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라시옹 현대사상의 모험 5
장 보드리야르 지음, 하태환 옮김 / 민음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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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쟝 보드리야르 교수라는 인물을 알게 된 것은 아주 특이한 경우다. 우선 이 보드리야르 교수를 알게 된 동기를 말하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오타쿠라고 하면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등 사회적으로 인식이 좋지 못하다고 여기는 문화를 탐닉하는 존재다.

그런데 그런 존재에 속하는 내가 이 쟝 보드리야르 교수를 알고 이 시뮬라시옹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 상당한 아이러니이다. 현실에 살아 있는 존재에게 얽매여 거기에 빠져 있는 인간이 보드리야르와 시뮬라시옹을 안다는 것은 솔직히 연결 구도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보드리야르라는 인물을 알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시뮬라시옹을 읽어보았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 잣대로 어떻게 나라는 인간을 재어 볼 것인가? 물론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어디가서 이 책을 읽었으니 내가 당신보다 우월해라는 그런 교만을 부리지 않는다.

단지 이 책을 보고 난뒤로 진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혹은 잘못 알아서 이상한 독단으로 빠지지 않은지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 남들에 대해 편견과 오만으로 자기 자신의 이성적 판단이 옳은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분명 이 책의 내용은 인용된다.

우선 내가 이 시뮬라시옹과 시뮬라시옹이 동사형이니 그 전의 단어인 시뮬라크르를 알게 된 것은 2008년 겨울 무렵이다. 당시 대학원 공학논문을 준비 중에 우연히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검색했는데, 우연치 않게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한 논문이 나왔고, 그 중에서 이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를 가지고 적은 논문이 있었다.

그래서 비로소 시뮬라시옹이란 단어를 알았고 2009년에 그 저자가 보드리야르란 사실을 알았다. 2010년 처음으로 시뮬라시옹이란 책을 읽어 보았고, 그 책이 상당히 난해하다는 것조차도 알았다. 내가 듣기로는 시뮬라시옹이란 도서도 보드리야르의 서적치고는 난이도가 낮은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보드리야르의 사상이 얼마나 난해할까? 어째든 나는 이 보드리야르로 통해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라는 학문, 철학, 사상이 있는 것을 알았다. 이 후기구조주의에 속하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서는 무엇을 말할까? 솔직히 다 이해한다고 할 수 없다. 단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이미지로 이루어진 미디어가 얼마나 강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이다.

참고로 나는 애니메이션 오타쿠이다. 그런데 나는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이  TV에 나오는 드라마를 보는 사람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TV를 보는 사람들은 그것이 가상이라도 하나의 실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 반면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것이 가상이나 하나의 현실로 착각하는 사람은 전자보다 적기 때문이다.

단지 나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할 뿐 현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최불암 아저씨하면 떠오른 것이 무엇인가? 당연히 "전원일기"이다. 그리고 최불암의 원래명인 최영일씨는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고 전원일기의 열풍으로 당선되었으나 그는 전원일기의 최불암이 아니라 단지 국회의원 최영일씨로 농업 관련 정책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최영일씨의 사본인 최불암씨의 전원일기가 TV 영상으로 통해 국민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간 것이다. 바로 TV영상에 등장하는 전원일기 김회장은 최영일씨가 아니나 사람들은 최영일의 존재를 전원일기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누가 더 가상세계에 현실을 제대로 못보고 있는가?

현대 사회에서는 원래의 사건이나 상황보다는 그 당시의 일들을 카메라로 녹화하여 복제된 영상과 소리에 더욱 대중들이 의존한다. 그 의존으로 인해 중간에 미디어에 대한 권력행사 및 왜곡, 그리고 누락은 대중으로 하여금 어긋난 정보를 주고, 그것이 바르지 못한다면 이상한 현상으로 발달된다.

자신은 현실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나 사실 그 현실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그저 가상의 세계로 접한 하나의 현상을 현실보다 더 현실로 보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시뮬라크르는 결코 진실을 감추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야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긴다.시뮬라크르는 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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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로 풀어읽는 영상기호학
로버트 스탬 지음, 이수길 외 옮김 / 시각과언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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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기호학이란 이미지로 된 영상을 시각적인 정보로 통해 해석하여 그 의미를 찾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영상기호학이라고 해서 영상이미지만 보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에서는 영상보다는 소리로 인한 관객전달력이 더욱 크다고 한다.

영화감독 칸단스키도 영화에서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영상이 아닌 소리라고 한다. 그래서 영상기호학에서는 단순히 영상이라는 이미지만이 아니라 소리의 중요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일단 영화의 5가지 요소는 영상, OST, 대사, 효과음, 그리고 서사성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 볼때 영화는 분명 소리와 영상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매체이다. 그리고 그 매체는 이야기라고 불리는 서사를 담아 그 서사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 속에 함유되어 있는 택스트를 분석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매우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기호학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면서 작품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텍스트의 본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사실 인문학적인 지식이 상당히 요구된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이 영화에 대한 올바른 평론이 아닌 단지 단순히 자기 기분을 표출만 하는 감상문에 지나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우선 기호학의 창시자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라는 스위스 언어학자로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일반언어학에서 처음으로 기호학이 등장하고 기호학에서는 기표와 기의로 나누어지고 기표에는 기의가 있으나 그것이 어떠한 존재이라 서로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기호학의 창시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로 시작하여 프랑스 구조주의 창시자인 레비 스트로스, 그 뒤를 이은 자크 라캉, 롤랑 바트르, 미셸 푸코, 그리고 후기구조주의 대표주자인 장 보드르이야르,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까지 분포되어 있다.

또한 그 중간에 스펙타클의 사회를 지은 프랑스 전위예술 영화감독인 기 드보르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 물론 지금 이 독서평을 적고 있는 필자는 참고로 인문학도 아닌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라 그 학문적인 깊이는 이제 발걸음을 올릴 뿐이다. 게다가 영화매니아이라기 보다는 사회적인 지탄대상으로 취급당하는 애니메이션 오타쿠다.

그런데도 이렇게 영상기호학에 대해 공부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영상기호학이란 것은 모든 영상을 포함하는 서사구조물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애니메이션만큼 인간의 본연의 욕망과 무의식적인 면을 잘 비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분명 영상기호학을 안다는 것은 엄청난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혹은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조차도 사실 현실의 세계가 아닌 가상의 세계를 담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이야기로 통해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인간이나 혹은 그 이전에 만들어진 사회의 인간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영상서사에 담겨진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간과 배경, 상황들은 우리의 별개의 세상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자화상 내지 그 시대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그 시대에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까지도 내보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영상기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영상 속에 담긴 이야기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에 담겨진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진정한 우리의 인간상에 대해 깊이 통촬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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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애니메이션 이야기
존 할라스 지음, 한창완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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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생각하면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미국의 디즈니메이션, 픽사, 드림웍스 같은 대규모자본으로 움직이는 회사의 작품이나 혹은 일본에서 TV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대량생산되는 작품이나 혹은 아동용이나 교육으로 주로 제작된 한국 애니메이션 쪽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단적인 지식과 수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애니메이션은 한국, 미국,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위의 러시아로 필두로 하여 프랑스, 독일, 영국, 헝가리 등 다양한 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으니깐 말이다.

단지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에 친숙한 이유는 미국으로부터 많은 문화적 영향을 받은 이유와 미국 애니메이션 자체가 할리우드 영화사와 연계되어 내려와 영화산업에서 애니메이션까지 포함되었다. 그런 미국 할리우드 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남은 작품은 바로 월트 디즈니의 작품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 이런 할리우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점점 접할 계기가 늘어났다.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은 1970년대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수입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일본과 접해있기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쉽게 국내에 유입될 수 있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에 많은 영향은 끼친 것은 사실이나 이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수 많은 애니메이션이 세계 각지에서 제작되고 상영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필요성이 있는듯 하다.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은 영화에서 시작하였고, 영화의 발생지인 프랑스로부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애니메이션은 인접 국가에게 영향을 주어 이제는 유럽 애니메이션이란 독특한 애니메이션 세력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유럽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셀 애니메이션이나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 보다는 인형, 종이, 스크래치, 모래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여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유럽 애니메이션은 재미도 나름 추구하겠지만, 그 안에 사회 비판이나 혹은 예술적인 가치를 많이 반영하였다.

그래서 흔히 우리가 보거나 들었을 만한 작품으로 나무를 심는 남자나 동물농장과 같은 뭔가 교훈이나 시대적인 패러디를 반영한 요소가 많다. 물론 나무를 심는 남자는 캐나다에서 제작된 작품이나 그 작품성에 반영된 요소가 유럽 애니메이션 요소가 많다.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제작기법으로 통해 많은 생각을 주기 위해서 효과적인 방법을 연출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유해하라는 것만 생각하는 편견과 고정관념들은 이런 유럽 애니메이션으로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 된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는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예술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많다. 특히 프랑스와 같은 경우에는 아방가르드 즉 전위예술적인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모더니즘 이후 인간의 이성만 중시하고 감성을 외면하던 것을 극복하고 인간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출현할 때에도 유럽 애니메이션은 상당한 가치관을 작품 안에 투영하였다. 애니메이션이 예술로서 그렇게 반영하기 좋았던 이유는 인간의 상상력을 마음껏 들어다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럽 애니메이션을 안다는 것은 애니메이션 영화사 전반적인 흐름을 아는 것과 우리가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 넘어 새로운 작품이 있는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교과서와 같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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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니 - 전4권 - 바다어린이만화
이진주 글 그림 / 바다출판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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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니는 참으로 이상한 작품으로 생각된다. 내가 이 달려라 하니를 처음 본 기억은 국민학교 시절 즉 지금으로 따지자면 초등학교 시절이다. tv에서 방영되던 달려라 하니는 어린시절에 내가 보기로는 가엾고 불쌍한 하니가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어 행복을 찾아가는 아이로 나온다.

왜냐하면 하니는 극중에서 친어머니를 여의고 게다가 친아버지는 새엄마와 결합한 점에서 강한 비극적인 모티브를 낳게 된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찬 하니라는 소녀의 슬픈 분노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어른이 된 시점에 다가와서 달려라 하니를 본다면 가족관계에 대한 사랑과 증오라는 이면이 숨겨진 작품인듯 하다. 우선 그리스신화에서 등장하는 유명한 일화로 아가멤논왕과 그의 딸인 엘렉트라에 대한 이야기다.

아가멤논왕은 어느 모험에서 자신에게 닥친 재난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희생을 삼아버리고, 딸이 희생됨에 따라 아가멤논왕의 아내는 그녀의 정부와 결합하여 아가멤논왕을 죽인다. 그리고 아가멤논왕의 아들이 멀리 피신한 후에 딸인 엘렉트라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를 원망하고 복수하길 바란다.

이때 엘렉트라는 자신의 나라에 몰래 들어온 남동생 오레스테스와 결탁하여 자신의 어머니와 그녀의 정부를 죽여버린다. 이런 엘렉트라에 대한 그리스신화를 두고 이른바 엘렉트라 컴플렉스라는 정신분석학적인 용어가 생겼다.

이런 엘렉트라 컴플렉스적인 요소로 본다면 하니는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점과 자신이 좋아하는 친어머니가 돌아가신 점에서 작가의 엘렉트라 컴플렉스 요소가 다소 보인다. 그리고 카니발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노린 아들들이 아버지를 죽여 그 권위를 가져가나 차후에 아버지를 죽인 양심적 가책에 따라 자신이 예전에 있었던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며 제사를 지낸다.

물론 이것은 남성중심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시점이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반대되는 엘렉트라 컴플렉스로 보자면 딸이 어머니를 미워하여 죽이고 싶은 점에서는 상호작용을 하는 셈이다. 하니닌 직접 어머니가 죽이거나 죽기를 바라지는 않으나 작중에서 죽었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느끼고, 이제 어머니가 없어 아버지의 사랑을 바랬으나, 아무 예고도 없이 새엄마가 등장한다.

새엄마의 등장은 하니에게 크나큰 충격이고 하니는 새엄마를 거부하고 따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살부와 살모를 원하는 무의식적인 면은 반드시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오이디푸스 가부장제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으나 그 아버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 어머니와 닮은 여자를 찾아 결혼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니는 그런 남자를 어디서 찾아 내었을까? 그것은 바로 같은 육상부에 가입된 창수라는 소년이다. 창수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하니를 위해 아낌없는 마음을 주는 착한 소년이다. 하니는 그런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창수에게 받음으로서 최후에 아버지와 새엄마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물론 창수라는 소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인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홍두께 선생이다. 홍두께 선생(성우를 맡으신 故 장정진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은 하니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하니를 직접 돌보는 모습이 나오고, 작중에서 하니는 무의식적으로 홍두께에게 아버지라고 외쳐준다. 그러나 이런 하니의 무의식적인 욕구는 계속 유지될 수 없었다.

홍두께 선생은 자신의 시골집에서 선보라 올라온 고은애와 결혼하였기 때문이다. 홍두께의 결혼은 하니에게 하니의 친아버지보다 더 친아버지같은 존재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하니가 창수와 친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달려라 하니는 어느 불우한 가정사를 안고 살아가는 육상부 소녀만의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다. 그 속에는 기존 한국만화에서 소년이 비중을 차지한데 비해 이제는 소녀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 내포된 인간의 무의식적인 욕구는 왜 이제서야 다시 보여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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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alto - Rialto
워너뮤직(WEA)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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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alto라는 그룹은 다소 음악이 몽상적인 부분이 강하다. 그 이유는 그들은 단순히 음악을 음악으로서 보여주기 보다는 음악을 하나의 영화처럼 보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Rialto 1집의 Monday Morniong 5.19의 경우 다소 가사가 어느 남자의 이별에 대해 노래한 것으로 남자가 여자와 헤어진 후에 여자에게 전화해도 그 여자는 받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가사가 I try to call I just get her machine 이다. 남자가 아무리 간절하고 바래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이 그저 자동응답기 기계음만 들린다. 그리고 새벽을 지나 아침이 다가오고 남자는 이제 더 이상 전화할 힘마져 없다.

그런 가사의 전달력으로 통해 마치 우리가 노래를 들음으로 남자의 절망을 알 수 있게금 한다. 그리고 다른 곡으로 When We're Together의 정말 영화같이 만든 뮤직비디오이다. 우리가 기존에 보는 뮤직비디오는 영화와 같다는 생각이 크게 안느낀다. 그것은 단순히 보여주기 급급할 뿐이지 영상 위에 보이는 화면은 지나가는 쇼타임과 같다.

그러나 When We're Together는 정말 한편의 흑백영화를 보는듯 하다. 어느 흑백영상필름에 한 여성이 나오고 스토커는 그녀를 항시 주시한다. 몰래 뒤따라가면 관음적으로 쳐다보는 카메라 시선이 더욱 스토커의 슬픔을 묻어 나온다. 특히 I call her up and disconnect, wait by her house once more to check에서 그녀의 집에 전화를 거는 스토커 그러나 말한다미도 할 용기없이 끊어 버린다.

그러나 I feel my blood rush to my heart 처럼 그 스토커의 마음 속에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다. 마치 스토커가 어느 여자를 열광적으로 훔쳐보는 이 뮤직비디오 슬픈 마음을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그런 점에서 Rialto의 음악은 상당히 영화처럼 들리는 부분이 많다.

물론 영화적인 부분이 있다고 음악적인 부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Rialto의 명곡인 Monday Morniong 5.19는 2명의 드러머가 호흡을 맞추며 같이 연주하고 있다. 2명의 드러머의 연주로 곡의 긴장감과 비트감이 넘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음악은 상당히 독특함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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