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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 읽고 쓰기의 소중한 열매


김양현 저, '책으로 보는 세상'을 읽고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저자도 그렇다. 김양현 목사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위기를 맞이했다. 인생이 휘청거렸고, 그는 가족을 데리고 제주를 향했다. 곧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19가 터졌다. 이번엔 경제적인 환란까지 겹쳤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목사로서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제주는 그에게 유배지였던 것일까.


그는 코로나19 시기에 귀인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알 수 없는 신비로 예기치 못한 순간 만남의 축복을 허락하시는 분이다. 현재 과신대 이사장인 팽동국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덕분에 읽고 쓰는 삶이 이미 일상이 되었던 그는 과신뷰에 연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한국 NCD 미디어 대표 김한수 목사와의 만남이 주어지고 과신뷰에 연재했던 글을 첫 책 '영화로 보는 세상'으로 펴낼 수 있게 되었다. 설상가상, 풍전등화, 누란지세의 위기로 다가왔던 코로나19 기간이 그에겐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축복의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김양현 목사의 인생을 단 몇 줄로 요약하는 것 자체가 무례한 일이겠지만, 이 짧은 한 단락을 쓰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인도하심을 보며 그분을 더욱 신뢰하는 마음이 단단해짐을 느낀다. 김양현 목사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이다.


그의 지독한 읽고 쓰는 성실함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달란트로 작용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는 최근 라디오 방송에서 '책소목 (책을 소개하는 목사)' 코너를 맡아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 방송에서 소개한 책들 중 일부를 정리하여 엮은 결과물은 그의 두 번째 저서 '책으로 보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그의 친필 사인이 담긴 두 저서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읽으면서 즐거웠고, 형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읽고 쓰는 유전자가 있다면 나 역시 그의 동생이라 하기에 부끄럽진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의 이 만남이 부디 선한 열매들을 맺고 사람을 살리는 데 귀하게 쓰임 받길 간절히 기도한다.


'책으로 보는 세상'은 크게 두 챕터로 이뤄진다. 1부는 '성경과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비신자와 새신자를 주 대상으로 하는 책들을 소개한다. 신학/신앙 서적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쉽게 접근하고 이해를 돕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신자와 새신자가 읽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 같은 헌(old)신자가 읽어도 충분히 좋았다. 읽고 싶었던, 혹은 읽으려고 사두었다가 미처 읽지 못했던 책들이 몇 권 있었고, 이미 읽은 책들도 몇 권 있었다. 저자의 신학과 철학, 그리고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해석한 책의 요점들을 읽으며 해석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었다. 책 한 권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정리하는 데에 저자는 탁월한 능력을 소지한 것 같다. 


2부는 '청소년과 문학'이라는 제목으로 기독교 관련 문학(소설)들 위주로 소개한다. 우리가 잘 아는 엔도 슈사쿠나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가 절반을 차지하고, 청소년의 현장을 담은 책들과 제주 현지의 역사와 관련된 책들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고전과 현장을 고루 담은 것이다. 이 챕터 역시 1부와 마찬가지로 대화체로 되어 있어, 읽고 있노라면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부담 없이 읽어나가며 소개되는 책들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 싶어지는 글들이 가득하다. 


기독교인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책과 영화에 관심만 있다면 김양현 목사의 두 저서를 적극 추천한다. 


#한국NCD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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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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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감과 이질감


권여선 저, ‘각각의 계절‘을 읽고


수년 전에 출간되었고 이미 다른 지면에 실렸던 일곱 편의 단편소설의 모음집이지만, 내겐 권여선 작가의 첫 책이다. 대표작으로 보이는 첫 소설 '사슴벌레식 문답'은 단편만의 매력을 느끼기에 완벽한 작품이었다. 첫 권여선의 글이었음에도 나는 단번에 저자가 탁월한 스토리텔러이자 치밀한 설계자라는 사실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어디로 들어와?'라는 질문에 '어디로든 들어와'라는 답으로 이어지는 대화의 삽입은 화자와 저자의 의도를 넘어 인간 일반의 심리와 감정을 다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열쇠 혹은 저자의 영리함이 돋보이는 치트키로 보였다. 또한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장편에 비해 단편이 갖는 특유의 어정쩡한 미완성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완성도가 탁월한 소설이었다. 권여선 작가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첫 작품을 포함하여 나머지 여섯 단편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노년에 접어든 여성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서치를 해 보니 권여선 작가는 1965년생, 현재 예순을 갓 넘긴 나이다 (나랑 띠동갑 누님이시다ㅋ). 어떤 작품을 쓰더라도 작가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들, 이를테면 시대와 문화라는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는 정서, 사상, 유행 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일곱 단편 모두에서도 저자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 주요한 목소리를 낸다. 이 점은 한 편으로 내게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는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론 1977년생 남성인 내게 약간의 이질감도 선사해 주었다. 특히 586 세대 특유의 정서와 여성이라는 점은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인지적인 방법 이상으로 공감할 수 없었으므로 권여선의 작품들을 온전히 음미하기에는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서 노년의 여성이 주로 상대하는 사람 역시 주로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여성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감정 혹은 정서들이 작품 전반에 진하게 배어 있어서 남성 독자인 나는 일종의 소외감이랄까 하는 벽을 느껴야만 했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숨에 다 읽고 이렇게 감상문까지 남기게 된 까닭은 저자가 충분히 깊고 세밀하게 보여준 인간과 인생의 보편성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 그 죽음 배후에 연루된 사람과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 분노와 체념, 여전히 기억 저편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들, 알다가도 모르겠는 인간관계의 신비, 그리고 나이 들면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여러 징후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들여야만 하는 덤덤함까지, 저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맞닥뜨리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말이나 글로 쉽게 담아내기 어려운 인생의 조각들을 미세하고 예리한 관찰자의 눈으로 포착하여 텍스트로 변환시킨다. 권여선 작가의 소설가로서의 관찰력과 그것을 내면적으로 소화하는 성찰력, 그리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하여 이끌어낸 탁월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바로 이 단편집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편성과 특수성의 관점에서 저자의 글은 후자에 무게를 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특수성으로부터 충분히 보편성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할까, 보편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특수성의 사례를 조금 과하게 사용했다고나 할까, 책을 다 읽고도 내게 남은 이질감이 여전히 걸리적거린다. 그의 다른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도 읽어 봐야겠다. 


#문학동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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