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창의력 - 창의력의 대가들에게서 배우는 57가지 성공 습관
로드 주드킨스 지음, 마도경 옮김 / 새로운제안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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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창의력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창의력을 실생활에서 가장 잘 발휘할 법한 사람들한테서 뭘 보고 배울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법을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고 척척 실행에 옮기는 이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질투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경쟁에서 살아남고 남들보다 앞서 가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무능해서 언제나 남보다 뒤처지면서 그 한심한 결과와 실패한 생에 대한 너저분한 핑계, 합리화 고안에만 희한한 소질을 보이는 인간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남의 창의력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모순일 수도 있으나, 여튼 그런 창의력으로부터 자극을 받고 종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는 건 보통 멋진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쓰레기인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는 데 인문의 핑계를 동원한다니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 천재들은 최상의 자신을 만드는 데 어떤 조건이나 타이밍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실천에 옮길 뿐입니다. 이 책에서 예로 드는 장 주네 같은 경우, 교도소에서 무작정 쓰고 또 써서 여튼 불멸의 대작을 남기긴 한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은 별로 보고 배우고 싶은 생각이 안 들지만(ㅎㅎ), 여튼 문예 부문에 불멸의 업적을 남기기는 한 그이기에, 그런 예리한 정신을 지배했던 "천재스러운 그 무언가"로부터 우리는 분명히 자극을 받습니다. 자극을 받았다면, 나의 정신 무장, 내가 지금 추진해 나가는 과제에 손톱만한 그 무엇이라도 선(善)의 기여로 변형 못 할 바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평생을 바치며 시간과 정력을 좀먹힌다면 실로 끔찍한 처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긴 소질도 없는 분야에 망상과 집착을 쏟으며 최악의 마스터베이션에 빠지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 이렇게 했었더라면, 그랬어야 하는데라며 후회하는 것보다(p45)" 바보스럽고 소모적인 건 없습니다. 카이사르는 결단을 현실에 투영하기 위해 퇴로를 끊었고, 세잔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소중한 이들과의 연을 끊었어야 했습니다. 그런 선택이 당사자에게 꼭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며, 윤리적 기준에서 별반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이 책의 교훈은 다만 이상의 실현과 내면의 갈등이 쌍생아처럼 붙어다니는 경우가 많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뛰어난 사람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창조합니다. 책에는 철학자 미셸 푸코의 유명한 말이 소개됩니다. "현대인의 임무는 자신의 내적 자아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발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근거도 없이 허상을 날조하여 타인을 속이라는 게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내면과의 정직하고도 치열한 대결을 통해, 일신우일신하는 자세로, 고정된 자아상이 아닌 환경과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자아를 구축하라는 뜻이죠. "발견"은 본디부터 거기 고정되어 있는 걸 수동적으로 조우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참된 나의 모습이, 마치 땅 속에 묻힌 광물처럼 수백 수천 년 동안 고정된 실체입니까? 그렇다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는 뜻입니다. 오로지 "죽은 자"만이, 나에 의해서건 타인에 의해서건 "발견"될 수 있습니다.

어느 인간이라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 인간은 생존 경쟁에서 도태되고 죽습니다. 이런 "나"를 어느 타인이 그 가치에 주목하고, 일일이 장점을 짚어 주며 찬양하고 판테온에 모시면 좋겠지만, 자기 할 일 젖혀 두고 나의 천재성과 자질을 현창할 만한 여유가 있는 타인은 없습니다(있다면 부모님 정도?). 그렇다면, 나의 가능성과 뛰어남을 극한치까지 상승시키고, 빛내며, 완성할 자는 오로지 나뿐입니다. "나"라는 예술 작품을 창조하고 세상에 뽐낼 수 있는 이는 오로지 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어제 통하던 방법이 오늘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내일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개 장애물로 바뀝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에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어떠해야겠습니까? 천재들은 남들이 생각지도 못 한 방법과 도구를 찾아내어, 아무도 상상 못 한 용도로 사용하여 난국을 타개하고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합니다. 고 정주영 창업주가 폐 유조선을 어떤 방식으로 재활용했는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도구와 창의는, 목표에 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지름길일 뿐 아니라, 때로는 그 자체가 예술 작품입니다.

천재들은 때때로 뻔뻔스럽습니다. 보통 돈은 더럽다며, 물욕을 내세우는 자는 속물이라며 비난을 가하기도 하지만, 현대의 천재들은 아이디어와 작품 하나를 내놓을 때마다 천연덕스럽게 "돈"을 요구합니다. 참 밉살맞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천재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천재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산하며 경쟁에서 살아남는 성공자,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당연히 후자일 겁니다. 전자는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와도 유전자 재조합이 이뤄질지 장담 못 하는 겁니다. 사람의 창의력은, 강렬한 물욕이라든가 분명한 동기가 정해져야 기발하고 놀라운 형태로 발휘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돈 청구하려고 손을 벌리자니 왠지 면구스러워서...." 벌써 이렇게 정신이 위축되고 체면을 따지기 시작하면 좋은 아이디어도 덩달아 나오다가죽어버립니다. 심인성 부전 기제로 당신의 두뇌에 괜히 기를 죽이지 마십시오.

천재는 무엇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부심으로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헤겔은 일찍이 "예술가는 군주의 기상을 가져야 한다"고 했고, 맹자는 군자의 호연지기를 논한 바 있습니다. 이와 대조되는 상태라면, 남 눈치를 비루하게 살피는 속물주의입니다. 고골의 단편 <초상화>에 나오는 주인공 화가는 본디 천재로 태어났으나, 귀족들의 천박한 기호에 이리저리 영합하고 손재주를 상업적으로 더립힌 끝에, 나중에는 하늘로부터 받은 재주를 모두 잊고(잃고) 평범한 사람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비위를 맞춰도, 내 마음 내 눈에 안 차면 쓰레기!라며 과감히 침을 뱉을 수 있는 호방한 안목과 기개가 있어야, 비로소 세상을 바꿔 놓을 미친 히트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천재는 무엇보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남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야 합니다. 성공하는 기업도 마찬가지여서, 시장의 후발주자, 추종자, 카피캣은 이제 선발자가 흘리고 간 이삭도 못 줍는 신세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세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뜻대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일시적 기분으로 갈팡질팡 정신을 못 차리는데, 시장이, 세상이, 과연 나의 브랜드와 상품에 주목을 하겠습니까? 마음의 안정과 질서가 모든 창의력의 근본이라는 가르침, 이 책의 대단원을 과연 장식하고도 남을 만큼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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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기 - 우석훈의 국가발 사기 감시 프로젝트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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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일찍이 국가를 일러 "인륜(人倫)의 최고 형태"라고까지 철학적 지위를 부여한 적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 고립하여 생존할 수 없기에, 군집을 이루고 각자의 몫을 배분 받으며 사회가 긍인하는 방식의 틀 안에서 자아 실현의 꿈도 허용될 뿐입니다. 사회와 질서가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일 개체의 존속도 보장될 수 없기에, 우리는 어느 집단에건 소속과 정체성을 의존하기 마련이며, 그 최종의 보루가 바로 국가라는 대집단입니다. 헌데, 이 국가가 선량한 시민(혹은 국민)에게 저열한 속임수나 부리고 있다면, 공조직에 여태 전적인 신뢰를 부여하고 살아 온 우리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가 쓴 이 책은, 하다못해 자잘한 생필품의 가격 책정이라든가, 기후와 환경 오염, 재정 정책, 내집 마련 에의 희망, 일자리 창출, 외교, 국방, 교육, 주식 투자 등 거의 시민 생활의 전 분야에 걸쳐, 국가가 어떻게 국민을 속이고 극히 일부 계층의 편익만을 위한 "조직적 사기"를 전개했는지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저자는 스스로 자신의 이번 책을 "국가의 거짓말을 폭로한 최초의 사회경제학 보고서"라고 평가합니다. 저자의 그런 평가에 얼마나 수긍하고 동조하며 마침내 결연한 행동에까지 독자가 이르게 될지는, 각자가 주의 깊게 텍스트를 살피며 치열한 사유를 일궈 낸 후에 판단할 일이겠습니다.

저자는 제1장에서, 일상의 사소한 과정 속에서까지 시민이 기업과 체제에 속으며 코 묻은 돈을 뜯기는, 의롭지 못한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고발합니다. 경제학자답게 저자는, 노벨 상도 일찌감치 받은, 시카고 학파(책을 읽어 보면 아시겠지만, 저자와 이 학파의 성향이란 극과 극으로 다르죠)의 유명한 멤버인 개리 베커 교수의 경제학 만능론을 인용하며 화두를 꺼냅니다. "세상의 대부분 범죄는 금전으로부터 시작하고, 치정 (범죄) 역시 금전에서 비롯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 같은데 저자가 구태여 이 말로 논의를 시작한 건, 본인도 경제학자이면서 "세상에는 경제 논리로 설명 안 되는 게 얼마든지 있음을 제발 좀 인정하자"는 말을 꺼내고 싶어서인 듯합니다. 음, 그 역시 옳은 말씀입니다.

경제논리로 모든 현상에 접근하면, 때로 중대한 오류를 범하거나, 인간으로서 최상위에 놓아야 할 가치를 훼손하거나, 아예 문제의 본말이 뒤집혀 극심한 혼란, 무질서까지 초래할 수 있습니다. 대형 마트에 걸린 플래카드의 현란한 문구도 믿을 수 없으며, TV 지상파에서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우수성도 언제 그 정반대의 사례가 밝혀져 신뢰가 붕괴할지 모릅니다. 저자는 경제학자답게(?) 2008년의 경제 위기 도래 직전 주식을 모두 팔고 폭락을 피했으며, 강남에 집값 오를 타이밍을 용케 맞혀 제법 큰 차익을 얻었습니다. 주위에서 비결을 묻습니다. 그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자신도 운과 요행에 상당수 기대어 그런 결과가 나온 줄 자인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어 본 사람도 "이렇게 하면 되더라" 식으로 확언, 자신을 못 하는데, 시중에 범람하는 그 많은 광고는 과연 얼마나 논거를 갖고 사람을 현혹하는 걸까요? 광고에 안 속는 게 똑똑한 시민 되기의 첫걸음임을 저자는 쉽고 친근한 말투로 독자에게 설득합니다.


1980년대 후반 들어 국가는 국민들더러 주식 사라고 부추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빚까지 내어 주식에 투자하기도 했는데, 마냥 오를 것같이만 보이던 증시 상황은 1990년대 초반 들어 몇 번이나 폭락을 거듭했습니다. 분노한 투자자 일부는 정부종합청사나 증권거래소 앞에 몰려가 정부의 해명과 대책 마련도 촉구했습니다. 저자는 한국의 증시, 나아가 세계 어느 나라의 주식시장 메커니즘도, 기본적으로 기관과 큰손, 내부자라는 갑(甲) 앞에 개미라는 을(乙)이 호구처럼 뜯어먹힐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통렬히 지적합니다. 물론 운이 좋아 대박을 칠 수도 있습니다만, 한 번의 운수를 믿고 카지노에 상주하던 어리석은 도박꾼이 이내 업소의 술수, 애초에 불리하게 정해진 승률의 술수에 놀아나며 개털이 되고 마는 이치와 같다고 주장합니다. 지질 게 빤한 게임에 왜 참여하냐는 겁니다.

2008년 들어 보수 진영에 정권이 넘어간 후, 언제부터인가 "경제를 살립시다" 같은 구호가 난무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10년 전을 회고합니다. 너도나도 경제 지상주의를 거론하며 당장이라도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듯 떠들었지만, 결국 재미를 본 건 시대착오적인 소수 토건족 말고 누가 있었느냐는 게 저자의 신랄한 지적입니다. 이런 부도덕한 일부 사업가와 결탁한 게 (소수이긴 해도) 정직하지 못한 공무원들인데, 이 책 제목 "국가의 사기"는 지금부터 본문과 본격적으로 연계를 맺으며 우리 나라의 공적 섹터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지목합니다. 저자는 "나도 한때 공무에 몸 담았지만..." 같은 말로, 어디까지나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해 논의를 전개함을 다시 강조합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유명한 문학작품(이자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고위 공무원이자 타락한 사업가였던 코마로프스키의 예를 들며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는 지위를 이용해(요즘의 어느 시사 사건과도 잘 통하는군요) 여인을 겁탈하고, 부패한 제정 러시아 체제에서 쏠쏠한 금전적 이득을 챙기는 짐승 같은 인간입니다.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약삭빠른 판단과 처신으로 다시 공산당 간부직을 차지하며 또다시 부정한 이익을 추구합니다. 저자는 바로 이 코마로프스키 같은,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 한국에도 고위직 곳곳에 포진하여, 국민의 세금을 좀먹고 행정의 효율과 본의를 흐리는 암초 노릇을 한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에는 정보를 조작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이른바 "물 브라더스"가 있다고 합니다. 수도 시설은 본디 정부나 공공 섹터가 오로지 국민의 이익만을 위해 엄정히 관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2001년 수도법이 개정되어 지자체로부터 민간 업체로 업무를 위탁할 수 있게 제도가 바뀌었다고 합니다(p179). 이렇게 함으로써 결과는 엉뚱하게 오히려 수자원공사의 권한만 비대하게 불린 셈인데, 이 공고한 클랜은 현재 누구도 깰 생각을 못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사실이라면 정말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네요. 한국에서 보통 홍수가 일어나면, 이게 댐 같은 게 부족해서가 아니라 빗물 펌프의 부적절한 운용이나 양적 부족에 기인한다는 게 저자의 관점인데, 이런 사실을 가능하면 호도, 은폐하려는 게 "물 브라더스"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 역시 큰 관점에서 "국가의 사기"입니다.


과연 이과형/문과형 인간이 날때부터 따로 존재할까요? 반은 농담조로 저자는 이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표시합니다. 과거 우수 과학 인재를 느닷 최고권력자(독재자)가 모셔와서는 국책 기관이나 대학에 "꽂아" 주던 풍조가 있었는데, 이를 두고 나이 든 축에서는 "박정희 노스탤지어"를 품기도 한다며 저자는 조소를 머금습니다("유신 사무관" 이야기도 곁들이면서요). "과학기술의 공익성"에 대해, 저자는 국가 예산 투입해서 수출 기업 지원하던 정책(지금 이러면 큰일나죠)을 용도 전환만 했을 뿐 근본적으로 다른 게 뭐냐면서, 모두가 국가 섹터에 의해 어용으로 조작된 "신화"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통박합니다.

저자가 부르짖으며 경각을 촉구하는 바는 저 "위선의 왕국"입니다. 연구 성과나 효용도 불확실한 프로젝트를 암암리에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서로 부실과 비위를 눈감아 줘 가며 예산을 빼 먹는, 거대한 카르텔이 학계에 존재한다고 폭로합니다. 국민 중 대부분은 "과학 기술 예산? 어련히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잘 쓰일까. 난 모르긴 해도 함부로 폄하할 건 아니고 응원이나 보내줘아지."처럼, 의심 않고 믿어버리는 철벽의 성역이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 예산은 우리만 타먹어야해!" 나면서부터 이과형 인간이 (좀 다른 의미로) 씨가 따로 정해지기라도 했는지, 이 꿀단지에는 아무도 함부로 손 대서는 안 됩니다. 일부 학계와 공직자가 결탁해서 이뤄지는 클랜화... 누가 과연 고양이의 목에 먼저 방울을 달까요?

"침묵이 길어지면 사기꾼들이 돌아온다." 결국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 나서서 의심하고 들여다보고 끊임없이 감시의 눈길을 번득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버스 준공영제는 마냥 시민을 위한 정책 같지만, 실은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부도 위험 없이 날로 먹자는 짓이나 같으며, 세상에 재벌보다 속편한 게 버스 회사 사장 아들 노릇이라고 저자는 신랄히 비꼽니다. 믿음직하게 여긴 게, 알고보니 평범한 시민들 주머니를 체계적으로 털어가는 "국가의 사기"였다니, 여간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 우리 시민들부터도 그저 당연히만 여겨온 잘못된 상식을 하나하나 털어 감시하고 비판과 개선을 촉구할 일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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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터[631]번째 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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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저나 브라우저 안의 문서를 조작하기 위해 만들어진 언어인 자바스크립트는 웹의 수요가 보편화됨에 따라 웹마스터나 웹디자이너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한 번쯤은 공부해야 할 프로그래밍 언어가 되고 있다. 개인 블로거, 카페 운영자, 개인 홈페이지 관리자라도 웹 언어를 이해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자바스크립트를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그림책 시리즈로 제2판인 개정증보판이 새롭게 선보였다. 웹페이지를 열면 툭 튀어나오는 팝업 창, 동적인 웹페이지 조작은 모두 자바스크립트를 이해함으로써 가능하다.

이 책에 따르면 자바스크립트(JavaScript)는 1995년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즈가 ‘라이브스크립트(LiveScript)’라는 이름으로 개발하여 웹 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2.0에 탑재하면서 시작되었고 그 후 인터넷 익스플로러에도 JScript라는 동일한 기능이 탑재되어 빠른 속도로 퍼져갔다. 1997년에는 정보통신의 표준화 단체인 ECMA(유럽 전자계산기공업회)가 자바스크립트의 사양으로 ECMAScript를 규정했는데 이것들을 통틀어 넓은 의미에서 ‘자바스크립트’라고도 한다고 한다. C나 자바같은 컴파일러형 언어가 아닌 인터프리터형 언어로 작성한 소스를 실시간으로 컴퓨터가 결과를 표시해주는 자바스크립트는 HTML에 포함되는 형태로 정의하여 브라우저 측에서 실행되어 결과를 표시한다.

이 책은 월드와이드웹의 개념부터 ...
◆ 참가방법
  1. 텍스터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먼저 해주세요.
  2. 서평단 가입 게시판에 "JavaScript가 보이는 그림책(개정증보판) 서평단 신청합니다"라고 써주시고 간단한 서평단 가입의도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3. 자신의 블로그에 서평단 모집 이벤트(복사, 붙여넣기)로 본 모집글을 올려주세요.
  4. 자세한 사항은 텍스터 서평단 선정 가이드를 참고하십시오.
※ 문의 : 궁금하신 점은 lovebook@texter.co.kr 메일로 주시거나 텍스터에 북스토리와 대화하기에 문의사항을 적어주시면 빠르게 답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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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감 국어 비문학 350제 (2018년) - 제대로 분석하고 훈련하는 수능국어 기출 N제 수능국어 기출 N제 시리즈 (2018년)
김건우 외 지음 / 레드카펫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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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학(공식 명칭으로는 "독서" 과목) 영역 지문은 많은 학생들에게 좌절과 근심을 안기는 수능의 큰 장애물 중 하나입니다. 제가 참 이런 문제를 볼 때마다 놀라는 건, 어른들이야 그간 관련 분야에서 소양과 지식을 쌓고 사유를 거쳤기에 풀어낸다고 해도(그나마 못 푸는 사람이 99%죠. 주워들은 풍월로 모집인처럼 어처구니없이 아는 척 흉내, 시늉을 낼 뿐이지), 애들이 이런 걸 어떻게 손대느냐는 아찔한 만한 난이도입니다. 사실 어떤 문항은 설령 내용을 몰라도 개념 표지 방향성만 분석하면 답이 절로 나옵니다. (이전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일종의 IQ 테스트이며, 이런 성격으로 이른바 "수학 능력 검증"이라는 명분을 교육 당국이 마련하는 겁니다) 그렇다 쳐도, 이처럼이나 까다로운 사항 설명과 취급은 그 겉모습만으로도 어린 수험생의 기를 죽이기 충분합니다.



그래서 기출 문제는 그 선별도 중요하고(수능이 실시된지 24년이 지났으므로 기출 자료 자체가 방대하게 축적되었습니다), 해설도 중요합니다. 수험생들은 아직도 기출을 반복 풀이하면 감각이 쌓이리라는 막연한 미신에 사로잡혀 있지만, 누차 강조하건대 한 문제를 풀어도 열 문제 스무 문제를 푸는 효과를 보아야 시간을 올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레드카펫 기출보감은 문제의 선별, 출제 의도를 올바로 파악한 해설, 나아가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비전과 지침 제공" 면에서 정말 탁월합니다. 애들에게, 이 참고서 좋은 걸 친구한테 절대 소문 내지 말고 혼자서만 알고 있으라고 단단히 다짐을 주고 싶은 생각이 다 듭니다. 아, 하긴 그럼 출판사에선 안 좋아하시겠네요 ^^ 그런데 수험 세계에서는 이기적으로 구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서 말이죠 ㅎㅎ

자기지시적 명제의 오류는, 20세기 전반 유럽 지성계를 거의 절망의 나락으로 몰고 간 충격적 발견이었습니다. 물론 "크레타 인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에피메니데스 역설은 이미 당대부터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래 이성과 과학으로 우리 사는 세계의 의문과 모순을 남김 없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확고히 자리잡았더랬습니다. 이런 믿음을 불과 수백 년 만에 뿌리부터 흔들어 놓은 게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이며, 그 발상의 기초는 저 에피메니데스 역설에 어떤 진릿값도 부여할 수 없다는, 하늘이 무너질 듯한 충격적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이 자기지시적 문장이 논리학이건 수학이건 모조리 도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괴델에 앞서 이미 러셀, 비트겐슈타인 등이 주목한 바 있었습니다. 그게 그저 걱정이 아니라 치명적 균열의 징후라는 건 괴델이 증명해 냈지만 말입니다.

p104에서 소개된 2017년 9월 모평 문제는 이런 고전파의 한계 봉착 사실과, 그레이엄 프리스트가 제시한 비(非) 고전논리학의 한 입장을 설명합니다. 그레이엄 프리스트는 영국의 논리학자인데, 이른바 paraconsistent logic의 전도사 중 한 명입니다. (이걸 한국학계에서는 "초일관성주의"로 번역하는 듯합니다) 간단히 말해, 자기지시적 문장 중 역설을 초래하는 이른바 "거짓말쟁이 문장"에 대해서는, 참과 거짓이라는 진릿값을 동시에 부여하자는 제안입니다. 참이면 참이고 거짓이면 거짓이지 그 중간이나 동시 태양은 있을 수 없다는 고전학파의 대전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학파죠.

문제는, 이 지문을 인문이나 철학 영역에 분류한 게 아니라, 이 책에선 "과학" 영역에 넣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이 지문이, 논리학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게 주 목적이 아니라(물론 그 용도로도 훌륭하지만), 바로 양자역학의 경험적 타당성을, 전혀 다른 분야에서 뒷받침하는 사례로 성격 규정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프리스트 자신도 "특정 위치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확률분포상으로만 존재하는) 입자 상태를 서술한 양자역학에의 한 방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 대목은 이 지문 중에도 나옵니다.

이처럼, 어떤 지문에 포함된 방대한 정보의 나열에 휩쓸릴 게 아니라 제대로 맥을 잡고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어야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음은, 이 책이 편집 단계에서부터 벌써 학생들에게 귀띔해 주는 셈입니다. 맥락을 파악할 때에는 그 양에 현혹될 게 아니라, 질적인 부분에 정확히 과녁을 잡아야 함정에 안 빠질 수 있습니다. 답은 ②입니다만, ⑤가 꽤 매혹적인 오답이죠. 책에서는 "LP가 언제나 타당한 건 아니"라고 한 대목을 근거로 듭니다만, 제 생각에는 그것보다 "모든 자기 지시적 문장" 부분이 더 결정적인 잘못이라고 봅니다. 앞서 말했듯 "모든"이 아니라 "거짓말쟁이"가 문제거든요.



흔히 출간되는 대중 과학서처럼, 심오한 원리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간단간단히 뇌과학 최근 연구 성과를 사항식으로 나열하는 지문입니다. 이런 건 영역이 뇌과학이라고 해서 대뜸 괜히 겁만 먹지 않으면 누구나 쉽게 한눈에 핵심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경제나 인문 등 문과 영역 문항보다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그저 과학 기술 지식이 난해하고 우월하다는 어리석은 대중의 통념 때문에 수험생들이 위축될 뿐입니다. 그래서 대중서로부터 몇 문장 뽑아내어 소화도 안 된 지식을 토해 놓고 잘난척하는 사기꾼들이 설치는 거죠.

이 책은, 해설에서 지문의 "문제 부위"를 일일이 짚어가며, 왜 그 대목에서 문제를 푸는 결정적 단서가 발견되어야만 하는지 아주 친절하고도 정확히 설명합니다. 1번 문항의 경우도, 특히 ⑤에서 "...형태면 유사성만 지적했을 뿐 기능성 언급이 없다"며, 고민깨나 했을 학생들의 가려운 대목을 아주 시원하게 긁어 줍니다. 해설이란 이처럼, 빙빙 돌려가며 문제를 문제로 답하는 게 아니라, 한 마디 말로 핵심만 명쾌하게 지적해야 제 할 일을 다하는 겁니다. 대성학원 박우섭 강사님처럼 전국구 베테랑만이 증명할 수 있는 명강사의 스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네요.



매 문제 세트마다 1차 풀이 시간, 2차 풀이 시간을 따로 기록하는 란이 있어서, 학생 자신이 얼마나 수월하게 문제를 정복했는지 향상 여부를 점검할 수 있게 돕습니다. 해설 코너에서는, 이 책의 최고 장점인 "오답 팩트 체크" 박스를 반드시 정독하십시오. 오답이 왜 오답인지 올바로 알아야, 정답이 손쉽게 눈에 띄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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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 리비우스 로마사 1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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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는 지중해 일대의 역사 전체와 그 비중이 맞먹을 만큼 장구하고, 그 위신이란 고대 서유럽사 전반의 그것을 대표한다 할 만큼 중요합니다. 셀주크 투르크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아나톨리아 반도를 차지했을 때 스스로도 감개무량했던지 점령지의 행정 단위를 "룸(그들식 발음으로) 술탄국"으로 불렀을 정도죠. 심지어 이곳은 원래의 로마(도시)로부터 3200km 정도, 서울 부산 사이 거리의 열 배 가까이 떨어져 있는데도요. 심지어 저 전투는 서로마 제국이 이미 멸망하고도 600년 가까이가 지난 후 치러졌는데도 말이죠.

11세기 후반에조차 로마의 위신이, 그 아슬아슬한 후계자인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에 의해서 그 정도라도 유지되었다면, 전성기의 공화국, 팽창기의 제국 시절엔 과연 어땠겠습니까. 하물며 리비우스는, 아직 제정, 정확하게는 원수정 초반의 승승장구하는 로마 역사 첫물만을 잠시 구경하다 생을 마쳤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의 저술에는, 말하자면, "당대인들 보아라, 외국인 너희들 경배하라. 후손들이여 주목하라. 우리 로마의 역사, 이처럼이나 자랑스럽고 당당하며 장엄하다." 같은 긍지가 뚝뚝 묻어납니다. 그의 필치는 한 마디로 요약하여 긍지와 애국심 그 자체입니다.

대개 자긍심 가득한 역사가의 필치와 시선이 자칫 잘못하면 주관주의, 국수주의, 독단으로 치닫기 일쑤이지만, 이 책은 심지어 그런 위험이나 경솔함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신중하고, 체계적이며, 로마 비(非) 시민권자는 물론 심지어 로마에 적대적인 이의 눈으로 읽는다 가정해도 엄정하고 공정합니다. 어떤 대목은 아예 "과학적"이란 느낌마저 줍니다. 무려 2000년도 넘은 아득한 옛 시절, 이처럼이나 체계적으로 사물과 사람을 보고 판단하며 정리하는 사람이 다 있었나 싶을 만큼입니다.

역사는 대체로 "이야기"이기도 하며, 불어에서 "이스투아(historie)"는 역사란 뜻, 이야기(="레씨 recit")란 뜻을 함께 가집니다(영어에선 history와 story가 발음, 철자, 단어 엔트리 등 모든 면에서 구분되나, 직접 어원은 역시 프랑스어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특히 근대에 들어 계몽주의 지성인들에 의해 "과학"으로 접근해갔으며, 랑케의 실증주의에 이르러서는 그 엄정성이 극치에 달했습니다. 헌데 그로부터도 천 수백 년 세월을 격한 이 리비우스의 저술은, 이미, 매우 체제가 질서 바를 뿐 아니라, 어떤 파트에서는 "행정가의 경륜"이 묻어나기까지 합니다. 한 개인이 대체 어떤 식으로 지적인 훈련을 받거나, 스스로 소양을 쌓았길래,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책을 쓸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게만 여겨졌습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이야기로서 망라적일(=빠진 데 없이 촘촘한 사연을 담았을) 뿐 아니라, 당대인과 외국인, 심지어 적국에 대해서조차 신뢰를 보낼 수 있는 표준적 관점을 담았습니다. 물론 역사의 초반에는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먹었다느니, 독수리 떼가 누구에게 더 많이 날아와 결국 로물루스가 창업의 정통을 더 크게 얻었다느니 하는 신이한 전기(傳奇)가 길게 서술됩니다. 허나 당대인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고대사를 이상화, 신비화했다는 증언, 인용으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겠습니까?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가 아니라 말입니다. 고려 후반의 승려 일연도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 그 기괴한 사연들을 일일이 사실로 믿어서 기록에 남긴 게 아니라, 신화나 전설은 그것대로 후대에 전할 필요가 있다는 동기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 중근세사를 읽으면, 이른바 요바이(夜這い) 풍습 등 참으로 미개하고 낯뜨거운 야만 습속이 많아 얼굴이 다 붉어집니다. 그런데 로마의 창업 초기로 거슬러올라가 봐도, 아직 인지가 덜 깨일 무렵이라, 젊은 남성들이 나체로 질주하며 처녀를 차지하는 경쟁을 벌였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말그대로 생면부지의 남성에게 완력으로 장래와 신변을 도적질당했다기보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동네 친구 또래 몇몇을 놓고 양해 하에 스스로 선택권을 줬다는 식으로도 선해가 가능합니다. 현대의 젊은 여성이라고 해서 "쟤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어디 한 남자만 찍어 놓고 살겠습니까?(물론 그럼 좋긴 하지만) 둘 혹은 셋 중에 능력 있고 과단성 더 있는 쪽에 순간 마음이 기울 수도 있죠.

p60:10에 보면 두움비르란 직책이 나옵니다. 라틴어의 duum 등에서 보는 모음 철자 겹침은 실제로도 두 배 길이로 발음하기에 저런 표기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어떤 건 철자가 같은데도 두 배로 길게 늘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정격을 갖춘 라틴어 텍스트는 모음 위에 장음기호[이런 걸 마크론이라고 하죠]을 붙여 표기합니다). 참고로, 본문에 duumvirs라고, 영어식으로 복수형이 표기된 걸로 보아 이종인 선생께선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으신 듯합니다. 라틴어 복수는 duumviri로, 어미(엔딩) -i가 붙거든요.

아무래도 이 시기(제1권은 건국초부터 390 BCE까지 다룹니다. pp. 548~550의 연대기에 타임라인이 잘 정리되어 있고, 이런 점 역시 이 책만의 최고 장점 중 하나입니다)는 로마가 자신들만의 정체성과 기반을 다져 나가는 도상(途上)이다 보니, 인접 후진 지역의 주민, 종족들과 갈등하는 양상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래도, 꼭 로마 시민이 아니어도 라티움 지역인들과는 말이 통했고(왜 "로마어"가 아니라 "라틴 어'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방언의 편차는 있어도 반도 인근의 거주자들과는 의사 소통에 큰 무리는 없었을 겁니다.

허나 알프스 넘어, 갈리아 지역을 응시하면 사정이 크게 달라집니다. 이들은 육체적으로 드세고 미개하기에 막무가내이며(로마 인의 관점에서), 그들 나름대로 확고한 정체성을 지녔기에 결코 대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로마사의 전반부는 이 골 족과의 대립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마치 중화 제국이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을 상대로 "왕화"를 시도하거나 군사적 징치를 도모하던 족적과 유사합니다. 물론 우리는 근거도 없이 승자 위주의 세계관에 편승하여 자기기만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되며, 리비우스나 로마인의 관점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 상대측의 입장까지도, 행간을 넘어 객관적으로 관찰하려 애 써야 하겠습니다.

갈리아 인들이 얼마나 로마인들의 골치를 썩였나 하면, 우리가 잘 아는 불세출의 정치인, 군인이었던 줄리어스 시저도 그의 대표 저술 중 하나가 <갈리아 전기(戰記)>일 정도입니다. 골 족 상대로의 대 승전이 그의 커리어 정점을 찍을 만큼 중요한 사건이고, 물론 로마가 생존의 기로에 서서 기사회생한 모멘텀이기도 합니다. 헌데 이 1권에서 다뤄지는 전쟁 기록은 그보다도 300년이나 더 앞선 시기의 것들입니다. 로마인들에게 골 족이 차지하는 위상이랄까 하중은, 마치 중화 제국이 흉노 족을 상대로 느꼈던 부담과 공포감과도 유사합니다. 수백 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역시 300년이나 앞선 시기이지만, 이 책에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이름이 또 등장합니다. 줄리어스 시저(동명의 조상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요 원)의 가문이 얼마나 유서 깊었는지 또다시 확인 가능하며, 예컨대 현대 작가 칼린(Coleen) 매컬로 여사의 대작 픽션에서, 재산은 막대하지만 위신이 전무했던 마리우스 장군에게 그처럼이나 비싼 대가를 받고 혼사를 치를 수 있었던 저력의 먼 연원이 대체 어디서부터인지도 새삼 짐작 가능합니다.

르네상스 역사를 공부할 때 중요한 지리적 기준 중 하나가 알프스 이남이냐 이북이냐 하는 겁니다. 정확하게는 "알프스 이편/저편"인데, 그야말로 자신과 타인을 대단히 주관적으로 편가름하는 범주라서 어리둥절할 때가 많았죠. 이런 이상한 명칭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려면 바로 이런 로마 시대의 사료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고전 중의 고전을 읽는 보람과 재미는 이런 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책에는 "키살피나"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게 cis+alpina입니다. cis는 말하는 사람, 혹은 어느 기준점을 상정했을 때 "이쪽, 같은 편'이란 뜻입니다. 이게 천 수백 년이 지나 나폴레옹의 시대에 이르면 이 사람이 반도를 정복하고 인위적으로 편성한 "치살피나 공화국"이란 이름도 등장하는데. 완전히 같은 어원이고 단 그로부터 수백 년 전 이탈리아어에 폭 넓게 구개음화 현상이 일어나 "키"가 "치"로 바뀌었을 뿐입니다(우리말에서도 종종 발견되죠). 왜 저기 시스 AB형이라든가, 유전자 발현 메커니즘 용어에서도 이 접두어 cis-(반대어근은 trans-)는 너무너무 자주 쓰이죠.

이 1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서사는 혹 단 둘만 꼽으라면,


1) 현대 영어권, 아니 서유럽 문화권에서 두루 "폭군의 대명사"로 꼽히는 타르퀸 더 프라우드(오만왕 타르퀸)이 과연 누구였는지, 어쩌다 그런 유취만년의 신세가 되었는지. 정통 역사가의 서술을 읽어 나가며 머리 속에 정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타르퀸 왕은 서유럽에서야 거의 네로만큼이나 유명한데 한국인들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죠. 이 폭군이 왜 중요하냐면, 이후 로마가 공화정을 이어나가며 혹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실력자가 등장할 때마다, "너, 타르퀴니우스처럼 되고 싶냐? 여러분들, 기분에 끌려 또 독재자 밑에서 신음하시렵니까?" 같은, 일종의 건국이념 반면교사나 안티테제 처럼 기능하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멀게는 브루투스가 시저를 암살한 것도, 대외적 정당화의 기반은 이 고사에서 마련한 행위입니다.

2) 역시 유명한 "정결한 루크레티아" 이야기가 대체 무엇이 원전인지, 이 1권에서 또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대 젠더 담론으로 보면 여성에게 자신이 책임 질 수 없는 사유로 무슨 정절(을 위한 죽음)을 강요하느니 비판이 제기될 수 있지만, 사실 이 책에서도 확인되지만 본디는 그런 가부장적 도그마와는 무관한, 한 자부심 높은 여인의 결연한 처신(무슨 남존여비 사상의 희생양이 아니라, 복수를 해 달라는 확고한 결의, 자신의 존엄을 선명히 하려는 동기였죠. 남자도 치욕을 당하면 자결하는 고사가 역사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을 잘 드러낼 뿐입니다. 이뿐 아니라 루벤스 외 여러 거장의 그림으로도 유명한 각종 사연의 기원, 모티프가 무엇인지도 그야말로 원전으로(그것도 바로 이 1권애서!) 확인 가능하죠. 또, 앞서 말한 매컬로 여사의 픽션에서는, 브루투스가 그런 거사를 감행한 내적 동기를 놓고, 그 모친의 훈육 방식이나 처신이 아이한테 남긴 나쁜 영향을 은근 암시하는데, 이 1권을 통해 먼 조상님 브루투스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재미있게 배울 수 있습니다.

서술은 당당하고 시야는 원대합니다. 성인은 이 책을 읽고 품위 있는 정사서의 기준이 무엇인지 가치관을 재정립할 수 있고, 자라나는 청소년이라면 바로 이런 위풍 빛나는 역사를 읽고 그 역사를 숨쉬며 만들어 나가는 인물이 되겠다고 보다 큰 꿈을 품을 수 있습니다. 추천사에 나온 대로, 왜 여태 그리스 사가들의 대작들에 비해, 이런 중요한 고전이 늦게 번역되었는지 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지만, 이종인 선생 같은 최고 권위자의 손에 의해 이처럼 우리 독자들과 감개 어린 조우가 이뤄졌으니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저 최고,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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