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경쟁하지 않는다 - 세상의 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시선
조철선 지음 / 전략시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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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자본주의 경제 원리의 핵심 중 하나가 "경쟁"이라고 지적합니다. 물건을 파는 측이건, 사려 드는 측이건 간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낮은(높은) 가격을 부르기 때문에, 어느새 가격은 모두의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점에서 형성이 되고 자원 배분도 최대 효율을 달성한다는 뜻에서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 뛰어들어 보면, 힘은 힘대로 들고 성과는 나지 않고, 그저 죽을 맛일 뿐입니다. 이런 걸 두고 "레드 오션"이라고 이미 많은 경영학자들이 개념 규정도 해 두었습니다. 경쟁이 있어야 자본주의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운용되는데, 막상 경쟁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다 죽을 판이라는 건 지독한 역설입니다.

저자는 "한 번의 경쟁으로 일정한 성과를 차지할 수 있다면 경쟁은 최상의 결과를 낳으나, 과정이 끝도 없는 경쟁 자체로만 이어진다면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으니 누가 노력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피터의 법칙도 소개되는데, "유능하다고 계속 승진시키면 결국 감당 못할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되니 최상위 직급은 무능한 자들로만 채워진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말은 논리 구조에 모순도 있고 농담에 가까운 뉘앙스입니다만, 조직의 최상위 관리직에 오른 이들 중 상당수가 생각 밖으로 무능한 위인됨이라거나, 지식도 없고 그저 눈치만 살피는 졸렬한 스타일이란 사실은, 우리가 그리 드물지 않게 접하기도 합니다. 

요즘 나오는 경영서들은 상당수가 "당신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최대한 존중해 주라"는 주문을 합니다. 조직 내 언어폭력, 성차별을 엄금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다 이런 트렌드의 반영인데, 경쟁을 통해 성과를 조장하는 것보다, 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짜 동기가 발휘되어 양질의 제품, 서비스가 생산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공감대가 이미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일할 맛을 느껴 가며 일하는 직원"들로 회사가 채워져야 그 회사가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역설이라면 역설입니다. 저자는 "적절한 경쟁(과당경쟁은 말할 것도 없고)은 내적 동기보다 못하다"는 말로 이 이치를 요약합니다.

경쟁에서의 승리를 꼭 외적인 보상과 연결시킬 필요가 없고, 플레이어의 내적인 자긍심 충족으로 남는다면 이 역시 내적인 동기 강화 아닐까 하는 반론(p83)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일반적으로는 내적 동기로 연결되지 않고 스트레스로 남을 뿐"이란 결론을 내립니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도 있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특히 저자는 올림픽 대회 등에서, "은메달"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푹 떨구는 선수들을 지적하며 "이건 아니지 않냐?"고 일침을 놓습니다. 1등 아니면 다 무의미하다는 성적 지상주의의 풍조가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낳았다면서 말입니다. 요즘 아시안게임도 진행되는 시즌인데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무모한 경쟁은 비정상적인 투기 열풍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경쟁이 다른 외적인 목표를 위해 열심히 벌어지는 게 아니라 오로지 경쟁 자체를 위한 경쟁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런 사회에서는 투기 역시 수익을 얻기 위한 투기, 투자가 아니라 그저 남이 하니 나도 한다는 식의 부화뇌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특히 최근의 비트코인 과열양상을 두고, "... 물론 블록체인 기술의 장래성을 무시하는 건 아니나, 5년 동안에 2만 배가 상승하는 움직임이 어디 정상이겠는가?"라고 반문합니다. 냉정하게 봐도 외국 시장에 비해 한국의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건 팩트에 가깝습니다. 

유명한 하버드 대 맥스 베이저만 교수의 실험은, 20달러 지폐의 경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여러 번 실행하던 중) 어떤 게임에서는 20달러 지폐(그저 평범한 법정 화폐일 뿐인)가 204달러에 낙찰되었는데, 2등 가격을 부른 입찰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룰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합니다. 사실 이는 게임 참여자들 간의 이성적인 협업(암묵적인 것 포함)을 통해 이론상의 균형(앞을 내다보는 추론)을 도출할 수 있는데, 여튼 결론은 "경쟁하다가 다 죽는다"인 점은 변함 없습니다.

(축구) 프리미어 리그는 경쟁의 장일까요, 아니면 상생을 위한 협력이 낄 여지가 있는 영역일까요? 수익금은 비교적(완전은 아니고) 팀 사이에 균등하게 나눔으로써 하위팀도 다음 해 전력향상에 투자할 여지를 챙깁니다. 하위팀이 신경 써야 할 사항은, 너무 성적이 낮게 나와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위험 뿐입니다. 이뿐 아니라 만약 일류 선수를 놓고 제한 없이 몸값을 부르는 식으로 입찰이 이뤄진다면 리그 전체가 붕괴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는 신인 영입에 있어 드래프트 제를 취합니다. 이 역시, 과도한 경쟁이 부르는 폐해를 방증하는 예입니다.

아웃사이더라고 하면 낙오자, 괴퍅한 성격 등 부정적 이미지만 떠오르는 게 사실입니다(p135). 그러나 현재는 이런 아웃사이더들의 반란으로 새로운 경제 영역이 창출되는 게 사실이며, (수가 드물긴 하겠으나) 어떤 아웃사이더들은 경쟁 없이 자신이 창조해낸 필드에서 마음껏 제 역량을 발휘하여 일인 독식의 양상을 이룹니다. 이러한 예로는 스티브 잡스,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 조앤 K 롤링 등을 꼽습니다. 물론 아웃사이더라고 해서 최소한의 창의성이나 지식, 전문 분야를 갖춘 후에야 그게 성공할 여지가 있는 아웃사이더이지, 오래 전에 한물간 낡아빠진 남의 구절만 몇 개 외워놓았다가 경우에 맞지도 않는 데에 써먹는 흉내쟁이는 그저 쓰레기 같은 낙오자에 불과합니다. 

이 책에서는 제임스 다이슨의 좋은 예를 드는데, 그는 본디 전기기술자가 아니라 사용자의 사용편익에 우선 관심을 둔 "일개" 디자이너에 불과했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디자이너라고한들, 아무 창의성이나 영감 없이 그저 돈지X이나 하고 남들한테 과시하기 위해 컬렉션이나 쓸데없이 방안에 쌓아놓는, 일종의 부적응 오타쿠를 놓고 이런 범주에 넣지는 않습니다. 뭐 파격적인 주장을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남들이 관심 쏟는 분야에 일시적으로 부화뇌동하다 트렌드가 바뀌면 까맣게 잊고 몇 달 후엔 정반대의 정치적 주장을 일삼는, 그저 뇌 없는 관종에 불과한 인간을 제임스 다이슨의 범주에 넣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재미가 없는 게 아니라 뇌가 없는 겁니다. 이런 놈들이 꼭 일이 잘못되면 여자한테 비겁하게 책임을 떠넘기던데, 어디 누가 더 잘못한 건지 가려 보면 알겠지요^^ 아웃사이더는 자발적으로 자기 이상을 키우기 위해 그리 된 거지만, 부적응 왕따는 남들 사이에 끼려고 열심히 개발에 땀나듯 뛰는데도 그모양인, 진퉁 부적응자이므로 혼동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특히나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는 개성적인 척해도(그래서 남들보다 일시 뒤처졌다는 식으로 핑계 마련) 실상을 알고 보면 아주 졸렬하게 남 뒤나 쫓아가며 과장된 반응을 일삼는, 배짱이나 독창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3류에 지나지 않습니다. 멀쩡히 답이 B인데도 일부러 오답인 C를 다중에게 말하게 하곤, 실제로 답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실험하니 다들 생각 없이 C를 고르더라는, 이른바 "애쉬 효과(p199)"에 아주 전형적으로 해당하는 케이스입니다. 일시적으로 이런 사람들도 우연히 운 좋게 유리한 흐름을 탈 수 있으나, 무모하고 근본 없이 마구 판을 벌이는 습성 때문에 결국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사실(사실은 자신이 무능함)을 잊기 위해 계속 무리수를 두는데, 지금도 그렇고 가까운 장래에 그 응보를 맞습니다.

책의 결론은 "그래도 자신의 길을 가라"인데, 물론 맞는 말입니다. 남들 다 뛰어든 경쟁의 장에서 건지면 뭘 얼마나 건지겠습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과감히, 남들 안 해 본 필드에서 새 씨를 뿌리고 밭을 일구는 게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그저 과단성, 무모함만 가지고 절로 블루 오션이 이뤄지는 건 아닙니다. 싸구려 저질 문화의 홍수 속에서 과연 얼마나 소신을 갖고 자신의 영감과 창의성을 계발해 왔는지, 적어도 자신에게는 정직하게 살아 온 정신이라야 이 책에서 거론하는 혁신과 성과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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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재판 - 이론·제도·실천
권영법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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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받을 권리"란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보장되는 기본권입니다. 재판을 받긴 받되, 경찰력에 의해 구금된 채로 기약도 없이 무한정 지연된다면 설령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소중한 시간을 창살 뒤에서 허비한 후일 뿐입니다.(본래 결백했으나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나중에서야 재심 청구 등으로 신원이 된 경우 등은 아예 논외로 하고라도) 그래서 우리 헌법(형사소송법 이전에)은 27조 4항에서 이미 이런 법적 근거를 마련합니다.

자신을 잡아 가둔 경찰관이나 검사, 혹은 삼권 분립이 이뤄지지 않은 체제의 행정 관리, 혹은 막연한 여론 따위가 아니라, 정식으로 훈련을 받고 적절한 소양, 자격을 갖춘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역시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로 보장됩니다. 한편 그를 기소하는 소송당사자도, 역시 무슨 흥분한 다중이라든가 경찰관 등이 아니라, 이른바 "공익의 대변자"인 법률 전문가인 검사입니다. 물론 미국 같은 경우 기소에 앞서 대배심(시민으로 구성된)이 열립니다만 이 과정에서 검사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건 같습니다.

얼마 전 성범죄 사건에 한해서 "피고인이 자신이 무죄라는 입증 책임을 지게 하자"라는 어떤 경찰 출신 변호사의 주장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법치국가에서 어떤 피의자, 피고인의 혐의라도 그 범죄 사실은 검사(국가)가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큰 위험의 소지가 있습니다. 민사소송에서 공해의 피해 같은 건 피해자가 아닌 회사, 공장 등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전환하는) 경우가 예외적으로 있긴 합니다만 엄연히 형사 소송과 민사 소송 절차란 그 본질이 다릅니다. 성범죄라 해도 얼마든지 국가 권력 등에 악용되어 반대 세력을 매장시키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법원은 설사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사실을 인지했다 하더라도, 검사의 정당한 기소를 거친 사건에 한해서만 심리한 후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법원은 결코 주도적으로 피의자를 문초할 수 없으며, 죄상을 밝혀내는 일은 어디까지나 검사에게 맡겨야 합니다. 법관이 검사의 역할을 겸하는 재판은 원칙적으로 무효이며, 마치 전근대 마녀사냥이나 종교 재판 따위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법관이 검사를 겸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검사가 법관을 겸해서 안 된다는 말과도 서로 통합니다.

법원이 검사의 위치에서 피의자를 문초하는 방식을 "규문주의"라고 하는데, 이런 시스템이라면 피의자에게는 "방어권" 따위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저 법관의 자비나 현명함에만 기대어, 억울한 피의자가 그 누명을 벗을 뿐입니다. 보물선의 허황된 꿈에 눈이 멀어 범죄자들의 수족 노릇을 한 잡법은 이런 체제 하에서라면 이미 치도곤을 맞고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형사소송법은 "증거재판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요즘 영장실질 심사나 본안재판에서 "합리적 의심" 운운하는 건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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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미적분학
제임스 스튜어트 지음, 수학교재편찬위원회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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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 학부생 대부분이 입문서로 삼을 만큼 정평이 난 교재입니다. 수학 전문 출판사인 경문사에서 이렇게 번역서도 내었지만, 사실 그 훨씬 이전부터 한국 대학가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원서를 교과서로 삼고 공부했죠. 물리학도 아니고 수학인 만큼 사실 영어 실력은 큰 필요가 없으며, 어디까지나 수학적 센스가 있고 없고에 관건이 놓였을 뿐입니다.

서문을 보면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 ... 어떤 학생들은 숙제로 주어진 연습문제를 먼저 풀려고 하다가 막히는 경우에만 본문 내용을 읽으려고 한다...." 이건 이유가 있죠. 대개 명문대의 수학, 혹은 자연과학이나 공학 관련 학과에 진학한 학생들은, 이 책에서 다루는 개념 정도는 고교 과정에서 일찌감치 다 마스터했기에, 또 뭘 번거롭게 일일이 본문을 들여다 볼 생각을 먹지 않는 게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라서, 이런 책은 그냥 예쁜 팬시상품처럼 책꽂이에 꽂아 놓을뿐 누가 대학생까지 되어서 이런 기초적인 새삼 복습을 하러 들겠나 하는, 약간의 자만과 허세가 다들 마음 속에 끼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처럼 수학 베이스를 높게 요구하고 다들 난다긴다 하는 고수들이 즐비한 나라에선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책진에서도 역시 이런 풍조를 아셨는지(원서는 역시 미국 대학 교재 전문 출판사인 톰슨입니다- 이름이 잠시 생각 안 나 책장을 보고 왔네요), "... 그렇지 않다. 수학은 역시 개념의 탄탄한 정립이 최우선 과제이며, 많은 경우 개념만 제대로 잡히고 나서는 해결 못 할 문제가 없다. 못 푸는 문제는 결국 개념이 부실하게 정리된 탓이 가장 크다."며, 본문을 꼼꼼히 읽고 선명하게 개념을 다질 것을 권합니다.

수학실력이 빼어난 영재들은 대개 그 머리에 개념을 꼼꼼히 담아 두고, 식사할 때나 잠결에나 머리 속에 계속 이리저리 굴리면서 그 의미를 탐구합니다. 이러니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어 평소에 내가 생각하던 게 나왔네? 라며 반가워하거나, 아니 이건 (평소에 그토록 생각을 많이 하던) 나도 미처 못 생각한 건데 어디 한번 붙어 보자 라며 호기심과 도전정신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반면 수학 실력이 크게 부족한 오탈이는, 그저 필요 최소한도로 구색만 갖추고 딴짓을 하자는 망상에만 사로잡혀, 공부가 안 되고 머리가 이해를 못 했는데도 "했다고치고 넘어가자."라는 자기기만에만 몰두하니 가뜩이나 나쁜 머리가 더더욱 오작동을 하다 알량한 직장마저 잃고 마는 것입니다.

"점근선"이란 개념은 사실 초등학교에서도 배웁니다. x와 y가 반비례 관계를 이루는 쌍곡선은, 무한히 x축과 y축에 접근(接近)하지만 결코 만나지는 않습니다. 이런 선을 두고 점근(漸近)선이라 부릅니다. 점근선은 저처럼 가장 기초적인 분수함수 그래프에도 나오고, 로그함수에서도, 또 그의 역함수인 지수함수에도 나옵니다. 이런 초월(transcendental)함수는 물론, 갖가지 형태의 무리함수, 분수함수에도 등장하는 게 점근선이죠. 우리는 무한(infinite)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구성할 수 없기에 아예 없는 셈치자는 무리한 추론에까지 다다르기도 하지만, 지금 평면좌표 그래프에서 보다시피 엄연히 물리계에서 그 흔적 일부를 목격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정체가 드러난다면, 과연 "0으로 나누는 것"의 진정한 뜻이 뭔지도 어렴풋이나마 추적할 수 있을까요? 이런 즐거운 상상, 영감(inspiration)을 부르는 게 바로 이 책의 본문 그 품격이고, 흉칙한 낙오 범죄자 따위나 품음직한 보물선의 망상 따위가 함부로 설 자리가 없는 논리와 법칙의 낙원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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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마지막 날들
그레이엄 무어 지음, 강주헌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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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제 전반에 몰아치는 메가트렌드를 일러 "4차 산업혁명"이라고들 합니다. 그럼 앞서 1~3차의 파고도 이미 지나갔다는 뜻인데, 그 중 "2차"의 거대 물결을 특징짓는 요소는 바로 "전기의 발명(과 철도의 건설)"입니다. 예전 분들은 어린 시절 발명가나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며 이 분야의 많은 위인전기를 (강제로) 읽은 기억이 있을 만한데, 강제건 자발이건 위대한 사람의 생을 반추, 공부하는 체험 자체는 나쁠 게 하나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렸을 적 오리의 알을 품어 부화시키려 든" 토마스 앨버 에디슨이야말로 아동용 전기의 쳄피언격 소재였습니다. 하도 많이 읽어서 "앨버"라는 다소 드문 그 미들네임까지 덩달아 유명해질 정도입니다.

헌데 이 토머스 에디슨, 즉 불요불굴의 발명의지를 갖고 인류의 일상에 장애가 되어 온 모든 불편을 걷어내려, 수천 수만 번의 실험과 실패와 시행착오를 마다하지 않았던 거인 역시, 그 인격에 어두운 면까지 함께 갖춘 영혼이었습니다. 위인전에는 그의 가정이 그저 평범한 농가 정도로 묘사되었으나 사실 먼 내력을 파고들어가면 꽤 이른 시기에 식민 아메리카에 터잡은 명문가 출신인 그는, 천재가 흔히 그렇듯 아랫사람의 실수에 너그럽지 못하고 경쟁 상대를 파멸시키려 집요히 시도하는 등 타의 모범이 되기에 결격인 점도 많았습니다. 이 소설은 그런 토머스 에디슨의 생을 소재로, 예나 지금이나 섬뜩할 만큼 승부욕을 불태우는 의지, 살인적인 두뇌 싸움이 펼쳐지는 장(場)인 법정을 무대로, 한 초보 변호사가 가망 없어 보이는 의뢰인을 돕는 사연을 담았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감독한 영화 <프레스티지>를 보면, 두 직업 마술사가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돈은 두 사람 모두에게 결국 의미가 없어집니다) 벌이는 일생의 대결, 혹은 그레이트 게임이 묘사됩니다. 말 그대로 그레이트 게임이라 이 미친 대결 과정에서 한 사람은 다리 한쪽을 못 쓰는 불구가 되고 한 사람은 감옥에 갇혀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죠. 그런데 이 무익한, 아무 소용 없을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한 사람은 지상 최고의 전기 공학자(를 넘어 거의 마법사에 가까운 아우라)인 니콜라 테슬라를 찾아갑니다.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 "순간 이동 기계"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청부)인데, 직업 오락인 마술이 "과학, 기술"을 넘어 아예 "마법"의 영역으로 접어드는 순간이라고 해야겠죠. 여튼 이 니콜라 테슬라 역은 2년 전에 타계한 글램락의 창시자인 가수 데이빗 보위가 맡았는데, 연기가 과연 좋았는지는 의문이나 여튼 뭔가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만큼은 잘 자아내었더랬습니다.

니콜라 테슬라는 발칸 반도에서 이주해 온 당대 이민자 출신이고, 마치 저 먼 러시아(같은 슬라브 족)의 드미트리 멘델레예프처럼이나 괴이할 만큼의 천재성을 지닌 기인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2차) 산업혁명 파고 한복판에서 산업계에 몸 담으며 그처럼이나 많은 업적을 내고, 실력이 아닌 "정치"에서 밀려 은둔자 신세가 되었기에 그의 삶을 둘러싸고 온갖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죽고 나서 그의 연구 업적이나 원고를 미국 정부에서 나와 다 쓸어갔다는둥, 그의 이론대로 시도해 보다 정말 (자기장의 이상 작용으로) 순간이동이 일어나 수병(水兵)들의 신체가 철제 기둥에 떡처럼 들러붙었다는 둥 온갖 확인 안 된 루머가 다 나돌았습니다. 대개 천재는 남들이 A, B, C 를 하나하나 밟아나갈 때 혼자서 Z, 아니 아득한 외계의 표징으로 도약하는 정신이므로, 그가 정말 근거가 있어서 내뱉은 예언인지 아니면 그 광활한 정신 세계에 떠돌던 수많은 영감 중 하나인지는 앞으로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과연 판명이 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미국 대중문학 장르가 가장 멋지게 발전시킨 장르가 바로 법정물입니다. 한국은 그저 판사 개인의 편견이나 정치적 동기, 여론몰이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수가 많지만, 미국 법정은 심지어 18세기 것을 읽어봐도 바늘 하나 꽂을 틈 없는 치밀한 논리의 대결이 펼쳐지며, 판사의 판결 역시 솔로몬의 재림 같은 현명한 진리의 재확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재판은 어쩌면 미국인들에게 있어 일상의 스포츠와도 같이 친숙하며, 개인 간의 분쟁이 이처럼 치밀하고도 합당한 절차를 통해 해결되는 나라이기에 오늘날과 같은 선진 시스템을 마련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나라, 이런 풍조에서라면 허황된 보물선 사기나 바라보며 저질 범죄에 가담하는 자폐증 환자 따위가 설 땅이 없는 게 당연합니다.

다들 아는 것처럼 미국의 국가 표준 방식을 둘러싸고 직류냐 교류냐 하는 싸움으로 한때 온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에디슨 측은 직류를 내세우며, 교류는 자칫하면 큰 사고를 부를 수 있다고 야비한 선전을 했지만 결국 진리가 이기는 법이라서 당시의 미국, 또 대부분의 문명 국가는 (니콜라 테슬라 등이 옹호했던) 교류 방식을 채택하여 오늘에 이릅니다. 아동용 위인전에서는 이 점(억지로 우기다 패배한 에디슨의 망신)을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혼란스럽지 않게 전달할 수 있을지 하는 고민 끝에 여러 무리수를 두기도 합니다만, 오히려 이 소설에서는 (미국 대중 문학이 가장 찬란하게 발전시킨) 법정물, 또 이 장르가 가장 애정하는 "세상 물정 모르고 정의감에만 불타는" 신참 변호사를 등장시켜, 더운 여름 청량제가 필요한 우리 독자들을 즐겁게 해 줍    니다. 그 신비한 베일을 아마도 영원히 벗지 않을 테슬라라는 소재와 함께, 우리 독자를 들었다놨다 하는 빼어난 스토리텔링으로 본전은 충분히 뽑은 멋진 읽을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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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탐정 -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집장의 37년 단어 추적기
존 심프슨 지음, 정지현 옮김 / 지식너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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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라는 신비한 종(種)의 실체를 알아내려면 오직 지구상에서 이 동물만이 부지런히 생성하고 발화하며 소비하는 "언어"의 정체를 집요히 추적하는 게 그 지름길일 수 있습니다.

"단어 탐정"이란 말이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만 영어로 word detective라고 부르면 비교적 그 뜻이 분명히 다가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한국어의 먼 어원이 궁금해질 때 국립국어원 등 여러 사이트를 들어가 보고, 관련 논문도 찾아보곤 합니다만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예컨대 접미사 "~님"의 경우, 혹시 중국어 닌(您. 중국어에서 "[높임의] 당신"이란 뜻이며,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는 니, 임 등으로 읽습니다)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 궁금했으나, 아무 답을 얻을 수 없었고 그런 쪽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해당 전공자, 종사자 중에서도 없는 듯했습니다. "누리집, 누리꾼" 같은 억지스러운 순화어 고안 같은 것보다, 우리말의 참된 뿌리, 기원을 캐고 들어가는 데 더 우선순위가 높은 과제일 듯한데도 말입니다. "며칠/몇일"의 논쟁 역시, 가장 오래된 표기 기록인 용비어천가의 태도가 분명치 않아 결국 이 사람은 이 말, 저 사람은 저 말 하는 식으로 흐지부지되고 마는 게 안타까운 실태이듯, 무엇보다 남아 있는 기록 자체가 미비하다는 우리 특유의 제약, 한계를 감안해도 학계의 이런 미온적인(혹은 무능한) 태도는 여전히 뭔가 아쉽습니다.

반면, 영미권의 현황을 두고 가장 부러운 건, 그 형태가 알쏭달쏭한 단어를 두고 어원을 캐고 들어가면, 일반인도 그 결론을 바로 편하게 열람할 수 있게 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일목요연히 정리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논문 검색, 접근이 어려운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연구의 공백지대, 불모지대가 너무도 많습니다. 물론 영미권의 저작, 성과를 들춰 봐도 "정답"이 그대로 제시된 건 아닙니다. 여전히 학자들 간에 논쟁이 치열하고, 십 년 전에 정설로 여겨지던 것이 그 반대증거가 구성되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논파, 폐기처분되기도 합니다. 천박한 유행을 따르는 게 아니라, 살인적으로 치열한 논쟁과 갑론을박을 거쳐 "현 시점에서 가장 진리에 가까운 답"이 일반 대중에게 게시되는 겁니다. 물론 대안이 복수이면 그 모두가 공평하게 알려지는데, 학자 개인의 공명심이나 정치적 동기보다 진리에 다가서려는 한없이 공평하고 올곧은 마음이 우선하기에 이런 장관이 펼쳐지는 게 가능합니다.

이 책의 저자 존 심프슨은, 바로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집장을 역임한 분입니다. 개인적으로 그토록 궁금했던 사항들, 지적 호기심 해소의 상당 부분을 바로 이분께 빚지고 있었다는 점을 알면서 너무도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기대치를 높이고 읽으면 필연적으로 많은 대목에서 실망할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은 오히려 정반대로, "당신은 여태 더 많은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더 많은 의문을 품었어야 옳았다"고 깨우치기나 하듯, 공부가 덜 되고 사려가 부족한 독자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의 논의 중 상당한 대목은 영어, 혹은 언어학 자체에 그닥 관심이 없던 독자에게 좀 어렵게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런 독자를 배려한 듯, 저자께서는 근 몇 년 사이 뜨거운 이슈로 대두했던 "동성 결혼" 논쟁을 다분히 염두에 두고 marriage라는 영단어에 대한 사연을 자세히, 자상하게 풀어 줍니다. 이 이슈는 우리하고도 그리 먼 거리를 둔 사정이 아닌데, 2018년 1월 제7판을 발간한 이와나미서점(일본을 대표할 만한 출판사입니다)의 広辞苑 일본어사전이, LGBT라는 항목에서 다소의 편견이 비춰질 만한 설명을 하자, 사용자들 중 일각에서 이에 항의를 하고 들었으며, 출판사에서도 이의 정정을 적극 검토하겠다며 입장을 밝힌 일이 있었습니다. 교양 있는 일반인 중에서도 이런 사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은데, 여기 인터넷 서점에도 해당 사전의 제7판에 대해 자세한 리뷰를 올린 분이 있습니다. 링크는 하지 않겠으나 廣辭苑 7판 상품 페이지로 가 보시든지, "스오 오시마, 고지엔, 코지엔, 광사원"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 보시면 그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전쟁이란 비극은 역설적이게도 많은 실용적, 혹은 실존적 통찰과 지혜를 이끌어내는 온상,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영어도 전쟁 관련한 신조어, 표현 등을 여럿 보유한 언어인데, 책에서는 "thin red line"을 그 한 예로 듭니다. 이 어구는 아마 테렌스 맬릭 감독, 조지 클루니, 존 쿠색, 닉 놀티, 우디 해럴슨, 존 트라볼타, 숀 펜, 에이드리언 브로디, (나중에 그리스도 역을 맡아 유명해진) 짐 카비젤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여 유명한, 1998년의 대형 흥행작 때문에 한국인들도 잘 알 듯합니다. 당시 거의 모든 영화 잡지에서, 이 기묘한 어구가 무슨 뜻이며 어떤 어원(사연)을 지녔는지 열심히 설명했었거든요. 이제 저는 "그 모든 궁금했던 의문을 처음에 풀어 주신 분"이 누구였는지 이 책을 읽고서 알게 되었습니다.

언어학은 결코 가치 중립적인 학문이 아닙니다. 모든 학문은 그렇게 되고 싶어하거나, 적어도 대외적으로 그런 태도를 표방하여 권위를 얻길 원합니다. 하지만 저 위의 "marriage" 항목에서 보았듯, 어떤 개념, 어떤 단어도 그 안에 중화, 무미건조, 중립, 공평함, 보편 타당성을 온전히 구현할 수 없습니다. 온화하고 자상하며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동의와 수긍을 얻고 싶어하는 저자(책을 읽으면서 그런 자상한 성품, 인품이 느껴졌습니다)께서는 자신이 몸 담은 분야의 이런 난점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아마도 이 책(아니면, 이보다 훨씬 전, 자신이 큰 공헌을 남긴 옥스퍼드 사전)을 읽으며(이용하며) 뜻하지 않은 당혹감이나 불편함을 느꼈을(느끼고 있을) 이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다는 듯, 조곤조곤 "단어 탐정의 때로는 유쾌하지 못할 직분"에 대해 들려 주고 있습니다.

영어에는 이상하게도, 무슨 말인지 감을 잡기 어렵거나(non native의 관점으로 - 따라서 이건 이미 이상한 게 아니며 정상입니다), 더 나아가 영어의 감각, 관점에서 이상한 말들이 꽤 됩니다. 이 책에서는 p193에서 word of mouth를 그 예로 드는데, 이 표현이 영어 원어민, 아니 세계 최고의 영어 전문가의 관점에서도 "확실히 이상하다"는 걸 (고맙게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라틴어 성구 verbum oris를 직역해서 그렇다는군요. 라틴어 verbum은 영어의 word, 혹은 (동사라는 뜻의) verb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주로 문서에 적어 넣는 격식 있는 단어, 구절을 뜻하는데, 한국어의 "시쳇말" 정도와 대조하면 좋을 듯합니다. 다시 말해 verbum이란 본디 os(소유격인 oris의 원형입니다)와 연이 좀 멀다는 점잖은(혹은 젠체하는) 뉘앙스입니다. os는 명사 중에서도 제3유형 변화를 하는 명사이므로 소유격이 저런 꼴입니다.

p304에 보면, 우리(영어 원어민뿐 아니라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우리 한국인들도 포함해야 한다고 봅니다)에게 아주 익숙한 모양이면서도 그 뜻이 전혀 이상하게 정해진 예를 듭니다. bugbear은 누구라도 그 뜻을 알지만, 왜 그런 뜻이 되었는지는 또 아무도 모르는 묘한 단어입니다. 벌레와 곰은 근심과 골칫거리를 우리에게 안겨다 주는 존재라서일까요? 우리말도 그렇지만, 어휘는 세월이 지나면서 원 모습을 잃고 기존에 있던 다른 단어와 혼동되어 형태를 바꾸기도 합니다. 이때 이른바 "민간어원설"이 끼어들기도 하는데, 우리말에서는 "황소, 소나기" 같은 게 그 좋은 예입니다. 이 책에는 안 나옵니다만 독자로서 제가 다른 예를 들자면, blue moon이 왜 한 달(양력 기준)에 두 번 뜨는 보름달인지 저 모습만 봐선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유럽의 천년 고도 이스탄불은 원래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등으로 불렸으나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후 "이슬람"을 수용하며(?) 그리 이름이 바뀌었다고 잘못 여기는 이들도 많은데, 실제로 현지인들 중에서도 이런 오해가 꽤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사정을 알고 보면 철저한 그리스어 어원(이슬람이란 종교가 창시되기 수백 년도 전에 자리잡힌)일 뿐입니다.

옥스퍼드와 맹렬한 경쟁을 펼치는 여러 유수의 다른 사전 메이커 중 하나인 맥밀란社에서 2001년경에 그 실무자들을 방한시킨 적 있습니다(판촉 등 여러 이유). 이때 어느 기자가 "박사님은 그 사전에 나온 단어 중 얼마 정도나 암기하고 계신가요?" 라는 질문을 던졌다던데, 사실 이런 태도는 톰 크루즈 방한시 "실제로 보니 키가 참 작네요?" 같은 언사만큼이나 부적절하고 무례합니다. 이 책의 저자 존 심프슨 역시, 혹 TEPS 같은 공인 어학 시험이라도 치면 아마 한국인 고수보다도 점수가 낮을지 모릅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고 아마 최상위권에 드실 겁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이런 분의 위대함(혹은 이분이 제작에 기여한 그 사전의 위대함)은, 그런 기술적인 잔재주에 좌우되는 게 아닙니다. 탐정(지저분한 사생활 추적자가 아니라 고전에 나오는 진짜 탐정)이 꼬이고 꼬인 진상을 마침내 발견해 내어 정의(justice)를 회복하듯, 이런 언어학자들도 오리무중인 어휘의 지난 내력을 바르게 추적하여 그 정의(definition)을 우리 언중에게, 기술적(descriptive)으로, 또 규범적(normative)으로 표준적인 화법, 문법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스승 중의 스승은 이런 분을 두고 이름이 아닐지요.우리가 우리 존재의 먼 근원을 알려면, 무엇보다 인간 고유의 특질을 강하게 구성하는(노엄 촘스키의 주장입니다) 언어에의 이해가 필수라는 이유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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