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엑시트 - 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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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건 그 나름의 모순은 존재하며 모든 공동체는 그러한 구조적 결함을 인지하고 성원들의 지혜를 모아 조금씩 개선해 다가려 듭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 사회에 세 가지 불펑등의 축이 강고하게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비로소 동아시아 사회 특유의 소셜 케이지와 충돌할 때(p34) 지금까지의 경험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혼란이 빚어질 것을 과감하게 예언합니다.

(*북뉴스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누군가의 존엄, 자유, 권리 등이 심각하게 침해받았다고 느낄 때 경제학자 허시먼은 그에게 세 가지 옵션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p8). 탈출(exit), 저항, 충성. 저자는 둘째 옵션인 저항에 대해서는 여태 많은 이들이 논의했으며, 자신은 이제 사회혁명에 대해 새삼 기대하지 않기에 첫째 옵션인 "탈출", 즉 엑시트에 대해 분석하겠다며 책의 서두를 잡습니다. 어쩌면 모세의 이집트 탈출(출애굽), 1948년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건국(유럽으로부터 벗어남), 17세기 영국 퓨리턴들의 북미 이주 등이 그런 예일지 모릅니다. 

저자는 1910년 경술국치 후 조선인들에게도 세 옵션이 있었다고 합니다. 민중들은 왜 탈출(엑시트)하지 않았나? 순응의 비용이 훨씬 낮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주나 하와이 등으로 이주한 이들은 일견 엑시트인 듯 보여도 이들 중 상당수는 저항을 겸한 이주였겠습니다. 여튼 엑시트를 택한 이들에게는 낯선 사회와 환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겠는데, 그 사회는 자신만의 소셜 케이지(social cage)가 이미 형성된 상태입니다. 이주자가 가장 먼저 직면하는 도전은 저 케이지를 어떻게 뚫고 들어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기업은 비교적 폐쇄적이고 배타적입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다고 하나 타 조직에 몸을 담다가 이직해 온 이들에 대해 온전히 마음을 열고 화학적 결합을 기꺼이 이룰 의향이, 미국이나 서유럽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죠. A는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인데, 이제 가입한 C를 똑같이 우대할 수는 없지 않겠어? 이렇게 말하는 B는, 속으로 A 역시 자신을 C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존재로 대접할 것을 반대급부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p46에서 저자는 회사원 A씨의 예를 들며, 그는 타 직장 H로 이직할 수는 있어도 지금까지 이뤄 온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 때문에 "엑시트"가 쉽지 않음을 지적합니다. 손흥민이나 추신수, 류현진 등에게 가능했던 엑시트 옵션이 A씨에게는 사실상 없는 것입니다.

p65 이하에서 저자는 사회 A(미국 같은), 사회 B(한국 같은) 둘을 대별하며, 특히 B에 대해 학벌, 내부 노동시장, 연공제 등으로 제도적 상보성(institutional complementarity)이 유지되며 작동하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왜 엑시트 옵션이 특별히 제한되느냐면, 예를 들어 자신의 노동을 팔고 싶어도 그걸 사 줄 고용주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듭니다(p87). p126을 보면 한국의 청년들이 그토록 정규직 직장에 목을 매는 이유가, 이처럼 엑시트 옵션이 지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그나마 청년기의 초입에 사회적 기반을 잡을 채널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며, 한편으로 정년까지 어떻게든 이런저런 보호망으로 자신을 지킬 유력한 케이지를 마련할 방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AI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AI는 갑자기 출현했다기보다, EDPS, ERP(전사적[全社的] 업무관리) 등 20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기업을 잠식하던 자동화 트렌드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합니다. 1980년대만 해도 기업과 회사원은 세력의 힘이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았으며 기업도 인재의 중용을 사시(社是)의 하나로 표방할 만큼 겸손했습니다. 지금은 사람이 없어도 어지간히 시스템이 돌아가며,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을 뽑아 일을 가르쳐 내보낸다는 마인드에 가깝습니다. 이제 AI가 이제 조직의 핵심에서 기능하니 조직원의 위상은 전보다 더욱 위축되어 행여 조직 안에서 배제, 소외되면 어쩌나 하고 전전긍긍할 뿐입니다.

조직 내에서 50대, 60대 중심의 공고한 네트워크가 구축되면 첫째 이들만의 폐쇄적 이익이 옹호되고 둘째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과감한 혁신의 아이디어를 낼 만한 젊은 인력의 풀(pool)이 실종되어 결국 타성에 젖어 도태되게 됩니다. 저자는 일부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나 엑스퍼트가 아니라 이른바 재무통(p345)이 득세하여 결국 조직이 활기를 잃고 고사해 가는 게 이 때문이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과연 한국 사회는 이 위기를 타개할 만한 역량을 갖출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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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익스포저 (포토에세이) 듄 시리즈
그레이그 프레이저.조쉬 브롤린 지음, 채효정 옮김 / 아르누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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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은 발표된 지 반 세기가 훌쩍 넘은 SF 고전입니다. 40년 전쯤에 영화로도 한 번 만들어졌는데 감독이 무려 데이비드 린치였고 폴 아트레이더스 역에 카일 맥라클란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면 <쇼걸>에서 남주 포지션, MBA 소지 카지노 부장이었던 양갈래 머리 영앤리치 역이었던 그 배우입니다. 2020년대 리부팅 시리즈에서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티모시 살라메가 나오죠. 사실 데이비드 린치는 위대한 감독이기는 해도 <듄> 팬들이 원하던 실사판에는 그 스타일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1984년판은 그 캐스팅에서 카일 맥라클란(주인공)이 제일 지명도가 떨어지는 배우였고, 막스 폰 시도, 실바나 망가노, 호세 퍼러, 패트릭 스튜어트, 숀 영, 버지니아 매드슨(프린세스 이룰란 역), 위르겐 프로흐노, 그리고 가수 스팅도 나옵니다. 완전 초호화 캐스팅이었는데 제 생각에는 원작에 충실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만 고집한 데이비드 린치의 잘못으로 저 1984년 기획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영화가 졸작이었다기보다, 팬들이 원한 게 그게 아니었던 거죠.

지금 이 책은 2021년에 개봉한 드니 빌뇌브 판에서 거니 할렉으로 나온 조시 브롤린, 그리고 드니 빌뇌브와 이번에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촬영감독 그레이그 프레이저가, 여러 아름다운 스틸컷과 비하인드 샷과 함께 텍스트를 썼습니다. 이런 영화, 대작 원작이 있는 판타지 장르는 촬영감독이 또한 중요한데 1989년작, 그 말이 많았던 팀 버튼의 <배트맨>도 사실 저는 촬영감독 로저 프랫이 기대만큼 못해줬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2021년판 <듄>은 그레이그 프레이저가 연출자 빌뇌브와도 호흡이 잘 맞았고, 제작진의 의도를 알아서 잘 읽어내어 대형 기획을 성공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저는 봅니다.

조시 브롤린은 <노인을 위한...>에서 갱들에게 쫗기고 살인마와 대립하던 그 퇴역군인 역이었고, MiB에서 요원 K(의 젊은시절)였던 배우이기도 합니다. 심각하고 핸섬하며 중후한데 웃기기도 하죠. 아쉽게도 이 책에는 페이지 마킹이 없어 제가 쪽수 인용을 못하겠는데, 중간쯤에 보면 "친애하는 드니(에게)"라는 설루테이션으로 시작하는 짧은 글이 있습니다. 중동의 사막에서 로케이션된 이 영화를 찍으며 브롤린은 내가 지금 (역에 깊이 몰입하여) 노래 한 곡조 뽑으려는데 한번 들어 보겠냐며 (브롤린이 아니라) "거니"라고 클로징 시그니처를 적습니다. "드니(Denis)"와 "거니(Gurney)"의 라임을 맞춘 것입니다.  

장대하게 펼쳐진 사막을 보면 인간은 할 말을 잠시 잊습니다. 1961년작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스페인과 요르단에서 찍었다고 하는데, 이 영화는 요르단, 조금 내려와서 페르시아만을 바라보는 UAE 아부다비에서 찍었다고 합니다. dune은 그저 모래언덕이라는 뜻의 보통명사에 불과하지만,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과 빌뇌브의 이 대형기획 덕에, 이제는 뭔가 다른 울림을 갖는 이름으로까지 격상된 듯합니다. 원작소설 제목도 관사 없이 그냥 Dune입니다. 이 책에 포함된 많은 사진들도 배우들의 깊은 주름, 정신없는 컬 뒤에 아스라이 자태를 드러낸 배경으로 크고작은 모래언덕들이 나옵니다.

"발이 빠지지 않게 걷는 데 우리 모두가 익숙해졌으므로 아무도 샌드백(이라는 이동도구)을 쓰지 않는다." 이런 대작의 촬영은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스탭들이 참여하는 중노동입니다. 앞으로 생성형 AI가 완전히 활성화하여 CG도 모두 대체하고 사람은 그저 컨셉만 제공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컨텐츠에서 과연 관객이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요? 듄의 캐릭터들이 걸친 코스춤, 수트들은 원래도 기괴하기 짝이 없지만 이 책에 실린 많음 사진들에서는 더욱 기괴하게 보입니다. 얼굴이 익은 배우들도 하나같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상당수가 흑백으로 찍힌 사람들과 언덕들을 담은 사진들이 또한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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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더 포토그래피 (포토북) 듄 시리즈
치아벨라 제임스 지음, 안예나 옮김 / 아르누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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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중 한 분인 사진작가, 저술가 치아벨라 제임스는 대형기획 <듄(2021)>에서 촬영, 조명 담당이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듬직한 체구를 보면 뭔가 작품이 나오고야 말 것 같은 신뢰가 생기는 듯도 합니다. <듄: 익스포저>에서 서문은 프랭크 허버트의 아들인 브라이언 허버트가 썼었는데, 이 책은 p271 이하의 제작 후기를 또 그가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고전 <듄>의 저술과 그 창작 배경에 대해 그 아들만큼 깊이 공감하고 또 증언해 줄 위치에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습니까.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리에트 카인즈는 1984년 실사판은 물론 원작소설과도 상당히 다르게 이 2021년판에서 해석되고 표현되었습니다. 이 캐릭터는 p48의 흑백사진, p51의 컬러사진에서도 그로테스크한 로브를 걸치고 복서브레이드 헤어를 한 채 나오는데 샤론 던컨브러스터라는 (저는 잘 몰랐던) 여배우가 나옵니다. 얼굴만 보면 예전 배우 겸 감독 빌 듀크의 딸인 줄 알겠습니다. 나이도 얼추 그 또래인데 보면 볼수록 뭔가 신비하네요.

차니 카인즈는 원래도 여자였으며 이 2021년판에서는 젠데이아라는 (역시 제가 잘 모르는) 배우가 맡았는데 뭔가 동양인 같기도 하고 키도 멀대같이 큰 독툭한 분위기입니다. 하긴 기존 시리즈에 비해 이렇게 다양한 인종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나오니 뭔가 더 SF스러워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자미스 역은 1984년 영화에서는 나이든 백인 배우가 나왔었는데, 이 2021년판에서는 무섭게 생긴 흑인 중년배우가 나와서, 특히 폴과 격투하는 장면에서 박진감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p78에 그 스틸컷이 나오는데 표정만 봐도 살벌합니다. 이 격투 장면은 요르단의 와디 럼(Wadi Rum)에서 찍혔는데, 책 자체가 영화의 로케이션, 즉 요르단의 와디 럼, 부다페스트, 아부다비, 노르웨이 등으로 파트를 나누어 구성되었습니다.

중국어로 영화감독을 도연(導演)이라 합니다. 연기를 지도한다는 뜻이죠. p95를 보면 감독 드니 빌뇌브가 주연배우 티모시 살라메한테 뭔가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바짝 붙어 지시하는데 살라메는 살짝 긴장하여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지시를 경청하는 듯합니다. 두 사람은 거의 부자지간처럼 나이 차가 나는데 이 감독은 평소에는 온화한 사람 같지만 저럴 때는 진짜 무서워 보이네요.

p112에서 빌뇌브 감독은 검은 베일을 쓴 가이우스 헬렌 모히암 배역 앞에서 또 뭔가를 열심히 지도하는데 이 역을 (언제나 따스하면서도 이지적인 역을 주로 맡는) 샬롯 램플링이 맡았습니다. 저는 이 부인이 어떤 젊은 역을 맡았던 게 기억이 안 나고 항상 좀 똑똑한 중년 여성이었던 것만 떠오르네요. 레이디 제시카 역은 레베카 페르구손이라는, 저는 잘 모르는 배우가 맡았는데 특히 노란 베일을 쓴 p123의 컷이 인상적입니다.

<듄: 익스포저>의 공저자 중 하나인 조시 브롤린이 이 책 p122에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렇게 보니 그도 많이 늙은 모습이며 특히 이마선이 많이 후퇴하고 (분장 탓도 있겠으나) 저렇게 허옇게 센 수염을 보니 할아버지가 따로 없다 싶어 좀 슬퍼집니다. p125에서는 뭐가 기분이 좋은지 환하게 웃는데, 뒤에는 코믹하게도 방가사[番傘]를 펴서 쓴 스티븐 핸더슨의 코믹한 모습이 보이는데 이 노인은 투피르 하와트 역을 여기서 맡았습니다. 코믹한 모습은 p127에도 또 나옵니다.

영화에서는 소름끼치고 혐오스럽기까지 한 분장을 누군가는 걸칙고 나오기 마련인데, p163에는 아예 책에서 그 분장이 혐오스러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누가 그랬다는 건가 하면, 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연기한 하코넨 남작이 그랬다는 겁니다. 이 사람은 부트스트랩 빌 역을 <캐리비언...>에서 연기했는데 이 역도 영화 속에서 꽤 무서웠습니다.

<듄>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정말 큰 선물이 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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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오리지널 초판본 고급 양장본) 코너스톤 착한 고전 양장본 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미영 옮김, 김욱동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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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오리지널 초판본의 표지이며 양장본입니다. 제목은 프락투르 체로 인쇄되었는데, 특이하게도 저자가 에밀 싱클레어라고 나옵니다. 물론 우리는 싱클레어가 이 소설의 등장인물일 뿐, 작가는 헤르만 헤세임을 다 알고 있습니다. 발표 당시 싱클레어라는 젊은이가 자신의 수기를 썼다고 믿은 독자들은 과연 어떤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을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했네요.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헤르만 헤세가 이 소설을 지었을 때는 30대 초반의 나이였습니다. 부제도 따로 붙었는데 Die Geschichte einer Jugend입니다. 풀면, 어떤 소년기의 이야기입니다. 불어도 그렇지만, 독일어 Geschichte는 영어의 story도 되고, history도 됩니다. 출판사는 S. Fischer Verlag라고 나오는데 이 출판사는 지금도 있습니다. S는 설립자 자무엘 피셔의 퍼스트네임이며 Verlag이 출판사라는 뜻입니다.

데미안은 다소 무책임하게 싱클레어에게 악인의 특권이랄까 쾌감 같은 걸 들려 줍니다(p42). 카인은 부당하게 오명을 뒤집어썼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럼 친동생 아벨을 죽인 것도 누명인가? 그건 아니며 형제를 죽였는지까지는 확실치 않으나 강자가 약자를 죽인 사실 정도는 맞지 않겠냐고 예리하게, 일종의 신화비평을 시도합니다. 아무튼 카인의 낙인이란 기실 약자들이 집단으로 낙인찍은, 강자에의 저주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이 낙인은 강자를 강자라고 확인시킨 명예의 표장일 수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싱클레어는 처음으로 다른 세계로 건너온 듯한 뿌듯함이 느껴졌다는데, 왜 우리 한국의 남자애들도 마치 통과의례처럼 또래나 형뻘과 어울려 나쁜 짓을 마치고 비로소 어른이 된 듯 뿌듯해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명백한 범죄도 있으므로 보호자는 정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p65에 나오듯 크로머는 싱클레어의 소년기 특정 구간에 하나의 악몽처럼 다가왔으며 이 사건을 슬기롭게, 혹은 데미안의 도움을 받아, 잘 넘기지 못했더라면 아마 일생을 두고 그의 성장을 방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싱클레어는 그딴 시시한 불량배가 더 이상 아무 영향도 자신에게 미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글쎄,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처음을 보면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라는 유명한 문장이 있죠. p70을 보면 싱클레어는 교실에 들어가면 마치 빈민구호소의 악취처럼 숨을 턱 막히게 했는데, 유독 데미안의 목덜미에서만 비누 향기가 났다고 말합니다. 이건 뭐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대부분 못사는 집 애들+데미안의 특별한 출신 성분), 희한하게도 한 인간의 품격, 힘, 권위 등을 후각적 심상으로 요약한 멋진 예가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소년이 멋진 여성에게 반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p100에서 싱클레어는 자신만의 베아트리체를 발견하는데 물론 단테의 그 고전에 나오는 이상화한 여성상을 가리켜서 대유적(代喩的)으로 베아트리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실 지상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여성이 정말로 베아트리체일 수는 없고, 심지어 단테가 예찬한 베아트리체 오리지널 역시 눈에 콩깍지가 잔뜩 씐 상태였기에 그 떠드는 말을 다 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 대목에서 싱클레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고보니 단테의 그 고전에서도 주인공이 단테였고, 이 소설 역시 처음에는 에밀 싱클레어의 명의로 출간되었으니 묘한 공통점이 있네요.

피스토리우스는 p160에서 "내 소원은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소."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헤세의 소설에서 이처럼 주조연 캐릭터들은 부분적으로나마 살짝씩 헤세 자신들입니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한스도 그러했고, 이 작품에서 싱클레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장 거리가 먼 존재라면 바로 데미안입니다. 데미안은 그래서 영원한 헤세의 안티테제이며, 그가 한평생 극복하고자 했던, 생명력 넘치고 체제에 반항하는 매혹적인 악마지만, 동시에 헤세 자신이 결코 다가설 수 없던 금단의 영역을 태연히 지배하는 젊은 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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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헤르만 헤세 지음, 강영옥 옮김, 김욱동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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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의 오리지널 표지 디자인이며 양장본입니다. SIDDHARTHA라는 제목 밑에 프락투르 체로 Hermann Hesse라고 쓰였습니다. 그 아래의 문양은 아마도 연꽃을 형상화한 것 같습니다. 바탕색이 브라운색이라서 더 고급스럽게 보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26에서 싯다르타는 친구 고빈다와 대화를 나눕니다. "삼매가 무엇인가? 육체에서 벗어나는 게 무엇이지?" 참으로 근원적인 질문이라, 이 질문에 대한 해명이 된다면 그 사람은 이미 득도(得道)에 가까워진 경지이겠지요. 재미있게도 싯다르타는 청주나 야자유 몇 잔을 마셨을 때 이 비슷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사람이 발효된 음료 몇 모금을 마시고 간을 손상해 가며 잠시 느끼는 황홀경이 과연 득도의 경지와 몇 걸음 사이의 가까운 거리일까요? 아직 미숙한 싯다르타는 이 순간 너무 과감한 것 같습니다(이건 그냥 제 느낌이고, 헤세는 벌써 이 나이에 싯다르타가 깨달음 근처까지 갔었음을 암시합니다). 

p94에서 싯다르타는 전에 가우타마(이 책의 표기를 따릅니다)의 설법을 듣고 스쳐갔던 바를 다시 떠올리며 삼매의 경지에 대해 숙고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싯다르타는 고행, 단식 등을 모두 거쳐 보고 그 덧없음을 새삼 강조했다고도 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도 여기서 그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역사상의 싯다르타는 크샤트리아 계급이었지만 이 소설에서는 브라만의 아들로 설정됩니다.

싯다르타는 과연 성인(聖人), 대각(大覺)의 자질을 지녔기에 소년 시절에도 절정의 깨달음 직전까지 갔고, 지금은 카말라 곁에서 부유층의 온갖 호사를 누리며 아랫사람을 부리는 법도 새로 배웁니다. 어떤 경우에나 그는 주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무한히 우월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게 끝이 아님을 감지하고 더 높은 경지를 목말라합니다. p88을 보면 싯다르타는 이 불쌍한 대중을 사랑하면서도 경멸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부처님이 대자대비(大慈大悲)했다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러나 아직 깨닫기 전 단계임도 감안해야 합니다. 왠지 저는 이 단계의 싯다르타는 부처님이라기보다 헤세 자신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소설에는 가우타마라는 대각 성인이 따로 나오고 이가 곧 붓다(p117)입니다. 싯다르타는 그를 흠모하고 따라배우는 열정적인 젊은이라서, 역사적인 그 싯다르타와 바로 동일시할 건 아니고 그냥 소설 속의 캐릭터로 이해하면 충분합니다. 부처님인 고타마 싯다르타를 구태여 이렇게 둘로 분리시킨 헤세의 태도가 특이한데, 불교에서 어차피 석가모니 앞에도 부처 여럿이 존재했다고 가르치므로 이게 그 나름 타당성이 있습니다. p117에서 그는 가우타마 같은 절대 성인에게서도 배우고, 한편으로 카말라에게 극한의 성적 환락과 카마스바미에게 상인의 치부술도 배운, 정말 특이한 삶을 살았다고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를 보면 구두수선공 마르틴에게 낮에 나타났던 가난한 이들이 꿈에 신과 천사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그것도 나였어."라고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는 톨스토이가 기독교 신약 마태복음 25:40을 자신의 버전으로 문학화한 것입니다. p132를 보면 그저 평범한 뱃사공과 나그네 모두가 달관 해탈의 경지를 보이며 모두 닮아 보이는 장면이 있는데 이 역시 비슷한 주제 아닐까 싶습니다.

카말라는 싯다르타와의 사이에 낳은 아이, 그 이름도 역시 싯다르타인 소년을 데리고 과거를 뉘우치며 가우타마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싯다르타는 깨달음의 완성에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상인으로서의 소소한 즐거움을 못 누리는 스스로에 대해 미련이 남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에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내려와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가정을 이루는데 그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싯다르타가 끊임없이 정진하고 다른 존재로 성장하는 과정, 마침내 그 모든 걸 초극하는 결말은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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