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백신
스튜어트 블룸 지음, 추선영 옮김 / 박하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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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에게 맞히는 백신이라고 하면, 아 이런 게 다 나와서 접종이 되기에 지금 우리가 문명사회에 산다는 규정이 가능하구나, 그래도 이런 안심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게, 한 10년 전부터 애 키우는 어머니들 사이에서 불신하는 분위기가 생기더군요. 그 불신이라는 게 나름 근거까지 갖춘 것이어서, 원 이거 세상이 어떻게 뭔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아니라, 이런 중요한 분야에서 오히려 퇴보하는 것 아닌가 싶기까지 했습니다.

저희가 자랄 때에도 시스템에다 무작정 신뢰를 보냈던 건 아니었고, 좀 까다로운 동네(출신들)가 흔히 사소한 낌새에도 많은 동요를 보이듯이, "재활용 주사기를 쓴다더라" 같은 헛소문이 돌아 방과 후 대기하던 애들이 전부 도망가는 일도 벌어지곤 했습니다. 나중에 학부모회가 소집되어 조사가 개시되었지만 잡음 없이 깔끔하게 해결도 되었고요. 지금 생각하면, 인근 보건소에서 인력이 출장오는 건데 어차피 집행, 할당된 예산을 공무원들이 아껴서 착복할 여지, 동기도 없는 거고(돈 굴러가는 과정이 너무 뻔해서 불가능), 뭐 그런 걸 떠나서 제 생각에는 오히려 그 시절이 못된 잔머리를 덜 굴리던 분위기 아니었을까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은, 어쩌다 이지경까지 사태가 나빠졌던가 싶을 만큼의, 백신의 위험성 그 근황을 주제로 삼습니다. 배경은 물론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영리 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되는 곳에마저 든 못된 버릇 등에 대한 고발입니다만, 그 외에도 "우리가 애초에 신뢰를 줄 만한 자격을 갖춘 곳에 신뢰를 주고 있었던가?"에 대한 근원적인 점검, 회고가 이어집니다. 의학사의 한 중요 섹터가 걸어온 길을 되짚으며, 독자의 교양도 넓히고 현재의 이슈에 대한 각성의 계기도 삼게 돕는다고나 할까요.

신자유주의 이슈가 꼭 아니라 해도, 이 책은 일단 백신 개발의 과거사를 꽤 오래 짚고 넘어갑니다. 이성, 혹은 오성의 개안으로, 당장 기초 단계에서 인간 생존을 위협하던 질병 이슈에 대해 얼마나 더 효율적인 대처가 가능해졌는지의 회고는, 현대인들을 가장 큰 감격에 젖거나 자긍심을 갖게 해 주는 부분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한테도 현대 문명에 대한 신뢰, 긍지를 함양하는 데 이만한 좋은 소재가 없을 정도지요. 그러나 당장 드러난 문헌상의 증거만으로도, "백신"은 태생부터 썩 믿을 만한 존재는 아니었음이 입증됩니다. 정확하게는, 이 분야 선구적인 종사자들이, 공명심이나 탐욕 등 다른 동기를 개입시키는 일이 (아직 영리주의적 풍조가 속속들이 침투하지는 않았을 무렵인데도) 잦았음에 대한 재조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코흐의 경우 아마 아이들이 보던 백과사전이나 위인전기에서 단독 항목으로는 잘 안 다뤄지고, 사항 설명의 곁다리쯤에서 그 이름이 언급되는 정도였습니다. 투베르쿨린 반응은 저희 때에도 널리 쓰이던 테스트 방식이었는데, 이 물질의 개발 초기 코흐는 테스트 시약이 아니라 "백신"으로 이를 활용했다고 합니다. 효과는 당연히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부작용까지 속출했으며, 흥미로운 사실은 캐릭터 홈즈의 창조주이며 본업이 의사이기도 했던 작가 코난 도일이 그 초기 단계에서부터 "효능 없음, 게다가 부작용"에 대한 지적, 예언(?)을 하고 들었었다는 점입니다. 코흐는 이 사건을 계기로 명성이 크게 실추되었다고 책은 정리하는데요, 역시 제 어렴풋한 기억으로도 이분이 그리 썩 좋은 평가로 정리하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빈곤 이슈는 19세기에 유럽 각국에서 꽤 중요하게 다뤄졌는데, 예컨대 맬서스 같은 경제학자, 성직자가 극단적인 회의론, 염세론을 기반으로 독특한 주장을 전개한 건 알고보면 당시의 거대한 담론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더 지독한 결론을 근거도 딱히 없이 제기했던 자들도 많은데 그나마 논거 비슷한 갖춘 고지식한 논자가 후대에 들어 남이 먹어야 할 욕까지 대신 먹고 있는 셈이죠. 여튼 빈민가를 중심으로, 각종 질병에 대한 예방 조치가 강제적으로 이뤄진 데 대해 반발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과거 오히려 취약계층일수록 "나라가 하는 일은 무조건 옳겠거니 "하며 묵묵히 순응하던 현상과는 큰 대조를 이루는데(지금은 또 오히려 반대라서 근거 없는 불신 풍조는 무지한 이들 사이에서 급속히 확산되곤 하더군요), 이는 애초에 영국, 프랑스 등이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라 국가 형성 단계에서 계급이 엄격히 구분되던 구조였던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때 당사자들이 "양심의 자유"를 들어 강제접종을 거부했다는 사실이 좀 이상하게 다가올 겁니다. 이는 영국은 물론 대륙법상의 이론체계에서조차, 우리와 기본권 표제 체계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른 항목도 이것저것 포함시켜 해석함) 사정이 있어서입니다. 우리 같으면 행복추구권, 혹은 일반적 행동 자유권 등으로 더 세분화한 조항에서 그 권원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자동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것처럼, 백신이, 감염성 질환으로 인한사망자 수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역량을 지녔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신을 독특한 무엇인가가 아니라, 공공보건을 보호하는 기술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문제는 사뭇 달라진다." (p209)

책 앞부분에서, 지난세기 코흐 측이 개발한, 부실한 효능만을 지닌 백신이 결국 파스퇴르 측의 더 완전한 솔루션에 밀려 퇴출된 예를 들고 있었습니다. 해당 섹터의 작동원리가 크게 달라지고, 의약학 분야의 발전상도 그때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인데, 적실치 못한 예(적어도, 시기적으로 너무 오래 전 일)를 든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제 주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련한 저자가 이 점을 몰랐을 리 없고, 그 의도는 p210 이하에서 자세히 드러납니다.

종래의 백신이 다른 더 나은 신약에 의해 자리를 내어준다면, 과연 어떤 수월성 요건을 갖추었기에 이런 대체가 가능한가? 여기에 대해 각국의 보건 당국이, 의식을 갖춘 시민들이 기대하는 만큼이나 잘 확립된 기준을 마련하고 사무를 처리하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공신력 있는 제약업계가 많지 않았고, 이들의 전문성이라든가, 혹은 모럴 해저드에 쉽게 빠지지 않으리라는 일정 신뢰가 있었기에 비교적 안정적인 간격을 두고 재선정이나 검토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그러던 게, 근래 들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입법부(국가이건 지자체 단위이건)에 로비가 이뤄지고, 이 과정에서 확고한 컨센서스가 이뤄졌다고 보기 힘든 자의적 기준이 종종 개입한다고 합니다. 물론, 극한의 방식으로 영리를 추구하기에 이른 신자유주의 풍토가 이 과정에서도 크나큰 해악을 발휘함은 새삼 뭘 말할 것도 없고 말이죠.

이쯤에서 책은 다시, 1차 세계 대전 직후를 재조명하며 여전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백신 불신 풍조를 언급합니다. 1925년 독일 뤼벡에서는 BCG 접종을 받았던 이가 "1년 후에"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는데, 이 원인은 일부 batch가 오염된 데서 비롯했을 뿐이라고(p232)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뿐 아니라 독일 전역에서 BCG 자체를 거부하기에 이릅니다. 영국 역시 북구권에서 해당 약품이 광범위한 호응을 얻었고 유병률 자체가 크게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임상 시험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고 합니다(앞에서 예를 든, 이전 시기 빈곤층 상대 강제 접종은 사실 이 이슈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음을 상기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이 시점까지 여전히 각종 실용 기술과 학문적 발전이란 유럽각국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균형과 상호 자극을 받았을 뿐이며, 현재처럼 특정 국가군에서 성과의 과실을 독점적으로 향유하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하게 됩니다.

냉전 이후에는 소련이 국제 무대(특히 WTO라든가)에 등장하며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기도 하는데, 당시 소련은 특히 저개발국들을 상대로 "앞선 보건과학기술과 이념의 필연적 귀결인 인도주의"를 들어 소련 주도의 백신 보급과 개발에 특히 역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이게 자연스러운 민간 외교의 전개라기보다는, 정치 선전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의혹의 시선도 받았고, 정작 해당 국가의 백신 기술이 썩 높은 수준에 이르지도 못했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p255). 여기에 미국, 영국 등의 "진영 논리"가 개입하여, 흔쾌히 인정해야 할 상대측(소련)의 성과마저도 부인하고 들기 일쑤였다는 점도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죠. 이러던 갈등상은 이후 1970년대에 들어서야, 인도,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등의 천연두를 퇴치하기 위해 미소 양국이 손잡는 국면에서 점차 해소되어 갑니다. 이는 꼭 천연두 예방, 치유라는 특정 질병이나 의학 분야에 한정된 게 아니라, 당시 세계를 강타했던 "데탕트" 무드와도 연결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아마비의 경우 요즘은 관측도 잘 안 될뿐더러 일찌감치 극복이 이뤄진 질병으로 치부하기 일쑤이지만, 1950년대만 해도 심지어 미국, 영국 같은 곳에서도 대규모로 환자가 발생하였으며 그 원인 규명도 명확히 이뤄지지 않은 채 엄청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는 등 현대인의 평범한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소란이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하긴, 세계 10위권 무역대국인 한국에서도 고작 백신, 고혈압약 따위의 부작용 의혹을 말끔히 해소 못 해 이처럼이나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걸 보면, 문제는 언제나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되었으며 다만 무지와 무관심 탓에 은폐되었을 뿐이라는 점도 확인 가능합니다. 완벽하게 가치중립적인 이슈, 혹은 그런 이슈의 해결 방안이란 불가능하며, 결국 이런 보건 방면의 문제들조차에도 "정치, 잇속, 산업상의 고려"가 반드시 개입하는 씁쓸한 현실을 엿볼 수 있었네요.

서평 중반쯤에, 이 책 p209를 인용한 대목에서 "백신은 그저 공공 보건 증진의 한 수단일 뿐"이라고 했을 때, 그 의미가 분명히 와 닿지 않는 이들도 많았을 겁니다. 자연과학의 필연적, 유일 결론이 존재한다면 이는 다른 정책적 고려 같은 게 낄 수도 없고 끼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의 기술적 수단"으로 백신 문제를 본다면, 사회정책적으로 다양한 사정을 고려하여, 여러 대안 중 어느 하나를 시민사회의 합의에 의해 결정할 수도 있으며, 오히려 이쪽이 더 바람직하며 일반적이기까지 하다는 함의가 자동 도출됩니다. 이게 현실을 바로 보는 태도이며, 행정학에서 자주 논급되는 이른바 "만족 모형(완벽한 솔루션은 없으며, 현실의 여러 제약과 타협한 방안이 가능할 뿐이라는 주장)" 패러다임과도 일맥상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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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 - 음식, 음악, 여행 그리고 독서
이승희 외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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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말 브랜드의 세상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남이 아니라)의 기호를 정확히 깨닫고 정작 필요한 아이템만 소비하면서 산다면 브랜드란 건 일찍부터 사라졌을 겁니다. 진실이 중요하고 나 자신의 만족과 행복이 중요하지 브랜드 따위가 다 뭐겠습니까? 그러나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 아니 절대 다수의 경제 활동 인구라면 브랜드 같은 것에 실제 효용 이상의 가치를 투영하고 삽니다.

브랜드로부터 "과장 혹은 압축된" 정보를 얻고 살며, 최소한 이 브랜드로부터 상당수의 집단, 그룹이 이런 만족을 끌어내고 일정 공감대를 이루는구나 하는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명품이면 다인 줄 아는 실업자 멍청이가 되라는 게 아니라 말이죠) 그래서 브랜드는 소비와 문화 영역에서 강렬한 표지, 텍스트, 기호 구실을 하며, 때로는 매우 경제적인 가치 표상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집단에 속했는지 타인들에게 어필하려면 브랜드들의 효과적인 착용과 교체만큼 강렬한 메시지 전달 수단이 또 없겠습니다. 비록 그 브랜드야 나한테 눈곱만큼의 관심도 주건 말건 무관하게 말입니다. 본디 보답 없는 짝사랑이란 참 서글프게 마련인데, 여튼 세상 사는 룰이 그리 짜여져 있으니 달리 방법도 없습니다.

한편으로, 세상 사는 룰이 어차피 그리 짜여져 있다면 수동적으로 그저 최소한의 남들 할 만큼만 하고 말 게 아니라, 혹은 그저 시장과 브랜드의 지시와 강권에 길들게 아니라, 브랜드의 생리와 작동 원리에 대해 그 나름 깊이 있게 관찰, 성찰, 통찰을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작게는 나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크게는 내 조직, 내 회사(우리는 누구든 간에, 작든 크든 어디에든 속해 있기 마련이죠)에서 생산해 내는 상품과 서비스의 어필을 위해, 지금 이 사회에서, 브랜드가 어떤 식으로 태어나고 크고, 외면당하거나 혹은 잘나가고, 마침내 세상의 상징 중 하나로 우뚝 서거나 조용히 퇴장하는지를 관찰하는 건 곧 세상 작동 원리의 축소판 공부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잘나가는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건 무척이나 뜻깊은 일입니다.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이지만 우리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즉시 실행에 옮기는 게 체질입니다." 이 말은 배달의민족 대표 김봉진 씨가 새로운 비전과 프로젝트를 선포할 때(p140) 특히 세 가지 강조 사항을 전달 받은 해당 회사 마케터들의 고백입니다. 그 세 가지란,

첫째 음식을 많이 만들어 볼 것
둘째 음식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눌 것
셋째 관련 서적이나 영화를 많이 볼 것

물론 해당 회사(어느 회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의 마케터들에게 이런 지시를 할 단계라면 대표인 자신은 몇 배, 아니 몇 천 배는 더 생각하고 고민하고 내린 결론, 확신이 그 동기로 자리잡은 후이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저런 회사를 보며, 더 갈등하고 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 조직이 그저 한번 만들어 놓은 시스템, 혹은 타성에 젖어 직원들만 굴리고 쥐어짜내는 구태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으려는 걸 보고 아직도 저런 이들이 있으니 과연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사는 건지 회의가 들 때가 많았습니다.

배민은 빙금 제가 예로 든 저 업종과 전혀 무관한데, 오히려 여기는 한번 잘 깔아놓은 플랫폼으로 평생 자릿세만 받아먹으면 그만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만, 책의 이 구절을 보고 정신이 버쩍 나는 것 같더군요. 사실 저는 배달통이 갠적으로 더 편해서 거길 주로 이용하는데(ㅋㅋ 죄송합니다), 이런 곳은 B와 C를 연결해 주는 미디어에 불과하지 본인들이 직접 뭘 생산하는 업체가 아닌데도 CEO가 이런 고민까지 하며, 동시에 마케터들이 그런 대표의 고민을 이식, 공감, 복제, 확장까지 해서 최상의 브랜딩을 이뤄내야 하는 그 조직의 구조, 체질에 감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십 년 전에 모 백화점(식품 회사가 아니라)에서 자사 푸드코트를 더 잘 꾸미기 위해 재래시장까지 찾아와 맛과 레시피에 대한 조언, 체험을 거쳤다는 에피소드도 들었으나, 지금 이 경우는 그것보다 몇 십 배는 더한 거죠. 요즘 뭐 남들 하는 대로 시늉만 내어서야 일이 어디 되겠습니까. 몇 푼 안 되는 시청료나 횡령할 궁리만 머리 속에 가득한, 늙고 한심한 밑바닥 체질 도둑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범죄가 체질이니 수감 생활도 체질이겠죠?). 여튼 배민 같은 중개 앱 역시, 맛과 풍미와 미학에 독자 철학을 확립해야 소비자들 사이에 적실한 이미지를 심고 오래 살아남는다는, 이런 진리, 이치가 어느 업종이라고 통하지 않으라는 법이 또 없죠.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이 격언이 우리 동아시아, 즉 한국이나 일본 등에서 뜻하는 바와, 저 구미에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고 들은 적 있습니다. 우리는 이끼를 긍정적인 뜻으로 보아, 한 곳에서 진득히 자리를 지키는 인재라야 대성할 수 있다는 교훈으로 새기지만, 저쪽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 곳에만 집착하는 인재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입니다. 근데 사실 저는 요즘 들어 두 가지 방향 모두에 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 조직에서 그 능력을 인정 받아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며, 프로 스포츠에서도 프랜차이즈 스타로 팀을 안 옮기고 오래 사랑받는 건 당연히 레전드로 대접 받는다는 증거가 됩니다. 물론 능력 있는 플레이어라면 서로 이곳저곳에서 모셔 가려 들 테니 경력에 다양한 "브랜드"가 훈장처럼 따라붙기도 하겠죠. 이상은, 책 프롤로그 p11과 본문 pp.60~80에 걸쳐 당찬 소신을 피력하는 정혜윤 스페이스오디티 브랜드 마케터(의 말)를 접하고 한 독자로서 든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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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지 않고 읽는 수학 - 개념이 술술 이해되는 살림청소년 융합형 수학 과학 총서 26
세야마 시로 지음, 신은주 옮김 / 살림Math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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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등학교에서 그처럼 지루하게 0/0 꼴을 피해가는 기법(원리라기보다는 그저 테크닉에 불과합니다)을 배우는 이유는, 실제로 공대 진학하고 나서 이처럼 수학적으로 돌파 불가능한 난관을 요리조리 피해가야 할 경우를 맞닥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처럼 얕은 테크닉은 공대 신입생 시절 비로소 처음으로 몸에 배게 해도 늦지 않으므로, 고등학생 시절에는 보다 사고력을 요하는 쪽으로 커리큘럼을 개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째 정작 빠져도 될 법한 단순반복 사항은 여전히 남아 있고, 행렬처럼 그나마 입체적 사고를 요하는 단원은 (그저 어렵다는 이유로) 문과 과정에서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이는 현 정부가 아니라 지난 박 정부 중반, 혹은 이명박 정부 후반에 결정된 사항이라서 더 유감스럽기까지 합니다. 아이들 부담은 물론 줄여야 하겠으나 줄일 걸 줄여야지 그나마 사고력 신장과 관련 있는 파트에 부담이 넘어가서는 안 되지요.

요즘 코딩 교육이 유행입니다. 심지어 저희 때에도 방과후 활동으로 초등학교 시절에도 근처 학원에 용역까지 주어 관련 교육을 시키기는 했습니다만, 일반 두루뭉술한 정보(기술) 과목이 아닌 코딩에만 특화한 커리를 의무 교육 과정에 집어넣는 건 전에 있던 시도가 아닙니다. 머리가 지독히 나빠 다 그게 그건 줄 아는 졸혼 노년의 눈에는 그리 보이는 게 무리도 아닌데, 지금은 시절이 좋아서 전혀 훈련받지 못하고 입으로만 다 때우는 망상분자도 어찌어찌 연명을 할 수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씨도 안 먹힐 일입니다.

사실 기계어 구성의 핵심 원리를 전혀 몰라도 구식 소프트웨어 교육 커리에서는 장님 문고리 짚으며 더듬더듬 나아가듯 그저 매뉴얼만 따라 모방해도 어느 정도는 시늉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원리의 확실한 이해가 수반 안 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따라서 코딩뿐 아니라 (코딩보다 훨씬 고난도의 사고력, 논리력을 기를 수 있는) 수학 공부에 아이 미래가 달렸다 생각하시고, 수학에 올인해야 합니다. 수학 잘하는 애가 코딩은 거뜬히 해내어도, 그 역은 절대 성립하지 않습니다. 물론 밑바닥 졸혼 떠돌이의 경우 초딩 수준의 코딩도 당연히 못하고요. (잘하는 건 오로지 숨쉬듯 떠들어대는 거짓말뿐)

0/0 꼴이 나오면 당연히 계산을 멈추고 싶습니다. 수학에서 앞으로도 영원히 재구성 안 될 분야가 바로 0으로 나누는, 혹은 무한대를 적극적으로 정의하는 영역이겠습니다. 그러나 저 0/0은, 겉으로는 분모 0의 꼴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를 포함도 하고 있습니다. 즉, 끝까지 계산을 이어나가도 역시 분모에 0이 남는 경우와, 그게 아니라 분자에도 0(의 인자)가 있기에 둘을 미리 약분해 주면 분모의 0은 깔끔하게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나뉜다는 뜻입니다. 분자에 0이 남는 건 아무 상관 없고, 그저 0으로 명쾌하게 정의가 됩니다.

일반 다항식, 혹은 분수식(유리식)의 경우 상당수가 일정 개성만 파악하면 쉽게 해결이 됩니다. 또 학원가에서는 이런 유형을 훨씬 쉽게 풀 수 있는 여러 편법도 발견하고 있기에, 요걸 몸에 배게 하면 일일이 노가다 계산을 안 해도 사실 암산으로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삼각함수의 경우 좀 복잡한데, 이 역시 중급 레벨의 경우 몇 번 하다 보면 뻔하게 발견되는 패턴이 있으므로 수학 능력이 아니라 기억력만 좋아도 다 풀 수 있습니다.

다만, 흉내쟁이가 아니라 진짜 수학 잘하는 애들의 경우, 이걸 구태여 앞에서 누가 시범을 안 보여 줘도 자기 힘으로 해결하고, 이때 생성된 신기하기까지 한 새 회로를 통해 이보다 훨씬 어려운 다른 문제까지 해결하는 원동력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의 경우, 지루하게 반복되는 문제 풀이 드릴링에 애를 맡기면 안 되고, 그 부모님이 참을성을 갖고 혼자 해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힘든 과정을 거친 아이는 정말로 (아이들 전용 자계서 저자로나 등장할 법한) "자기 주도 학습형"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과외 선생이 혹 필요하면 진짜 잘하는 사람 하나만 사서 질문 해답용으로 쓰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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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아주 쉽게 배우는 삼각함수 이야기로 아주 쉽게 배우는 수학 시리즈 2
더글러스 다우닝 지음, 이정국 옮김 / 이지북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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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각의 단위를 정할 때 우리가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도(度)이며, 기호는 "◦"입니다(물론 따옴표는 제외). 이것을 이용해서,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각도기를 들고 열심히 두 반직선 사이가 얼마나 벌어졌는지를 측정합니다. 어렸을 때는 이것도 큰 재미이며, 간혹 눈금 사이에 낀 반직선이 등장하면 어느 눈금에 더 가까이 접근했는지를 두고 친구들 사이에 옥신각신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여튼 하도 어렸을 적부터 "한 끝점을 공유하는 두 반직선의 벌어진 정도"의 단위를 이 "도"로만 익혀 온 탓에, 그로부터 몇 년 후 새로운 단위 하나를 추가하면 당장에 낯설어하기 일쑤입니다.

그 중 하나가 라디안인데, 이 1단위는 부채꼴에서 반지름(부채꼴이라는 게 원 하나를 전제로 하여 이뤄지는 도형이므로 "반지름"이 분명히, 또 유일하게 정해집니다)과 호가 정확히 같아질 때, 그 시점에서의 각을 가리킵니다. 얼핏 잘못 생각하면 "아니 부채꼴도 크기가 다양한데 그래갖고서야 어떻게 각의 크기를 특정할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원은 서로 닮음꼴입니다. 또, 그의 일부인 부채꼴 역시 모두가 서로 닮음꼴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 부채꼴에서 "1라디안"의 크기는, 다른 어떤 부채꼴에서도 역시 같은 크기를 가리킵니다. 사실 저런 착각을 하는 이들은, 애초에 sin30◦가 왜 항상 1/2라야 하는지도 의심을 품어야 그나마 착각에 무슨 일관성이라도 생기는 법입니다.

그럼 왜 익숙한 각의 단위 "도" 말고, 따로 라디안이라는 단위를 만들어서 사용할까요? 물론 미터법도 원기를 만들어 모든 단위의 표준을 정해 둡니다. 그러나 "애초에 왜 그것으로 정해야 하는지"의 의문을 해결할 수는 없고, 다분히 자의적이라는 비판도 면할 수 없습니다. 반면 라디안은 시대와 장소, 혹은 각도기를 찍어내는 공장 프레스의 개별적 정확도를 초월하여 어떤 절대 기준이 생기는 셈입니다. 다만 애초에 원주율이 무리수이기 때문에, 또 그 무리수 중에서도 다항식의 해 꼴로 나타낼 수가 없는 무리수이기 때문에, "도"로 환산했을 때 어떤 딱떨어지는 값으로의 표시는 안 됩니다.

물론 애초부터 "도"를 라디안에 연동하되 일정 배수(약수)로 정했으면 이런 혼란은 안 생겼겠으나, 미터법은 미터법 나름의 사정이 있었으므로 그리 사정이 굳고 만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단위 역시 초등과정에서 가르치기 시작한다면 머리가 굳고 나서(고등학생, 아니 중학생만 되어도 머리가 굳기 시작한다고 봐야죠. 어떤 사이비는 이때 굳은 에고를 나이 육십까지 우기다가 여태 속한 모든 조직에서 왕따가 되기도 합니다) 불필요한 혼란에 빠지는 일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요즘은 워낙 선행 학습들을 열심히 하니....

삼각함수의 가장 큰 특성은 바로 "주기성"입니다. 정의역에서 일정 구간이 지나면 같은 치역이 무한히 반복되는데, 사실 이는 "각도" 자체가 0에서 360도, 혹은 0에서 2π까지만의 수치가 의미 있는 값이고, 그 이후에는 가면처럼 뒤집어 쓴 숫자만 달라질 뿐 똑 같은 실체의 반복 행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눈여겨 볼 건, 사인 함수의 경우 왜 0에서 1까지의 치역이, 바로 다음 구간에서 부호만 바꾼 채 똑같이 반복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사실 이 역시 "각"이란 스칼라량의 독특한 성질에 전적으로 기인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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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흐름을 꿰뚫어보는 금리의 미래
박상현 지음 / 메이트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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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환율을 눈여겨 보라, 어떤 이는 금리가 중요하다 등등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각자 중시하는 팩터는 제각기 최우선 순위에 올리는 항목이 다릅니다. 그러나 들어보면 모두 일리가 있는 지적이며, 현명한 투자자(라기보다 거의 모든 경제활동 참여자)는 이 모든 사정을 감안하여 의사를 결정하는 법이지요. 내가 죽고사는 문제를 어디 동전던지기 식으로, 한 가지 변수에 전적으로 맡길 수가 있겠습니까.


경제 이슈는 어디까지나 직접 자기 손으로 머리로 정보를 찾고 그를 통해 신중히 내린 판단이 모든 결정과 해답 도출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루머에 휩쓸려 생돈을 날린 개미라고 해서 일일이 면죄부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불법 파일 공유하다 최초 업로더와 덩달아 쇠고랑을 차는 한심한 인생처럼, 어리석고 못난 판단의 결과는 애도 아니고 성인인 이상 자신이 스스로 책임을 져야 마땅한 법입니다. 하물며 개미 축에 끼지도 못하는 밑바닥 피라미가 그 무지와 지려천박만을 핑계 삼아 무슨 자동 사면을 받을 턱이 있겠습니까. 공부를 하고 어디 끼어도 끼어야 낭패를 안 당할 텐데, 공부를 할 머리가 애초에 안 되니 딴에는 딱하기도 합니다. 하긴 중등 기초 대수학, 함수도 모르는 인간이 IT 전문가를 사칭하는 세상이니 딱히 놀라거나 할 일도 아니긴 합니다만.

저금리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지 근 이십 년이 넘어갑니다. 과거에는 하다못해 시중은행 정기예금만 잘 들어두어도 일정 수익이 보장되던 세상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어림도 없습니다. 무지의 영역에 대해 도매금으로 "몰라도 되며 모르고 싶은" 범주에 집어 넣는 밑바닥 인생이 아닌, 정상적인 경제 활동 참여자들은 그래서 "경제 공부"를 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금리 이슈는, 어디어디가 좋은 조건이라더라 같은 카더라 영역이 아니라, 현재 미국에서 가파르게 오르는 중인 금리의 낌새가 심상치 않으며, 이 징후가 향후 경제의 전 영역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점쳐 보는 유익한 논의입니다. 금리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장차 닥쳐올 후과를 명백히 예고하는 지표이며, 그를 넘어 스스로가 경제 프레임을 시초적으로 형성하는 유력 독립변수이기까지 합니다.

지금 이런 특수 국면(트럼프 행정부가 은근 조장하는 듯한, 호황을 넘어 거품 국면)이 아니라도, 과거 오바마나 부시 행정부에서도 그린스펀이나 버냉키 같은 이가 금리에 대해 어떻게 입을 뗄지 지켜만 보는 풍조가 언제나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를 넘어, 이처럼 심상찮게 오르는 금리가 향후 터져도 크게 터질지 모르는 거품의 징조가 아닌지 걱정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사실 어제만 해도 전월의 미국 무역 수지 현황을 알리는 뉴스가 나오자 다들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어떤 이는 이야말로 미국 가계 수입(revenue)이 늘어나 활발한 소비를 보이는 좋은 징후라고 주장하며, 어떤 이는 상대국 물품에 관세를 부과했는데 오히려 적자 폭이 늘어났다는 게 정상이냐며, 내수가 늘어나지 않고 빚(기본적으로,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가 누리는 이점입니다)에 기대어 대외 소비(import)를 줄일 줄 모르는 미국의 고질적인 악성 체질, 풍조를 거론하며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미국 경제가 건실해지려면 저 비판자의 논지대로 "내수가 늘어나야 정상"인데, 지표상 명백히 그렇지를 못합니다. 이 대목은 누구 입장에서도 반박이 어려운 엄연한 팩트에 속합니다. 다만, 지금은 관세 전쟁의 아직 초입이고 트럼프가 중국산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경고는 그전부터 여러 번 있었으니 가격이 오르기 전 물량을 미리 확보하려는 수요도 있었겠음을 고려는 해야 할 듯합니다. 다음달 정도는 되어야 누가 승자이고 패자인지, 혹은 져도 누가 더 크게 졌는지 윤곽이 드러나겠네요.

저자는 특히 가파른 상승세를 보일 조짐인 현 미국 금리에 대해 깊은우려를 드러냅니다. 요즘 세대들은 2008년의 그 끔찍한 글로벌 경제 붕괴 위기만 기억하겠지만, 1987년 10월에도 느닷 주가가 20%나 폭락하여 미국은 물론 전세계 경제에 암운을 드리운 적이 있습니다. 저 경우는 거품의 붕괴라기보다 주가 하락 헷징 상품이 (말이 씨가 된다고) 진짜 하락을 부채질한 걸로 드러나긴 했습니다만, 여튼 모든 주가 폭락은 시장이 거품(작건 크건 간에)에 대해 내리는 일종의 심판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요즘 미국 증시 너무 강세라서 좋다"며 입을 모으지만, 이게 과연 건실한 생산력이 뒷받침된 결과인지, 그저 트럼프의 펌프질이 빚은 거품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건실한 생산력"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확실한 건 "그것이 없을 경우 헛바람을 탄 호황 가면은 반드시 모두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기고야 만다"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하긴 사람이 잘못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어디 얼렁뚱땅 넘어가고 마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분수를 넘는 욕심과 만용이야말로 죄 중에 가장 큰 죄이며, 분수를 파악하는 과제 자체가 밑바닥에게는 가장 어렵다고나 하겠습니다.

트럼프가 현재 펼치는 정책의 기조랄까 의도는 명백합니다. 세금을 줄여 주고, 규제를 풀고, IT 기업보다는 제조업 쪽에 혜택을 주어 고용을 늘리고 경기를 대폭 띄우겠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연방정부 입장에서 보면 세수가 (단기적으로는) 분명 감소합니다. 과거에도 미국은 오일쇼크가 불러온 스태그플레이션의 악몽(1970년대) 때문에, 폴 볼커 연준 의장 같은 이가 대폭 금리를 올려 일단 과하게 풀린 달러를 대거 회수해 들인 적이 있습니다. 이때 직격탄을 맞았던(당장 대출금리가 십 몇 퍼센트가 동반상승했다고 가정하면 월급쟁이들이 얼마나 힘들어질지 생각해 보세요) 미국 중산층이 심한 고초를 겪기도 했고 당장 경기침체의 수렁에 빠져들기는 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금리 상승이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은 이를 두고 이르는 것입니다. 허나 만약, 일시적으로 활력과 동기가 부여되기는 한 미국 제조업이 (아직은 금리가 상승하기 전인) 이 국면에서 성장의 한 발판을 마련하기라도 하면,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한번 크게 거둬들여진 거품이 제거도 되었겠다 "진짜 실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론적인 강세 달러 요인과 현실적인 달러 약세 요인"이 묘하게 충돌하는 국면에서, 과연 강달러 팩터와 세계 경제 위기의 동반 엄습이라는 과거의 불길한 패턴이 반복될지 다소의 우려를 제기합니다.

한국처럼 규모가 작고 철저히 개방된 데다 대외 의존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경제에서, 미국 아니라 중국이 기침 한 번만 해도 즉시 감기가 아닌 폐렴에 걸릴 만한 판에 이런 국제 경제의 심상찮은 조짐에 눈 감고 지낼 수는 없습니다. 특히 저자는 "기준 금리의 한미 양국 역전 현상"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한국 같은 나라가 미국보다 오히려 금리가 낮다는 게 정상이 아닌데, 사실 이번에도 연율 적용으로 부풀려진 경향이 없지 않다고는 합니다만(이 역시 단순네제곱 요인만 제거한다고 보정이 되는 게 아니라, 이런 식의 통계 산정이 수십년 간 일관되게 이어져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현실을 그 나름대로 반영한다고 봐야 합니다) 가뜩이나 성장 저조에 시달리는 한국이, 국내 정책상의 자체 이유가 아닌, 그저 미국 고금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준 금리를 올린다면, 그에 따른 파장이 매우 심각하리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습니다. 설령 피할 수 없는 경제 대재앙이라 해도(그런 일은 물론 없어야겠지만요) 현명한 경제주체가 각자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냉철히 파악하여 자기 방어는 일일이 자신이 해 낸다면 그 피해가 최소화합니다. 오로지 해로운 건, 소문과 루머에 따라 자신도 망치고 남도 망치는 밑바닥 부회뇌동 패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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