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자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6
클레르 갈루아 지음, 오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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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신 클레르 갈루아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1989년에 프랑스어로 처음 출간되었으며 한국에도 열림원에서 1999년에 번역되었었습니다. 생전에 저희 모친도 꽤 좋아하셨던 작가라서 이렇게 리커버판으로 보니 마음이 새롭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넌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로 위장한 범죄자야." 빅토르가 크리스틴에게 하는 말(p74)입니다. 크리스틴이 관리하는 어장(ㅋ) 속의 물고기 중 하나가 아쉴인데 빅토르는 아쉴이 크리스탄이 펴 놓은 사랑, 아주 이기적이고 파괴적이며 침투적인 사랑의 덫에 걸려들어 죽기 직전이라며, 비올라 다 감바의 현이 아쉴의 목을 조르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목에 줄이 걸려 이제 매듭만 당기면 사람 목숨이 끝날 판인데도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걸 모릅니다. 중세에는 지금처럼 팔에 받혀 놓고 연주하는 비올라는 다 브라치오, 다리로 받치는 건 다 감바라고 해서 구별했는데, 다 감바 연주를 보면 마치 뒤에서 악기(여자)를 끌어안는 듯한 자세라서 저런 비유가 나온 듯합니다.

p109를 보면 목줄을 한 개를 끌고 다니는 노인 이야가가 나옵니다. "지팡이를 들었으니, 모든 계산은 끝났다!" 호탕한 선언입니다. 우리는 물건의 거래나 사람 사이의 소통에 있어서 뭔가 내가 손해를 본 듯한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기보다,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따져 보면 상대에게도 일정 배려를 해야 하기에 그 선에서 물러나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이런 이치가 전혀 통하지를 않고 빽빽 소리만 질러대는 미성숙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있어서 거의 공포감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빅토르는 원래도 그런 타입이었는지 아니면 몸이 아프고부터 어떤 특별한 통찰이 생겼는지, 냉소적이면서도 상대방의 폐부를 찌르는 말을 곧잘 내뱉곤 합니다. 아직도 아첨꾼, 사면발니, 위선자와 동침하고 있냐는 질문, 크리스틴을 비롯해서 저 비방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지는 아무도 못하나 봅니다. 이 질문이 가능한 건 빅토르의 성적 성향이 헤테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한데, "상대방의 반목을 조장하는 건 모욕과 혜택"이라는 크리스틴의 상황 요약도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한평생을 속고만 살아온 여자(p143). 세상이라는 게 원래 남자한테만 유리하게 판이 짜인 곳이라서 이 할머니뿐 아니라 누구라도 저런 규정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크리스틴은 저 사람한테서 패배주의나 비굴함이 아니라 일종의 오만함을 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세상에 사기 친 게 없기 때문에, 누굴 향해서도 눈 똑바로 쳐들고 나 이런 사람이었다고 일갈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할머니가 바라보는 빅토르는 품행방정(p167)의 대명사이지만 과연 그럴지. 빅토르의 본업은 문학 평론인데 할머니는 그에게 호된 평이 나온 신간은 특히 구입하지 않습니다. 평을 곧이곧대로 믿어서가 아니라(그럴 지적 능력이 없습니다), 빅토르에게 당한(?) 책들과 저자한테 미안해서입니다.

빅토르는 현재 병 때문에 물리적으로도 몸이 아프고, 세상과 화해를 못하는 사람이라서 정신적으로도 피곤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그게 숙명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겠는데, 저는 이 책의 원제 L'homme de peine가 바로 빅토르의 그런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크리스틴은 장례차 운전수(p199)가 그럴싸하게 생겼다고 여겼는지(본래 남자를 좀 많이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구태여 말을 건네고 이 과정에서 빅토르를 소재로 삼습니다. 난감한 게, 막상 얘기를 하려고 보니 빅토르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살을 붙이고 붙여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이게 소설가의 숙명입니다. 언젠가 그녀가 되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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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암실 ANGST
박민정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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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라는 것도 누구한테 배워야 하는가. 대체로 우리는 나면서부터 많은 감정을 갖고 자연스럽게 그것을 표촐합니다. 지나치게 내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면 주위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하는데, 그런 제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런 행동이 윤리적이지 못하고 미성숙하며 남한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나이를 먹고서도 매번 공공장소에서조차 큰 소리를 지르고 이렇게 해야만 본인이 무대 위 주인공이 되는 양 행복해지는 인생이라면 정말 불쌍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로사는 주인공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기층민중이라든가 편모슬하라든가... 저는 기층민중이라는 단어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물론 이 개념이 동반 환기하는 그 이론체계가 설파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아무 관계 없는 소설이므로 오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아무리 어려서부터 되바라졌다 해도 아직 앤데 기층민중이 뭔지 얘가 알아봐야 뭘 얼마나 알겠으며, 읽어 보니 쥐뿔도 모르는 게 역시 맞더군요(ㅋㅋ). 그런데 얘, 즉 로사가 하려는 말 중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습니다. "아저씨들 생각보다 별거아냐."

보통의 남자애들은 원래 아주 어렸을때부터 아저씨들이 찌질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모르는 멍청이들도 물론 많죠). 진짜 무서운 건 돈이고 권력이며 이걸 가진 아저씨는 별로 많지도 않으며, 혹 아저씨 아니라 아줌마라도 이걸 가진 자가 무섭다는 걸 알죠. 나아가 돈이라는 게 원래 있다가도 없어진다는 사실까지 알면 세상에 그리 무서워할 건 많지 않다는 인식에도 도달합니다(조심은 해야 합니다). 그런데 로사는 제법 세상 물정에 밝은 것처럼 말은 해도, 출발점이 저렇게 아저씨들에 대한 공포였으니 설령 그후에 인식이 발전했다 해도 고작 이 정도인 것입니다. 아마 어른이 되어도 멀리 가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로사는 무서운 어떤 진실을 날카롭게 캐치합니다. 한때 사장님, 대표님이었던 아저씨들이 외환위기 후에 저렇게 거지가 되어 서울역 앞에 주저앉았다는 게 중요하다고 짚은 것입니다. 뭐 이 역시, 아저씨들한테 막연한 공포감을 갖다가 제딴에는 장족의 발전, 각성을 이룬 것이지만 말입니다. 이것도 뭐 특별한 깨달음은 아니고, 아 저렇게 거지가 되었으니 별거 아니지 않느냐 이 정도죠. 진짜 똑똑한 애라면 애초에 길바닥에 나자빠지기 전부터 별게 아니라는 걸 알아봤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작고 떼를 지어다니는 스캐빈저가 평소에는 무서울 게 없어도, 일단 상대가 무력화되었다는 점만 눈치채면 무섭게 달려드는 것처럼, 거지가 된 대표님들은 이제 이런 불량청소년을 정말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ㅋㅋ

영화 <브레이브하트>를 보면 로버트 더 브루스가 자신의 부친에게 배신당하고 격노하면서 대체 왜 윌리엄 월러스를 적 진영인 잉글랜드에게 팔아넘겼냐고 항의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부친은 "니가 이제서야 분노할 줄을 아는구나."라며 대견하다는 듯 아들을 바라봅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귀하게 자란 인생은 아마 특정 감정이 미발달하기도 하나 봅니다. 농담이고, 어떤 격렬한 원한 같은 게 있어야 마오쩌둥처럼 위기에서 근성으로 밀어붙일 줄도 안다는 소리죠. 제가 좀 특이하게 본 게, 이미 주인공은 결손가정 비슷한 환경에서 고생깨나 했는데도(물론 애를 연예인으로 키우기 위한 엄마의 일차 보호막이 있긴 했지만), 로사한테서 처음으로 특정 감정을 배워가는 대목이었습니다. 로사한테 그 감정은 매우 그 깊이가 깊은 것인데, 환경의 영향보다는 타고난 어떤 게 더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이제 나이 사십을 바라다보는 주인공은 물론 그 모친로부터, 너무나도 출제지향적이고 물질을 밝혔던 그분으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겠지만, 또 그 모친이 너무나갔던 부분이 굉장히 크긴 했습니다만, 나이가 들어서까지 재이한테 저렇게나 감정을 이입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재이가 미처 모르는 그 자신의 일부까지 주인공은 샅샅이 스캔하면서 인생의 등불로 삼습니다.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요? 아빠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없었고, 엄마도 자신을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아 큰 배신감을 새삼 느꼈던 주인공의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거기까지 가 보지도 않았으면서 뭘 안다고!"(p158)는 좀 그렇죠.

격렬한 증오의 대상이지만 자신에게 너무도 많은 걸 가르쳐 준 로사한테 주인공은 많은 것을 부러워합니다. 말이 술술 나오는 전달력도 그 중 하나인데, 교수 임용을 앞두고 주인공이 어려움을 겪는 대목도 여기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깊은 상처는 단순 정보 전달 이슈에서도 당사자의 발목을 잡는 것인지. 로사가 특유의 그 유창한 달변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주인공은 고전< 서스페리아>의 몇 장면과 현실을 혼동합니다. 어디까지가 가상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인지 모를 만큼 우리는 타인들과 지나치게 밀접하게 엮이며 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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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살아 내는 게 엉망이어도 괜찮아 - 다시금 행복을 애쓰고 있는 당신에게
윤글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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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글 작가님이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잔잔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짤막짤막한 단편글로 이뤄져 있어서, 내가 어떤 문제에 빠졌다 싶을 때, 작가님이 내려주는 처방을 그때그때 찾아보고 내게 맞는 힐링을 얻어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두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되었는데 챕터마다 많은 제안을 담은 글들이 딸려옵니다. 맨 앞에 목차가 나오므로, 목차를 쑥 훑고 나한테 맞겠다 싶은 글 꼭지를 골라 읽어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아침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자는 일단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억지로 self-denial을 하며 나의 감정을 억눌러 봐야 바로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들고 결국 내 계획만 엉망이 됩니다. 내 감정이 이렇다는 걸 현실로 인정하고 녀석을 잘 달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신체 활동을 해 내며 묵은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것(p48)도 유익하다고 합니다. 아무튼 마음은 달래줘야 할 녀석이지, 억누르고 윽박지를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상대방이 싫다고 하는 걸 뿌득뿌득 강행하지 않는 것(p70)입니다. 상대가 극혐하는 걸 구태여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본은 먹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멋대로 판단해서 상대가 이건 익스큐즈하겠지라며 내 멋대로 판단하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일 뿐, 상대는 가치판단이나 취향 면에서, 미래 전략 면에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중인데 내가 오판한다면 그 사람과 오래 동행할 수 없습니다. 내 이해관계를 떠나서, 상대방의 인격을 정면으로 깎아내리는 짓입니다. 멍청한 사람은, 막해도 되는 사람, 내가 눈치를 보고 슬슬 기어야 하는 사람의 분류를 제멋대로 정합니다. 그 대가는 본인이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정성을 쏟아부었다 해도 이 정도에서 성과가 더 안난다 싶으면 그쯤에서 멈추는 것(p107)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환경이 더 받쳐주지 않으면 내가 애쓴다고 무슨 성과가 나질 않습니다. 이때 저자가 해 주는 말이, 혹 기대에 결과가 미치지 못하더라도, 내가 일을 여기까지 밀어붙이면서 배운 것도 있지 않냐고 나를 토닥여주는 것입니다. 세상 일이 모두 내 뜻 같으면 뭐 누구라도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가 되었겠는데, 잡스도 결국 자신이 전에 겪은 실패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온전히 극복 못해서 일찍 죽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모범생으로 사는 것도 곤란합니다. 사람의 본성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를 않죠. 애초에 말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지나치지 않은 범위 안에서 일탈(p108)이 필요하다고 독자에게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 일탈이라는 게 남을 해치거나, 나의 윤리적 기준을 타락시키고 더럽히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탈이라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원 궤도로의 복귀가 곤란할 정도가 되면 큰일이죠. 다만 저자는 여기서 말하는 일탈이라는 걸 번아웃으로부터의 회복 쯤으로 규정하는 듯합니다.

책 제목이 재미있는데, 저 제목이 무슨 뜻인지는 p109를 보면 좀 명확하게 나옵니다. 열 가지 사항이 나오는데, 일을 추진하다 보면 꼬이는 건 누구한테나 일어납니다. 그러나 저자는 "얼마나 걸리든 결국 해 내면 그만이다"라든가, "(나는) 끝끝내 이루고야 말 사람이다."라는 말로 이 꼭지를 마무리합니다. 또 저자는 걱정, 쓸데없는 걱정을 마음 속에서 싹 들어내라고도 하는데,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착각(p194)이야말로 즉시 버려야 할 마음의 짐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모든 행운과 행복이 나의 것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추진하는 일도 장애 없이 술술 풀려나갈 수 있습니다. 독자에게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좋은 충고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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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언어 - 30년간 수많은 미국인의 삶을 바꾼 행복언어학 강의
차머스 브러더스 지음, 박상문 옮김 / 세이코리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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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과연 무엇을 통해 이뤄질까요? 물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느끼는 성취감도 가치가 큽니다. 그러나 이 책은 많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큰 반향을 얻은, 내 주변과 내 가족을 상대로 어떤 바람직한 언어, 다정한 언사로 소통하느냐에 따라 나의 행복이 그리 어렵지 달성될 수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담습니다. 미국은 헌법 자체에 "행복 추구(pursuit of happiness)"의 권리가 규정된 나라이며 한국 헌법도 몇 차례의 개정 끝에 이를 따라했습니다. 결국 돈을 벌고 출세를 이루려는 것도 다 사람이 행복하자고 벌이는 일인데, 이웃과 가족, 그리고 나 자신에게 적용하는 언어가 바뀜으로써 행복감의 충족이 가능하다면 독자로서 귀를 기울이고 싶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미국 헌법 질서를 구성하는 주요 문서 중 하나에는 독립선언서(p48)가 있습니다. 물론 미국은 성문 헌법 주의이므로 헌법 그 자체가 결정적인 법원(法源. Rechtsqwellen)이지만, 독립선언서 역시 일반적인 미국인들에게 매우 존숭되며, 중요한 해석 원칙 중 하나로 꼽힙니다. 아무튼 여기서 저자 차머스 브러더스 대표가 독립선언서를 언급한 이유는, 이 "선언"이 이뤄지고 나서 미국 주요 인사들의 행동이라든가, 영국 본국 정부의 조치, 군사 작전 등의 "의미"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고, 나아가 역사 자체가 다른 방향을 틀게 되었음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말이란, 혹은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무엇을 선언하고 분명히 밝히는 단계를 거치고 나면, 나의 행동이나 주변의 상황이 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p262 이하에도 이 "선언"의 중요성에 대해 자세한 논의가 나옵니다. 

p102를 보면 감정이라는 요소가 학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설명됩니다. "분노와 원망이라는 감정 영역은 학습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반대로, 언어 체계가 전혀 다른 문화권의 젋은이들이 그저 한국의 대중음악과 컨텐츠가 좋아서 그 어려운 한국어를 저렇게 열심히 배우려 들고 성과도 좋은 걸 보면 감정이란 요소가 학습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동하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p103에서는 학습자가 코치와 유대관계를 맺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신뢰"라는 점도 가르칩니다. 학습은 우리가 외부로부터 행복을 취득하는 데 다리 역할을 하며, 학습에 있어 언어가 어느 정도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번거로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의 결과다.(p150)" 나의 행동, 나의 경험, 나의 행복감 등은 내가 무엇을 믿고 그에 따라 살아왔는지가 결정합니다.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만으로 마음과 생각을 채우는 사람은 정말로 그렇게 믿는 대로 외모와 생각이 바뀝니다. p151에는 부처, 스튜어트 헬러, 클로드 브리스틀 등의 명언이 나오는데 모두 신념과 행동, 그리고 그 사람의 인생 사이에 어떤 관계가 생기는지를 명철하게 선언합니다.

영화배우 캐서린 헵번은 "결국 바뀔 것은 내 자신뿐이었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p180 이하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문제를 바꾸려 들지 말고, 문제를 바라보는 당신 자신을 바꾸라"고 제안합니다. 어떻게든 세상이라는 파고(波高) 안에서 위태위태한 서핑 보드 하나를 붙들고 살아남아야 할 텐데, 내 몸에 아가미와 지느러미가 돋을 수도 없고 내 몸의 크기가 고래만큼 커질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이 거친 파도가 호령 한 마디에 잔잔해질 수도 없습니다. 나아져야 하는 건 나의 서핑 기술이며, 내가 알아서 파도에 적응해야 한다는 마인드셋의 전환입니다. 여기서도 불건전한 맹목(盲目)을 제거하고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 분석하는 건 언어의 도움이 첫째 순위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p285 이하에는 "타인을 나와 공존하는 정당한 존재로서 근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칠레의 철학자 움베르토 마투라나의 정의(定義)가 나옵니다. 이런 사랑의 정의는 대단히 실용적이며, 우리가 일상에서 크게 감정 소모를 하지 않고도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도움을 줍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바른 언어의 사용과 설정은 행복에의 첩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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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전쟁 - 전 세계를 뒤흔드는 트럼프 2.0시대 최악의 충격파
추동훈.이승주.강영연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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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보편관세,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부과를 취임 직후부터 선포하고부터 세계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한국만 해도 현기차 수출이 크게 줄었는데 아직은 북미 시장에서 가성비로 승부해야 하는 입장에서 당장 저렇게 관세를 맞아 버리면 버틸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반도체 역시 대(對)중국 수출이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그렇다고 다른 판로도 개척이 수월치 않다면 장기적으로 기흥, 용인 일대의 그 광대한 반도체 클러스터가 공동화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트럼프는 이미 2016년~20년에 한 번 대통령 임기를 지낸 사람이지만, 당시에는 민주당이 의회에서 우세를 점할 때라 지금처럼 일방 드라이브를 펼칠 수가 없었습니다. p17을 보면 이런 보호무역주의는 경제안보, 나아가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추진된다고 설명됩니다. 반도체, 배터리, 핵심광물(p19)에 대해 공급선 확보, 안정적 조달 등을 추구하며, 이 서플라이 체인에 비우호국가가 끼면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안보가 바로 위협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미 2014년에 중국과 일본 사이에 희토류 분쟁이 발생했고 얼마든지 원자재가 무기화(p156)할 수 있음이 전세계가 보는 앞에서 증명되었는데 11년이 지나도록 미국이 그만큼 대비가 소홀했다는 결론밖에 안 나옵니다.

p45를 보면 "본래 무관세 수출이 가능했던 한국으로서는 날벼락이나 마찬가지"라는 서술이 있습니다. 한국은 2008년 미국과 정식으로 FTA를 체결했고 그간 국가 사이의 약속으로 자유무역이 이뤄져 왔습니다. 현대차가 이 정도로 큰 것도 이에 크게 혜택을 보았습니다. 그랬던 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물론 트럼프는 1기 행정부를 이끌면서도 한미 FTA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만을 토로했으며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우리 정부의 책임도 있습니다. 16년 전 당시 FTA 성사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김현종씨가 지금 모 유력 후보의 진영에 몸담았으니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p99를 보면 지금이 신냉전 시대라는 진단이 나옵니다. 하이브리드 전쟁이라는 말도 있는데, 인터넷 여론전, 무역 전선, 컨텐츠 교류, 외교 등 전방위적으로 살벌한 싸움이 시민들 삶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과거 냉전은 이념 한 가지 요소에 좌우되는 일차원 전쟁이었지만, 지금은 누가 누구의 적인지 경계도 불분명하고 협력과 적대가 여러 면에서 교차하는 형국입니다. 중국과 인도의 경우 몇 년 전 병력 충돌이 있었을 만큼 적대 상태이지만, 중국과 긴밀한 유대를 맺은 러시아와는 과거 냉전 시기부터 일정 부분 협력해 왔으니 적의 적이 친구라는 오랜 격언도 통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브릭스 블록에는 중국과 인도가 함께 속해 있기도 합니다. 이러니 미국이 추구하는 인태 전략이 잘 진행되지 않습니다. 파키스탄은 전통적으로 미국과 동맹이었으나 지아울하크 장군 사망 후에는 중국과 밀착한 상태입니다.

인도와 중국이 무력 충돌을 빚을 때 한국의 엘지나 삼성은 현지에 가전, 핸드폰을 많이 팔 수 있을 듯하여 무척 반색했습니다. 그러나 인도는 지방자치가 광범위하게 작동하고 온갖 종류의 규제가 많아 외국 기업의 진출, 활동이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p138을 보면 베트남을 그전부터 주목하여 중국이라는 생산 엔진이 꺼진 후 제2의 활력을 제공할 대안으로 기대되었으나 그 나라 특유의 비효율적 사회구조, 중국이 끼치는 큰 영향력 때문에 그리 진척이 원활치 못합니다.

중국에 부과된 관세에 한국이 같이 쩔쩔매고 외국 투자자본도 함께 발을 빼는 이유는 책 p169에 설명되는 대로 우리가 중국에다 중간재를 납품하는 구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의 관세 부과가 없었다면 마냥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지금 제철이나 석유화학 섹터가 반 세기 이래 최악의 부진을 겪는데, 중국에서 모두 이 업종을 현지화, 자국화해 가기 때문에 더이상 한국 제품을 쓰지 않고, 한국의 다른 해외 시장도 잠탈해 가는 중이라서입니다. p190을 보면 앞으로 우리가 진출을 노려 볼만한 다른 지역으로서 중앙아 여러 나라가 제시되는데, 이곳들도 전통적으로 러시아, 중국의 영향권이긴 하지만 두 나라로부터 차츰 자립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므로 전망이 나쁘지 않습니다.

p216에서 보듯 새 관세 정책이 몰고 온 전세계적 충격파를 표로 깔끔하게 정리한다든가 독자를 배려한 쉽고 편리한 정보 전달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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