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아제 바라아제
한승원 지음 / 문이당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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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한강 작가님의 부친이신 한승원 선생의 대표작입니다. 사실 한승원 선생의 향토적 미학이라든가 한국적 혼(魂) 그 근원의 탐구, 나아가 보편적 휴머니즘의 끈질긴 모색 등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은 이 장편 말고도 여러 걸작들이 있으며, 다만 다른 소설들보다 이 장편이 임권택 감독의 각색영화 덕분에 대중적으로는 더 잘 알려졌습니다. 이 작품만 읽어 봐도 선생이 달성한 문학적 성취의 가치라든가, 그 주제의식이 얼마나 깊이 있고 광범위한 시야를 지녔는지를 알 수 있으며, 마치 귄터 그라스와 토마스 만의 장점만 합친 듯한 공력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어쩌면, 따님이신 한강님보다 선생께서 노벨상 수상에는 더 적합한 작가 경력, 스타일이 아닐지 감히 독단적인 생각도 떠올려 봅니다. 잘 읽히는 소설 본연의 재미 면에서도 더 뛰어나기도 하고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문이당에서 2024년 개정판으로 펴낸 이 책은 소설 외적인 흥미도 끕니다. 일단 문이당이 워낙 오래된 출판사이다 보니 과거 한국 문단의 거물들(이문구 선생이라든가)이 쓴 명작들 판권을 많이 갖고 있으며, 이 소설도 그 중 하나입니다. 1980년대 초반에 이른바 "비구니 파동"이라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미 거의 완성된 영화였으나 승려들과 불교계를 비방했다 하여 격렬한 상영반대 운동이 일어났었습니다. 결국 영화는 공개되지 못했는데, 그 <비구니>는 원작 소설이 따로 있었던 건 아니고 이 한승원 선생이 각본 기초를 잡은 역할이었습니다. 이 책 p6 "초판 작가의 말"에 그 점이 작가님 본인의 입으로 진술됩니다. 

결국은 상호 소통이 안 되어 오해가 눈덩이처럼 커져 그 소동이 벌어졌던 건데, <비구니>의 확대 개작이라 할, 강수연 등 주연 <아제 아제 바라아제>가 1989년에 성공적으로 개봉, 흥행함에 따라 이 파동은 건설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판 작가 서문을 보면 당시로부터 4년 정도 후(1985)에도 여전히 선생이 이 일로 마음 고생을 크게 했음을 우리 독자들이 엿볼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하며 이른바 10.27 법난이 발생했던 사실도 당시 불교계가 예민하게 나섰던 한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소설 초반은 진성(眞成)이라는 법명의 비구니, 강수남의 사연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1959년작 영화 <수녀 이야기>도 저는 잠시 생각났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도 부유한 태생이며 타고난 두뇌가 총명하여 공학, 의학 등 어떤 학문 분야에 몸담았어도 성공했을 만한 재원이었으나, 뜻한 바 있어 세속과 연을 끊고 종신순결을 서원하죠. 강수남은 자신을 연모하던 병약한 소년의 연서를 받으나 그 자신도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영혼이었는데 이런 문제 앞에서 갈팡질팡 당황하는 게 당연합니다. 결국 소년은 어린 나이에 죽고 마는데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수남은 세상사 일체가 덧없음을 깨닫습니다. 약사가 되어 여성 엘리트로서 좋은 배필을 만나 멋진 한 세상을 살게 하기 위해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을 각오였던 그 양친이, 딸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겠다는데 왜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젊은 남성이 일찍 죽는 설정 은 한수산의 <아프리카여 안녕>이 살짝 떠올려지기도 했는데 이때는 위생,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이런 일이 잦았나 봅니다. "돈 있어야 중질도 괄시를 덜 받는다(p69)."는 수남 부친의 대사도 <수녀 이야기>에 그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소설의 진주인공이라 할 순녀 이야기가 p77 이하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이미 소설 극초반에도 진성, 은선 스님들의 각별한 관심을 받던 행자이며, 묘하게 그 외모부터가 수도생활과의 이질감을 형성하는, 사연 많아 보이는 분위기였습니다. 현종 선생은 순녀에게 참 많은 것을 간접, 직접으로 가르칩니다. 생식과 그 열락의 이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여성은 방사의 예사로운 과정도 마치 남성이 여성에게 강제로 못된 짓이나 하는 양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현종 선생이 의도적으로 이 장면을 노출한 건 아니겠으나 뭐 모를 일이긴 합니다). 그런가하면 p114에서 백제멸망 당시 삼천궁녀 투신 설화의 허상을 냉철하게 지적하는 등(지금에서야 뭐 상식이긴 합니다만) 범상치않은 통찰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한승원 작가님 특유의 "저항하는 민초"에 대한 끈끈한 애정은 p117의 전봉준 장군 관련 언급(특이하게도 순녀의 시선에서입니다)에서도 드러납니다. 이 "여승과 도화살" 대목은 에로티시즘과 역사의식이 공히 잘 표현된다는 이유에서 한승원 문학 개성이 압축적으로 빚어진 명장면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는 진영미씨가 연기한 진성스님은 소설에서도 꽤 비중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p156 같은 곳을 보면 우종남이 끝까지 강수남을 찾아와, 그 부모님이 아직도 따님을 기다린다며 집요한 설득을 합니다. 갈데없는 이들(예컨대 고아 처지라든가)이야 산사에서 고된 수행을 할 때 한 번쯤은 자신도 가족이 있어 날 좀 데려가 줬으면 싶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이미 세속 절연에의 심지가 확고한 진성 스님에게야 이런 만남이 늦가을 모기의 앵앵거림처럼 성가실 뿐입니다. 세상사가 이래서, 불공평하기에 되레 공평하다고들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현대사는 동족 상잔의 비극이 남긴 상처가 아직도 깊고 가득합니다. p192 같은 곳을 보면 낮에는 국군과 청년단 사람들이 와서 난리를 치고, 밤에는 빨치산이 패악을 부렸다던 당시의 시대상이 잘 서술됩니다. 사이에 끼여 죽어나는 건 아무 잘못도 없는 백성들뿐입니다. 대체 사람을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게 정치의 목적이 아니었습니까? "할머니는 큰딸의 몸에서 남자의 냄새를 맡았다.(p198)" 당시 몸 간수를 잘 못 한 건 무조건 여자의 탓이라 해서 이처럼이나 고된 봉욕을 그 일가로부터도 치러야만 했던 시대상이었습니다. 소설 저 앞에도 수학여행을 갔던 수남이 갑자기 사라져서 선생들이 여자애가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욕이라도 본 줄 알았다며 걱정하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 시대상이 이러했습니다. 

"깨달음의 진주는 그걸 얻기 위해 억지로 뼈를 깎는 고행을 한다 해서 되는 게 아니며, 얻어진다 해도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p280)" 작가 서문에도 이 비슷한 말이, "해탈은 대승(大乘)에서 사부대중과 함께 오욕을 같이하고 뒹구는 와중에 얻어지는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의외로(?) 석가모니 본인도 인위적인 고행(苦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도 남 보란 듯이 큰 목소리로 회개하는 시늉을 위선자들의 사기, 회칠한 무덤이라면서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특히 선생의 이 작품에 비교적 잦은 성애 묘사가 등장하는 것도, 이승이라는 똥밭에서 열심히 굴러 본 자가 진정 업(業)의 사슬을 끊을 자격이 있다는 심오한 주제와 관련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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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태국 - 최고의 태국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최신판 ’25~’26 프렌즈 Friends
안진헌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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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오래 전부터 천혜의 관광지로 꼽혀 왔고 그 번화한 거리, 고층 건물, 불야성의 풍경 등을 보면 절로 가슴이 설렐 만큼 매혹적인 나라입니다. 한국인들이 근래 자주 찾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서양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곳의 매력을 알아 숨겨진 attractions까지 널리 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근래 한국인들도, 우리 눈에 특히 마음에 들었던 여러 명승지를 인터넷상에 공유한다든가 해서 우리만의 포인트를 찾아간다는 점입니다. 최고의 동남아 여행작가인 안진헌 선생의 이 책은 프렌즈 초창기부터 나왔었으나 꾸준히 최신 변경 사항을 업데이트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며, 동남아 애호가들의 눈을 이른 시기부터 틔워 준 공이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저도 여태 여러 번 이 책의 구판들을 읽고 후기를 올렸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방콕처럼 오래된 도시는 구도심이 있고 새로이 개발된 곳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도는 종래 영국령 동인도회사가 웨스트벵골의 캘커타(콜카타)에 그 중심지가 있었으나, 무굴의 황제를 몰아내고 델리에다 새로 인프라를 건설하여 뉴델리라 이름붙여 21세기까지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태국은 서세동점의 시기에 외세에 의해 점렴된 적이 없었고, 신구도심의 개발은 주체적으로 이뤄졌으니 그 점도 감안할 필요는 있습니다. p98 이하에는 방람푸(Banglamphu) 일대가 소개되는데, 책에도 나오지만 여기가 방콕 안에서는 올드타운에 해당합니다. 인근 민족, 국가들과 항쟁을 거듭하며 영토를 차례로 넓혀 온 차크리 왕조는 이곳에 강고한 요새를 건설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프라쑤멘입니다. 우리도 한양 인근에 수원 등을 건설하여 정기적으로 순행했는데 p99의 람차담넌도 그 중 하나입니다. 프렌즈 시리즈의 최고 장점 중 하나인 미려한 지도가 딸려있어서 더욱 보기 편합니다. 

한국인들도 즐겨찾는 번화하고 현란한 카오산로드. 책 p160에도 설명이 있지만 이곳이야말로 여행자들이 찾아내고 발전시킨 명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한국이라면 이태원?). 프렌즈 시리즈의 최고 매력 중 하나인데 현지에서의 환전 정보, 교통편 등이 이 책에서도 자세히 설명됩니다. 현지에서 이용가능한 수상보트, 택시, 시내버스, 공항철도 등이 소개되는데,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BTS는 방탄소년단이 아니고 Bangkok Transit System, 즉 방콕도시철도의 약자입니다. p169에는 한인업소들도 나오는데 요즘은 동남아 어딜 가도 이런 정보가 필수입니다. 디디엠, 홍익인간, 동대문 등이 있는데 저는 한 군데도 가 본 적 없습니다. 호텔 정보도 자세한데 제 눈에는 프라나콘 논렌이 바로 들어오네요. 클럽 중에는 아마 더원카오산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겠습니다. 

파타야(p212)는 외국인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휴양지죠. 영화 <엠마뉴엘(1974)>에서도 이곳이 대사 중에 잠시 언급됩니다. 이곳은 본래 미군이 개발하다시피한 곳이며 방콕을 감싸안은 타일랜드걸프 동쪽편에 위치합니다. <엠마뉴엘>은 치망마이에서 그 상당 부분이 찍혔는데 파타야는 치앙마이에서도 가깝습니다. 파타야는 너무 풍경도 좋고 가불만한 곳이 많아, 기간이 한정되었다면 신중하게 일정을 짜야 나중에 후회를 안 할 텐데, p215에 저자 안진헌 선생이 추천하는 가장 모범적인 코스(8시간 정도)가 나옵니다. 인도차이나 반도라는 말 자체가 벌써 힌두이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뜻인데, 우리는 태국이 불교 문화의 압도적인 흔적을 지닌 줄만 알지만 그저 대승과 소승의 표피적인 차이 외에도 막상 현지에 가 보면 한국 불교와는 그 풍취가 무척 다릅니다. p216에 나오는 진리의성전(쁘라쌋 싸짜탐)도 힌두교가 알고보면 이곳 태국에도 그 침투를 깊이 행했음을 깨닫게 합니다. 

p276을 보면 타오 쑤라나리 기념비가 소개됩니다. 책에서 설명하듯 이곳은 태국인들의 영웅 타오 쑤라나리를 기리기 위한 곳인데, 위앙짠 왕국의 침략으로부터 1826년에 나라를 구한 "여성" 지도자입니다. 1797년 청 제국에 반항하여 포의족을 이끌고 봉기한 여성지도자 왕낭선, 나중에 비참하게 능지처참으로 목숨을 잃은 귀주(貴州)의 잔다르크도 잠깐 생각납니다. 참고로 위앙짠은 책에도 나오듯이 지금의 브양티얀이며, 우리는 라오스를 그저 조용한 불교국가로만 알지만 한때 이들이 이럴 때도 있었다는 게 놀랍습니다. 참고로 라오 족은 긴 역사 동안 거의 내내 전투민족이었죠. 

이 책에서 가장 잘 쓰인 대목이 치앙마이를 다룬 파트(p360 이하)이며 구판에서도 이미 그랬었습니다. 역시 프렌즈 시리즈답게 교통편에 대한 안내가 자세하며, 저자의 추천코스는 p365에 압축적으로 나옵니다. ถนนคนเดิน은 "타논 콘 던"이라고 읽는데, ถนน이 거리라는 뜻이며, คน이 사람들, เดิน이 걷는다는 뜻입니다. 이걸 영어로는 walking street라고 옮기며, 태국 환락가 하면 바로 떠오르는 워킹스트리트가 바로 이것입니다(이를 배경으로 삼은 2016년작 어떤 한국 영화 제목도 있죠). p378에는 이런 워킹스트리트 중 하나인 타논 우아라이가 소개되는데 책에도 나오듯이 은(銀)공예로 유명합니다. 

풍부하게 게시된 천연색의 멋진 사진들, 현지 사정에 달통한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 최신 사정들의 성실한 반영 등, 왜 프렌즈가 최고의 여행서인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2025년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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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래보고서 2025-2035 - 미래 10년의 모든 산업을 뒤흔들 기후비상사태
박영숙.제롬 글렌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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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장기전망서로 이만큼 매년 신판이 오래 출간되고 대중의 사랑을 꾸준히 받는 책도 드물 것입니다. 이 책은 일찌감치 기후위기를 지적하며 UN 차원의 어젠다로 확고히 규정,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는데, 특히 올해판은 "기후비상사태"를 전면에 내걸고 각별한 주의와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호주 북동부에 자리한 그레이트배리어리프(p61)는 한국의 중학교 사회과부도 일반지형도에도 그대로 표시될 만큼 거대한 산호초더미이며, 여기에까지 백화 현상이 벌어진다는 건 그야말로 지구 표면이 변화하는 무서운 조짐입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산호가 백화한다는 건 산호 겉에 공생하는 해조류가 스트레스를 받아 죽어나가면서 산호의 하얀 껍데기만 드러나는 건데, 그 엄청난 푸름의 스트레치가 허옇게 죽음의 징후를 호소하며 지구에서 사라져간다는 건 여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에서는 울런공(Wollongong. 시드니 근처에 있죠) 대학 교수 헬렌 맥그리거 등 최근에 이뤄진 대규모 연구의 주도자들의 견해를 인용, 소개합니다. 

에너지는 21세기 초만 해도 각국이 가장 싸게 들여올 수 있는 외국으로부터 자원을 자유롭게 수입했었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은 호주로부터 석탄을, 유럽 각국은 별 부담없이 러시아에서 가스를 사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정치적 이유로 이 무역이 중단되었는데, 중국은 호주와 관계가 나빠지자 석탄 수입을 중단했고 유럽 여러 나라는 러시아 외 다른 경로로 가스를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메르켈 때 거의 밀월관계였던 독-러는 지금 올라프 숄츠 사민당 총리 지도 아래에서 매우 악화했습니다. 책 p106 이하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용 급증 배경을 분석하며 이를 에너지 안보 추세와 연결시킵니다. 또 p107에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해당 국가 안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이 늘어날 것이라 전망하는데 이건 이제 10여일 전 트럼프가 당선되었기에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습니다. 

시멘트라는 건 20세기에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발전된 경이적인 건축재료입니다. 빨리 굳고 가소성, 내구성이 모두 뛰어난, 당시에는 기적적인 발전이었는데, 지금은 특히 콘크리트 성분 때문에 환경오염의 주범(p137)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탄소 제로 시멘트라는 게 나와, 건축효율과 환경보존의 두 가지 가치를 모두 달성하는 효자재료로 각광받습니다. 이미 용도가 다한 폐 플럭스를 통해, 강철도 정제하고, 잔여 슬래그 냉각 시에 포틀랜드 시멘트를 새로 만드는 놀라운 결과가 빚어짐을 시릴 뒤낭 박사가 발견했습니다. 특히 이 폐 플럭스가 강철 정제에 친환경적으로 쓰여서 탄소 저감 효과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효율성과 환경보호가 트레이트오프 관계가 아님이 증명되기도 한 바람직한 혁신 사례라고 할 수 있죠. 

책의 제3부는 이제 우리들의 실생활에 성큼 다가서고 빠르게 침투하는 AI에 대한 분석입니다. 저는 십여년 전 박영숙 제롬글렌 두 분 저자의 이 책 당해년도판을 통해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라는 것의 개념을 처음 배웠는데요. 올해판에도 다시, 그러나 훨씬 진화한 개념으로 책에 등장합니다. 이 책 p179에서는 이렇게 환골탈태한 AI가 범죄의 패턴마저도 바꿔놓았다는 흥미진진한 분석이 나오는데, 물론 이에 대응하는 국가공권력 역시도 그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탈바꿈해 갑니다. p199에는 그 문제의 오픈AI社가 박사급 추론능력을 갖춘 엔진을 이미 개발했다고 내세운다는 말이 있는데, 해당 회사의 주가관리를 고려한 자체 어필의 인용인 만큼 독자들은 (저자들의 숨은 의도를 감안하여) 적당히 걸러 들어야 하겠습니다. 

화성에 식민지(p258)를 과연 건설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기술적 난점이 너무나 많이 남았지만, 생성형 AI는 이에 대해서도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여 전에 없던 성과를 안겨 주었고 지금도 계속 놀랄 만한 기여를 이어갑니다. 화성의 낮은 중력은 인간의 내장기관, 특히 호흡기와 순환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이를 회복하기 위해 얼마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적절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산출합니다. 과연 생명체의 흔적이 있기나 한지 더 치밀하고 체계적인 자료 수집, 결과 분석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우주 개발뿐 아니라 의료, 화학공정, 시스템 아키텍처 등 전 분야에서 AI가 크게, 대체불가능할 만큼 공헌하는 게 바로 이런 시뮬레이션이라고 생각됩니다. 

최근 트럼프와의 연대로 더욱 주목받는 일론 머스크는 역시 십여 년 전부터 혁신적인 도시 교통 수단으로 하이퍼루프를 밀었는데 이 책 p318 이하에도 자세히 그 최근 동향이 나옵니다(머스크 이야기는 없습니다). 박, 글렌 두 분 저술 스타일이 항상 그렇지만 그저 현상 기술에 그치지 않고 원리적인 설명까지 자세히 해 주는 점이 좋습니다. 그리고 중국 미사일 개발업체 CASIC가 이 하이퍼튜브 기술을 응용하여 신기술 열차를 만들었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중국처럼 광대한 영토를 지닌 나라는 고속열차의 발전이 특히 긴요하기에 이런 혁신이 빠르게 일어나는 듯합니다. 

기술적 발전상의 최신 현황과, 인류공영의 바람직한 비전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유익하고 멋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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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마사노리.기누타 쥰이치 지음, 김윤경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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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나 기업이라 해도 그만의 강점이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약점도 보완해야겠으나 필드에서 치열하게 경쟁이 벌어지는 중에 성벽 수리에 지나치게 많은 자원을 할당할 수는 없습니다. 구태여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면 강점을 더 키우고 부각해야 하겠는데, 한국인들도 너무나 잘 아는 스타 사장님이자 베스트셀러 저술가인 간다 마사노리 선생이 이 책에서 다시 재미있고 유익한 말씀을 들려 줍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간다 마사노리와 그의 팀은 언제나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들려 줍니다. 많은 독자들이 착각하는데, 간다 사장님은 그저 말씀만 재미있게 푸는 분이 아니라(재미도 있지만), 책을 읽어 보면 오랜 실무 경험의 소산인 특수 자료, 문제 해결 도구 같은 게 (때로는 중복도 있으나) 반드시 제시됩니다. 예를 들어 p57 같은 곳을 보면 AMM서치시트라는 게 나오는데, 이 시트의 빈 칸을 기입해 가다 보면 본인의 대체불가능한 강점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발견됩니다. 이 시트는 11단계 단계를 밟으며 완성되는데, 작성에 별 부담이 없습니다. 부담이 있다 없다는 평균적인 사람 기준이므로, 사람에 따라서는 특정 사항을 채우거나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데, 그런 것도 다 예상했는지 저자는 혹 답하기 어려울 경우 어떻게 넘어가야 하는지도 친절하게 알려 줍니다. 

현재의 일이 무엇인지 적는 게 제3단계의 기입 사항인데, 아무리 편하게 작성한다고는 하나 써서는 안 되는 점, 써 봐야 도움이 안 되는 건 피해야 합니다(p86). 그 기준은, 이 책의 주제로 다시 시선을 돌리자면, "나의 강점을 올바로 파악하자"입니다. 예를 들어 직업, 직책, 직무, 부서명을 적는 건 아무 의미없습니다. 세무사다, 영업총괄부 시스템 담당이다, 뭐 이런 건 지금 이 분야에서 나의 강점을 포지셔닝하는 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의 진짜 강점을 찾고 그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시트를 채워나가며 나의 장단점과 생각, 행동의 구조에 대해 자연스러운 통찰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능력으로 아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면, 일찌감치 그것들을 리스트에서 제거하는 게 이 과업(=나만의 강점을 찾기)을 훨씬 편하게 만듭니다. p102에 이 부분이 자세하게 나오는데, 이걸 필터링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기준이 필요합니다. 투입시간, 시야확대, 스케일업, 잠재력발굴, 쏟아붓기 등입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남들보다 엑셀을 밀도있게, 다양하게 써 온 사람은, 스프레드시트를 쓰는 작업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적은 시간만을 투입하여 완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기준에서 아무래도 나는 이 일을 남들보다 빨리 마치기 힘들겠다 싶으면 이 일은 초기 단계에서 배제하는 게 현명한 선택입니다. 

마케팅 시간에 배운 대로, 그저 포지셔닝만 영리하게 다시 했을 뿐인데 시장에서 완전히 다른 상품으로 거듭나 대박을 친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 책에서는 주로, 여태 숨겨졌던 나의 장점을 발견하여 완성품으로 가다듬는 방법을 가르치지만, 기존의 장점(인지 아닌지 모호한 경우 포함)을 새롭게 포지셔닝하는 경우도 포함하여 유용한 팁들과 방법론을 알려 줍니다. 아무튼, 이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효과적인 포지셔닝이 가능할까? p124에 세 가지 관점에 따라 체계화한 표가 하나 나옵니다. 독자성, 전문성, 우위성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 따라 전략도 달라집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냥 직관적으로 추진해도 될 걸 구태여 이렇게 형식에 맞춰 기계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사무실 보드에 진행상황을 가시적으로 도시화한 후에 일을 진행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매우 큽니다. 

이 책에서 가르치는 대로 자신의 강점을 발견한 후라면, p238에서는 이제 실전에 임하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방법이 나옵니다. 앞에 나온 대로 PASBECONA 법칙(p214)을 적용해야 하는데, 이직이나 부서 이동의 경우 조금 다른 원칙과 요령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잠시 다시 스텝10으로 돌아가자면, 내가 행할 업무, 과업 완수를 통해 누가 혜택을 입는지(p144)가 고려되어야 하는데, p223을 보면 이력서 작성에도 이 원칙이 철저히 관철되죠. 간다 마사노리의 책은 이처럼, 앞에서 제시된 알짜 총론이, 세부 각론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관통하며 그를 통해 독자를 설득력있게 이끌어간다는 점이 최대의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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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CS 한 권으로 끝내기 - 99% 원장님이 모르는 동물병원 의료서비스의 완성
류선수 지음 / 라온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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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네라도 요즘은 동물병원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의대에서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 나온 선생님들도, 여느 자영업처럼 경쟁이 치열한 현실 앞에 경영상의 과실이 겹쳐 좌절하는 수도 있습니다. 저자 류선수 강사님은 여성이시며,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을 고객 삼아 주로 CS(고객 만족) 분야에서 컨설팅을 해 오신 분입니다. 요즘은 일반 병원도, 특히 CS 경영요소를 (전문가들의 조언을 따라) 크게 개선하여 경영 위기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이 블로그에 병원 경영 관련 서적을 여태 여러 권 리뷰했었습니다. 하지만 동물병원 전문 CS를 주제로 삼은 책은 보기 드물었는데, 이번에 제대로된 책이 나온 것 같아서 관심깊게 읽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예를 들어 p58 같은 곳을 보면 저자님의 섬세한 감각이 느껴지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병원에 어쩌다 가면 의사, 직원, 간호사 등이 참 친절하다는 느낌 받으실 겁니다. 병원뿐 아니라 한의원도 마찬가지라서 (노인 환자들을 유치, 유지하려고) 가식이든 진심이든 간에 대단히 편안해지는 응대를 받습니다. 이게 다 CS 분야에서 종전처럼 해서는 도태된다는 인식이 해당 업계에 널리 퍼져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동물병원은 어떤가? 저자는 아직, 이 시점에서는, 내 소중한 반려동물이 그저 치료, 진료만 잘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많은 소비자들이 머물러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인식이 변화하기 일보직전이라는 취지로 저자는 판단하며, 치열한 경쟁의 장 속에서는 누가 먼저 종래의 틀을 깨고 나가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됨을 시사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아직 그 단계로 진입하려면 한참 멀었는데도 미리부터 괜히 역량을 소모하면 정작 필요할 때 이를 끌어쓰기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그 티핑포인트를 짚는 후각이 발달했기 때문이죠. 저자도 이미 그 단계로 진입했다고 단언하지는 않고, 그 직전이라고만 신중하게 말합니다. 판단은 원장님들이 각각 알아서 할 일입니다. 

동물병원뿐 아니라 여러 기업, 접객시설 들에 두루 적용할 만한 좋은 말씀이 p112에 나옵니다. 이 대목은 CS개론(그런 게 있다면)의 교과서로 쓰여도 될 만큼 압축적이고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지침들이 정리되었습니다. 또 저자는 "머리로 이해한 내용보다는 현장에서 가슴으로 느낀 바가 더 오래간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문장이 CS 관련하여 어떤 기술적인 교육보다는 필드에서 손수 체득한 바의 적실성, 효율성이 훨씬 강력하다는 뜻으로 이해했으나(물론 그렇게 새겨도 되겠지만) 이 말의 요지는 동물병원을 찾는 많은 고객들에게 병원 측이 진정성을 통해 그런 체험(나아가 감동)을 선사해야 한다는 쪽에 가깝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예전부터 하던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하지만..." 일부 시골에서 단백질 보충을 위해 개를 무지막지하게 때려잡았다는 흉악한 소문도 전하지만,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농경 생활의 동반자인 여러 동물, 가축들에 대해 대체로 동정적이고 우호적인 태도였습니다. 게다가 소 등은 신라 지증왕 이래 농경에 필수적인 동반자였으니 말입니다. "말 못하는 동물"이니 몸이 심하게 아파도 어디거 어떻다고 구체적으로 자신이 표현을 못하고, 이를 돌보는 사람들은 몇 배나 더 가슴이 아파집니다. 병원에서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고객들이 병원을 찾았다가 정말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동물병원애서의 진정성있는 응대에 대해 일생을 두고 잊지 않는 체험을 안길 필요가 있습니다.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p137)." 

동물병원 원장님, 아니 동네 피잣집 사장님이라고 해도, 나는 나만의 확고한 기술과 철학이 있다며 자신의 생각과 종전의 방식에 과하게 집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크게 봐서 자본주의 사회의 거대한 구조 안에서 개별적으로 미미한 영향만 행사하며 살아갈 뿐이며, 어느 누구도 시장에 대항하여 살아날 수 없습니다. 변화는 해야 하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아직 상황의 절박함을 모르는 한가한 인식에 불과합니다.  

고객만족이라고 하니 분야가 마치 좁은 데에 한정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실무 경영 분야 전체를 거의 다 커버합니다. 예를 들어 p181 같은 곳을 보면 성공하는 병원은 인테리어부터 다르다는 말이 나옵니다. 건물 내 고객 동선을 어떻게 짜야, 여길 찾는 손님들이 가장 편하게 이동하거나 대기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설계시부터 다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경영에 신경쓰는 센스있는 병원은 진짜 하다못해 앉는 의자부터도 디자인이 다릅니다. 

대규모 동물병원은 중간관리자의 역할, 권한, 재량이 강화되어야 한다고도 합니다(p213). 또 다소 민감한 부분이기는 하나 잘하는 직원에게 더 열심히할 것을 독려하기 위해 성과급제 도입도 감안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경영혁신의 첫걸음은 자기객관화인데. p236에 핵심적인 지적이 있습니다. 첫째, 공간, 서비스시스템 등 기본요소를 점검해야 하고, 둘째, 업무수행의 체크는 이행과 미이행이 있을 뿐 중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불만에 가득찬 고객은 가장 위대한 배움의 원천이다(p254)." 언제나 고객의 피드백에 최우선순위를 두자는 빌 게이츠의 저 말은 동물병원 경영에도 초석의 지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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