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쇼크 - 위대한 석학 25인이 말하는 사회, 예술, 권력, 테크놀로지의 현재와 미래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2
존 브록만 엮음, 강주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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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신 분들은 다 아실 만합니다. 그렇죠. 이 책은 '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밈'이란 개념의 창안, 혹은 발견이 누구의 공인지는 다소 모호한 점이 있긴 합니다. 물론 대체로 리처드 도킨스 옹을 떠올리기는 하고, 실제로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장엄하고도 친절한 밀도와 어조와 유감 없이 그 해제가 드러나 있기도 하죠. 그러나 다시 한 번 이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혹은 저자 집단)이 누구인지 살펴 봅시다. '엣지파운데이션'입니다(재레드 다이아몬드는 한 편 에세이의 집필자일 뿐이고, 나머지 눈부신 다른 필진은 모두 재레드 다이아몬드,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요-, 또 이 책에는 편자로 제시되어 있는 존 브록만 같은 재사, 현자, 예언자[?]들이 모두 소속되어 있는 그 집단입니다).


대 체로 말하자면, '밈'의 창안에 있어 그 공은 도킨스 옹에게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박력은 넘치지만 과학적으로 반드시 명쾌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던 그 개념이, 현재 여기까지만큼이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게 된 것은, 도킨스 한 분의 업적만은 아닌, 그와 공감하고 또 인적으로 교류까지 했던 복수의 두뇌들이 모두 기억되어야 할 복합적인 공로였다고나 하겠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근거가 뭐냐고요?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을 보세요. 읽으신 분들은 알겠지만, 거의 사십 년 전 지적인 충격(!)을 엄청난 파장으로 몰고 왔으나 동시에 논란도 많이 야기했던 그 개념이, 오늘날 이만큼이나 안정적이고 평온한 외연, 내포를 갖게 될 것이라고 과연 당시의 독자들이 예견할 수 있었겠냐는 거죠. 그것만으로도 어찌 보면, 한 개념 역시 다양한 변인과 환경적 영향을 거치면서, 나름의 진화, 혹은 '공진화'를 겪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이 멋진 책에 도킨스 옹- 그룹의 중요, 핵심 멤버이기도 한-의 글이 없는 것은 유감입니다. 심지어는, 언급이나 인용도 자주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 세 번을 읽었는데, 만난 기억이 없습니다^^).

표지 예쁩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ㅎㅎ

책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솔직히 말하면, 전 아직도 왜 이 책 이름이 '컬쳐 쇼크'라고 붙었는지 이해를 잘 못하겠습니다. ㅎㅎ 물론, 이 책은 '문화'이야기가 주 테마이고, 도킨스의 그 혁신적인 아이디어 '밈'을 보다 '문화' 쪽에 초점을 맞추어 화려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장쾌하면서도 낙관적인 비전을 곁들여 풀어 놓은 책이기는 합니다. ㅋ 그리고, 그 내용의 선진성? 혹은 파격성? 나아가 종래의 안이한 관념 구조를 뒤흔드는 듯한 파장과 깨우침에 충격을 받은 점 역시 매우매우 큽니다(제가 이 책을 1회독한 건 벌써 이 달 초의 일인데, 이제서야 리뷰를 쓰는 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였습니다). 그러니, 저자(집단)이 자연과학의 논리를 빌어(사실 통섭의 입장에서는 이런 구분 짓기 자체가 무의미하겠죠?)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고, 어리석은 저 같은 독자는 '쇼크'를 받으니, 제목은 아주 적절하다고도 볼 수 있겠어요.^^ 그러나 이건 물론 농담이고, 영어 원서(이 한국어 번역본이 대단히 좋아서, 일부러 원서까지 주문해서 읽어 보았습니다)의 제목은 그저 '컬처'입니다. 아마 '쇼크'는 번역하신 분, 혹은 출판사의 고려가 개입된 산물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알 수는 없죠. 그러나 저 영어 원서 제목도 다소 당혹스럽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대체 어떤 책 이름이 아무 수식어도 없이 그저 '컬처'로만 붙을 수 있을까요? 책 내용이야 물론, 엄청난 생각거리와 각성의 계기, 유인을 젯공하고 있습니다만, '책 제목' 자체에 대해 이런 (어찌 보면 공연할)고민을 해 보는 건 또 드문 체험입니다. 이 점은 나중에 생각이 정리되면 제 블로그에 다른 포스트를 통해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첫 장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짧은 에세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분이야 <총 균 쇠>로 워낙 세계적 히트를 치신 분이고, 국내에서도 모 대학도서관에서 대출 1위를 기록한 명저자이니 소개가 불필요하겠지만요, 이 책에서의 아티클을 읽고 느낀 점이란, 역시 못말리는 조심쟁이, 사고와 논리의 완벽, 정연함의 추구에서 언제나 소홀함이 없는 단정한 천생 학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책의 전체계와는 다소 안 어울리는 주제입니다(원서를 보니 번역서의 세 번째 아티클인 대니얼 데닛의 글이 맨 처음으로 등재되었고, 다이아몬드의 글은 두번째로 실려 있더라구요). 그래서, 물론 존 브록만의 확실한 인트로가 있기는 하지만 서브-인트로의 구실을 다시 해 줬으면 하는 의미에서는 좀 부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고갱이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도킨스의 혁신적인 개념 창안 이래, 아직은 그저 약하기만 했던 미숙한 아이가 이만큼이나 잘 성장했나, 아니, 이 정도면 성장이 아니라 '진화'라고나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놀라움이 절로 일 만큼, 대단한 담론의 연속이 오페라처럼, 혹은 거대한 오마쥬처럼(KBS 불후의 명곡 같은 컨셉을 떠올리시면 되겠네요) 펼쳐집니다. 두 번째 아티클에서 데니스 더턴(국내에 그리 자주 소개되는 저자가 아니라서, 이런 합동 저작의 한 일원으로나 만나 보는 게 참 반갑네요)은, 인간의 본질적 특징을 '자발성, 보편성, 그리고 즐거움'을 찾는 것에서 논의를 시작합니다. 침팬지의 동작은 그저 기계적인 반사 작용의 일환일 뿐, 그게 인간만의 고유한 어떤 창조나 작업의 과정과는 다르다는 걸 명쾌히 지적합니다. 더턴은 다만, 쇤베르크의 도테카포니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고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저도 솔직히 공감하기 힘들어하는데, 이런 대학자이자 천재가 같은 느낌이라니 안심이 되어서요.


그 다음 글이 대니얼 대닛의 논설, 혹은 에세이입니다(앞서 말했지만 원서에서는 이 글이 맨 앞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내러티브와 과학적 구조를 준별하여, 문화란 기본적으로 내러티브의 속성이지 어떤 완결적 체계나 구조가 아니므로, 진화론의 토픽이 되기 부적합하다는 반대편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편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일일이 논파하는데 중점을 두기보다, 그는 자신-그리고 동료 집단-의 관점이 고유하게 갖는 장점에 대해 더 주의해서 포커스를 둡니다. 예컨대, 밈은 마치 개미에 감염하는 기생충처럼 숙주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파고들어, 숙주의 이익과 의사와는 무관하게 어떤 동작이나 결과를 낳기 위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이제 서양 철학과 종교의 오랜 주제인 '자유 의지' 이슈가 빠질 수 없죠. 그런데 대닛은, 비록 정면으로 자유의지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는 않아도, 설사 기생충,... 아니 진정한 주인인 밈이 시키는 대로의 수의(불수의?) 활동을 펼친다 해도, 그것이 딱히 우리의 존엄을 침해하는 결과가 되지는 않음을 유쾌히 받아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문화는 그럼 의도적인 계획의 소산인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의 산물인가. 사실 대닛의 논지대로라면 이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진실은 그 중간지대에 있을 테니까요. 이런 걸 요즘 유행어로 '골디락스'라고 불러 주면 되겠죠?


저는 바로 다음에 나오는 브라이언 이노의 글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이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사상가나 학자가 아닌 뮤지션입니다. 그런데 그의 장모 조앤 하비라는 분(누군지는 물론 모릅니다)이 지적했듯, "그런 일을 하기엔 머리가 너무 좋은 거 아님?' 같은 청천벽력 같은(?) 지적을 받고 다양한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진정한 통섭은 바로 이런 성격의 인재로부터 빚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그야말로 전혀 종래의 구조에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참신하고 논리적인 지적 기여를 해 낼 수 있는 이점이 있을 테니까요. 문화체험은 본질적으로 감상자의 참여를 통해 그 진정한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고, 뒤샹의 작품들은 모두 이런 관점에서라야 제대로 해석될 수 있으며, 모든 문화체험은 따라서 일종의 롤플레잉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은 참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은 17편의 에세이, 그리고 대담 녹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의 결론적 요약을 크리스태키스의 짧으나 힘있는 단 한 마디에서 찾고 싶습니다. 인간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일원이자 구성 요소입니다. 네트워크는 그저 부분의 합이라기보다, 그 자체가 독자 의미를 지니는 유기체, 곧 슈퍼올가니즘으로 보아야 하며, 인간의 소통 방식이란 개별 행동의 확산을 넘어 규범의 확산에 가깝고, 행복이 네트워크를 타고(참 표현이 멋지죠?)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전파되는 건 이런 이치에서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올가니즘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지난 세기의 그 음습한 전체주의를 떠올리기가 십상이겠지만, 크리스태키스는 이처럼 우리에게 그 익숙한 개념으로 즐거운 공명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고립된 섬이 아닌, 원자화의 단계에서 즐거운 탈피를 맛보아야 할 우리 현대인의 미션입니다. 개별 의식의 중요함보다, 전체 네트워크의 조화로운 합창에 공감, 참여할 때 자아는 더 큰 차원에서 완성된다! 바로 이것이 제목에 붙은 '쇼크. 각성, 갈바나이징'의 진정한 의도 아닐까요? 인간은 연대를 통해 어쩌면 신으로 거듭날 지도 모른다는 유쾌한 상상@!(헉 그렇게 깊은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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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인가, 세상인가 - 미처 몰랐던 내 안의 우상 버리기
피트 윌슨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드폰테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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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윌슨 목사의 담담하면서도 열정적인 목소리가 잘 담긴 책입니다. 기독교인의 영원한 고민거리는, 좋아하는 가치 중 서로 모순되는 둘을 동시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기독교 서적 중 하나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 는 찰스 셀던의 소설입니다. 좋은 기독교 서적, 혹은 신앙 서적의 조건이란, 원초적인 물음과 요구에 대해, 돌아가지 않고 정면으로 찛러 주는 대답을, 나 대신, 혹은 멀리 계신 신 대신에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그 셀던의 소설을 보면, 얼마나 명쾌한 질문을 던지고, 또 대답하고 있습니까? 신앙과 세상적 삶의 충돌 문제는 관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전쟁과 같은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막연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둘러치기 해답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신 앙인은 사실 세상의 욕구와 룰에 맞춰 거침 없이 살기가 힘듭니다. 자신의 욕구인지 세상의 유혹인지 모를 어떤 일을 하고 나면, 그건 꼭 신의 명령에 거역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기가 쉽죠. 나를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보호막이지만, 동시에 그걸 해야 세상 살기가 편한 여러 가지 일들을 못하게, 혹은 삼가게 만드는 장벽이기도 합니다. 신앙과 세상의 요구는 서로 양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윌슨의 견해와 입장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그는 파워트위터리안이기도 하죠). 그 러나 최소한 이 책에서, 그는 여러 골치 아픈, 혹은 마음이 아플 수 있는 문제와 질문에 대해, 절대 돌아가거나 회피하는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요구를 배신하는 답도 아니면서, 일상의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해 시원하게 찔러 주는 대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191쪽을 보면, 현대판 우상에 대해 윌슨은 멋진 논증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순금으로 된 케이트 모스(슈퍼모델)의 모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금 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어리석은 민중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묘사한 대목을 읽으며 혀를 차지만, 정작 부질없는 육체를 숭배하고 감탄하며 음욕을 품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현대의 금송아지가 바로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우리 시대의 상업주의와 퇴폐 문화임을 그는 시원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외모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우리들의 괜한 상심을 그는 효과적으로 힐링하고 있습니다.


제 가 감탄하는 점은 바로 여깁니다. 신앙은 사실 일상의 삶에 많은 제약을 가합니다. 그런데, 윌슨의 논변은 분명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족쇄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시원하게 파쇄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외모라는 터무니없는 우상을 숭배하느라 신과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배반하며, 정작 중요한 영적 의무를 소홀히합니다. 우리는 남에게서 받는 <인정(認定)>의 달콤함에 구속되어, 우리 자신을 진정한 자아와 신으로부터 소외시킵니다. 이와 관련, 윌슨이 다른 분의 말씀을 재인용하여 우리에게 설파하는 가르침은 참으로 탁월합니다. "7년 동안 라헬을 얻으려는 일념으로 쉼 없이 일했는데, 하룻밤을 같이 지낸 후 깨어 보니 레아였다." 세속적 가치만 추구하다 결국 허망하게 끝나고 마는 삶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우치는 구절이라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읽고 나서 과연 그렇다며 고개를 끄적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자 신이 속한 입장과 관계 없이, 신앙을 깊이 있게 고민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읽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는 심지어 불교의 가르침도 부분적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유의 폭이 넓고, 열린 마인드를 가진 분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읽고 나서 많은 팩터들에 대한 생각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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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가드너 수학자의 노트 - 수리 논술, 대수·조합·논리·기하
마틴 가드너 지음, 아이작 아시모프 서문, 윤금현 옮김 / 보누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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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니고 다른 책에서 읽은 말이지만, 우주의 생성과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수학을 알아야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마틴 가드너의 책에는 그 소갯말로 이런 멋진 표현이 있더라구요.

"마틴 가드너의 책은 수많은 천진한 어린이들을 수학의 세계로 이끌었고, 수많은 수학 교수들을 천진난만한 어린이로 만들었다."


큰 관점에서 보면, 수학 역시 거대한 놀이임에 틀림 없는 것 같습니다. 레고도, 지능이 뛰어난 아기가 아무래도 활용도를 높여서 잘 가지고 놀듯, 수학 역시 그걸 갖고 노는 사람의 지적 수준에 따라 편차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실용의 영역과는 관계 없는 차원에서 효용을 발휘하기 시작한 거니까요. 물론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아르키메데스 같은 이는 볼록 거울을 이용해서 적인 로마군을 퇴치하는 전쟁의 기술로 수학을 응용하기도 했습니다만, 그거야 천재의 아주 예외적인 경우겠죠.


이 책에 보면, 고서점에서 옛 잡지(<어메이징 스토리>라는 제호인데, 물론 가상의 잡지일 것입니다)를 사려는 어느 신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16장, pp199-122). 서점 주인의 흥정은 이랬다고 합니다. "가장 최신호는 1달러, 그 다음으로 최근 것은 3달러, 이런 식으로 2달러씩 늘려 가면...."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은, 이 장에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문제를 푸는 결정적 힌트는, "한 책에만 당신(와이프) 나이의 5배를 지불했어."라는 주인공의 대사입니다. 얼핏 들어 별 말이 아닌 것 같지만, 대단한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그 말은, 두 그룹으로 나뉜 책들 중에, 그 가격에 해당하는 책은 어느 한 그룹에만 들어 있다는 뜻이잖아요? 각 그룹은 최대한 같은 권수를 가져야 하므로, 만약 총 구입 권수가 짝수라면, 이 가격은 이 그룹이나 저 그룹 모두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단 한 권'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총 구입 권수는 홀수라는 말이죠. 이를 결정적 힌트로 해서 이 퍼즐은 풀려 나가게 됩니다. 또, 서점 주인 노인은 왜 두번째 제안을 하면서 그리 큰 인심이나 쓰는 투로 말을 했을까요? 만약 첫번째 제안대로라면, 등차수열의 합은 책이 n권일 경우, n의 제곱이 됩니다(이 책 p122 위에서 셋째 줄). 그러나 두번째 제안대로라면(책에는 좀 시원한 설명이 안 나와 있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일반식이 나옵니다.

그래서, 첫째 제안보다 절반으로 가격이 내려가는 결과입니다. 이 정도면 매도자가 스스로 가격을 반으로 후려 치는 거니 인심을 쓰는 척도 할 만하죠. 다만 마지막에 단서로 단, "100의 배수는 되어야 해." 가 함정이지만요.


그런데, 과연 이런 시시한 문제를,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이미 편입된 어른이 어디 가서 진지한 화제로 내세울 수 있을까요? 말 한 번 잘못 꺼냈다간, 영 모자란 사람 취급 당하기나 쉽습니다.


제가 앞에서 인용한 소갯말의 그 표현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함의를 지닙니다. "수학은 원칙적으로 어린이의 천진한 마음으로라야 그 진정한 접근이 가능한 놀이이다."


다 시 토픽으로 돌아가서요, 이 16장에서 다루는 문제라면 우리 한국에서는, 보통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배우는 등차수열과 같습니다. 가상의 주인공은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라고 하지만, 사실 등차수열의 합은 그렇게 감당 못할 정도로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무서운 건 등비수열이죠. 이 책 21장(p153)이 다루는 토픽이 바로 그 등비수열입니다.


21장의 화제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다 알겠지만, 바이러스라는 게 알고 보면 정보의 배열에 불과하다 일본 과학자들의 가설을 퍼즐화하여 소개하고 있네요. 그 가설은 별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났지만, 중요한 사실을 놓치면 안 되겠죠. 왜 외계인들이, 번거롭게도 (우리 지구인이 하는 방식처럼) 전산 부호의 전송이 아닌, 바이러스의 형태로 정보의 매개체를 삼았을까요? 그 이유는 생명체(바이러스를 생명으로 본다면)의 무서운 증식 속도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단계에서 아무리 적은 레벨에 머무르는 숫자라도, 매 단계를 거칠 때마다 일정 배수가 곱해짐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그 수는 어느 순간에는 감당 못 할 만큼 거대한 수치가 된다는 건 고등학교 수준의 등비수열 원리만 배워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장은 이 당연한 사실을 잘 응용해서, 흥미로운 문제로 가공하고 있습니다.

마틴 가드너의 이름에 확 끌려서 이 책의 구입을 고민하는 분이라면, 아마 그 생각이 들 겁니다. "과거에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지금도 시중에서 팔고 있습니다) 그 두 권과 혹시 내용이 겹치는 건 아닌가?" 조금 실망스러운 건, 그런 부분이 꽤 있다는 거고, 그것도 책의 첫 장 첫 토픽이 바로 예전 그 책들에서 본 문제라는 거죠. 그런데, 총 33개 장 중 그 두 권의 내용과 겹치는 건 11개 정도고, 그 내용도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그 책들은 일반 원리의 설명이 많았다면(그리고 매혹적인 일러스트가 있었죠), 이 책은 보다 문제 위주로 편집되어 있습니다. 그 책들의 분위기가 좀 더 유럽적이었다면, 이 책은 유머 코드까지 포함해서 다분히 미국적입니다. 무엇보다, 비교적 최근의 성과를 반영한 원리와 주제가 많이 반영되어,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 책들>의 속편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몇 군데 깔끔하지 못한 번역이 흠이지만, 옛 추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은 어른들에게 아주 제격이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같이 한번 <레고>를 갖고 놀아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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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프랑스 공동 역사교과서- 1945년 이후 유럽과 세계
페터 가이스 외 지음, 김승렬 외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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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역사- 개정판
다니엘 리비에르 지음, 최갑수 옮김 / 까치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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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 천안함 특종 기자의 3년에 걸친 추적 다큐
김문경 지음 / 올(사피엔스21)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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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요즘 차를 몰고 거리를 다니다 보면, "천안함 용사들,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같은 문구가 아로새겨진 현수막을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오 늘의 한국은 모든 문제와 이슈가 정치적 스탠스에 따라 파당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이다. 이른바 '진영논리'라고 하는 건데, 개별 이슈의 독립성과 특수성에 상관없이, 자신이 소속되거나 지지하는 정파의 주견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정해 버리고, 반대편의 논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다. 거기까지는 또 그러려니 하겠는데, 남의 불륜은 그저 불륜이요 제가 하는 일은 로맨스라는 식으로, 자신의 '꽉 막힘'은 이념적 일관성과 지조로 강변하고, 남의 논리는 그저 '말이 안 통함'으로 매도하는 경향이다. 이런 사회라면 그 존립의 기반이 붕괴하는 걸 피할 도리가 없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소속한 거대 집단 혹은 진영의 기계적 논지에 무조건 세뇌될 것이 아니라, 개별 사안에 대해 무엇이 진실인지, 혹은 진실에 가장 접근하는지 구체적인 인지와 포섭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제의 중요성을 가장 절실히 느끼는 직종은 어느 누구보다도 언론분야, 즉 기자들의 직업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말미에도 나오지만, 제아무리 전문성과 직업적 특수 지식으로 무장했다 한들, 특정 정치 세력과 가까워진다는 그 한 가지 평판만으로, 전체의 신뢰성을 송두리째 상실하고 마는 게 현실이다. 기자들은 다양한 현장을 취재하며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정치적 중립성과 '오로지 사건의 진실'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이 두 가지 중 하나의 축만 무너져도, 기자라는 직업인로서 디딜 발판이 사라지고 만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김문경 씨는 YTN 기자다. 기자라는 직업은, 과장 하나도 보태지 않고 "특종에 살고 특종에 죽는' 직종이다. 기자 생활 전 커리어를 통해 특종 하나를 건지는 것은, 단순화하자면 심마니가 '심봤다'를 외치는 바로 그 운명의 순간에나 비길 만큼 절박한 과제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 김문경은, 자신을 캐릭터화한 '오기자'를 통해(나는 처음에, 저자 김기자와 친한, 직장의 다른 동료가 따로 있어 그를 지칭하는 줄 알았다. 실제로 내 지인 중 하나가 YTN에 근무하는, 오씨 성을 가진 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는 이 저자분에 비해 연하지만), 특종의 발견이 기자로서 얼마나 절박하면서도 말단의 신경까지 흥분하게 하는 일인지 실감나게 적고 있다. 이 책의 내용과 직접 상관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이 본문 중에 여러 차례 언급되는 '옷 로비 사건'의 경우도 역시 기자가 터뜨려 장장 일년 동안 전국을 달구게 한 대특종이었는데, 파장과 범위를 생각할 때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이 천안함 특종을 터뜨린 기자라면 그 성취감이 처음에 어느 정도였겠는가. 그럼에도 불구, 사안이 워낙 중대하다 보니 기쁨은 간 데 없고, 처음 세상에 대사건을 알린 책임감이 그 희열을 대체하다가, 나중에는 회한과 부담만이 커리어를 압도하는 느낌까지 털어놓고 있다.

이 책은 실명 노출, 전형적 르포 형식으로 서술해 나갔어도 충분한 소재를 다루고 있으며, 저자는 바로 특종을 터뜨린 그 수훈자이기에 그런 정면 돌파식 진술 양식을 택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김문경 기자 본인이 아니라면, 이전 혹은 이후 누가 그런 작업을 감행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다분히 겸손하게도(?), 이런 소설체의 형식을 빌어 픽션처럼 그 중차대했던,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 전역을 정치 이상의 무게로 짓누르는 그 사건을 묘파하고 있다. 이는 일단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논쟁의 중심에 섣부른 자극을 주어, 비생산적인 대립으로 분위기가 악화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든가, 정치적 중립성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은 기자로서의 소명 의식이 다분히 작용했을 줄 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도대체 이 작은 땅덩어리(정확하게는 발생 장소야 바다 속이었지만)에서, 뭐가 이리도 복잡한 진상을 지닌 미스테리적 사건이 이처럼이나 미묘한 시기에 터질 수 있는지, 특종을 한 기자 자신도 대담한 접근이 꺼려질 만큼, 그 실상의 인식이 부담스럽게 다가온 이유도 있을 것이다.

부대끼며 사는 동시대인들의 사연과 갈등이 너무도 꼬이고 꼬여, 사고가 터져도 대체 그 발생 주체, 책임 소재가 누구인지도 모를 만한 사고만 터지는 것일까? 대참사의 원인을 구명하기에 앞서, 먼저 비틀리고 왜곡된 시선과 마음으로 세상을 오염시켜 온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하늘의 경고이기라도 한 것일까? 섬뜩한 진실보다 더 두려운 것은 추악한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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