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 더 나은 삶을 꿈꾸는 당신에게
로먼 크르즈나릭 지음, 강혜정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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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가 E H Carr는, 역사를 두고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요약한 적 있습니다. 그의 말 그대로, 역사는 과연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이며, 역사가 과거에만 묶여 있을 시 이는 참된 역사일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가 사는 현재와 끊임 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를 통해 우리에게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고인 물은 반드시 썩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로먼 크로즈나릭 교수님은 좀 다른 면에서 저 유명한 말을 재해석합니다. 역사가 "현재"라는 다분히 추상적인 매개를 통해 우리와 대화하는 게 아니라, 중간에 끼는 이 없이, 다이렉트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는 겁니다. 그럴 수도 있을까? 사실 저자의 모국인 영국 아닌 프랑스에서는 이미 "아날 학파"가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 거대 정치사나 형이상의 의미 부여가 아닌, "소소한 일상으로 이뤄진 역사"에 대해 집중 탐구를 시작한 적 있습니다. 그들과 이 저자가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역사적 사건(거대한 맥락의)과 일상사(의 메시지)를 애써 구별하지 않고, "당신들, 바쁜 현대인들은 왜 그렇게 무의미한 관념과 선입견에 파묻혀 인생의 소중한 의미를 잊고 사는가?"에 대해 정면으로 교훈을 추출하여 우리에게 건넨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역사책이나 그 역사책에 등장하는 철학자, 현인들은, 시대가 많이 흘러 다분히 이해가 어렵게 된 언어로 표현했었다뿐, 실제로는 매우 명쾌하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혹은, 여전히 어려운 관념이었으나 저자 크로즈나릭 교수님이 이 책에서 비로소 쉽게 풀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의 개념은 물론 우리들이 고교 과정 "윤리와 사상" 등에서 아가페, 에로스, 필리아 등의 구분으로 배우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개념사항들을 넘어, 사람이 사람에게 갖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공감, 순수한 호감, 도와 주고 싶은 마음, 연대 의식 같은 게 우리 역사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알려 줍니다. 어찌보면, 그런 순수한 가치를 담지 못하는 역사는 벌써 역사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악할까요, 아님 그래도 선하게 바뀔 여지가 있기는 한, 척박하게 버려진 땅 같은 걸까요? 저자는 p100에서 일단 비관적인 답을 내어놓습니다. 2차 대전 당시의 아우슈비츠, 십자군 전쟁, 식민지 개척 전쟁, 현대의 이기적이고 약탈적인 기업들이 저지르는 환경 오염... 인간이 악하다는 증거는 끝도 없습니다. 저자는 나아가 "타인을 해치는 비상한 능력을 지녔으며, 불의를 보고도 수동적인 태도로 수수방관하는 능력" 역시 인간이 탁월하다고 비판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봐도 부끄럽지만 타당한 지적이며, 우리 인류의 미래에 대해 암울한 생각을 비껴갈 수 없게 합니다. 이런 관점의 대표자로 책에서는 토마스 홉스 같은 이를 들며, 우리 동양권의 독자들이 잘 아는 논자로는 순자 같은 이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불길하게만 세상과 인간을 볼 일은 아닙니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인간 본성과 인간사에서 그와 반대되는 희망적인 불씨에 주목한 인물도 있으며, 그 대표격으로 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를 꼽습니다. 애덤 스미스가 직접 쓴 표현은 아니지만 저자는 그를 가리켜 인간을 "호모 엠파티쿠스"로 본 몇 안 되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스미스를 경제학 개조로만 알지만, 그의 시대에는 도덕철학이라는 게 지식인, 석학의 필수 논의 과제였으므로 그의 정력과 시간, 재능도 주로 이쪽에 쏟아졌던 게 맞습니다. 경제 관련 논변, 연구는 오히려 가외의 취미 비슷한 것이었죠.  

저자는 이어 18~19세에도 상당수의 백인들이 노예제 폐지를 입 모아 주장했으며 이것이 바로 타인의 이유 없는 불행에 눈감지 않는 공감의 징표라고 말합니다(p122). 이런 공감의 목소리, 행동, 협력이 모이고 모여 변화를 이끌어내며 역사의 근본적인 흐름을 바꾼다는 취지입니다. 윌리엄 월버포 같은 당시 영국의 정치가가 실제 행동으로 보여 준 노력은 감동적입니다. 미국의 토머스 클럭슨 같은 분의 인도주의적 행적은 또 어떻습니까. 이분, 또 스토 부인 같은 사람들은 펜으로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노예제의 비참한 실태를 알리고 고발했는데 이 책에도 얼마나 잔혹하게 노예들에 대해 태형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기록 인용이 있습니다. 

퀘이커 교도는 한때 미국에서 소수파 이단으로 멸시, 탄압받았습니다. "퀘이커"라는 말 자체가 비칭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가들이 한때 멸칭이었던 프로테스탄트에 자랑스럽고 적극적인 아이덴티티를 새로 정립한 것처럼, 퀘이커 교도들 역시 "그래! 우리는 퀘이커다!"를 선언하고 오히려 주류 기독교인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사회 문제와 모순에 대해 해결의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p222에서는 존 울먼이라는 운동가를 소개하는데, 소신과 지조 굳은 한 인간이 세상을 어느 정도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모범적인 예시입니다. 18세기 중반인 울먼의 시대에도 영국에서 아직도 인클로저 운동이 진행 중이라는 말을 듣고 울먼은 대서양을 건너기까지 합니다. 행동을 하지 않고서는 몸이 근질거려 못 견디는, 살아 움직이는 양심의 표본입니다.    

우리는 행운의 숫자를 7로 여기지만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5에다가 세상의 비밀과 이치를 모두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자연계를 구성하는 요소도 다섯 개요, 인간의 (외부) 감각도 시, 청, 촉, 후, 미 다섯 개입니다. 그는 이런 전제 아래에서 인간에게 내부 감각이라는 게 있다는 주장을 해부학적으로 뒷받침하려 했는데, 근대에 들어 이 주장은 가차없이 버려졌습니다(하지만 현대 들어 뇌신경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으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런 황당해 보이는 학설도 어떻게 재조명이 이뤄질지 모릅니다). 

특히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은 감각 세계와 정신 사이에 날카로운 선을 그었다"고 평가된다고 합니다(p241). 이 해석이 하도 근사하게 보여서 후주(p494)와 참고문헌 목록(p474)을 찾아 보니, 콘스탄스 클래슨이 36세에 썼던 책이 그 출처라고 나오네요.  

서유럽 역사에서 부러운 건, 온갖 역경을 헤치고 먼 거리로 탐험을 떠나 기어이 (그들 입장에서) 발견을 해 내고 마는 모종의 용기입니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에도, 막부에서 남만인(이베리아 출신), 홍모인(네덜란드인) 등을 폄하하자 "그래도 그 먼 거거에서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보통내기들이 아니"라며 감탄하는 장면이 있죠. 19세기 탐험가 메리 킹슬리는 첫째 정규 교육을 전혀 못 받았고 둘째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가득했던 시절 대담하게도 아프리카로 떠나 많은 업적을 이뤄냈고 현지인들에 대해 동조적이고 호의적인 평가를 기록으로 남긴 점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반면 동시대인이라 볼 수 있는 찰스 다윈의 글은 대단히 심각한 편견을 드러냅니다. 

개개 국민을 농노의 위치에서 끌어올리는 데에는 국민교육의 실시가 큰 몫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으며, 인종주의와 증오를 조장한 면 작지 않고, 국경 밖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대해 냉혹해지거나 오히려 적극 가담케 하는 기능도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결과 두 차례에 걸쳐 큰 규모의 전쟁이 벌어졌고 휴머니티 가치 자체가 훼손되었습니다. 이런 불의와 부도덕,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감과 연대의식 회복이 필수이며 우리는 그런 목소리와 교훈을 다름아닌 역사를 통해 실감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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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법인세법 - 제2판
노현섭.김영화 지음 / 피앤씨미디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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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개인 소득세를 내고, 법인은 법인세를 냅니다. 법인은 법(종류 불문)에 의해 "인(人)"으로 여겨지는 단위를 말합니다. 자연인이 사람으로 인정받는 데에는 출생 신고 외에 특별한 절차가 필요 없지만, 법인은 설립의 절차가 따로 요구됩니다. 그래서 법인세를 실제 내기도 하고 법인 해산 판결도 내려지지만 이런 법인이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있지는 않으나 있다고 가정하고 사회 생활과 제도의 편의를 도모할 뿐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이미 법인세를 냈는데 또 개인(주주 등)에게 소득세를 부과하는 건 이중과세라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법인 실재설의 경우, 엄연히 법인은 자연인과 구별되는 실재 단위이므로 이런 과세 정책이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법인 의제설은 반대로 이중과세의 부당함을 지적합니다.

"법인세란 그저 조세의 편의를 위한 제도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분들이라 해도, 반드시 후자의 입장에 서는 건 아닙니다. 양설의 대립 여부를 떠나, 법인세 제도를 마련해서 기업 단위에서 먼저 세금을 걷는 건 조세 당국 입장에서 매우 편하기는 합니다. 이 때문에, 현대 학계에서 실재/의제의 대립은 대부분 무의미하다고 보며, 법인의 존재는 조세 징수의 편익에도 큰 이유가 있다는 제3의 입장이 너른 지지를 받습니다.

어떤 학자분(한국에서는 김현동 교수 등)은 "법인이라는 길목"에서 일단 조세를 거두어들여야, 수없이 복잡하게 꼬여 있는 개인 소유 관계의 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지분이나 소유권 관계가 투명하지 않은 것은 대부분 탈세를 목적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이걸 일일이 세무 당국에서 추적한다면 막대한 인적 자원, 경비가 소요될 터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로스업 방식으로 이중과세 논란을 해결합니다. 일단 주주 소득에다, 법인세 단계에서 납부했던 금액을 도로 더한다는 게 중요합니다(실제로 주주가 받은 돈은 법인세 납부 후 줄어든 배당액인데도요). 이렇게 해서 일단 소득세를 계산한 후, 세액 공제 방식으로 법인세 납부 부분만큼을 빼 줍니다. 앞서 세액 표준 계산시 (받지도 않았는데) 합쳐진 돈보다, 이처럼 세액 공제 방식으로 덜어지는 돈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소득공제보다는 세액 공제가 유리하다는 점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그럼 그로스업은 왜 해 주느냐? 나중에 세액 공제를 해 줄텐데 애초에 법인세 납부 후 금액이 표준이 된다면 그야말로 이중 공제를 해 주는 셈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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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모르는 남자들의 심리 - 사랑이 서툰 너에게
이성현 지음, 차상미 그림 / 21세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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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에서 온 여자, 화성에서..."란 말이 있듯, 여성과 남성의 심리는 너무도 다릅니다. 과연 같은 종(種)이 맞는지가 의심스럽지만(?), 교합 후 2세를 생산하는 걸 보면 섣부른 의심을 할 일도 아닙니다. 자웅 성체가 현격히 다른 모습을 한 걸 두고 dimorphism이라 부르는데, 사람의 경우 공작새나 사자 만큼 차이가 나는 경우는 아닙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안타깝게 보는 건, 거 괜찮게 풀리겠다 싶던 커플이 사소한 다툼을 계기로 헤어지거나 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결국 뭐 잘 안 맞았나 보지 뭐." 하고 체념할 수도 있겠지만, 알고 보면 미미했던 불화나 오해 때문에 그 지경이 되었다면 그건 제3자가 보기에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관계의 파탄이라는 "사고"를 미연에 막고, 현재 그럭저럭 잘 되어가는 관계라면 더욱 "기름"을 치고, 뭔가 낌새는 있는데 아직 스파크가 안 튀는 단계라면 촉매제를 확 부어 주는 게 바로 이성 심리의 이해입니다.

이 책은 아직 젊은 남성 저자가 쓴, "알 필요도 있고 알아 주었으면 하는 미묘한 남성 심리"에 대한 내용입니다. 남자가 여자로부터 일방적으로 배려 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여자 입장에서 일단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전략이 뭐가 있을지 코칭해 주는 내용입니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다면 한 번은 관계를 가꾸는 게 일차 목표이지, 미숙한 에고만 철벽방어하고 정신승리에 그친다면(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 그걸 어디 어른의 심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남자 입장에서 꼭 챙겨야 할 여성의 심리" 같은 주제는 다른 책에서 찾거나, 아니면 이 작가(크레에이터)께서 언젠가 후편으로 쓸지도 모르죠.

남자들이 여자한테 하는 "귀엽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이 얘기는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여자가 하는 말과는 달리, "사귀지도 않으면서 괜히 부담스러워 할까봐, 또는 못생겼다고 장난치면(사실 장난도 아님) 기분이 나쁠까봐"(p17) 그냥 하는 말이라는 거죠. 대략 이십 년도 전에 벌써 "해명이 나온 주제"인데, 그래도 어느 세대에게나 지난 세대의 지혜(...)를 물려줄 필요는 있습니다. 연애 자체는 낭만이지만, 결실을 보거나 덜 타격이 가는 결말(파국)을 위해선 언제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답장은 꼬박꼬박 하는데 선톡이 없으면, 그건 (역시) 마음이 없어서일 가능성이 크다."(p27) 안타깝지만 이 역시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 선톡도 가끔 날려서 관리를 하는데, 대부분의 남성은 이 정도의 배려, 꼼수도 쓰지 않기 때문에 판별이 쉽죠. 이렇게 쉬운남자 심리인데도 속을 못 알아채는 이유는, 여성의 경우 그 남자한테 한번 빠져들면 더 심하게 콩깍지가 씌기 때문입니다. 객관적 현실, 해답은 뻔한데 그 여성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영리하게, "현실이 이러므로 꿈 깨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제발 희망고문들 좀 하지 마세요"라며 오히려 남자들에게 충고를 합니다(!). 이처럼 (여성)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성공하는 크리에이터가 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ㅋ 아, 물론 "여자건 남자건 쳐내세요(p27)"라고 텍스트상으로는 나와 있으므로 꼭 특정 성별의 독자에게만 어필하는 멘트는 아니겠습니다. 좀 뒤에 보면, 여성 역시 자신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데 마음이 없으면 초장에 단칼 거절을 하라는 조언이 나옵니다. 역시 희망고문이 가장 나쁘다면서 말입니다(p37).

썸을 타는 건 맞는데 왜 남자는 고백을 안 할까요?(일단 남자가 고백 안 하는 경우부터 분석) 첫째는 거절당하면 다시는 못 만나니까. 둘째 여성이 자신보다 훨씬 나아 보여 자격지심이 있을 때,. 이 두 가지 이유가 주된 것이라고 합니다. 당연하지만 또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남자도 어장 관리를 하지만, 그보다는 "걱정을 지나치게 많이 해서, 혹은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가 진짜 이유라는 거죠. 여기까지는 별 새로운 게 없는 내용인데, 그 다음 조언이 좋습니다. "여자가 먼저 고백을 해 보라"는 겁니다(p33).

여자가 먼저 고백을 하면 가벼워보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오히려 남자는 용기 있는 여성으로 그녀를 생각하며(p43), 자신감 있는 여자라고 더 큰 호감을 느낄 수 있다고 여긴다(p45)는 겁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100% 맞는 말입니다. "가볍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게 글러먹은 놈이죠."라고도 하시는데, 100% 찬성입니다. 용기 있다 이런 걸 떠나 요즘 여성들은 호감이 있으면 빤히 시선을 응시하더군요. (물론 정반대의 경우에도 기가 막혀서 쳐다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결론은 "자존심 때문에 사랑을 놓치지 말라"는 겁니다. 이렇게 괜찮은 여자를 대뜸 거절하는 놈은 안목이건 깜냥이건 비전이건 다 시원찮은 놈 아니겠습니까?

"남자는 단순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존심이 세다." 그래서 데이트 비용 등을 낼 형편이 안 될 때, 데이트 자체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 저자는 (그런 남성 독자들에게 말하기를), 여자친구는 물질보다 남친 자주 만나는 게 더 좋으니 그런 경우 부끄러워하지 말고 여자에게 기대기도 하라고 말합니다. 근데 정말로 이 충고가 100% 먹히는 관계라면 참 행복한 커플이겠으며, 누구의 충고 없이도 이미 알아서들 잘해나가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남자는 능력을 자발적으로 키워 나갑시다. 그래야 개념녀를 만납니다.

남자가 질투를 안 하는 이유는 뭔가(남자가 질투를 "하는" 심리는 이 책 앞에서 다뤘고 이 서평에서도 간접 언급했습니다). 이것도 "에휴 그냥 헤어지면 되지"가 있고, 반대로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뭐라도 다 배려하고 참는 심리가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여자는 질투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는 게 보통이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남자한테 "쌩얼(민낯)"을 보여 줘도 될까? 여자들은 이 경우 못생겼다고 싫어하게 될까봐 많이 주저한다지만, 남자들은 여자친구의 "순둥순둥한(p67)"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것도 초창기, 아직 콩깍지가 씌었을 때 보여줘야 효과가 더 좋다고 저자는 권하는군요. "미리 보여줘서 예쁘다고 머리에 박히게 하라" 거 참 맞는 말입니다.

잔소리의 경우 여자는 "다음부터는 제발 좀 안 이랬으면" 하는 생각으로 하는 건데, 남자는 "안 그래도 잘 하고 고칠 건데 왜 쓸데없이 감정 소모를 하지?" 같은 생각으로 언짢아하는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대화를 더 자주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전여친과 비교하는 남자는, 지금 이 여자를 만나는 게 아니라 전 여친의 환상을 대용품을 빌려 재현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남자와는 과감히 헤어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단칼 충고입니다.

좀 묘한 이야기도 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감수성이 터져서(이 경우는 꼭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가 아니라 반대로 비하 심리도 있다고 합니다. 그건 그렇죠) 갑자기 여친에게 전화해서 "나보다 더 나은 남자 만나" 라는 괴멘트를 던지는 경우가 있답니다. 이때 속셈은 여친이 질려서 그냥 헤어지고 싶은 건데 희한한 핑계를 대며 자기기만, 위선을 떠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게 맞는 소린가? 남자 입장에서 잘 생각해 봤는데, 생각해 보니 거 참 대단한 통찰이다. 이거는 허를 제대로 찔리고도 자기 심리를 자기가 몰라 남자들이 대부분 인정 안 할 것 같습니다. 타인 앞에선 물론이고 자기 혼자만의 시간에도 말입니다. 이 책이, 아직 나이 어린 저자의 달달하고 그저 맞기만 한 당연한 상식으로 무슨 바넘 효과를 노리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대목처럼 남들이 채 캐치 못한 지점을 치고 들어가니까, 예전부터 이 크리에이터가 인터넷에서 소문도 나고 조회수도 높고 인기를 끄는 것 아니겠나 싶었습니다.

에피소드 32에 남자는 "자신을 좋아해 준 사람과, 좋아한 사람 중 누구를 더 못 잊나요?"란 질문이 있습니다. 마치 예전, 수학자 레이먼드 스멀리언의 책 어느 구절처럼,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 같은, (철학이 아니라 연애사의 영역에서는) 결정적이고도 근원적인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단언하건대, "둘 다 생각은 나겠지만, 더 못 잊는 건 압도적으로 후자이다"라고 합니다. "좋아해준 여자를 못 잊는" 건, 그저 미안해서일 뿐이라고 합니다. 거 참 가슴 아프지만 맞는 말 아닐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나쁜 놈들(...)은 그런 미안한 감정조차도 없어서 아예 잊어버립니다. ㅋㅋㅋ

"자신이 좋아한 여자는 추억 속에서 곱씹지만
자신을 좋아해 준 여자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랑거리로 삼을 뿐이다."

우리가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매 페이지 페이지마다 새로운 통찰이 들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아는 상식을 확인하고 싶어서도 있습니다. 연애사만큼 빤히 되풀이되고 처방이 잘 알려진 영역도 없지만, 그 안에 빠져 고민하는 당사자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번민과 절망과 열정에 숨막혀합니다. 오죽하면 영어의 passion이, 그 어원 면에서 "고통"이란 뜻이었겠습니까. 허나 이런 책을 읽고 한번쯤은 나 자신을 객관화하며, 결국 별것도 없는 관계와 애정 속에서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찾다가 한 세상 마치는 거겠습니다. 망상은 금물이며, 늙은 닭대가리한테나 끼고 살라고 안겨 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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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 한현민 이 사람 시리즈
김민정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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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훌쩍 더 컸던 그는 초등학교 2학년때 야구부에 들어갔다."

이처럼 한현민은 어렸을 때부터(지금도 어리긴 하지만) 야구를 사랑했고, 지금도 자기는 청주 한씨라며 한화 이글스를 무척 열렬히 응원합니다. 야구는 통계 스포츠이기에 야구팬들이 흔히 그렇듯 그 역시 한화 팀과 선수들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줄줄 외우고 다닐 만큼 몰입하는 팬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이어갈 수 없었는데, 야구는 워낙에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며 그의 가정은 이를 금전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죠.("양준혁 야구교실" 회원이었다고 하는데 왕년의 레전드가 펼치는 멋진 프로젝트에 이처럼이나 직접 수혜를 입은[선수는 아니라고 하나] 유명인이 이렇게 이른 시기에 나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한현민이 워낙 어려서인 까닭이 크지만요)

"네가 야구를 하면 우리 가족 모두가 힘들어질 수 있어."

가슴 아픈 말씀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대학에서 야구를 계속하고 심지어 프로팀 드래프트에서 지명까지 되어도 내내 2군에서만 머무르다 은퇴 아닌 은퇴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며, 1군 정규 멤버라고 해도 팬들의 뇌리에 장기간 남는 선수는 극히 드뭅니다. 요즘은 유복한 집안에서 운동을 시키기 때문에 귀염성 있는 외모까지 갖춘 스타 재목이 많지만, 이들 역시 워낙 치열한 프로 세계의 경쟁 속에서 쓴맛을 보고 쓸쓸히 퇴장하기도 합니다. 1군 선수가 그럴진대 하물며...

여튼 이런 기나긴(어른들이 보기엔 짧지만) 고뇌의 시간이 그의 영혼에 남긴 아픔의 열매가 그 나름 보람을 낳은 덕인지, 혹은 타고난 좋은 체형 덕분인지(후자가 크겠지만), 한현민은 모델계에서 바로 주목 받아 현재 활동 중이고, 이런저런 TV 오락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비춰 많은 이들이 알아보는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아직 고등학생인데도 말입니다.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이는 중학교 선배, 축구부 주장이었습니다. 늘씬한 체형에 (어린 한현민의 눈에는) 비할 수 없이 하이패션을 하고 다니는 그를 보고, 소년은 바로 롤 모델로 삼게 되었지요. 이때 이후로 그의 꿈은 자타공인 모델이었습니다. 헌데 모델도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이 분야를 지망하는 대부분의 또래들처럼 무슨무슨 아카데미를 다녀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한현민이 누구인지 아는 이들이라면 설명 없이도 짐작이 가능하겠으나, 모르는 분들이라면 "아 타고난 체형 조건이 그렇게 좋다며 대체 뭐가 도전이고 아픔이었다는 거냐?"라며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는 나이지리아인 아버지를 둔 혼혈인이며, 요즘 우리 시대의 핫 이슈 중 하나로 부상하는 "다문화 가정" 출신입니다. 한국처럼 텃세가 심하고 폐쇄적 자기 중심주의에 빠지기 쉬운 문화권에서 아무리 유리한 체형을 타고났다 한들, 하물며 넉넉한 집안 출신도 아니라면, 좋지 못한 경로로 (그의 잘못이 아니라 환경의 탓으로) 엇나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훌륭한 직업인으로서 지금 세상의 주목을 받는, 성공의 일보 직전까지 다다라 있습니다.

"그는 매력적인 모델로 기억되고 싶었다. 어떤 옷을 입든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는 모델이 되고 싶었다."

모델계에 투신한 후 그가 롤모델로 삼은 이는 김원중이었습니다. 이 김원중씨가 그에게 해 준 말이, "포즈를 더 건방지게 해 봐."였답니다.  이 "건방짐", 다른 모델과 영원히 대체 불가 포인트를 만드는 개성이, 이 책 제목이기도 한 "스웨그(swag)"입니다. 이는 또한, 남들이 알지 못했고 영원히 알 수도 없을 그만의 상처와 아픔을 당당히 극복하는 영광의 훈장이기도 합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유망주가, 유망주 꼬리표를 이처럼이나 빨리 떼고 대뜸 특정 트렌드의 아이콘으로까지 자리매김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그저 타고난 외모 조건이 빼어나 벼락 출세를 한 경우로 봐서는 곤란할 듯합니다. 앞에서 말했듯, 그는 유독 배타적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 다문화 배경 일각을 대표하여 유명세를 탔으며, 이 다문화 배경이라는 게 출세나 주목끌기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예가 거의 없습니다. 혼혈 출신 배우, 가수 등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그들은 대개 편견, 따돌림, 손가락질 등에 시달린 후에야 유명세를 탔으며, 유명인이 된 후에도 완전히 꼬리표를 못 떼기가 일쑤였죠. 다음으로, 무슨무슨 아카데미를 다닐 만한 사정이 못 되었기에, 그를 가르친 선생들은 대부분이 "유튜브"였습니다.

다문화, 계층 양극화, 인터넷 미디어 등, 그의 출세 과정에는 이 시대의 여러 사연과 모순과 기회를 대표하는 극적 요소가 고루 담겼고, 어쩌면 그의 영혼이 이런 상처, 혹은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부터 고루 양분을 빨아들였기에 이런 성공이 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 "분위기"라는 게 거저 생기지 않고, 많은 이들이 그에게 관심과 호응을 보내는 건 그의 인성과 영혼에 이 시대의 크나큰 공감대 하나가 자리해서입니다. 한현민의 "스웨그"가 이 시대를 통째 삼키고 포옹할 수 있는 거대한 웨이브로 진화하길 기대해 봅니다. 아직 그에게는 시간이 너무나 많이 남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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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해석학 첫걸음
허민 지음 / 경문사(경문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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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분과 정적분은 사실 개념상 배타적이라거나 병렬 관계에 놓일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분은 "일종의 공식"이고, 정적분은 그 공식에다가 숫자를 대입한 값입니다. 아주 거칠게 말하면 부정적분은 넓이는 구하는 식이고, 정적분은 그 식에다가 숫자를 대입해서 실제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넓이를 구해 놓은 구체적 결과입니다. 이 맥락에서 영어의 indefinite와 definite는 면적의 수치가 구체적으로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우리말(한자어)의 "부정(不定)"과 "정"의 사용례와는 너무 달라서 가벼운 혼란이 오는 것뿐입니다.

"넓이'에는 음(陰. 마이너스)의 값이 있을 수 없으므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마이너스 값은 일일이 플러스로 바꿔 준 후 그 총합을 구합니다. 중학교 들어가면 "절댓값"의 개념을 배우는데 학생들이 절댓값의 개념은 어려워해도 저 앞의 경우처럼 "넓이에는 마이너스가 없다" 같은 이치는 쉽게 받아들입니다. 사실 절댓값도 이런 구체적 상황으로부터 일반화를 시켜 도출된 개념이므로, 아이들에게 이해를 시키려면 이런 예를 들어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정적분은 "넓이'라고 거칠게 정의내렸으나, 넓이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게 정적분에서는 x축 밑으로 내려간 곡선 부분은 (-) 값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어느 책에서건, "반드시 f(x)≥0가 가정되었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뉴턴의 위대함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문제를 두고, 그저 숫자 대입 몇 번만으로 바로 답을 구할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해 내었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미적분학은, "어쩜 그렇게 엄청난 원리를 찾아내었을까?" 같은 놀라움, 발견 과정의 지난(至難)함이 대단한 것이지, 그 결과는 일반인이 배우기에 그리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말도 안 되게 어려운 걸 누구나 익힐 수 있는 쉬운 결과로 바꾸어 놓았기에 그가 위대한 거죠.

테일러 정리를 발견한 브룩 테일러도 뉴턴 그 다음 시대에 활동한 수학자인데, 공대에서 테일러 급수가 얼마나 자주, 요긴히 쓰이는지를 생각하면 의외로 인지도가 낮은 편입니다. 이 정리의 놀라운 면은, 어느 미분가능하며 매끄러운 함수("매끄럽다"는 건 수학 용어입니다. 무한 번 미분이 가능하다는 뜻이고, 따라서 저 앞의 "미분가능"은 잉여적 표현입니다)를 놓고서도, 다항함수의 멱급수로 나타낼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식까지 제시해 둔 것입니다. "매끄러운 함수"가 식이 복잡한 경우를 넘어서서, 아예 뭔지도 모를 경우에조차 근사식을 구할 수 있다는 정리이죠. 단 한 개의 점에서 이런 놀라운 식의 도출이 가능하니, 근대적 이성의 위력에 시대가 경의를 표한 건 당시로서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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