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하늘길
한승원 지음 / 문이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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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다산 정약용의 형입니다. 흑산도 앞바다의 다양한 어류를 주제삼아 사전을 저술한 인물로 우리는 그의 이름을 국사 교과서에서 배웠습니다만 그런 명저가 어떤 배경에서 완성될 수 있었는지 깊이 있게 알지 못합니다. 이 소설은 전남 장흥 해산토굴에서 실거주하며 구도의 삶을 살다시피 한 한승원 선생의 역작입니다. 장흥은 남해안이고 흑산도는 서해안이므로 거리는 좀 떨어져 있습니다만 다도해로 이어진 두 고장의 정취가 적잖이 닮은 바도 있으므로, 이백년 전 외딴 섬에 유배 온 고독한 선비의 삶이 어떠했을지를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실감나게 재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장성호는 손암(巽庵)에게 학문의 의의에 대한 질문을 듣고 제 나름의 생각한 바를 아룁니다. 남인 명가에 태어나서 우수한 두뇌로 평생을 학문에 정진한 그로서는 이 상민인 장가 녀석이 짧은 지식으로 주절주절 떠드는 품이 가소롭기도 했을 것입니다. 증광별시에서 일위로 합격(p64)한 그가 어떤 심경으로 아랫것의 변설을 들었을지야 우리 독자들도 짐작이 갑니다. 마치 음욕에 미친 노파가 방송 강좌 몇 줄 주워듣고 천하 이치를 통달했다는 듯 안하무인으로 설치는 꼴을 보는 듯 말입니다. 허나 장씨 성 가진 아랫것의 심성에 어떤 허세 따윈 없습니다. 이를 손암도 모르는 바 아니며, 자신의 현 처지가 워낙 불편하니 별의별 언사가 다 심경에 파란을 일으킬 뿐입니다. 

"간장은 신성함으로 돌돌 뭉쳐진 것이었다(p114)." 명가, 종가에서는 장 하나 김치 하나도 예로부터 소중히 전해 온 비결과 내력이 있습니다. 영양 성분의 문제라기보다, 식구들의 건강과 안녕을 생각하는 마음씀과 정성이 그 안에 담겨 전해 올 뿐입니다. 장 종지의 신성함이 후원 소재 사당에까지 비견됩니다. 그런 명문가에서 자란 손암이, 이곳 바람 차고 척박한 오지에서 거친 밥을 먹으며 얼마나 참담한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뜬금없이 찾아와 "나리를 사모했다"며 시중을 드는 거무의 손길도 무덤덤하게 여겨졌을 만합니다. 그런데 현대 독자에게 이 장면은 다분히 남성 우월적 사고의 소산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허적(虛寂). 손암은 마음이 답답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머리가 터질 듯하다가도 선비다운 수양의 힘으로 자세를 다잡습니다. 충동대로 몸과 마음을 휘두르는 자는 배운 바가 짧고 천성이 비천해서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입니다. 간사하기 짝이 없는 이장 윤강순은 손암의 앞에서는 온갖 아첨을 하며 과장되이 악전의 수완을 칭찬하지만 뒤에서는 무슨 흉계를 꾸미는지 모릅니다. 아부 끝에 주역과 천주학의 이치에 대해 묻는데(p172), 약전은 벌써 이 작자가 말에 살을 찌워 윗선에 고해 바칠 심산인 걸 눈치챕니다. 태생부터가 악질의 종자를 타고났기에 입만 벌렸다 하면 거짓부렁이요 모함이며 남의 불행을 통쾌해하는 못된심사로 가득합니다. 이런 자는 그 손자에까지 앙화와 저주가 내릴 만합니다. 그런 걸 두고 천벌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어느 밤 훨훨 날아가서 강진의 아우를 만날 수 있을 텐데(p205)." 지느러미가 마치 날개처럼 발달하여, 익숙지 않은 눈에는 마치 물고기에 날개나 달린 듯 보일 수 있습니다. 옥문은 손암에게 고기의 이름이 날치라고 알려 주고, 거무는 저도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니 살려 주라고 부탁합니다. 이 와중에 장성호는 대흑산도 모래마을 학동들을 모아 "좌랑어른"을 스승으로 모실 준비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배움은 역시 학문의 정수를 맛본 이를 통해야 제격이며, 다만 천성이 악하고 불성실하며 머리도 우둔한 천것은 반드시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창대, 작은이, 삼돌이... 약전 주변에서 알게모르게 도움을 주며 손암 같은 지사가 못된 자들의 흉계에 빠져들지 않게 돕는 이들은 선량한 민초(民草)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이장 김부칠은 같은 직함이라도 저 악독한 윤강순과는 천지차이로 처신이 다릅니다. 험한 벽지 흑산도 자체를 권력자의 거대한 폭압 도구처럼 접했다가 이곳 자연의, 또 사람의 성정과 기어이 화합하여 대자연과 하나가 된 채 마침내 한 줌 흙으로 돌아간 정약전의 고요한 듯 치열한 삶을 보며, 섬이면서도 섬이 아닌 개인의 집념과 달관에 대해 깊이 상량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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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김이랑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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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은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고전입니다. 이렇게나 모던하고 생기발랄한 캐릭터들이 무려 200년도 전에 창조되었다니! 배경만 약간 손질하면 21세기 지구촌 어느 부유한 지역에서 전개되는 로코라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습니다. 이런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사회 풍속이 일찍이 그 시대에 현실을 방불케 하며 펼쳐질 수 있었다는 게, 벌써 영국이라는 문명사회가 세계적 스케일에서의 승리자였다는 여실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시간과공간사 판을 보면 다섯 자매의 어머니는 막내 리디아를 두고 "피부가 곱고 인상이 좋으며... 왕성한 혈기와 타고난 일종의 자존심이 있"어서인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딸로 여긴다는 구절이 있습니다(p67:13~16). 이처럼, 어떤 부모에게도, 열 손가락 물어 안 아픈 데가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밖에 내세워서 뿌듯한 딸이 있는가 하면 제발 벽장 속에 숨어 좀 안 나왔으면 하는(요즘 유행하는 말로 "수납되었다"고 합니다) 창피한 딸이 있기 마련이죠. 우리가 익히 알듯 제인은 바로 손아래인 엘리자베스를 리지라고 곧잘 부르는데, 이 번역판에서는 편지 등(p47)은 다른 폰트로 처리하여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엘리자베스에 대한 청혼이 거절된 데 대해, 콜린스는 그 멍청한 성품이 당연히 보일 법한 반응이지만 매우 당황스런 기색입니다. 베넷 부인은 여튼 이 조건 좋은 신랑감을, 어떤 딸을 줘서라도 잡고는 싶은 심정이기에 그의 자존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합니다. 베넷 부인에 대해 재미있는 점은, 이 소설 전체를 통틀어 그 퍼스트네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고 내내 "베넷 부인"이기만 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베넷 부인은 이 시기 영국 중산층 주부 표준, 상징에 가까우므로 구태여 이름이 나올 필요도 없긴 합니다. 

"차남은 결혼도 마음대로 못 한답니다.(p236)." 피츠윌리엄 대령(백작의 차남. 다아시와는 동명이인처럼 보이지만 이 사람한테는 성씨죠. 인척이니 우연은 아닙니다)의 푸념입니다. 다아시는 비록 부유하긴 하지만 귀족 신분까진 못 되고, 애써 그 점을 숨길 생각도 아닌지(이런 점이 그의 성격 중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죠) 다소 거칠고 직선적인 매너(p245)를 종종 드러냅니다. 여기서 피츠윌리엄 대령이 다아시라 부르는 사람은 물론 남자주인공 그 사람입니다. 빙리를 가리켜 a great friend of Darcy's라고 하는데, 친척을 향한 살짝 부러움 같은 감정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과연 피츠윌리엄 다아시는 베넷 가문 사람들에 대해, 자기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싶으면 거리낌없이 폄하하는 언사를 내보입니다. 이러니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경솔한 처신이 그에게 빌미를 주었나 하는 생각에 반성과 자책감(p264)을 표현하며 언니 제인에게도 미안한 감정이 솟습니다. 대단치는 않아도 여튼 당대 영국 중산층 출신답게 가문의 명예도 챙기려는 의도이며 동시에 자연인으로서 친혈육인 언니에게 느끼는 애정을 표출하는 대목입니다. p271에서도 엘리자베스의 이런 감정은 반복적으로 표출됩니다. 

딸이 많으니 많은 돈을 막내에게 물려줄 수 없는 베넷 씨의 착잡한 심경이 제인, 엘리자베스 등과의 대화(p366)에서 잘 드러납니다. 위컴같이 돈 한 푼 없고 빚만 가득한 형편없는 사내에게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줘야 할 그 아픈 마음이 지면 밖으로까지 전해지는 듯한데, 그래도 예비 사위(?)를 두고 지나친 평가절하는 하지 않으려는 그 신사다움과 인격은 여전합니다. 이 양반 역시 당대 영국 향신, 중산층의 전형입니다. p383에는 일찌감치 시집을 가는 리디아(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딸이 이런 집안에 태어날 수 있죠?)가 언니들에게도 신랑감을 얻어 주겠다고 하자, 네 방식으로 남편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는 엘리자베스의 통박이 나옵니다. 아주 우스운 대사입니다. 

콜린스는 마지막까지 바보 같은 말을 들먹이며 베넷 가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는데 이게 다 통제불능 막내딸의 미친 폭주 때문이므로 아빠나 엄마나 언니들이나 뭐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튼 다아시의 시원시원한 결단은 베넷 집안의 많은 문제들을 그나마 봉합했고, 엘리자베스 역시 마음을 잘 돌려 해피엔딩을 짓기 때문에 그나마 독자의 마음이 덜 불편하게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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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썼어 너도 써 봐 마음시 시인선 12
장용 지음 / 마음시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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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시회에서 나온 장용 시인의 시집입니다. 시인 장용은 1964년생, 희극인 출신이며, 1998~99년 문화방송 코미디언실 실장도 지낸 분이라고 책날개에 적혔습니다. 일단 시집의 제목에서부터 참 겸손한 분이시라는 인상을 독자는 받게 됩니다. 시심이 동해야 시가 창작되는 것이며, 그 시심이라는 게 깨끗하고 정직한 영혼에서만 발동될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장용 시인의 작품들을 읽어 보니 짧고 담백한 어구들 속에 진실되고 깊은 통찰을 담았으며, 사물을 이처럼 깨끗한 눈으로 바라본다는 자체가 아무나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품들은 아마도 장용 시인의 손글씨로 직접 쓰였을 폰트로 한 번, 활자로 한 번 해서 같은 페이지에 두 번씩 게시되며, 특이하게도 페친들의 한 마디 코멘트가 하단에 같이 실렸습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이런 댓글들도 촌철살인이라서 읽기에 재미있습니다. 

장용시인은 동음이의어를 통해 삷의 패러독스, 페이소스를 표현하는 기법을 자주 쓰시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p56의 <해녀> 같은 게 그렇습니다. 시는 매우 짧습니다. "마음이 전복돼도 엄마는 전복을 딴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살면서 얼마나 자주 속이 뒤집어지시는 적이 많았겠습니까. 그래도 가정을 지키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일러스트를 보면 거꾸로된 자세로 물질을 하십니다. 김종성이라는 분은 댓글을 달길, "전 복이 많아요."라고 합니다. 페친들도 내공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청명한 가르침을 담은 작품을 읽고 마음이 맑아지는 우리 독자들도 복이 많습니다. 그럼요. 

p144에는 <책>이라는 작품이 나옵니다. "책 잡아야 책잡히지 않는다." 이 한 구절인데, 이 시집에 나온 작품들이 대개가 이런 식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해를 못했는데, "아, 혹시 남을 먼저 비판해야(속된 표현으로, 선빵을 날려야) 내가 비판받지 않는다는 뜻인가?"라고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시인의 맑은 마음에서 고작 그따위 수준의 한심한 말이 나올 리 없습니다. 책(冊)을 평소에 자주 접해야, 남한테 책(責)을 잡힐 만한 실수가 줄어든다는 뜻이죠. 옆에는 참하게 생긴 어떤 젊은 여인이 책을 읽는 일러스트가 실렸습니다. 저도 제 옆에 이런 여성분이 혹 있다면, 그 책 읽으시는 동안 잔심부름도 해 주고,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만약 그게 필요하다면요), 혹시 근처에 모기나 날파리, 바퀴벌레가 돌아다닌다면 책 읽으시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대신 잡아 드리고 싶네요. "야! 저리 가!" 

p65에는 연작시 <젠장>이 나오는데 아홉번째 작품의 소제목은 "소"입니다. 전문을 인용하면, "이승을 놓으면/편히 쉬겠지/구두가 되었네/젠장!"입니다. 소의 입장에서, 아마도 도축되기 전 복잡다단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 아마도 내내 고단했을 일생이 차라리 종착점에 달하면 편안해지겠거니 지레 위안했겠지요. 그런데 깨고 보니 신발의 원료로 쓰인 자신을 발견했다? 죽어도 고생이 끝날 날이 없으니 기가 찼겠으나 그래도 젠장!이라는 탄식 한 마디로 더 이상 갈등을 키우지 않으려는 태도가 의젓합니다. 정인규님은 "지갑이 되어 하루에도 허리가 몇 번이나 접혔다 펴졌다 합니다"라고까지 하네요. 그래도 지갑보다는 구두 신세가 나으려나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p142 <영면(永眠)>은 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종점일까/환승일까/그냥자자" 아마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이, 이대로 모든 게 끝나는 종말일지, 아니면 내세 같은 게 또 있을지 우리는 내내 궁금합니다. 그런데 만약 전자라면 그 완전한 사멸이 두려우나, 발버둥치며 뭘 해 볼 여지도 없습니다. 그러니 가뜩이나 피곤한 몸 그대로 잠이나 자자는 게 하나의 체념적 선택일 수도 있겠죠(그 역시도 얼마 안 남은 시간의 마지막 가능성). 하지만 정말로 버스 안이기라도 하다면 정신 바짝차리고 생의 치열한 전투에 참여해야 합니다. 잠은 나중에 실컷 자든지 하고 말입니다. 

장용 시인의 작품들은 시이기도 하고 잠언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오묘한 진리와 보람에 대해 다시 성찰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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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풍경 컬러링북 - 수채화로 그리는, 2024 한국어린이교육문화연구원 으뜸책 선정
이향우 지음 / 인문산책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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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로 떠나는 힐링여행/문양여행 시리즈를 꾸준히 저술하시고 애독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 오신 이향우 선생님의 새 책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그윽한 향취의 문화재가 아무리 주변에 가까이 있어도, 이를 정확히 감상하고 마음으로 오롯이 수용하거나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건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고, 고상하고, 품격 있는 대상을 자연스럽게 좋아하며, 그로부터 위안을 얻고 또 닮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궁궐은 옛 사람들이 지닌 최고의 미의식을 건축물 하나에 담고 빚은 유형물이며, 다만 우리들의 눈과 마음이 현대 대중 문화의 말초적 자극에만 길들여져 그 우수함을 제대로 못 알아볼 뿐입니다. 이향우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 그 깨끗한 구도로 찍힌 사진들과 일러스트를 따라가며 절로 안목이 트이는 듯하며, 세상 근심을 잊고 피안의 무릉에 혼자서 쉬는 듯 심신이 정화되는 느낌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번에는 컬러링북입니다. 저도 작년쯤부터 컬러링북 여러 권을 읽고 부족한 솜씨로나마 리뷰를 블로그에 올려 왔는데, 이향우 선생님께서 컬러링북을 내신 걸 보고 "아니?"하는 놀라움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전공이 원래 미술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 신간은 오히려 진즉에 나왔어야 했을 책인 셈입니다. 표지를 보면 어떤 귀여운 캐릭터가 팔레트를 왼손에 들고 열심히 붓질 중인데 아마 이향우 선생님 본인이 모델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7부 바지 아래 양말을 한껏 발목 높이 끌어올린 모습을 보면, 화가의 작업 하는 모범적인 자세가 원래는 이래야 하는가보다 싶습니다(선생님의 실제 모습에 가까울 성싶은 그림은 p5에 있습니다). 

여태 선생님의 책들을 읽어 온 독자들이라면 옛 궁궐에 대한 지식이 많이 (자연스럽게) 늘어 있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은 혹시 잊을 수 있는 이들을 위해 "궁궐 잡학 지식"을 정성스럽게 책 서두에 써 놓으셨습니다. 잡학이라기보다, 잘 익혀 두면 요긴히 쓸 수 있는 좋은 교양들이며 무엇보다 나 자신의 건강한 정신 소양을 위해 필요한 내용들입니다. 금천교, 석수, 단청 등 우리 눈에 익숙하면서도 막상 아는 바는 별로 없는, 전통 문화의 중요 요소들이며 예술 감상으로 깊이 진입할 수 있게 돕는 주요 단서들입니다. p9에는 전형적인 조선 왕비의 성장(盛裝)한 자태가 나오며 나라를 어머니처럼 돌보았던 중근세 중전의 역할이라는 게 마치 저자의 독자에 대한 살뜰한 배려와도 그 마음씀이 닮았겠습니다. 

p16에는 경복궁 집옥재(集玉齋)에 대한 밑그림이 나옵니다. 일반적인 컬러링에서처럼 완전한 백지에 선만 배치된 형식은 아니며, 배색은 옅게나마 이미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제 생각에는 (다소 번거롭더라도) 트레이싱지를 이 책 해당 페이지에다가 대어 한번 모사한 후, 도화지에 대어 윤곽을 다시 옮기고 나서 나만의 그림을 완성하는 식으로 진행해야 할 듯합니다(독자인 제 생각이며, 출판사나 저자의 방침은 다를 수 있습니다. p38에 책의 공식적인 활용 방법이 나옵니다). 어차피 과제가 수채화이기 때문에 책에다가 직접 그린다든가 하는 시도는 불가능합니다. 구태여 책에다 작업하려면 크레용 등의 대안을 써야겠으나 그러면 수채화의 맛이 잘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p28을 보면 경희궁 숭정문(崇政門)을 주제로 삼은 그림이 나옵니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역사적으로 정조 임금의 즉위식이 열리기도 했다네요. 명신 다산의 보필을 받으며 애민 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린 호학 군주의 자질과 마음가짐을 현대의 정치인들이 천만분의 일이라도 본받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p14에는 경복궁 자경전이 주제인데, 이 문양은 그나마 그 반듯반듯한 기하학적 형태를 일반 독자들이 따라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100년도 넘은 수령(樹齡)의 마로니에가 덕수궁 서문에 있는데 p32에 그 예쁜 자태가 그려져 있습니다. 모든 그림 과제에는 왼쪽 하단에 "색칠 포인트"가 명시되었고 선생님의 지시시항에 특히 유념하여 우리 독자들은 채색해야 하겠습니다. 오른쪽 페이지에, 이상적으로 완성된 그림이라면 어떤 모습일지 일종의 답안이 게시되었습니다. 

이향우 선생님의 정확하고도 담백하고, 청아한 느낌의 작품들이 p41 이하에 연속으로 나옵니다. 그림이란, 대상을 보고 예술가가 느끼고 해석한 바를 가장 개성적으로 표출하여 독자와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이 책 속의 고요하고 신성한 그림들을 보노라면 몸과 마음이 절로 궁궐을 산책이라도 하는, 아늑하고 평안한 느낌이 깃듭니다. 그냥 눈으로 보기보다, 도화지와 물감을 마련하여 나도 따라해 봐야 독서의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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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대화법 - 칭찬보다 더 효과적인 말투의 심리학
하야시 겐타로 지음, 민혜진 옮김 / 포텐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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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칭찬할 아무 근거도 없는데 무턱대고 칭찬만 할 수도 없는 일이며, 칭찬이 언제나 원래 의도대로 효과가 나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억지로 하기보다, 감정은 감정대로 아끼면서 관계의 효과는 그것대로 높이는 좋은 대화법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이 책에서 좋은 가르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65를 보면 참 뼈를 때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대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인드." 사람이 감정의 균형을 이루고 인성이 무난하며 딱히 상처 없이 잘 살아온 사람은 남과 대화할 때 기술 없이도 잘 풀어나갑니다. 이야말로 무기교의 기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상대방한테서도 좋은 점만 잡아내니 대화가 잘 풀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마음에 악함과 욕심, 성욕(본인의 외모가 늙고 추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닌 양 코미디같은 환각에 빠져 삽니다)만 가득한 인간은 입만 벌렸다 하면 거짓말입니다. 이런 사람한테도 가끔은 현타가 찾아오게 마련이니 장기간 침묵의 우울증에 접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현타가 잦아들면 또 익숙한 허풍과 과장, 망상의 폭발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생각 자기 하찮은 느낌 따위가 절대선이나 정의인 듯 확신을 가지며 다른 가능성을 상상도 못합니다. p72에서는 자기 생각이 절대로 옲다는 생각을 먼저 버리라는 저자의 충고가 나옵니다. 

제가 책들을 읽어 보면 여러 저자들이 그런 주장을 하던데 이 책 저자 하야시 겐타로 씨도 그런 말씀을 하네요. 내 눈에 보이는 게 사실 그대로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p105). 누가 제스처나 말투에 화난 기색이 보였다고 가정하죠. 나는 그 짧은 순간 그가 화났다고 바로 단정하고 나의 대응 방법을 고민합니다. 그런데 내가 인지한 건 그가 표정이 심각했다거나 말이 다소 빠르고 음색이 날카로워졌다는 것뿐이며 팩트는 이것뿐이지 나머지는 나의 해석입니다. 그럼 나의 반응, 대응도 달라지거나 제2의 안을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확실치도 않은 걸 쉽사리 단정짓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우리가 꼭 동의해야 하는 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나는 나대로 내 생각을 유지해야 내가 속한 조직과 공동체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나 말고 남의 생각, 의견이 뭔지는 일단 받아들여야 합니다(p137). 받아들인다는 게 내가 그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하라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이러이러하다는 게 당신의 견해이신 거죠?"라고, 그의 생각을 복창(책 표현 그대로입니다)하며 일단 왜곡없이 모양을 잡으라는 겁니다. 그래야만, 이 의견에 대해 설령 반대를 하더라도 제대로 된 반대, 비판이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그 의견이 기각되더라도 상대 입장에서 자기 말이 정확히 이해되면 일단 기분이 좋아집니다. 반대로, "어, 들어줄 듯하더니 결국 비판하네?" 이런 식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미성숙한 사람은 사실 뭘 해줘도 답이 없습니다. 

냉장고 화법(p156)이란 게 있습니다. 책 설명을 그대로 제가 옮겨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동의할 술 없는 제안을 받았다 해도 "좋은데요? 지금 당장 쓸 수는 없어도 꼭 기억하고 있을게요."라고 하는 말투입니다. 이게 냉장고에 넣어 두는 방법인데, 아마 좀 예외적인 경우에 이렇게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저기, 아직도 그 방법 유효합니까?" 참, 보기만 해도 예의가 바르다, 이렇게만 소통이 이뤄지고 다들 예의를 지킨다면 세상에 무슨 말썽이 날 일이 없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렇게 예의를 지켜 줘도 무슨 약점이나 잡은 듯 더 폭주하고 날로 먹으려 드는 한심한 인간도 있습니다. 예의를 지킬 필요가 전혀 없는 인간 이하의 유형도 있는 법입니다. 

앞에서도 나온, 메타인지 기법(p202)이라는 건 첫째 나를 객관화하여 나를 더 사회성 높은 사람으로 만듭니다. 또 타인과의 관계를 더 원만하게도 만들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반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루는 최악 최하의 유형은, 강자에게 비굴하고 꼭 그럴 필요가 없겠다 싶은 이들에게는 깐죽거리거나 아예 갑질을 하려 드는 행태입니다. 길에서 운전할 때도 공연히 난폭하게 차를 몰거나 욕설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딱 회사에서 저렇게 처신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p228 이하에는 열린 질문, 닫힌 질문의 예가 나오는데 우리가 실전에서 꼭 명심해야 할 좋은 가르침들이 많아서 유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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