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크라이시스 - 위기 후 10년, 다음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루치르 샤르마 지음, 이진원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역사가 그를 전후로 어떤 성격의 전환을 맞은 중요한 사건을 두고 기원으로 삼는 건 매우 드물게 보는 일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천자가 새로 등극한다거나, 그 외 특별한 계기로 연호를 바꾸는 게 중요한 결단 때문이었지만, 현대에서 모두의 동의를 얻어 역법의 기원이 새로 바뀐다든가 하는 건 거의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2007~09년의 경제 위기를 하나의 새로운 기점처럼 삼자며 화두를 꺼낸 건 다분히 비유적 의도이긴 해도,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져가는(우리의 무신경이 진정 놀랍죠) 그 사건이 그만큼 중대한 의의를 지녔다는 뜻도 됩니다.

많은 이들이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직장에서 떠나기도 했고, 세계 굴지의 기업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우리네의 일상에 파급이 크게 미친 그런 아픈 파문도 중요하긴 하나, 저자는 "그 일" 이후 국가나 정치 체제, 경제 시스템에 대해 인류 전체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혹은 얻었어야 했으나 위험하게도 태평스레 지나치는 중인지를 지적합니다. "지적"의 궁극적 의의는 무엇인가. 08년의 파문이 그나마 그 정도에 머물렀다면, 다가올 '18년(벌써 내년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지칭의 개념보다는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더 큽니다)에는 어느 정도나 우리를 위협할 큰 파장이 닥칠지를 선제적으로 대비하자는 게 저자의 의도입니다.

1장은 생산가능 인구에 대해 논합니다. 요즘 운위되는 4차 산업혁명은 더 이상 사람의 기여가 크게 여겨지지 않는 전면적 자동화, 기계화의 코드가 핵심 중 하나이지만, 일단은 그런 대세가 당장(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닥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그래도 "여전히 중요한" 사람, 노동이라는 생산 요소애 대해 자세한 분석의 칼을 들이댑니다. 이 챕터를 보면 똑같은 인구라는 팩터에 대해서도 그간 각국이 참으로 다양한 태도를 취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책 전체에서 공통으로 느껴지는 분위기인데, 저자가 인용하는 팩트 중에 아주 새로운 건 없다시피합니다. 어느 정도는 우리 기억에 (뉴스를 통해서건 혹은 다른 경로였건) 자취가 남은 것들인데, 저자가 새로 구축한 맥락 속에서 접하니 대단히 신선하게 보입니다. 어떤 건 당시에 수긍했으면서도 이런 새로운 논의의 틀에서 바라보니 "믿을 수 없는" 것들도 나옵니다. 우리의 확신이나 막연한 기대가 기실 얼마나 근거부족이었는지 살피는 좋은 예증이었습니다.

경제이론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때 완전한 오류로 판명되거나 폐기처분에 가까운 취급을 받던 게, 세월이 흘러 여건이 변화하고 난 후 그 의의가 재조명되는 게 꼭 나옵니다. 음산한 맬서스가 냉소적으로 인구 위기에 대해 말을 꺼냈을 당시에, 생산에 큰 기여도 못 하면서 사회 불안 요소로만 작용(그의 관점에서)하는 하층 계급 노동 인구의 문제가 여튼 적지 않은(오늘날에는 상상이 잘 안 되지만) 동조를 부른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헌데 4차 산업혁명의 파고로 기존 노동력이 대부분 쓸모없는 취급을 받는 지금, 황당하게도 다시 맬서스 패러다임이 적용될 여지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일각에서 신 맬서시안들이 대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이런 결론이 "역시 맬서스가 옳았던 거야!"같은 퇴행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고, 서평 앞에서 지적한 대로 "위기의 근원과 징후를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지옥의 도래를 막을 수 있음"을 다시 상기하려는 게 저자의 의도겠습니다.

저자는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당신만의 탁견을 제시해 주시길" 요청 받는 전문가, 권위자 중 한 사람입니다. 이런 분의 관심사에서 리더십의 문제가 빠지면 또 곤란합니다. 2장의 토픽은 4장의 주제("정부의 개입")와도 밀접히 연관됩니다. 많은 경우 번잡하고 느린 민주적 의사 결정 방식보다는, 신속하고 과단성 있는 전체주의 유사의 기제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믿음이 지지를 얻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08년 이후 중국이 무섭게 치고나올 기미를 보이고, 당 수뇌부의 기민하면서도 정확하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영리한 조치가 눈에 띄자, 세계의 부자들은 앞다투어 베팅 경향을 바꾸었습니다. AiiB 설립 때 절대 다수의 서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돈보따리를 싸들고 온 것처럼 이때 중국이 성공했으면 진즉에 세계의 패권과 리더십은 중국에 안겼을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대단히 조심스럽게나마, 그런 기대가 매우 설익은 것이었음을 시사합니다. 대개 책에서 지나치게 단순한 결론을 과도한 어투에 담아 확언하면, 신빙성이 떨어지는 수가 많습니다. 저자는 대체로 시원시원하게 논지를 펴는 편이지만, 이런 대목에서는 전문가의 신중함으로 행간에 결론을 심는 현명함을 보입니다.

역사의 결과를 빤히 알고 과거를 반추하면 모든 게 당연합니다. 성공한 자는 저렇게 했기 때문에 성공했고, 망한 조직이나 국가를 보면 저러니까 망할 수밖에 없었다며 경솔한 결과론을 마구 디미는 게 우리들입니다. 허나 가장 권위 있는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예측 중에는, 머지않은 장래에 소비에트 경제의 규모가 미국의 그것을 추월하리라는 보고도 들어있었다는 게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이런 "연구"도, 발표 당시에는 많은 동의와 추종을 유발한 게 사실 아니었겠습니까. 물론 이런 극단적으로 실패한 (일각의) 연구와, 현재 수치적으로 기정사실화한 "중국의 미국 추월(명목 GDP 기준)"을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세상에 통계만큼 못 믿을 게 없음"을 다시 지적하며,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중상위권에 오른 러시아는 왜 이토록 자국 기업의 망명이 러시를 이루며 외국에서 진입하기를 꺼리는지 설명이 안 된다고 합니다.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애써 가꾼 주식 상당수가 푸틴 측근들로 명의자가 바뀌어 있더라..... 어떤 기업가도 소름끼쳐할 악몽이 태연히 현실화하는 환경에서도, 통계는 현실을 무시하고 꿋꿋이 상향합니다. 마오 시대에도 관료들이 작성해 보고하는 통계만 보면 중국은 아무 문제 없이 성장을 지속하는 건전한 국가였습니다. 故 덩샤오핑의 위대한 점은, "믿을 수 없는 쓰레기 통계를 모두 폐기하고, 보기 싫어도 현실을 반영하는 자료를 작성해 올리라"는 지시를 단호하게 내렸던 데에 있습니다. 저자의 관점으로는, 그런 놀라운 리더십을 보였던 덩조차도 절정의 장악력은 (우리 통념과는 달리) 그리 긴 시간 지속되지 못했으며, 나머지 시간은 측근들, 잠재적 라이벌들과 공유하는 형식이었다고 합니다. 저자가 인용하는 명언은 "영웅이란 대중에게 얼마나 지겨워지기 쉬운 존재인가"입니다.

그 나라의 지리적 위치(지정학 여건)가 그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건 오래 전부터 통념으로 여겨졌습니다만, 저자는 이 역시 상대적 개념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한 나라의 경도와 위도는 대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불변입니다만, 세계의 역학 관계와 무역의 판도는 수시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거들떠보지도 않던 지역이 새로운 교역 허브로 부상하기도 하며, 영원한 요충지로 번영의 샘이 마를 날 없어 보였던 지점도 퇴락의 순간을 맞습니다(pp. 270~271의 지도를 보십시오). 이를 국가 단위로 확장해 보면, 한 나라에서 가장 번성하는 도시와 바로 차순위 도시 간의 인구 격차가 3:1이 넘으면 위기, 부실, 불건전의 징후라는 게 저자의 "공식"입니다. 누구라도 흥미롭게 반응할 만한, 거의 미신에 가깝게 들리는 놀라운 단순화인데, 이 기준에 의하면 한국의 경우 부산과 서울이 1:3을 넘지 않으며, 서울이 최근 감소 추세임을 생각하면 이 경향이 추세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인위적, 행정편의적 경계선이 문제가 아니라, 범 수도권 전역을 생각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만) 여튼 현상적으로는 결과가 척척 맞아떨어지기도 하니 흥미로운 건 틀림없습니다.

"서비스업은 제조업을 대체할 수 없다." 많은 기업이나 자산가들은 윟험 부담이 크고 사회적 저항이나 마찰을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제조업에서 점차 손을 떼고,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금융업에 진출하려 듭니다. 그저 선진 금융 서비스의 원활한 제공만으로 국가 전체가 먹고 살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낙관에 빠져든 이들도 많았습니다. 각국의 거시 경제는 그러나 그런 손쉬운 환상을 쉬이 만족시켜 주지 않고, 제조업 기반이 부실한 환경에는 더딘 성장과 자주 반복되는 위기, 침체와 공황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인도는 언제나 중국을 잠재 적국으로 여겼으며, 경제적으로도 반드시 추월, 극복해야 할 목표로 삼는 중이지만, 요란하게 조형된 그들 고유의 힌두이즘 신상과 부적들마저도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압도적 점유율을 보인다는 사실 앞에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21세기에 브릭스라며 신 성장 동력들로 꼽혔던 나라 중 그나마 현재까지 투자자의 기대를 유지하는 건 인도뿐(중국은 레벨이 달라졌으니 논외)이라는 게, 미디어와 평론가들의 호들갑이 얼마나 쉽게 꺼지기 쉬운 거품인지 다시 증명합니다.

세계 경제위기 이후 많은 개인, 기업, 정부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부실을 정리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어렵사리 마련 중입니다. 헌데 이런 패턴은 08년 이전에도 이미 반복되던 것입니다. 한번 세찬 폭풍이 몰아닥쳐야 부실한 겉치레가 떨어져나가고 고갱이만 남기 마련인데, 저자는 훨씬 전에 벌어졌던 좋은 교훈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횡행했던 1970년대 말의 대처 과정에서 찾습니다. 당시 폴 볼커는 대중의 반응은 아랑곳않고 금리를 충격적으로 인상해서 스태그플레이션의 악순환 고리를 끊은 것으로 평가 받는데,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인플레이션이야말로 성과의 과실과 경제 전체를 좀먹는 암"임을 지적합니다. 저자가 당대의 논객들과 맞장 뜨며 타당성을 설파한 실제 경험담도 독자의 흥미를 자아내는데, 한국의 고도 성장이 과연 고도의 인플레이션을 감수하고 이뤄진 것인지 여부를 놓고 대단히 핫한 논쟁이 벌어졌던 "실황 중계"라서 특히 우리 한국 독자들의 눈길을 끕니다. 경제위기 당시 중국은 통화 전쟁의 일환으로 대거 발권력을 행사했는데, 지금의 궁색한 성장 둔화는 그때의 대가를 치르는 중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08년은 확실히 많은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만, 누가 세월이 부과한 시련을 이겨내고 최후의 승자로 떠오를지는 (책에 실린 흥미진진한 명시적, 암묵적 예언들과 함께) 더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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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 약사.대학생.직업 전문가가 들려주는 약사의 모든 것 꿈결 잡 시리즈
고기현 외 지음 / 꿈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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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가운을 입고 상냥한 미소로 동네 주민들을 맞아주며 가벼운 질환 외에도 인생사나 공동체 속의 고충 상담도 도와 주던 약사(꼭 여성분에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남자분도 이런 타입이 있었어요)는 어린이들에게 충분히 선망의 대상이 될 만한 직업입니다.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이지만,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나와 적성이 맞는 게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따로 있습니다. 살벌한 수능 점수가 문제가 아니라, 내 성격 내 천품과 맞지를 않으면 평안 감사를 줘도 수행하기 어려운 거죠. 사회에 나와 보면 공부머리와 일머리가 다르다는 점 새삼 실감한다는데, 약사 같은 경우는 공부머리라고 해도 방향성이 좀 다릅니다.



이 책에 인터뷰가 실린 어떤 분은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 학교 공부도 힘들었지만 자격을 취득하고 사회에 나와 보니, 그저 시키는 바만 열심히 하면 되는 학교와는 달리 사회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자신이 판단해야 하는 점이 훨씬 힘들었다...." 사실 이 말은 약사뿐 아니라 모든 직업, 직종에 해당 안 되는 바가 없습니다. 약학 공부란 스토리가 없고, 어찌보면 건조하고 따분한 화학 지식 체계를, 토굴 속에서 마늘과 쑥만 먹으며 참고 인간 되기를 기대하는 곰처럼 묵묵히 해 나가야 하는 고충이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 인터뷰가 실린 다른 어떤 분은, "... 스토리가 없기에 스토리를 억지로 만들어 나가며 힘든 공부를 했다"고 고백도 하시더군요. 요즘 같이 즐길 게 많은 시대에, 한창 때 좋은 청춘을 즐기기도 해야 하는 대학생들이 이런 힘든 공부를 이어나가기란 그리 쉬운 결단만은 아닙니다. 선배들의 진솔한 고백이 잔뜩 실린 이 책을 읽고, 사회에 나온 후의 진로도 진로이지만 우선 공부 자체가 나와 과연 맞는지 꼼꼼히, 심각하게 검토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꿈결JOB 시리즈 "약사"편은 처음에 펼쳐 들고 좀 놀랐습니다. 앞선 시리즈는 두께가 두툼했는데 이 책은 좀 얇은 편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역시 꿈결 기획답게, 버릴 내용이 하나도 없고 뻔한 상식성 정보가 중복되질 않아서, 다 읽고 나니 뒷목이 다 뻐근할 정도였습니다. 꿈결JOB은 정확성도 정확성이지만 솔직한 정보를 담아서 좋다는 게 제 느낌인데, 현재 약대가 6년제이고 입학도 어렵지만 졸업한다고 해서 반드시 안정적인 진로가 보장된다는 법도 없습니다(사실 이는 40년 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동네 한 골목에도 웬만해선 약국이 20군데가 넘어서 경쟁이 치열했죠. 초기 투자금도 많이 소요되고...).

그래서 이 책 중 인터뷰하신 약사님들을 보면(이미 약사 자체가 확고한 전문직인데도) 투잡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더군요. 물론 투잡도 시시한 생계형 투잡이 아니라, 다른 "전문직"을 골라 두 분야에서(다른 사람 한 분야에서도 제 밥값 못하는 일이 잦은데) 맹활약하시는 분들입니다. 아무래도 약대에 들어갈 정도면 머리가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고난도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에도 그리 큰 추가 노력이 필요하지 않고, 또 약대를 가긴 했어도 적성이 다른 쪽에 더 컸음(물론 약사 적성도 뛰어나지만)을 발견하곤 일 욕심과 자아실현 욕구를 발휘활 수도 있는 거죠.



백진희 선생님은 병원 약사입니다. 어린 독자들은 병원에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만 계시지 약사분이 다 있나 하고 어리둥절해할 수도 있는데, 이 글을 읽어 보면 약사의 진로가 얼마나 다채로운지, 그리고 숨겨진 고충과 보람이 얼마나 큰지도 짐작이 가능할 겁니다. 제가 재미있게 읽은 건 공병의 잔여물 제거 작업을 백 선생님이 하고 계셨는데, 친정 아버님이 반찬을 주려 오셨다가 그 모습을 보고 밤에 한숨도 못 주무셨다는 겁니다.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러 허드렛일 담당으로 좌천되기라도 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공부 잘하고 영민한 따님을 금이야옥이야 양육하여 힘들게 이대까지 진학시키시고 버젓한 병원에 일자리를 맡게 하여 한시름 놓았더니, 따님이 그런 힘든 일을 하시는 걸 보고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셨겠습니까.

이는 물론 다분히 오해에서 비롯한 해프닝이지만, 토, 일에도 당직 근무를 서신다거나 (무려 17년 전 일이지만) Y2K 버그를 대비해서 세밑 신년에도 철야 근무를 선다거나 하는 게, 어디 예사 사명감으로 감당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백 선생님은 "...이미  PEET 시험도 치르고(백 선생님께서는 그 세대가 아니시겠죠), 각오와 다짐이 단단히 섰을 텐데도 조금 힘들다고 사직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며 젊은 세대의 다소 안이한 마인드셋을 지적하십니다. 어떤 약사의 부모는 백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애를 얼마나 혹사시켰으면 몸살까지 났겠냐"며 항의도 했다는데, 준비 덜 된 후배 약사 업무 지도까지 맡아 고충이 심했던 백 선생님으로서는 참 기가 막힐 일이 아니었겠나 싶습니다. 하지만 백 선생님께서도 어느 분의 귀한 따님이시고, 약사까지로 키워 놓으셨다면 그 부모 되는 분들의 자녀 아끼는 마음이 어떨지야 백 선생님 본인이 너무도 잘 아시겠으므로 그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이니스트 바이오제약에 근무하시는 고기현 선생님은 이 회사의 마케팅 총책이십니다. 물론 마케팅 총괄역과 일반 현장의 영업사원은 대우나 고충 면에서 당연 천지차이지만, 저는 처음에 으레 약사 하면 그 약국에 영업 뛰러 오는 영업사원과 솔리시터- 클라이언트 관계이니 당연히 서로 반대 입장이라고만 여겨졌지, 약사가 영업 분야에서 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습니다. 허나 고기현 선생님의 사연을 들어 보니, 오히려 이 일 역시 약사 아니면 맡을 수가 없는 직분이더군요.

앞서 백 선생님도 "...이런 단계에서부터 쉽게 좌절하고 피로를 느끼면 앞으로 더 힘든 일은 사회에서 어떻게 맡겠는지" 개탄하시는 대목이 있었는데, 고 선생님은 "회사라는 거대 조직에서 필수로 익혀야 할 대인 응대 요령, 입체적 관계의 통찰, 정치와 인사 고과의 미묘한 이치" 등을 잘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 발전에 엄청 유리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항상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게 나이로 정하는 연공서열식 권력 관계인데, 고 선생님의 경우 자신보다 나이 어린 상사 밑에서 일해야 하는 고충이 그래도 많이 덜어지는 편이었다는군요. 약사라는 전문직의 휘광이 있기 때문이죠. 기자가 "특종"이 일생의 사명이듯, 제약회사 직원은 "신약 개발(사실 이쪽이 훨씬 어렵습니다만...)" 하나를 바라보며 고된 일과를 버팁니다. 1조원의 매출이라.... 그 직원분이 회사에서 얼마나 큰 자긍심과 성취감을 누렸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라지고 말 직업들이 요즘 여럿 거론됩니다. 제 생각에는 창의력도 없고 꼼꼼히 알고리즘을 분석할 능력도 없는 월급 루팡 삼류 좀비 프로그래머들이 제일순위로 사라지지 않을까 싶은데, 이범진 선생님은 아주대학교 약대 학장이십니다^^ 선생님은 서울대 약대를 나오고 그간 교육 분야에 긴 세월을 재직, 헌신하다 현재 산업계의 현실이 가장 거센 풍랑을 맞는 작금 거대 교육기관의 최고위 관리직에 오르신 셈인데요. 학장님께서는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기계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약리의 탐구, 미래에의 통찰, 인간에의 헌신" 등 덕목이 요구되는 게 약사의 본분이며, 이런 약사를 양성하고 사회에 배출하는 기능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피력하십니다.

그 근거에 대해서는 종전 교육과정과 달리 보다 사회의 수요에 즉각적으로 부응하고 나아가 잠재적 기대에 선제적으로 부응하는 진취적 약사상을 해당 기관이 수립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학장님은 "지금까지는 그저 기술적 지식만 주입할 뿐, 사회적으로는 준비가 덜 된 약사들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았다"는 자성 결들인 멘트를 하시며, 졸업 후에도 최신 지식에 역동적으로 업데이트가 가능한 "자기계발형 약사"를 이상적인 학생상으로 삼는다고 밝히십니다. 둘째 사회적 책임감과 봉사 정신에 철두철미한, 인성과 참여의식으로 무장된 약사를 배출하여 지역 공동체와의 유기적 합일을 이루는 열정적 인력상의 수립에도 진력하신다고 말씀하시는군요. 어느 회사, 혹은 공공기관에서도 상사와 동료들과 잘 융합하며, 그저 자영업자형으로만 인식되기 쉬운 약사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슈퍼 인재 = 곧 약사"라는 역동적 이미지를 국민에게 함양하는 게 목표라고 밝히십니다.

본래 공대 엔지니어들이 즐겨 품는 꿈이 변리사직입니다. 변리사는 자격시험만 통과하면 부여되는 직함이지만 경쟁률도 높고 시험도 어려운 걸로 알려졌습니다. 약사와 변리사를 선뜻 연결 못 시키는 통념도 있는데 공학 분야보다는 커버해야 할 범위가 좁을지 몰라도 약학계 역시 특허 관련 분쟁의 수위, 강도가 장난 아닌 영역입니다. 박종혁 선생님은 약학박사이실 뿐 아니라 변리사 자격까지 취득하신 전문직 중의 전문직으로, 현재 본인 명의의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 유관 단체의 제반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시는 등 가히 글로벌 엑스퍼트라 불릴 만한 화려한 커리어를 꾸려가는 분입니다.

박 선생님의 경우 약사로서의 정체감도 정체감이지만 법률 전문가로서 누리는 뿌듯한 성취감이 더 크신 듯, 이 책의 회고문 곳곳에는 그런 심회의 피력이 두드러지더군요. 혹시 말입니다, 학생 자신의 꿈은 좀 다른 쪽인데 집안에서는 (부모님의 직업이 약사라든가 해서) 약대 진학을 강권하는 분이라면(아니면 정반대로, 본인은 약사가 꿈인데 집안에서 다른 전문직을 권한다든가), 이 박종혁 선생님의 진로를 롤 모델로 삼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약사라고 해서 흰 가운만 입고 동네 주민들 상대로 반복적인 일만 꼭 하라는 법이 아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어느 정의로운 도서관 사서"의 이야기도 꼭 한번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박 선생님이 특별한 존경심으로 기억하는 분 이야기라서 말이죠.



적성은 능력과도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능력이 빼어나도 그 일이 너무 싫으면 직역을 배겨낼 수가 없습니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약사분들의 진정 담긴 사연을 들으면, 능력도 다들 빼어나시지만 적성부터가 남다르게 해당 직분에 잘 맞았다는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책 말미에는 꿈결 기획에 언제나 핵심 역할로 참여, 주도하시는 직업 전문가 고정민 선생님의 유익한(객관적 제3자로서의) 조언이 실렸습니다. 자신의 진로가 혹시 약사쪽이었으면 하는(아직 확신이 없을 나이들이죠) 학생들은 이 책을 읽고 꼭 치열한(아직은 행복한) 고민을 해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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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혁명 2030 - 주거의 의미가 변화되고 확장되는 미래 혁명 2030 시리즈 2
박영숙.숀 함슨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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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뿐 아니라 사회 전분야에 전례도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혁명"이 몰아닥치는 지금입니다. 소유보다 사용 중심의 패턴이 자리한다, 비혼자나 1인 가구가 증가한다, 무조건 큰 평수를 선호하기보다 여러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여 변화와 이동성을 추구한다, ... 주거 패턴에 대한 이런 변화의 전망은 새삼스럽지도 않고 벌써 6, 7년 전부터 여러 전문가들이 발표, 개진해 온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즉, 주거 패턴이 단순히 과거의 A에서 현재의 B, 미래의 C로 바뀐다는 표피적인 현상의 진단이 아니라, 사회 계층 구조, 사람들의 의식상 근본 변화, (어디에나 빠지지 않는) 4차 산업혁명의 큰 파고와 맥락 속에서 입체적으로 관측한, 혹은 예측한, "살아가는 모습이 진화하는 인간 사회"에 대한 총체적 논증입니다. 물론 주제가 주제이만치 별의별 희한한 주거상의 신 트렌드, 패턴에 대한 자세한 소개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층의 모멘텀에 의해 움직이는 "맥락"의 분석과 연동된 소개가 아니라면, 다양한 실례의 나열이 그저 잡담이나 공상에 그칠 위험도 있습니다.

이 책은 첫째 과연 우리 주변에서도 감지되는 두드러진 변화가 그저 변덕이나 국지적 예외가 아니라 트렌드 시프트의 시그널이었구나 하는 확인, 둘째 그럼 장단기 주거계획이든 재테크든 가까운 장래에는 사람 사는 모습이 이렇겠구나 하는 구체적 대비, 셋째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여기에 있다고 보지만요) 주거 패턴의 변화를 통해 역으로 짚어내는 "인류의 미래가 움직여가는 방향"입니다. 이 미래는 그저 기계적, 기술적 진보에 한정한 게 아니라, 하고많은 가능성 중에 하필 그 길(들)을 택한 사람들의 심층 심리까지 되짚어내어 담은 인문적 자화상에 가깝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책은 그저 "이렇게이렇게 될 것이다" 같은 점쟁이의 요설이 아니라, 인문적 영감까지 독자에게 제공하는 점이 큰 매력이었습니다.

1장은 한국과 세계의 주거상 변화를 공시적으로 정리합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지적되었듯 수도 서울의 인구는 공식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그 인근 "수도권"으로 몰려드는(밀려나는) 비중은 커지는 추세입니다. 흥미로운 건 2년 전 런던 주택임대료 폭등 사태가 세계적으로 큰 뉴스가 된 데서도 알 수 있듯, 도심의 렌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게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거죠. 이에는 초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인력과 그렇지 못한 경제인구 사이의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는 이유가 작용합니다. 요즘의 추세는, 부모로부터 부를 물려받은 층의 소비, 경제 참여 패턴이 중요한 게(=주거난을 심화시키는 게)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또래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새로운 고소득자 집단이 등장하여, 이들이 자신의 발밑에 있는 계층과의 주거지 선점 경쟁에서 호가를 높이 부르기 때문이죠. 반면 오랜 경제학상의 진리처럼, 토지는 공급이 제한되어 있어 생산자(제공자) 간의 경쟁이 벌어질 수가 없습니다. 수급의 사정이 이러하니 결과도 자명할 밖에요.

한편으로 탈 도심의 동인 중 하나는 대기오염 등 보건상의 불리한 여건도 한몫은 합니다. 이는 앞서 지적한 바와는 반대의 방향성으로, 부유층의 선도적 선택을 거쳐 향후 쾌적한 환경의 교외(한국과 중국의 사정을 동시에 예거합니다)로 대거 러시가 이뤄지리라는 전망입니다. 사실 이 두 현상은 모순이라기보다는 다른 국면 다른 동기에서 별개의 경로로 벌어진다고 봐야 하는데(혹은, 전자가 일시적 과거에 대한 설명이라면, 후자는 미래의 대세에 대한 언급이죠), 저자들은 조직의 업무 여건 개선, 초고속망의 진화, 이동성의 제고 등의 힘을 입어 점차 재택 근무가 늘어나고, "홈"과 "오피스"가 구별이 점차 어려워지리라는 추세("오피스 셰드", p37) 등을 들어 이런 예측에 방점을 진하게 찍습니다.

pp. 188~191에 보면 주택 양극화 현상이란 결국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8단계의 "주거 진화" 설명이 더 흥미롭습니다. 현재는 관리형 스마트홈에서 예측형 스마트홈으로 넘어가는 단계이지만, 앞으로는 자립형 주거나 하우스모핑(마치 살아 있는 듯 에너지 생산, 형태 변형. 하수 처리, 농경 등이 알아서 수행되는 패턴), 나아가 거주자와 일체가 되어 자아실현을 이상으로 삼는 구조까지 등장하리라는 전망입니다.

실제로 3년 전 홍콩에서 일어난 우산 혁명은 직접적으로는 대륙식 독재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직접적으로는 주거비 폭등 때문에 촉발되기도 했기 때문이죠. 책에도 나오듯 지금은 오히려 거품이 급격히 꺼져 그것대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 현상은 이제 미래에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신기한 과거의 유물처럼 후손들에게 간주되리라는 게 저자들의 압도적인, 확신에 가득찬 진단입니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씀이긴 하나, 그 "미래"가 현실로 닥치기 전까지는 우리는 과거가 남긴 룰의 잔재, 예외든 원칙이든 여전히 강력한 힘을 미치는 국지적 요동과 마주하고 살아야 합니다. 여전히 부동산 투자로 재미 봤다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p117에서는 특이하게도 "네트워크 시대에 특히 강조되는 생존 본능인 제7의 감각"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제가 몇 달 전에 따로 이 주제만 다룬 책을 읽고 독후감도 남겼지만, 저자들은 조슈어 라모의 저서를 인용하며 "복잡하지만 사실은 복잡하지 않고 제어가 가능한 것"과, "복잡하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은 제어가 불가능한 것" 사이의 차이를 짚습니다. 이는 흥미롭게도 근 30년 전에 발표된 마이클 크라이튼의 스릴러 소설 <쥬라기 공원>에도 제법 큰 비중으로 소개되는 화제입니다.

개체를 둘러싼 환경이 여러 요인의 새로운 개입으로 복잡성이 증가되면, 개체 중에서도 영리한 몇 녀석은 새로운 본능을 발달시켜 생존과 (궁극적으로는) 진화에 성공합니다.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분들도 있겠지만, 컨설턴트 라모는 "트럼프 같은 이는 자신보다 훨씬 압도적인 경력과 지원 세력을 거느린 부시 가문, 클린턴 가문의 거물 둘을 예선과 본선에서 차례로 꺾었는데(생각해 보니 그렇더군요?), 이는 그가 탁월한 생존 본능을 갖고 네트워크의 발달이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룰을 정확히 파악하여, 불필요한 액션은 피하고 철저히 계산적으로 승부 결정에 필요한 수만 영리하게 두어 결국 승자가 되었음을 증명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실 작년 대선이 끝난 직후 힐러리 클린턴도 자인하다시피한 사항입니다. 그들은 필요 없는 유세는 너무 많이 했고, 믿음직하지 못한 정보와 조짐에는 너무 안도하는 경향을 보여 결국 패착을 두었습니다.

이 책이 이런 토픽을 책 중에서 꺼내든 이유는, 주거 패턴의 향방을 가늠할 때 종전처럼 한두 가지 요인만 대입시켜 단선적 예측을 하는 게 아무 의미없는 상황이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이 책은 (서평 앞에서도 지적했듯) 그저 주거 현상에 국한된 논의만 전개하는 게 아니라, 현대 사회가 홍역처럼 치르는 여러 근본 변혁상을 두루 조망하되, 그 요인들이 "주거"에 끼칠 영향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어 흥미로운 논의를 들려 줍니다. 몇 장 뒤로 넘어가면 에릭슨 연구소가 최근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5년 안에 AI가 스마트폰을 대체할 것"을 예측합니다. 이 역시 잘 생각해 보면 AI 만능론의 연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고작) 스마트폰 정도와 일상의 도구로서 경쟁을 벌여야 하는 한계점을 오히려 지적하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책에도 나오는 것처럼) 스마트폰(이나 그 유사 단말기)는 (비록 요즘 분할 화면을 일부 지원한다고는 하나) 아직도 멀티 태스킹이 어렵고, 배터리 용량에 여전히 한계가 있으며, 작은 화면 때문에 유저를 답답하게 합니다. 반면 내 주변의 공간에 다양한 입체 좌표를 점하며 널려 있는 여러 (가상 아닌 실체를 지닌) 도구들은, 그것들의 재배열만으로도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곤 하죠.

아마도 이 책에서 (여전히) 독자들의 주목을 끌만한 화제는 콘투어 크래프팅일 것입니다(p93이하를 참조하십시오). 일본이나 미국 서부 해안처럼 지진이 잦은 지역에선 주택의 설계, 유지, 보수가 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와르르 무너져도 마치 레고 블럭 쌓아올리듯 간편하게 뚝딱 새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이런 지역에서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한번 짓고 그 안에서 평생을 산다는 개념은, 이미 전통적 가족의 개념이 해체되고 이동성과 융통성을 강조하는 세태 속에 빛이 바랜지 오래입니다.

패션도 이미 자라 등의 업체가 리딩했던 트렌드대로, 짧은 시간 동안 걸치고 버리는(dispose) 컨셉이 젊은 층을 상대로 무시 못할 대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집이라고 해서 다른 이치가 적용되라는 법이 없습니다. 빨리 마르는 시멘트, 3D 프린터로 융통성 있게 취향대로 설계하고 기존 구조에 손쉽게 편입할 수도 있는 이런 기법(이 대목 말고도 p262 등도 참조하십시오)은, 이미 중국에서도 실용화, 상용화의 단계에 성큼 다가섰다고 합니다. 지진으로 무너졌으나 하루 만에 다시 입맛대로 지을 수 있는 집,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마치, 망가진 윈도우에 잠시 절망했으나 포맷 후 곧 운영체제 재설치하고 빨라진 컴을 즐기는 상황과도 비슷하죠.

앞에서 스마트 하우스에 대해 잠시 언급했는데, p202에는 더 구체적인 기술상이 소개됩니다. 빗물을 모아 정수하고 적절히 보관하여 바로 생수로 음용하게 처리하는 기술은, 특히 가뭄이 심하거나 상하수도 시설이 빈약한 시골(사람이 안 사는 이유는 이런 인프라가 빈약해서 불편한 이유가 크죠)에서 여건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겁니다. 쓰레기나 하수 처리 역시 나노 기술의 혜택을 입어, 전혀 자연에 오염을 끼치지 않고 개별 가구 레벨에서 말끔히 해결합니다. 클레이트로닉스, 아포스트로피(p214 등)라든가 여타의 몰핑 기법 적용을 통해, 외관이나 내부 설계 자체가 필요와 시도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 가능하며, 집의 모든 표면이 홀로그램 발전을 통해 일종의 "터치 스크린"으로 바뀌어 주거자와 소통하며 업무를 돕습니다. 나노 기술의 다른 적용 양상은 pp. 231~232에도 다시 언급됩니다. 환경 보전 컨셉(재생 에너지 사용 등)이 반드시 삽입되는 것도 이들의 필수적인 특징입니다.

앞에서 탈도심이 하나의 대세가 되리라는 전망이 책에 나온다고 했으나, 이와는 별개 목적으로 난도 높은 과업의 성취, 국력과 위신의 과시, 일자리 증진, 권력 이동 등의 이유에서 "매가 시티, 메가 프로젝트"의 추진이 현재 여러 국가에서 현저하기도 합니다. 이런 프로젝트 속에서는 오히려 산만해졌던 인구 분포가 개발 도심에 집중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모순이라거나 혼란을 느낄 필요가 조금도 없습니다. 책에서 지적한 대로, 세상이 복잡해지니 그에 대응하는 생존 방식도 복잡해지는 겁니다. 제가 몇 주 전에 리뷰한 SA 시리즈 <미래의 도시>에서도 언급이 있었듯, 오히려 도시의 생존 조건을 첨단 기술을 통해 개선하는 게 유력한 미래 비전 중 하나이기도 하죠. 책에서는 두바이와 한국의 송도 국제지구 건설을 그 좋은 예로 듭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첨언하자면, 이런 프로젝트 추진 때문에 특정 지구는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기적 출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겁니다. 대세는 대세고, 국지적으로는 전혀 다른 돌발사태가 벌어질 수 있음은 엄연한 역사상의 진리이죠.

왜 지표면의 70%가 해양인데도 인류는 이를 활용할 생각을 못 하는가? 우주보다는 바다가 더 수월한 개척대상이 아닌가? 아직은 많은 한계가 있지만 인공섬(이 아이디어 자체는 24, 5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나왔습니다)도 대안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 몰디브는 수년 후, 그 외 방글라데시 여러 연안 거주지, 농경지도 해수면 상승을 못 견디고 수몰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예측입니다. 탄소 연료 사용 절감은 별개 이슈로 삼더라도, 자립형 해양 주거지를 바다에 띄워 이 문제의 일부 해결을 보자는 제안은 꽤 매력적입니다. 그저 바다를 표류하는 바지(barge)선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공학자와 전문가들은 오늘도 기발한 착상을 번갈아 떠올리며 실용화에 주력합니다.

저자들은 "의, 식의 문제처럼, 곧 '주(住)'의 문제도 편의와 취향 차원에서 간단한, 실용적인 처방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근본적인 발상을 바꾸면 의외로 결정적인 해답이 나오는 걸 우리는 자주 경험합니다. 단 인간은 관성과 집착의 동물이라, 쉬이 자신의 신조와 스키마를 몰핑 못 한다는 게 약점이죠. 결과로 도출된 방법은 간단할 지 모르지만, 그 방법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기술, 사회학, 심리, 역사, 정치(지정학), 인류학, 인문 등에 대한 광범위한 모색이 바탕이 되어야 유효한 해법이 간신히 나올 수 있다는 점, 저자들의 치열한 고민이 물씬 배어나는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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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가지 비즈니스 모델 이야기 - 성공하는 스타트업을 위한, 2018 에디션
남대일 외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개별 아이템보다는 컨셉이 중요하고, 기막힌 효용보다 더 어필하는 건 성공적인 포지셔닝이며, 사업가 개인의 수완보다는 무슨 비즈니스 모델로 승부하느냐가 더 큰 성공의 관건입니다. 머리도 잘 돌아가고 인간적 매력도 있고 해당 분야에 대한 기술적 지식도 빠삭할 뿐 아니라 의지도 충만한데, 왜 결과가 신통찮은가? 바로, 신통찮은 분야에 몸담고 아까운 자원과 정력을 낭비했기 때문이죠. 요즘같이 변화무쌍한 세상에 과거의 논리와 한물간 전성기의 가락만 붙든다면 적응이 잘 될 리가 만무합니다.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그걸로 판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설령 좀 무능해도 "되는 판"에 몸만 영리하게 담을 줄 안다면 그런 사업가가 끝에 가서 전세를 엎고 승자로 남는 수가 많습니다.

스타트업이 결코 유망하지 못한 진로임을 잘 알면서도 많은 젊은이들은 이 험난한 경쟁의 트랙에 몸을 싣습니다. 자신의 창의력과 아이디어, 섬광처럼 찾아온 영감을 잘 가꾼 노력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줄 알기 때문이죠. 헌데 꿈 자체는 나무랄 게 못 되지만, 소중한 씨앗을 어느 모판에다 심고 키우냐의 문제는 운수나 요행이 아닌 근본 판단력과 지혜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에게 중요한 건 원천 기술의 창의와 혁신성 못지 않게, "될성부를 모델을 찾아 올바로 몸을 담그는 단계"입니다.

저자들은 먼저 "비즈니스 모델"이 대체 왜 중요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론적, 연혁적 의의에 대해 설명합니다. 우리에게 "코즈 정리"로 너무도 유명한 로널드 코즈는 그의 거래비용 이론에서, "분명하게 확립된 재산권과 충분히 낮은 협상비용이 전제된다면"(출처: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437708&cid=58393&categoryId=58393) 오랜 시간 동안 경제학 자체의 이론적 허점, 혹은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으로 꼽혔던 이른바 "외부 효과" 문제가 정부의 개입 없이도(정부가 개입하는 이유는 "시장의 실패" 때문입니다) 해결될 수 있다고 결론 내립니다. 그런데 이 말을 반대로 뒤집으면,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고, 유무형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가 개인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일을 벌이면, 외부 불경제가 너무도 크게 개입하기 때문에, 개인 차원에서는 극복 못 할 난관을 맞게 된다는 뜻도 되죠. 그래서 결론은, 이미 잘 짜여져 있거나, 암묵적으로 완성 단계 직전까지 간 모델에 개인들이 몸을 담아야, 일일이 개척적 수고를 할 필요 없이 본래의 목적을 향해 순항할 수 있다는 겁니다. 책 챕터 1에서 강조하는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건 "가치의 사슬"입니다. 세상의 산업에는 다양한 국면에서 생산되늰 부가가치가 존재합니다. 애덤 스미스의 고전에서 너무도 유명하게 인용되는 "분업의 이득"이란 꽤 확장성이 넓은데요. 챕터 2에서 저자들은 카네기의 철강회사를 예로 들며 철강 생산을 위한 온갖 단계의 부가 생산 공정을 "수직 계열화"함에 따라 생산 원가를 88%나 절감한 놀라운(잘 알려진) 이치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분업과 계열화의 효율은 반드시 수직방향으로만 이뤄져야 하는 건 아니며, 때로는 수평 방향으로도 얼마든지 구축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책에서 드는 예는 1회용 패션으로 시대의 새 트렌드를 띄운 의류업체 "자라"입니다. 노무 비용 상승이나 기타 업종 고유의 특성에 의해 수평 방향으로만 효율이 달성되는 분야도 분명 존재하며,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프가프의 경우 "대리점도 고객센터도 없이(p27)" 온라인상으로만 존재하며 유심 제조에만 전력하여 혁혁한 성과를 올리는 좋은 모범이라고 합니다.

"디자이너들은 본래 고용이 되어서는 안 되는 창의적 존재들이다." 이른바 개방형 네트워크 플랫폼의 대표 주자로 알려진 알레시의 창업자의 지론이라고 합니다. 사실 디자이너란 산업의 현실에선 스카웃의 대상도 되고 이직도 잦은 엄연한 고용인 신분인데, 예컨대 제 기억으로는 현기차의 경우 "그분"의 영입으로 특히 해외 소비자들에게 전폭적 지지를 얻어 오늘날과 같은 도약의 국면을 맞기도 했었지요(이제는 꽤 지난 과거가 어느덧 되어버렸습니다만).

이렇게 하면 첫째 디자이너들도 개별 기업의 컨셉과 브랜드 개성에 함몰되지 않고 자기 스타일을 유지할 동기가 생기며, 기업들 역시 법정 고용 유지에 드는 각종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이게 "무책임"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디자이너에게 자신들이 심미적 가치를 증진시킨다는 자부심과 목적의식을 심어 주는 게 중요하고, 다음으로는 알레시가 모범을 보여 주었듯 신진 기예를 발굴, 육성하여 알레시와만의 연계 의식을 함양하는 게 필요합니다. 한때 일본 엔지니어들이 소속사에 제기하여 큰 문제가 된 이른바 지적재산권 이슈에서도, 알레시는 상생의 정신으로 디자이너들에게 큰 폭의 권리를 계약으로 인정해 준다는군요.

비슷한 패러다임으로 시장을 대하는 게 로컬모터스입니다. 이 회사는 공개, 공유, 협력이라는 가치를 표방하며 철저히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자동차를 생산하는 게 사업 모델입니다. 한번 원형을 제안해 두면,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귀한 의견을 개진하고, "잠재적" 소비자들도 그 제작에 실질적 기여가 될 다양한 형태의 "참여"를 시도합니다. 이런 열린 프로세스에서 홍보와 제조가 동시에 이뤄짐은 물론이거니와, 탄생 과정을 일일이 지켜본 대중과 미디어 모두 신상의 쇼케이스까지를 응원하는 팬으로 끌어들이는 셈이니 기계적, 타산적인 재래식 마케팅에 의존할 필요가 없죠.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해도 효과 없지만 안 하면 괜히 찜찜하기만 한 게 광고라고요. 외부 엔지이너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바로 위의 알레시 사례와 매우 닮았습니다.

거래유형별 플랫폼으로 저자들은 세 가지를 듭니다. 첫째는 집합형인데 플랫폼 운영자가 실제로 판매할 제품, 서비스를 모두 보유한 구조를 가리킵니다. 제 생각으로는 종전 방식의 분류로, 자신이 직접 ware를 가지고 상대와 거래하는 "중계 무역"이라든가, 혹은 broker와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dealer 같은 게 있습니다. 브로커는 그저 상대를 연결시키는 역할만 하지만(쉽게 말해 공매도 같은 것), 딜러는 자신이 보유한 물품을 팔고 사기도 하는 책임지는 거래자죠.

이런 것과, 제품형, 다면형 플랫폼은 구분됩니다. 먼저 제품형 플랫폼으로는 책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을 듭니다. 이 제품 하나에 얽힌 여러 산업과 제조 섹터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며, 그러면서도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일은 전문 업자가 따로 맡는다는 소립니다. 다면형으로는 책에서 페이스북을 예로 드는데, 요즘 우리가 TV광고에서 자주 보는, 구글 플레이에서 성공적으로 게임 개발자로 데뷔시킨 여러 프로그래머들이 구글 플레이 스토어를 바라보는 시각, 혹은 객관적, 실물적 관계가 바로 다면 플랫폼의 전형이겠습니다. 엄밀히 말해, 요즘 우리가 플랫폼 하면 대뜸 떠올리는 건 이 후자 두 경우뿐이겠습니다.

번화가를 걸을 때 최신 유행곡이나 캐럴이 울려퍼지면 보행자도 덩달아 신이 납니다. 이런 건 곡의 홍보도 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사용료를 charging 할 방법도 없어 그간 찜찜하나마 법과 계약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지요. 원트리즈 뮤직은 저작권자들의 이익 환수 대행 노릇도 할 뿐 아니라, 대형 매장에서 언제나 부담스러워할 만한 "우발적이고 갑작스러운 청구"에 합법적으로 대응할(=제값을 내고 쓰게 돕는) 창구, 경로를 마련해 줍니다.

여기에 그치면 기존 저작권 협의체와 다를 바 없는데(이런 협의체도, 앞에서 말한 대로 무형의 사회적 인프라이며 외부 불경제 효과를 해소하는 요긴한 에이전시입니다), 원트리즈는 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사실 매장에서 트는 음악은 이를 찾는 소비자가 그 매장(꼭 백화점 같은 곳뿐 아니라 일식집, 바, 클럽, 셀렉샵 등 다양하죠)을 기억하는 중요한 차밍 피처 중 하나입니다. 아니, 하다못해, 동네 마트에만 가도 어떤 점장님은 꼭 1990년대 히트곡 메들리만 줄창 틉니다. 그게 전략이건 그분 개인 취향이건 간에 소비자는 귓전을 쨍쨍 울렸던 BGM(?)으로 그 매장을 기억하기 마련이죠. 원트리즈는 매장과 협의하여 일종의 BGM 컨설팅까지 해 준다는 뜻입니다. 인테리어보다 어쩌면 더 세심하게 이미지 빌딩에 기여하는 게 음악일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더 놀라운 건, 음원 공급 면에서 타 업체에 기댄다면 원가 관리에서 유출적 요소를 결국 통제 못 합니다. 이 회사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인재를 키워 자사가 보유할 만한 새 음원을 Db로 축적도 한다는군요. 배고픈 작곡가들과 윈윈하는 멋진 발상이 아닐 수 없죠.

쉐어블링은 이른바 커머스 3.0의 이념을 구현하는 모범적 플랫폼의 선두 업체입니다. 이 발상은 개인별로 비슷한 아이템을 구매, 착용해도, 그 효과나 조합은 상상 밖으로 다양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자명한 이치인데 왜 이때까지 다른 이들은 이를 사업 모델로 만들 아이디어를 못 떠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책에서는 이 플랫폼만이 제공할 수 있는 효용으로, "개별 소비자들은 자신의 스타일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p269)", 아울러 판매자 쪽에서도 낱개 품목이 아니라 세트(=번들) 단위로 다룰 수 있으니 더 큰 이익이라고 합니다. 확실히 사람이 짜내는 지혜와 꾀에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SNS는 일부 불건전한 소통이나 과시적 게시물, 외적 지표에만 치중한 중독형 행태가 두드러지긴 하지만, 외국에서 예컨대 링크드인 같은 서비스는 진정한 인맥 구축의 통로가 될 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공식적으로 오프라인상의 관계를 미러링하는 증명처럼도 활용되죠. 게다가 채용과 지원의 유력한 소스 교환, 열람의 장도 제공하니 허위와 선전, 일탈의 채널이 아닌 진정한 사교(social)의 "플랫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장기적으로 페이스북 같은 범용 놀이터보다는 분명한 목적과 실용에 특화된 이런 관계망이 훨씬 큰 성장 가능성을 지닌다고 봅니다.

책의 내용은 꽤 방대합니다. 이 중에는 기발한 혁신 모델도 있고, 기존의 제도를 영리하게 비튼 변용, 응용의 미학이 돋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책의 서문에서 강조한 바와는 다소 다르게)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격으로 파천황의 성과를 낸 놀라운 창의와 도전의 전리품도 보입니다. 스타트업의 어려움만 유약하게 호소할 게 아니라, 이처럼이나 많은 선구자들이 진정한 "스타트업 정신"으로 이미 다져 놓고 일군 플랫폼, 모델이 이처럼이나 많다는 걸 알고 자극이나 좀 받아야겠습니다. 올라탈 거인의 어깨가 없다고 엄살 피울 게 아닙니다. 이처럼이나 무등 태워줄 의향과 의욕에 가득한 선배들이, 후배들의 견인차, 상생의 동반자 노릇을 하겠다고 줄을 섰지 않습니까?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난관이 축복의 꽃길로 탈바꿈할 수도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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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2041
로버트 스원.길 리빌 지음, 안진환 옮김, W재단 / 한국경제신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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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향하는 기온의 절댓값보다는, 아래로 치닫는다는 지향 자체가 사람에게는 공포와 좌절감을 안길 수 있습니다. 극지에서 얼마나 차가운 물체, 대기, 적대적 동물과 자주 마주했느냐보다는, 안온한 삶을 버려두고 나와 내 동료들이 왜 이 극한의 도전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지의 회의가 자아내는 중도 포기에의 유혹이, 아뇌쿠네메(Anökumene)를 헤집고 지나가는 모험가와 탐험대를 더 괴롭히는 요인임을 이 책을 읽고서 깨달을 수 있더군요.

본디 영하로 기온이 얼마나 떨어지느냐보다는, 옷깃을 더욱 여미게 강요하는 칼바람의 위력이 보행자를 훨씬 크게 위협합니다. 버젓한 중위도 지역의 동장군 위세가 이 정도인데, 극지방이나 그 아래 한대 지역의 살벌한 냉기란 사실 일반인의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짐작이 불가능합니다. 이 책 중에도 나오듯, 겨울철이라곤 하나 겨우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근방에서 쓸만하면서도 저렴한 트롤선을 물색하러 돌아다닌 친구, 동료(즉, 피터 맬컴을 말합니다. 이 책 중의 사연[저자의 일생이라고 해도 될 기간]에서 끝까지 요긴한 역할을 해 주는 인물이죠)의 행색이 마치 얼굴에서 고드름이 뚝뚝 떨어질 듯한 행색이라 아무도 남극 탐험을 위한 그의 구상 설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하니, 아마도 태평인 국외자들은 "이런 온대 지방의 추위도 제대로 감당 못 하는 자가 무슨 남극까지를 다녀오겠냐"며 더욱 못미더워했을지 모를 일이겠습니다.

지난주 일요일 SF 고전(?) <생명창조자의 율법> 독후감 중에서도 그런 풍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만, 어리석은 인간, 마케팅의 부추김에 같이 미쳐 날뛸 줄밖에 모르는 하등한 지성을 가진 인간은, 어떤 "바람"에 의하지 않고는 행동의 동인을 마련하지 못합니다. 혹은 뿌리깊게 존재를 짓눌러 온 열등감의 폭발이든지 말입니다. 이 책은 탐험가의 단일한 지역 탐사, 혹은 모험 성과 보고서라기보다, 한 운동가(물론 저자)의 자서전에 가까운 내용이더군요. 유머러스하고 (탐험가치고는) 꽤나 현란한 수사법, 혹은 명언들의 습관적 인용을 특유한 스타일로 삼는 문장이었고, 세계관도 낙천적임을 엿볼 수 있었지만, 그가 장노년의 나이에 접어들어서도 끝내 서운함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대목은, 어리석은 대중의 변덕, 꽉 막힌 관료제적 사고방식, 남의 단순 취향과 과학적 지식, 문학적 공통 원리를 분별 못 하는 천박한 트집 잡기 근성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직시하는 현실은 꽤 절박합니다. 그의 독단 같은 것(사실, 그가 지향하는 이념이야 대단히 숭고한 것이겠으나, 언행과 성격은 주변의 공감을 사기 무척 어렵지 않을지 짐작은 되더군요)에서 도출된 결론이 아니라, 극지방의 환경이 오염되거나 이상 징후를 보이면 다른 곳의 사정은 뭘 애써 분석하거나 검증할 필요도 없이 망가졌다는 뜻이죠. 저자는 책 여러 군데에서 "탄광의 카나리아"를 거론하는데(너무 잘 알려진 풍유라서 진부한 느낌마저 있지만), 사실 최초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카나리아에 빗댈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이미 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고나 봐야 합니다. 카나리아가 죽어나가도 위기 의식을 느껴야 할 판에, 내가 디딘 발 아래의 비계판이 아니라 지반 자체까지 무너져나가는 데도 태평이라면 그 무신경이란 이미 죽음을 자초할 만한 병적 근성이라고 봐야겠죠.

책은 아직 서른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 그가 스스로 자금을 모으고 유력자의 후원을 받아 남극 탐험에 나섰던 엄청난,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에의 회고부터 시작합니다. 이런 모험에 나선 계기 중 하나는, 저자가 유, 청소년기부터 마음의 우상으로 떠받들던 로버트 스콧에 대해, 우파 극단주의 저술가(일단 저자는 그리 규정합니다)인 롤랜드 헌트퍼드(Roland Huntford)가 그간 과장되이 유포된 전설, 신화에 대한 조목조목의 반박을 담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역시 저자의 견해에 의하면) 그 영향으로 아직까지도 명예 회복이 되지 못한 현실에 개탄하여, "스콧의 발자취를 따라" 무지원 횡단을 벌여 보겠다는 각오를 품은 일이었다고 합니다. 역시 젊고 순수한 영혼만이 떠올릴 수 있는(또한 실천에 그 일부라도 몸을 담을 수 있는), 강단 있는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헌트퍼드의 책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고, 일부 타당한 주장도 있는가 하면, 그의 비판이 꼭 스콧의 위업을 결정적으로 재평가(물론 평가절하)하는 모멘텀, 돌아올 수 없는 이정표가 되었다고 보기 힘든 면도 많습니다. 그가 거둔 객관적 위업에 대해서는 (저자가 주관적으로 어떤 애석함을 느끼든 간에) 아직도 절대 다수가 긍정적 평가, 존경을 품고 있습니다. 영국인이 아니라도 스콧이 위대한 탐험가인 줄은 다 알며, 다만 영국 외의 국가에서는 스콧보다는 아문센을 더 높이 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고, 이 점을 헌트퍼드가 새삼 영국의 폐쇄적 독자들에게 각성시킨 업적은 분명히 있습니다.

또, 이 책 중에도 언급이 있지만, 사람이 끄는 썰매가 개썰매보다 낫다며 스콧과 에저튼 경 등이 극구 개를 감싸고 돈 건, 현대 같으면 계급의식의 발로가 아니냐며 큰 논란이 일었을 만합니다. 스콧 등은 당시 "말 못하는 개한테 고생을 시킬 게 아니라 더 처지가 나은 너희 인간들이 모범을 보이는 게 존엄의 발휘이자 의무 아닌가?" 같은 발언을 했으나(이 워딩은 스콧, 섀클턴을 소재로 삼은 여러 저서들에 두루 인용됩니다), 바로 이런 가치관이 귀족적 사고방식일 수 있죠. 이에 대해 저자는 다소 논점을 에두르며, 자신이 실제로 현지에서 적용해 보니 인간썰매가 개썰매보다 나은 점이 많다고 주장합니다. 실용적 근거를 대는 셈인데, 극지방은커녕 캐나다 타이가 지대에서 썰매로 교통수단을 삼아 본 체험도 없는 일개 독자로서, 탐험으로 잔뼈가 굵은 저자께서 그리 말씀하시는 데는 더 반박할 수 없긴 합니다.

저자는 극지방 탐험 비용 마련(과 그 전 과정)을 위해 육체노동도 불사한 청년이었으나, 알고보면 출신은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습니다. 집안은 대대로 옥스퍼드를 나온 엘리트층이었고, 가문의 후광으로 얼마든지 해당 대학 입학이 보장된 상황이었으나 그는 끝내 소신과 (무모한) 꿈을 위해 부친과 학교의 제안을 거부합니다(책 중에 간간이 언급되는 미모의 여친 여러 분을 보면, 이양반 은근 풍류남아이기도 한가 봅니다. 심지어 "극지방 체험담만큼 작업에 성공적인 소재는 없다" 같은 말도 있습니다ㅋ). 이후 극지방 탐험을 위해 여러 인사와 기관, 법인체들과 접촉하는데 사실 이런 만남 주선 자체가 초고위층의 연줄이 있어야만 가능한 기회입니다. 이런 고위층 중에는 정말, 우리가 알 만한 영국 유수의 대기업과 금융 기관 이름은 한 번씩은 다 나오고, 칠레나 아르헨티나의 유력 단체는 물론, 심지어 일본의 암웨이까지 등장하더군요. 무튼 연줄 자체로는 기회만 마련될 뿐이고, 기회를 성과로 빚어낸 건 그의 진정성과 인간적 매력이었습니다.

비용 마련을 위해 그는 여러 장소와 공동체를 누비며 강연에 열중합니다. 그 중 그가 만난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한눈에도 빈곤층 밀집 지역(이스트엔드) 출신임이 드러나는 "눈이 툭 튀어나온 남루한 행색의 소년"이었습니다. 이 소년이 다가와서 강연을 마친 자신에게 쥐어 준 "50펜스 동전"이, 이후 역경을 마주하고도 초심을 유지하며 본연의 진로를 헤쳐나갈 수 있게 돕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첫번째 장정인 남극 탐사에 돌입합니다. 책 여러 곳에서 그는 "책에서 배우는 지식"과 "몸이 현지에서 비로소 절감하며 깨닫는 지식" 사이의 크나큰 괴리를 여러 번 토로하는데, 성공이라기보다는 서투른 시행 착오로 점철된 고난의 행군에 가까웠습니다. 남극에서 긴 세월(물리적으로도 길고, 주관적 체감으로야 또 얼마나 길었겠습니까)을 체류하고 의도했던 작업을 마쳤으나, 타고 돌아가야 할 서던퀘스트 호가 (마치 타이타닉처럼) 빙하에 부딪혀 침몰하는 바람에, 이 탐사대는 결정적 좌절을 인정하며 간신히 급파된 비행기편으로 문명 세계에 귀환합니다. 처음부터 그들의 시도를 비웃었던 대중과 미디어는 (그래도 무관심보다는 낫다 할) 싸늘한 냉소와 조소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자신은 탐험가가 아니라 생존자"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오지에서의 생존과 귀환이라면 이분보다 더 뛰어난 전문가가 우리 한국에도 여럿 있을지 모릅니다. 저자는 그러나 본분이 탐험가라기보다는, 탐험의 시도를 통해 환경 보호의 명분을 널리 홍보하는 운동가에 가깝습니다. 그의 시도 중에는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었으나, 실패마저 위대한 도전으로 결국은 대중에게 각인시킨 그의 인간적 진정성이야말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뇌쿠메네에서 극한의 상황에 직면하며 그가 절감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리더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 투철해야 하며, 자신의 자질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 그 자신이 정확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천한 인간은 권력 앞에서 아부하다가도 그 권력이 퇴조의 기미를 보이면 바로 적진의 사냥개로 돌변하여 물어뜯는 극악의 근성을 버리지 못합니다. 이런 인간은 환경의 변화에 카멜레온처럼 영합하며(그나마 기민하지도 못하죠), 현실의 다양한 정보와 양상을 진지하게 살피지는 않고 사냥개처럼 특정 진영의 가치를 폭주 맹종하는 데서 "깊이"를 찾는, 근본이 썩은 가치관을 지닌 종자들입니다. 저자 로버트 스원은 죽을 고비를 여럿 넘기며, 동료와 자신을 생존의 위기에서 지켜 주는 건 자기기만이나 환상이 아닌 현실에의 통찰을 거친 참된 확신임을 깨달았습니다.

존 밀스는 지난시절 영국과 헐리웃에서 만들어진 여러 고전에 출연한 이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로 큰 인기를 누린 배우지요. 이분이 특별히 저자를 불러(이유는 저자가 존경해 온 스콧의 형상화란, 영화 속에서 이 대배우가 빚은 명연기가 전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모금을 위한 대중연설에 아직도 서투른 청년에게 특별 지도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거울을 봐. 누가 있나?"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 듣기 싫은 목소리로 뭐라고 하는군요."
"이봐, 평생을 배우로 살아온 나는, 지금 거울 속의 저 인간이 마음에 들고 그 목소리가 안 거슬릴 줄 아나? 다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쉽게 믿을 수 없었다고 하네요. 배우들은 자기 도취에 빠져 사는 부류가 아니었는지 하면서요)
"자네는 지금부터 거울 속의 저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네, 이 과정이 끝나면 보다 유려한 연설가로서 남들 앞에 나설 수 있을 거야."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객관화한 후에 비로소 드러나는 단점을 교정하여 스스로에게 자신을 가진 다음이라면, 다른 이들도 그의 매력에 호응할 수 있으리라는 가르침입니다. 탐험가 못지 않게 대중 운동가로서 평생을 헌신했던 그에게, 이 대배우와의 만남은 중대한 이정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 제목은 남극 2041입니다. 2041년은 그간 잠정적으로 약탈적 경쟁을 자제해 왔던 북반구의 강대국들(여기에는 중국도 포함됩니다)이, 본격적으로 영토와 자원 확보 경쟁에 돌입할 수 있게 되는, 남극조약의 만료일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나치가 비행기로 극지방에 뿌린 수천 개의 스와스티카를 거론하며, 도대체 근시안적 탐욕에 절어 어머니 지구의 표면을 훼손하고 파국에의 질주를 서슴지 않는 이들 강대국 정부들의 작태가 나치의 만행과 우행에 다를 바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집니다. 무관심은 곧 공범 행각에의 참여나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부대원과 대중의 호응,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종전의 미숙한 청년에서 원숙하고 신념 강한 지도자로 인간됨이 거듭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평 앞에도 적었지만) 가장 방해가 된 건 주변의 마케팅 열풍에만 그 동기가 반응하는, 소비체제에 철저히 길들여지고 싸구려 진영 논리에만 중독되었으면서도 정작 자신을 깨어 있는 의식으로 과대평가, 착각하는 일부 대중들의 무관심한 작태였습니다.

남북극을 탐사하며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홍보하는 일 못지 않게참된 자신을 재발견하며 리더로 거듭났던 저자의 외침은 그래서 그 울림이 각별합니다. 지구의 환경을 수호하는 일에 동참하기란, 우리들 대중이나 독자들도 그저 적선이나 생색내기식 캠페인의 일부가 되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인격을 다른 단계로 도약시키는 노력이기 때문이죠.

책 중 "구름 끝에 황금빛 경계가 보였다"는 표현은, "실버 라이닝"이라고 해서 영어에서 즐겨 쓰는 관용구를 살짝 바꾼 것입니다. 역주에 보면 "여기(라스베가스)에서 일어난 일은 여기에 머문다"에 대한 설명에서 이 구절이 "관능적"이라고 한 건, 바람을 피우든 외도를 하든 가정과 본업으로 복귀할 때 그 일이 발목을 잡지는 않을 테니 마음껏 기분 내다 가라는 속뜻을 담았기 때문이죠. 이 구절을 제목으로 삼은 헐리웃 영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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